‘지금, 나는 온천지를 신비로운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석양의 노을처럼 가장 아름다운 태양의 모습이고 싶다.’
인생의 3/4을 노래와 벗 삼아 살아온 아티스트의 여정이 비로소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패티김은 54년 동안 쉼표 없이 꾸준히 대중 앞에서 노래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명제를 입증한 명실상부 한국 가요계의 전설이다. 이토록 가수라는 사명을 누구보다 소중히 했던 그의 갑작스런 은퇴 기자회견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했을 것이다. 아직 노래하기에 문제없는 컨디션이지만 더욱 당당하고 멋진 모습으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싶어 아름다운 퇴장을 결정했다는 패티김. 언제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던 개척자이자 위대함의 정점에 서 있는 그의 은퇴기자회견 장면을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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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잘 주무셨어요? 55년간의 음악생활을 사실 마무리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 아마 어젯밤에는 잠이 안 오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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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설레고 흥분되고, 아침에 밥이 안 먹히더라고요. 걱정되진 않았는데 긴장되고, 속이 울렁울렁하고. 마치 공연 15분을 남기고 막이 오르기 전에 서서 기다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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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소식을 접하는 분들마다 왜 벌써 은퇴하시는지 의아해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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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세요?(웃음) 올해로 만 54년을 노래해 왔습니다. 그리고 내년이면 55주년이 됩니다. 저는 지금 보시는 것처럼 건강하고, 노래 아직 잘하고, 멋진 모습으로 당당하게 여러 팬들 기억에 영원히 남고 싶은 마음에 (은퇴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갈등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을 했어요. 저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를 어떤 식으로 멋지게 할 것인가를 10여 년 동안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마음은 더하고 싶어요. 앞으로 5년, 10년 영원히 하고 싶죠. 그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의 건강한 상태로 무대를 떠나는 것이 가장 패티김답다는 생각을 했죠. 석양 질 때의 노을 빛이 온 세계를 완전히 붉게 장식했을 때의 모습, 저는 그렇게 여러분 기억에 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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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고민하셨다고 했는데, 발표를 앞두고 가족들이나 가수 동료들에게 소회를 밝히신 적이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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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는 저의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물론 저와 일을 꾸준히 해온 프로덕션 임원들에게도요. 사실 제일 먼저 외부인에게 저의 의사를 발표한 것은 SBS 사장이신 이남기 씨, 그리고 임성훈 씨, 조영남 씨와 저녁을 먹으면서였습니다. 다른 동료가수들은 이 뉴스를 통해 처음 알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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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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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물론 틈틈이 생각은 하고 있죠. 은퇴하고 나면 평범한 김혜자(본명) 할머니로 돌아가서 나비로 훨훨 날아다니며 아이들, 딸들과 시간 많이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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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50여년의 활동들이 스쳐 지나가실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으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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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때가 가장 아름답고 체력도 좋았고. 사실 노래는 50이 되면서 가장 성숙해졌고 골든 보이스였어요. (지금과 비교하면 어떠냐고 묻자) 대단히 만족한 상태에요 지금도. 3년 전에 50주년 콘서트가 있었는데, 사실 그 때 동시에 은퇴할까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너무 노래가 잘 되더라고요. 체력과 성량도 문제없었고. 은퇴하기에는 너무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아직은 아니다라는 욕심이 생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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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는 50대 때가 전성기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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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전에는 솔직히 멋만 부리고 고음 자랑하고 그랬죠. 나이가 들면서 무대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맨 처음 시작할 때는 무대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제가 잘난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하다 보니까 무섭고 긴장되고. 공연 전에 저는 몇 십분 전부터 양치질하고 준비하고 의상입고 딱 서 있습니다. 절대로 앉아있지 않아요. 서곡이 나갈 때는 공연장에 와 계신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너무 심장이 뛰니까 지진이라도 나서 공연이 취소되었으면 할 때도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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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한지 반세기가 넘었는데도 그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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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무척 심했어요, 요즘은 좀 덜하지만. 막이 오르기 직전의 마음이란 건 여러분들은 아마 상상을 못하실 거예요. 얼마나 긴장되고 초조하고 불안한지. 팬들은 보통 예전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 같이 늙어갑니다. 몸이 늙어 가면 성대도 늙어가기 마련이에요. 그러나 팬들은 그런 것 까지는 생각 안하세요. 그 음성 그대로를 기대하고 계시는 거죠. 그만큼 압박이 어마어마해요. '사랑은 영원히' 전주를 들으며 오늘 마지막 고음이 깨끗이 나와줘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하죠. 작년만큼 잘되어야 할 텐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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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은퇴가 건강 때문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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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건강해 보이지 않으신가 봐요(웃음). 저는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라고 외치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저의 정신연령과 육체연령은 40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직도 수영 1500m도 가뿐하고 매일 4~5Km를 걷고 있어요. 절대 건강 때문은 아닙니다. 앞으로 10년도 저는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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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도 없으시고, 정상에서의 모습을 기억해주십사 하는 마음에서 은퇴하려고 했지만 하다 보니 노래가 아주 잘돼서 다시 결심을 돌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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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년 때는 제가 관객들과 약속을 했어요. 제가 앞으로 10년 더 하겠다는 도전장을 내놓고 50주년 때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요. 그래서 그 동안 관리에 있어서 노력 많이 했습니다. 참 쉬운 일이 없죠. 덕분에 50주년도 성황리에 잘 끝났어요. 한 80여 공연을 했더라고요. 하지만 50주년 때는 제가 자신 있게 약속을 못했어요. 나이 70이 되고 나면 몸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서. 그래서 저 혼자서 1년씩 1년씩 가보자라는 심정으로 해왔는데 작년 9월쯤에 확실히 결정지었습니다. 2012년에 시작해서 2013년 어느 땐가에 정말 파이널 커튼이 내려오도록 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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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번복은 없으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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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그건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니까요. 확실히 저는 무대를 떠납니다. 그 후에는 정말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서겠지만, 유료공연이라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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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가수 분들이 노래의 키를 낮춰 부르는 순간 은퇴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키를 낮춰서 부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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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늙어가면 성대도 같이 늙어 갑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는 하루 2회 공연을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럴 때 뒤의 공연을 생각해서 반키 정도 내린 적은 있어요. 그랬더니 어떤 팬이 글을 올렸어요. 음악을 아는 분이죠. 그게 저에게 웨이크 업 콜(wake up call)이었어요. 마니아 팬 분들은 알고 있구나. 그래서 아직도 Em 원키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노래를 잘할 때, 실력이 떨어지기 전에 멋지게 떠나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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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0살 때로 돌아가시면 다시 가수를 하고 싶으신지 아니면 다른 것을 하고 싶으신지, 그리고 후회되는 한 가지, 자랑하고 싶은 한 가지가 각각 있으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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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면서 후회가 없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저는 후회는 별로 없는 대신 아쉬움이 많아요. 그리고 전 20살 보다는 30살로 돌아가고 싶어요 저는. 20살때는 너무 몰랐어요. 그래도 그때로 돌아가라면 저는 음악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가수는 30살부터. 그때가 꽃이 확 필 때라. 무엇보다 저는 다시 태어나서도 가수라는 직업을 꼭 하고 싶습니다. 다른 것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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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을 수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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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을 낳았을 때가 여자로서 가장 행복했고요. 공연으로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국내 대중가수로서 처음으로 무대에 섰는데요. 가장 가수로서의 만족감 행복감, 보람을 느꼈고. 카네기 콘서트 홀에서도 역시 그랬었어요. 재미교포들이 “장하다! 훌륭하다!”고 막 외쳐주셨고, 또 앞에 계신 관객들은 같이 우셨어요. 길이길이 남을 공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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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동안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단 하나의 명곡을 꼽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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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곡 안되나요. 한곡은 너무 어려워요(웃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영원히」, 「사랑은 생명의 꽃」, 「빛과 그림자」 등 많지만 가장 제가 애정을 갖고 부르는 노래는 「9월의 노래」입니다. 부를 때마다 저 우주 한 바퀴 훅 돌고 오는 기분이에요. 사실 「9월의 노래」는 마니아들만 좋아하시는 노래에요. 샹송 풍의 노래고,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르다 보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요. (요청에 못 이겨 무반주로 1절을 부른 후) 이런 노랩니다. (반주 없이 들으니까 그 맛이 더 살아난다고 하자) 노래의 맛. 제 실력을 과시하는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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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연이 담겨 있는 노래도 있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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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죠. 이 노래 아세요? (한 소절 가창 후) 이 곡은 부르면서 많이 울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알던 부부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 부인이 30대부터 정신착란이 와서 자꾸 집을 뛰쳐나갔어요. 그러면 며칠씩 찾아서 데려오고. 그런데 어느 날은 부인을 찾지 못했어요. 아마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못 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 그에 대한 제 마음을 글로 쓰고, 당시 길옥윤 선생님하고 살 땐데, 곡을 좀 붙여달라고 해서 발표한 것이 이 노래에요.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은 나의 천국 /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남편의 마음이에요. 제가 아는 분이니까 노래를 부르면 그 부인도 떠오르고 남편도 안타깝고. 그래서 참 많이 울었어요. 그래서 관객들은 남편(길옥윤)하고 어떻게 됐나 그러시고(웃음). 하여간 그런 사연이 있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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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가수 양성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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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많이 노력해봤어요. 제2의 패티김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데 요즘은 기획사에 전속되어 있어서 자기 맘대로 일을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포기했고,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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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공연에 대한 대강의 밑그림이 있으신지, 마지막 노래는 정해졌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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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체조경기장에서 은퇴 공연을 시작하는데요. 사실 제가 좀 체조경기장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곳은 왠지 노래나 의상이 좀 록 같아야 할 것 같고. 그래서 조용필 후배를 만났어요. 용필 씨는 주로 체조경기장에서 많이 했으니까. 어떻게 시작을 해야 좋을까 물었더니 체조경기장으로 들어가라고 말해줬어요, 나는 자신 없었는데. 그리고 타이틀도 고민 많이 했어요. 라스트 커튼, 아듀 등 여러 가지가 나왔었는데, 그 중에 이별이라는 타이틀도 나왔었어요. 그런데 그건 조금 우울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용필 씨가 “아 선배님은 당연히 이별로 가셔야죠” 그래요. 나는 그게 좀 유치한 것 같다고 했더니, 선배님의 히트곡이기도 하고 은퇴공연이니 팬들의 가슴이 뭉클해질 것이라고 하길래 '이거구나' 싶어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곡은 대충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데뷔곡을 해야 하겠죠. 마지막 곡은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공연 날 직접 와서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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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기분이 어떠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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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요. 너무 많이 울었어요. 개인적으로 알진 못했지만, 불행한 시기가 있었잖아요. 저는 대단한 팬이었어요. 다시 컴백하기를 너무 기다리고 있었고, 컴백 콘서트의 첫 공연장소가 한국이었어요. 그래서 초대권 다 무시하고 앞자리 제일 먼저 샀지요. 거기서 제가 환호하고 따라 불렀더니 저를 부르더라고요. 백발의 관객이 호응해주는 것이 신기했나 봐요. 막상 저를 부르니까 수줍어지더라고요(웃음). 악수하면서 제가 (휘트니휴스턴에게) 너무 반갑다고 하니까 당신이 더 아름답다며 관중에 돌아서 제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섰더니 환호성이 와~ 터져 나왔죠. 그때 휘트니 휴스턴은 제가 가수인지도 몰랐을 거에요. 그 때 사진을 못 찍은 게 너무 아쉬워요. 저는 마이클 잭슨 너무 좋아하고 휘트니 휴스턴도 마찬가지였는데, 너무 많이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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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공연에서 빅밴드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놓치면 중간에 멈추시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곤 했는데, 그러한 자신감과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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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없어서 그랬나(웃음). 저는 항상 생각하는 것이 팬만큼 냉정한 사람들이 없다고 봐요. 어제까지는 누구에게 막 박수 보내다가 내일 새로운 사람이 나오면 정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쪽으로 쏠려가는 게 팬들의 마음이에요. 제 품안에 들어온 팬들을 영구히 제 품안에 간직하기 위해 해야 하는 노력은 정말 너무나도 커요. 가는 사람은 잡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틀렸어도 다시 시작합니다. 가끔 있는 상황이지만,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하다가 가사가 딱 막혀요. 노래를 하다 보면 관객 분이 막 우시는데, 그걸 보고 '왜 우실까'하고 생각하다가 까먹는 거에요. 그런데 밴드가 틀렸을 때는 관객께서 모르시잖아요. 그러면 제 손해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시작하는 거죠. 틀린 부분을 우물쭈물 넘겨 보내기가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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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들이 있는지, 한류 1호 가수로서 한류 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조언을 하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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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이십니다. 저에게는 정말 후원해 주신 분이 너무 많아서요. 먼저 좋은 성대를 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 드려요. 정말 넘버 원 후원자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발탁해서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미국까지 진출하게 해주신 당시 AFKN, NHK 고문이셨던 미스터 마스터스씨는 저의 영원한 은인이시고, 박춘석, 길옥윤 두 작곡가 선생님들. 그리고 저를 이해해 준 가족을 빠뜨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아주 어린 후배들,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요. 제가 일본이나 미국을 갔을 때에는 트럭 타고 다녔어요. 옷가방 제가 들고 화장하고 머리하고, 이렇게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너무 어린 후배 가수들이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 고급 승용차 타고, 비행기 타고 가서 대한민국을 참 자랑스럽게 알리고 있지 않습니까. 너무나 대견하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부러워요. 60년 정도 뒤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죠. 그리고 후배가수들이 노래를 너무 잘하세요. 모 방송프로를 참 열심히 보는데, 20대들이, 20대라고 하면 아직 유치원에서 초등학생이거든요. 그런데 노래를 너무 잘해요. 대규모로 춤을 추면서 노래를 짧게 할 때는 몰랐는데, 솔로로 나와서 하는 걸 보니까 저렇게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있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된 거죠. 토니 베넷(Tony Bennett)이 만 86세입니다. 그런데 작년에 앨범을 또 내셨어요. 레이디 가가(Lady Gaga)처럼 활발히 활동하는 가수들과 함께 듀엣 앨범을 냈는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딸보다도 어린 가수들과 앨범 하나 내고 싶은 것이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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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신데,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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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으로서는 올해 내년 공연에 모든 집중을 하고 있고요. 그 이후에는 생각할 여력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게 모르게 자선공연을 많이 했었는데, 앞으로 저는 자연환경, 자연보호 에 많이 힘을 쓰고 싶어요.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푸른 하늘을 다시 찾자' 같은 캠페인처럼요. LA의 브래들리(Tom Bradley) 시장이 삼선을 하면서 너무 아름다운 하늘을 되찾았지요. 그런걸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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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참고 계신 거 같은데 언제 눈물을 흘리실 거 같으세요. 내년 은퇴공연 때 감정이 격해지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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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슬퍼요. 솔직한 고백입니다. 일생 하던 노래를 그만둬야 하니까요. 하지만 전 행복합니다. 50년 이상의 노래인생이 너무 행복했고, 만족했고, 감사해야 할 분이 너무 많아요. 다만 저보다도, 팬들께서 많이 우실 것 같아요. 팬께서 우시는 모습을 보게 되면 제가 울게 되는데. (그러면 일 년을 계속 우실 것 같다고 하자) 예, 그럴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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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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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너무 정신이 없는데요. 감사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가수의 길을 열어주신 분들, 아름다운 곡을 주신 작곡가 분들도 있지만, 음으로 양으로 저를 이해해주고, 대중들에게 양보를 하며 끊임없는 사랑을 보내준 가족, 두 딸, 남편, 형제들. 그리고 항상 막내 동생이 제 옆에 있어주었어요. 저라고 다운되지 않으란 법이 없지요. 그럴 때마다 항상 용기를 준 동생. 그리고 16년 동안 제 곁에서 오른손이 되어주고 일꾼이 되어준 안재용 대표 정말로 참 수고 많이 했고, 끝까지 은퇴공연을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들이죠. 50년 이상을 한결 같이 변함없이 제 곁을 지켜주시며 박수, 응원,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제가 여기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제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 애정 표하고 싶고. 고마운 분들 너무 많아요. 오늘 나와 주신 임성훈 씨, 임진모 평론가님, 여기 오신 여러분들도 고맙고, 고마운 분들 참 많습니다. 저를 지켜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자 분들) 좋은 글 써주세요.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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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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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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