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너무 심하다고? 현실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학교폭력이 태연히 자행되어왔고 어른들은 쉽게 분노하였지만, 또 쉽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우리가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에 더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보다 더 오래 그 희생을 기억하고 더 많이 아파한 작가가 있다.
글ㆍ사진 김수석
20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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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여고생 자살’, ‘대구 중학생 자살’ 학교폭력에 의한 어린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소식에 온 국민이 분노와 슬픔에 빠져 있다. 특히 눈물을 쏟게 하는 ‘대구 중학생’이 남긴 4장의 유서는 학교폭력이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 사회적인 악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 학교폭력이 태연히 자행되어왔고 어른들은 쉽게 분노하였지만, 또 쉽게 잊어버렸다. 그렇게 우리가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에 더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보다 더 오래 그 희생을 기억하고 더 많이 아파한 작가가 있다.


“초등학생은 너무 심하다고요? 현실은 이보다 더 심한걸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자기계발서와 변화를 꿈꾸는 정치 서적들이 출판계를 휩쓸 때,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작가가 학교폭력을 다룬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의 제목은 『사소한 문제들』. 그리고 그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했다. “내용이 너무 폭력적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삼은 건 너무 심하다” 등이 주된 반응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신문기사나 뉴스를 많이 참고해요. 『사소한 문제들』을 착안할 때도 그와 유사한 사건들이 연달아서 발생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현실은 금방 잊어버리고 소설의 설정이 심하다고만 생각하죠. 정말 무서운 거는 그런 현실을 금세 잊어버리는 우리의 무감각증이에요.”

안보윤 작가가 『사소한 문제들』의 집필을 시작하던 2008년엔 초등학교 여학생을 중학생들이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가 떠들썩하던 때였다. 우리는 그 사건을 잊어버렸지만, 그 여학생은 여전히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소한 문제들』이 출간되고 석 달도 안 돼 학교폭력에 의한 연이은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대구 중학생 자살’ 학교에서 지난 7월에 발생한 여중생 자살도 교내폭력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대구 중학생 자살’은 이미 예견된 사건이었고 어른들이 관심을 좀 더 가졌다면 충분히 예방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건물이 한 번에 무너지는 경우는 없어요.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물이 샌다던지, 불이 나간다던지, 수도관이 비틀린다던지 하는 징후들이 있잖아요. 실상 그런 징후가 중요한 것인데 문제는 그런 징후들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현실이죠.”


“저 역시 학교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어요.”

『사소한 문제들』에는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이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어가는 과정과 심리묘사가 잔혹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작가의 경험담을 옮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에게도 학교폭력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한다.


“잘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인데, 저 역시 왕따를 시키기도 했고 당하기도 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아이를 체계적으로 따돌렸고, 그다음 해에 고스란히 되받았어요. 그래서 소설 안에 무의식적으로 제 이야기가 약간은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안보윤 작가의 경험대로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음부터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때로는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폭력은 습득되고 대물림된다. 피해자는 폭력을 동경하게 되고 기존의 폭력에 자신의 창의력을 더하기도 한다.

“저는 기본적으로 악이나 폭력은 학습된다고 봐요. 창조적으로 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당했거나 어디서 보았거나 혹은 들은 것들이죠. 폭력적인 분위기는 쉽게 전이되기 마련이에요.”


“소설책이나 읽을 거면 도서관에 발도 들여놓지 마라!”

정서적인 공감이 이뤄지지 않는 시대. 게임에서 적을 죽이듯 살인을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이는 기형적인 세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을 사이코패스라 한다. 경쟁을 강요하는 학교제도는 사이코패스의 이기적 성향을 사회적 수완이라 가르쳐왔던 것은 아닌가. 우리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회에서 무엇을 보고 배워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사이코패스의 예는 일상화되어 있다.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의 횡포를 우리는 수시로 겪으면서 살아간다. 학교폭력은 어찌 보면 사이코패스화된 사회의 자그마한 표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어요. 인천에 있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매일 소설책 두 권을 읽고 소설을 쓰는 일과를 보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 자리에 ‘소설책이나 읽을 거면 자리 채우지 말고 집에 가버려’라는 쪽지가 놓여 있더군요.”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도서관 게시판에는 ‘도서관 꼴불견 베스트3’라는 익명의 게시물이 붙었다. 베스트2위가 열람실에서 소설책 읽는 사람이었다. 안보윤 작가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그 후로 한동안 심란해서 도서관에 못 갔어요. 열람실에서 공부하시는 분들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시거나 토익 공부하시는 분들이었어요. 저는 한동안 카페에서 공부하다가 매일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없어서 결국은 도서관으로 돌아갔죠. 그리곤 소설책을 숨겨가며 읽곤 했어요.”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학교폭력이 습득되는 것이라면, 학교폭력은 기성세대가 신세대에게 남겨준 유산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양산해내는 폭력적인 콘텐츠와 유해환경들. 매번 반복되는 대안 없는 분노와 슬픔. 이러한 순환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학교폭력에 점점 더 무감각해져 간다.


“우리는 무감각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학교폭력은 기성세대의 무감각에 의해서 더 번진다고 생각해요.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문제에요. 우리가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아이들을 보호하려 노력해야 해요. 반복되는 학교폭력이 지리멸렬한 사건으로 여겨지게 될까 봐 겁이나요.”

‘대전 여고생’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타서 두 개의 버튼을 눌렀다. 하나는 집으로 가는 4층이었고, 다른 하나는 죽음에 이르는 14층이었다. 4층에서 문이 열렸지만 ‘대전 여고생’은 그곳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대전 여고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직 삶이 뭔지도 모를 어린 학생들이 죽음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현실.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의 관심뿐이다.
학교폭력이 또다시 ‘사소한 문제’로 인식된다면, 더 많은 학생이 4층이 아닌 14층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은 내 아이가, 내 조카가, 내 동생이 될 수도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안보윤 작가는 자신이 따돌림당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폭력에서도 자신을 소중히 하는 마음마저 놓아버리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외적인 폭력 못지않게 무서운 게 스스로의 안에서 생겨나는 폭력이에요.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했을 때 자신의 내부에는 수도 없이 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거든요. ‘나는 되게 못났고, 따돌림을 당할 만큼 못된 아이인가 보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한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폭력이에요. 외적인 폭력은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요. 절대 스스로의 부정적인 생각에 져서는 안 돼요.”

학교폭력을 사소한 문제로 간과할 수 없듯이, 안보윤 작가의 신작 『사소한 문제들』 역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소설이다. 『사소한 문제들』은 뉴스보도와는 다른 소설 특유의 공감의 힘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감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사소한 문제들』은 마냥 행복하고 편하게 읽을 수만은 없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의 잔영이라면 쓸쓸하고 불행한 그림자일지라도 끌어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소설의 결말은 행복하지 못해요. 인물들의 고민과 갈등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건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제 마음속엔 소설 속의 인물들이 멍처럼 남아 있어요. 『사소한 문제들』이 불편한 소설로나마 독자분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 가슴의 멍과 함께 우리 사회의 멍도 지워질 날이 오리라고 믿어요.”




◈ 작가소개


안보윤 작가는 명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5년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로 제1회 자음과모음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소한 문제들 #학교폭력 #안보윤
1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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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2.23

이번에는 제대로 학교폭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흐리면서 저절로 예전으로 되돌아가서는 대한민국의 교육이 땅에 떨어짐은 물론이겠지요. 개인적으로는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괜찮게 생각하나 규율을 번번히 어기는 학생들에게는 선진국처럼 엄한 페널티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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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jmcp25

2012.01.27

어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낸 폭력적인 컨텐츠와 유해환경들이 학교 폭력을 만들어낸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학교폭력은 어른들의 문제라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학교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고통받는 아이들이 많은데 어른들은 그러한 현실을 알면서 잠깐의 대응책만 제시해주고는 금방 잊어버린것 같습니다. 그러한 무감각증이 학교폭력을 양산하게 되었고 그러한 고통은 아이들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하여 어른들이 나서서 관심을 갖고 보호해서 학교폭력의 고리가 끊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문제들에서 결말이 행복하지 않듯이 지금의 현실도 그런것 같습니다. 모두가 다 같이 노력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즐겁고 편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안식처로 생각할 수 있도록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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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2.01.22

학교안이 정말 무슨 전쟁터같습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도 아니고 현실이 안타깝네요. 너무나 많은 소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것에 대한 개선책들이 많이 나와야 될텐데.. 혹여나 학교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친 것은 아닌지 괜하게 쓸데없는 행정낭비 및 인력낭비로 정작 잘 돌봐야할 학생들을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를 돌아보고 원점부터 다시 점검해서 최소한 무력감은 안들 정도로 과감하고도 지속적인 정책과 노력들이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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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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