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과 정성으로 밀어낸 국수 한 그릇
경북 안동 풍천면 저우리 마을 반장인 박재숙 할머니는 젊은 날 먹던 국수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안동 사람들은 특히 은어로 육수를 낸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저우리 주민 김정희씨가 말을 거든다.
201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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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풍천면 저우리 마을 반장인 박재숙 할머니는 젊은 날 먹던 국수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안동 사람들은 특히 은어로 육수를 낸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저우리 주민 김정희씨가 말을 거든다.
“예전엔 낙동강에서 은어가 많이 잡혔대요. 은어는 석빙고에 저장했다가 임금님께 진상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댐이 생겨 자연산 은어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하네요.”
박재숙 할머니도 은어로 낸 육수는 맛보지 못했다. 어른들에게 들어본 게 전부다. 맑고 깨끗한 1급수에만 사는 은어는 ‘수중군자(水中君子)’라고 불린다. 기품 있는 겉모습과 맛에 대한 상찬이다. “죽는 것은 괜찮으나 상놈의 입에 들어갈까 슬프다”고 유언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생선이다. 그러나 환경변화로 은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면서 대신 닭이나 멸치로 육수를 만든다. 박 할머니가 은어 대신 닭육수로 건진국수와 누름국수를 만들어주겠다며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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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은 이렇다. 우선 면 준비. 안동에서는 밀가루와 콩가루, 달걀을 섞어 면을 만든다. 밀가루와 콩가루의 비율은 1대 2다. 콩가루가 들어가면 면은 더 구수해진다. 고소한 냄새가 저 멀리서부터 난다.
“손국수는 얇아야 맛있지.”
박 할머니는 반죽을 소나무 밀판에 올려 30분이 넘게 박달나무 홍두깨로 밀었다. 50년 세월을 쓰고도 소나무 밀판은 반반하니 쓸 만하다. 두 팔을 벌린 길이만큼이나 긴 홍두깨가 긴 밀판 위를 쓱쓱 지나간다. 밀판과 홍두깨가 길어야 국수도 길게 잘 뽑힌단다. 반죽은 12시간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켜 사용한다. 그래야 부드럽게 잘 밀리고 매끄럽게 잘 썰린다. 밀가루를 고슬고슬 뿌려가며 밀어낸 반죽이 종잇장처럼 얇아지자 칼질이 시작됐다. 차갑게 먹는 건진국수용은 얇게, 따뜻하게 먹는 누름국수용은 굵게 썰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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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육수와 고명. 건진국수는 면을 삶아 찬물에 헹궈 그릇에 담는다. 여기에 미리 차갑게 얼려둔 멸치 육수를 붓는다. 고명으로 깨소금, 달걀지단, 잘게 다져 볶은 소고기, 김가루를 올리면 완성이다. 누름국수는 멸치 육수에 면을 바로 삶아낸다. 이때 봄배추와 호박, 무, 콩나물 등 채소도 함께 넣어 끓인다. 멸치 육수에 채소의 시원함이 더해진다. 밀가루 면까지 같이 삶았으니 국물은 갈쭉하다. 한소끔 끓여 면이 익으면 건진국수와 똑같이 고명을 올린다. 이 누름국수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안동국시’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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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빠른 박 할머니가 밥 한 공기를 꺼내온다. 국물과 먹으라고 준 밥은 병아리밥 같은 노란 조밥이다. 칼국수집에서 열무 넣어 비벼먹는 보리밥처럼 안동국시의 단짝은 조밥이다. 호박무침 등 각종 나물반찬을 곁들여 먹는다. 거친 보리가 아닌 색 고운 조로 만든 밥이 ‘양반국수’로 통하는 건진국수?누름국수와 잘 어울린다. 육수, 면, 고명 거기에 곁들이는 밥과 반찬까지 나무랄 게 없다. 안동국시의 참맛은 안동에서 국수를 먹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해줘서 어릴 때부터 먹던 음식”이라고 했다.
박 할머니는 22살에 시집 와 아들, 딸 하나씩을 뒀다. 장성한 자식들은 큰 도시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55살 때 돌아가셨다. 혼자 안동에 사는 할머니는 ‘농가민박’이란 민박집을 운영한다. 명절이 되면 손님 묵던 방에서 자식들이 잔다. 중학생인 손자는 올 때마다 국수를 해달라고 졸라댄다. 반죽과 육수를 하루 전부터 준비해야하니 정성 없이 못 만드는 할머니의 국수는 식당이나 공장에서 흉내낼 수 있는 맛이 못 된다. 박 할머니가 어머니 어깨 너머로 배운 곱고 귀한 음식을 가장 자주 맛보는 건 자식, 손주들이다.
안동의 국수는 인근 대구, 양양까지 영향을 주면서 퍼져나갔다.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통념을 깨고 서울 등 도심에서 ‘안동국시’란 이름으로 대접받는 음식이 됐다. 수백년 이어온 안동 여인네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이니 당연하다. 이젠 ‘안동국시’ 간판만 봐도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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