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현실은 막막할 뿐, 청춘에게 희망을 준다는 건 거짓말”
청춘에 대한 위로. 시대의 화두 중 하나다. 1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그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나는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 위로, 진의를 숨긴 채 청춘을 교묘하게 착취한다. 청춘의 어깨를 두들겨 주는 척, “기적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을 기다리라 말한다. 과연, 기다리면 좋은 시절이 올까?
201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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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대한 위로. 시대의 화두 중 하나다. 100만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그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나는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 위로, 진의를 숨긴 채 청춘을 교묘하게 착취한다. 청춘의 어깨를 두들겨 주는 척, “기적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너라는 꽃이 피는 계절”을 기다리라 말한다. 과연, 기다리면 좋은 시절이 올까?
책은 공감하는 태도를 취한다. 허나, 그 태도, 적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저자가 꺼낸 젊은 시절의 어려움은, “나도 해 봐서 아는데…”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어느 권력자의 것과 어째 닮았다.
어쩌면 지금의 많은 청춘이 접한, 엄혹하고 혹독한 현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든다. 학자금 대출이자를 갚으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하며, 쪼들리는 생활비에 공부는 뒷전이요, 친구들과의 관계는 멀어진 청춘. 쫄고 싶지 않아도, 쪼그라들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절망에 대해 이 책은 두루뭉술하다.
나는 의심한다. 청춘의 절절한 아픔이 이용당한 것 아닐까? 청춘이라는 이름이 모든 어려움을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아픔이 청춘의 당연한 귀결인양, 호도하다니. 아픔과 절망의 이면에 도사린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 기성세대의 책임은 어디에? 통로 없는 청춘들의 막막한 현실은 누구의 작품인가. 그러니, 아랫말이 더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라고 본다.
김한길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거듭 한 말씀이 그래서, 더욱 정직하고 현실을 일깨운다.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 일쑤란다.’ (마찬가지로, 고생 끝에 오는 건, 낙이 아닌 병이다.) 그의 청춘일지, 『눈뜨면 없어라』가 가진 미덕이다. 작가의 젊은 시절, 미국생활의 어려움, 절망, 고통. 그리고 아주 잠깐씩 반짝반짝 빛나는, 아픔을 잠시 잊게 만드는 모르핀 같은, 사랑의 흔적.
진짜 다독거림은, 청춘에게 닥친 문제와 화두를,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로 물타기하는 것에 있지 않다. 지난달 24일, 서울 홍대부근, 진짜 다독거림이 담긴 『눈뜨면 없어라』의 김한길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정치권에서 떠난 지금, 그는 “건들거리며 헬렐레 대며 여유작작하게 살고 싶던” 옛 소망과 마주하고 있을까? 아마도?!
어디, 찐~한 연애소설 없소?
독자들과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 이날 만남은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정직하고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기. 사랑방 담소를 나누는 마냥.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물음부터 주어졌다. 그는 우리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 복지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 읽기의 소중함을 언급했다. 정치를 했던 10여 년 동안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며.
“세상에 모순이 많지만 정치도 모순인 게,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대지』의 작가 펄벅의 글을 읽었다.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게 배우자 선택이고, 따라서 냉정하게 따져서 해야 하는데, 그 결정을 할 때만 약간 맛이 가서 한다더라. (웃음) 그 말처럼 정치인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데,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
복지관련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있다. 복지관련 토론을 보면, 보수 쪽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리스, 이탈리아처럼 과잉복지로 나라 망하는 꼴 보려고 그러냐?”
“책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어렵게 된 건, 복지 과잉이 아니라 유럽에서 복지가 가장 낙후돼서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닥치니까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는 흔들린다. 복지가 잘된 유럽 다른 나라는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대비 19~20%로 유럽에서 가장 낮다.”
그는 사실, 소설을 더 읽고 싶다고 했다. 특히 찐~한 연애소설. 그가 보기엔, 우리나라엔 아직 탁월한 연애소설이 없다. 우리 문학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했다. 있다면, 추천해달란다.
“문학이 원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한 건데, 그게 아직 없다. 요즘 SNS를 하는데, FTA때문에 속상해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단풍놀이 가면 좋을 텐데, 난 행복한데, 라고 쓸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불행이, 내가 마음 편히 행복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 대표적인 게, 행복한 만큼 행복해해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조성돼 있지 않다. 우리가 덜 행복한 사회에 사는구나, 실감했다.”
그의 대표적인 연애소설이자 베스트셀러였던 『여자의 남자』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 그를 구원한 건 이 책이었다. 돈도 엄청 벌고 유명해졌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기자고 쓴 건 아니었다. 가난했으므로, 베스트셀러를 써야지 마음먹었고, 뭘 쓰면 잘 팔릴까를 두고 궁리를 했다. 당시 문단엔 본격 연애소설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민주화투쟁이 여전할 때라 함부로 행복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문단에도 신화나 연애 이야기를 하면 돌팔매 맞는 분위기였다. 사회의식이 있어야 하고 노동자 편에 있어야 하고, 그런 소설이 아니면 당당하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노태우정권이 등장했을 땐데, 그때 민주화가 좀 되면서, 의식 있는 이야기도 아니어도 괜찮을 때였다. 그래서 유치한 연애소설을 쓰면 팔리겠구나, 깜찍한 생각을 한 거지. (웃음)”
경계인이자 문학청년이었던 김한길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 아이들은 허구 헌 날, 조센징이라고 놀렸다. 어느 날, 일본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다가 사고를 쳤고, 부모는 다음날 즉시 그를 한국으로 보냈다.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당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엔 ‘쪽바리’라는 놀림이 날아들었다.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초등학교 시절, 어린 김한길에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놀림이 사라진 것은 중학교였다. 그때 알았다. 친구들과 노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허나 그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당 소속으로 정치를 했던 아버지. 독재정권의 반대편에 섰던 아버지 덕분에, 중앙정보부는 그의 집에 상주를 했으며, 그들은 친구 부모들까지도 들들 볶았다. 친구 부모들은 어린 김한길에게서 자신의 아이들을 떼어냈다. 시대가 만들어낸 이별이자 불화. 그때도 유일하게 남은 건, 책.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저 읽고 썼다.
“요즘은 노래 잘하면 스타인데, 내 젊을 때만 해도 글 잘 쓰면 스타였다. 그래서 내가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환경 때문에 책을 많이 봤고, 아버지 때문에 직장생활 하는 게 불가능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게 글 쓰는 것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지한 습작기를 충분히 갖지 않고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대학 다닐 때, 대학신문에 ‘병정일기’라는 글을 연재했다. 원고지 8장으로 이뤄진 글이었는데, 화제가 됐다. 그러면서 기고만장했었다. 정색하고 쓰면 문단이 다 자빠지겠구나!
“그런 생각에 진지하게 2~3개 썼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 (웃음) 처음 가볍게 쓴 것에 극찬하던 사람들이 진지하게 쓴 것에 냉담하더라. 그 몇 년이 내가 가진 유일한 습작기였다. 내가 천재도, 문재도 아니구나. 진지하게 다시 쓰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봐도 진짜 작가들이 거친 오랜 습작기간에 비하면 초라한 습작기였을 것이다.”
그런 일도 있었다. 급성장한 신생출판사 편집장으로 있던 김홍신 작가가 출판사 사장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선 하는 말. 문단에 등단하지 않는 게 좋겠다. 우리 문단이 잘못됐다. 기성작가들이 합격?불합격을 매기는 게 타당하냐, 독자들이 해야지. 네가 등단을 거부하면 훨씬 더 멋있어 보일 거다.
“그런데 내가 약하거든. 멋있어 보이니까. 그래서 등단을 거부했다. 신인상을 준다고 할 때, 나는 그런 거 안 받는다고. (웃음) 그러다가 갑자기 미국에 가게 됐다. 『눈뜨면 없어라』를 당시 일기로 연재했다. 왜 연재했냐? 원고료를 준다니까 했다. (웃음)”
미국에서의 김한길을 쓰다, 『눈뜨면 없어라』
미국에 간 김한길. 가난하고 힘들었다. 문예지 《문학사상》에서 연재 제의를 했다. 주유소에서 밤새 일하는데, 할 일은 없고, 일기를 썼다. 이왕 쓴 것을 보내면 돈도 주니까, 좋았다.
“그렇게 30년 전에 쓴 건데, 지금 젊은 분도 공감한다고 해서 놀랐다. 당시 내 인생은 죽 어려웠다. 외롭고 절박했다. 그때의 막막함, 답답함이 오늘 젊은 사람들의 것과 비슷한 건가? 요새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이 많고, 그런 책들이 젊은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거라면서? 그런데 『눈뜨면 없어라』는 용기나 희망을 주는 게 아니다. 답도 없다. 그냥 답답하다는 거지. (웃음)”
어떤 출판사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을 쓰는 게 어떠냐고 권한다. 그는, 솔직하게 토로한다. 용기를 못 준다. 막막하다는 걸 쓸 순 있어도, 희망을 주는 것은 거짓말 같아서 못 쓰겠다. 그는 미국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다.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진 않다고 덧붙인다.
“나는 세상에 울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화만 나 있었지. 공부하든 안 하든 미래는 꽉 막혔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할 일도 없었다. 아버지에겐 반항적인 아들이었고,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세상에 대해 시니컬했다.”
그런 그도 자신에게 다른 점을 발견했다. 놀랐다. 힘들고 어렵게 살다가 한국의 미국 주재 신문사 기자가 됐다. 지독하게 죽어라 일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속물이라고 비웃어댄 것이 내 속에 너무 크게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때 동료들은 날 재수 없는 놈으로 봤을 거다. 반면 사장은 날 무척 좋아했고. (웃음) 내가 얼마나 빨리 진급했냐면, 내게 기사 쓰는 걸 가르쳐줬던 부장이, 내가 지사장이 됐을 때, 내 밑에서 편집국장을 했다. 죽기 살기로 했다. 지면 못 견뎠다. 다른 기자가 톱기사를 쓰면 미치는 거다. 나는 나한테 그런 면이 없는 줄 알았는데…”
부담스럽진 않을까. 자신의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가 책을 통해 오랫동안 읽히고 있는 것이. 그는 부담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럽진 않다고 했다. 그건, 철저히 그때 상황이고 심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회고한다. 밤의 주유소, 기름을 넣을 때는 정비공이 되고 싶었다. 차를 정비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햄버거 가게, 쿡헬퍼를 했을 때의 소원은, ‘쿡’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당시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정치인 김한길의 행보
김한길의 첫 소설, 「세네카의 죽음」. 건달인 남자주인공은 야무진 중학교 미술선생인 여자친구와 첫눈 오는 날, 마리아상 앞에서 각자의 소원을 빈다.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건달에게 여자친구는 정치가 뭔지 묻는다. 건달은, 사회구성원들 꿈과 희망의 일부분을 저당 잡아서 뭔가를 하고, 저당 잡은 것보다 더 크게 돌려주는 기술인 것 같다고 말한다.
“20대 때 쓴 소설인데,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웃음) 정치라는 것, 참 어렵다. 정치하면서 소설 주인공이 얘기했던 걸 실천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되지도 않고…”
소설이 히트하고, 토크쇼 진행자로 유명해진 그를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야당 총재가 잇달아 불러 정치를 권했다. 배우 최명길과 결혼한 직후였는데, 가족 모두 반대했다. 그러다 여당에 들어가라는 조건부로 허락받았지만, 그는 야당에 들어가야 정치와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봤고, 자신의 고집대로 갔다. 야당 국회의원이 됐다.
“인생, 모르는 거다. 그때, 김대중 총재가 데리고 가려고 만난 사람들 다, 대통령이 부르니까 여당갔다. 청와대 갔다가 야당을 택한 건 내가 유일했다. 재밌는 건, 다음해 정권이 교체됐다. (웃음) 여당 10년을 했다. 그때 여당을 택한 사람들은 1년하고 계속 야당을 했고.”
정치를 하면서 보람도 많았다. 정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정치는 효과적이었다. 그는 문학과 정치의 공통점을 들었다. 문학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대한 관심, 그것이 모여 만든 사회에 대한 관심이며, 정치 역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차이라면, 문학은 그 관심을 다른 관점에서 표출하고, 정치는 현실적이고 제도적으로 표출한다는 것.
“소설에서 허용되는 거짓말은 무책임하게 하는 게 아니다. 인간과 사회의 진짜 모습,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거짓말이다. 기자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을 써야하는데, 진실과 간극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칼럼쓰기를 좋아한다. 기사는 사실이라도 진실에 접근하는가에 대해선 괴리가 있다는 갈등이 있다. 칼럼은 파편 같은 팩트를 끄집어내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쓸 수 있다. 인간이나 사회의 진짜 모습에 더 한걸음 접근한 게 아니었나 싶다.”
김한길, 그러니까 사랑!
김한길은 책을 볼 때, 저항하면서 본다. 책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신을 위로하거나 움직인 책을 추천해달라면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보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른 주장의 책도 보려고 한다. 그건, 인생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다.
“각자에게 인생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타인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화가 나는 일이다. 별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각자 삶은 소중하니까.”
좋았거나 세상(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책으로, 가브리엘 마르케스 『백 년 동안의 고독』,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 까뮈 「손님」 등을 든다.
그는, 『자기 앞의 생』을 예쁜 소설이라며, 사는 게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로맹 가리란 이름, 오랜만이다. 그는 1980년12월2일, 21년 전 이맘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히며. 그는 한 사람에게 두 번 주지 않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두 번 받았다. 한 번은 로맹 가리(『하늘의 뿌리』, 1956)로, 한 번은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 1975)로. 로맹 가리 없는 21년, 그의 문학은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어떤 것도 계획할 수 없는 젊음을 살았다. 버티고 견디고. 기회가 오면 붙잡고 늘어지고. 아주 가끔, 산다는 건 아름답고 의미 있단 생각이 든다. 나머지 대부분은 왜 사나? (웃음) 아주 가끔이라도 사는 게 의미 있구나, 살아볼 만하구나, 아름다운 거구나, 그런 짧은 순간으로 나머지를 퉁친다. 그렇게 퉁 칠 수 있는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 김한길의 이날 이야기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눈뜨면 없어라』도 그렇다.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라는 카피가 있지만, 근저에는 오롯이 사랑이 있다. 그것이 질병 같은 생을 버티게 한다. 짧은 사랑의 희열, 나머지 고통과 슬픔을 퉁 치는.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다. 보물찾기를 했다. 아무도 보물을 찾지 못했다. 알고 보니 보물을 숨기기로 한 선생이 술 먹고 뻗어서 보물을 안 감춘 거다. 그러니 보물을 찾을 수가 있나.”
그는 그래서, 사랑을 회의한다.
“사랑이라는 게, 숨겨놓지도 않은 보물을 헤매고 찾는 보물찾기 같은 게 아닌가. 있지도 않은 걸 있다고 사기 쳐서 청춘들이 헤매고 있는 건 아닌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있지도 않은 우물로 혼란스러워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문 가져봤나? 사랑이 존재를 망가뜨리는 병균 같은 거 아닌가. 따분한 인생에서 뭔가 반짝 삶을 빛나게 해주는 요술 같은 게 아닌가.”
그는 그럼에도, 사랑을 확신한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의 실체, 실존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보물이 우리 인생에 숨어 있다. 대부분 시간이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사랑 때문에 잠깐의 보람으로 퉁 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아닐까. 젊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사랑 말고, 욕정 말고, 남녀 간에만 있을 수 있는 사랑보다 좀 더 큰 사랑이 세상에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책은 공감하는 태도를 취한다. 허나, 그 태도, 적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저자가 꺼낸 젊은 시절의 어려움은, “나도 해 봐서 아는데…”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어느 권력자의 것과 어째 닮았다.
어쩌면 지금의 많은 청춘이 접한, 엄혹하고 혹독한 현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마저 든다. 학자금 대출이자를 갚으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하며, 쪼들리는 생활비에 공부는 뒷전이요, 친구들과의 관계는 멀어진 청춘. 쫄고 싶지 않아도, 쪼그라들게 만드는 사회구조의 절망에 대해 이 책은 두루뭉술하다.
나는 의심한다. 청춘의 절절한 아픔이 이용당한 것 아닐까? 청춘이라는 이름이 모든 어려움을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아픔이 청춘의 당연한 귀결인양, 호도하다니. 아픔과 절망의 이면에 도사린 불안과 공포를 조장한 기성세대의 책임은 어디에? 통로 없는 청춘들의 막막한 현실은 누구의 작품인가. 그러니, 아랫말이 더 정직하고 솔직한 태도라고 본다.
성태야, 너는 현명함이라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니. 딱 절망해야 할 만큼만 절망하는 것, 절대로 그 이상은 요만큼도 더 절망하지 않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절망한 만큼은 내버려두고, 그 나머지에서 자신을 키워보는 것, 절망한 만큼은 말하지 말고, 절망한 만큼은 묻어두고, 그 나머지만큼만 소리 내어 노래하는 것. 어른이 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지혜라면 기껏 이런 정도가 아니겠느냐.( 『눈뜨면 없어라』, p.77) |
김한길의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거듭 한 말씀이 그래서, 더욱 정직하고 현실을 일깨운다.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 일쑤란다.’ (마찬가지로, 고생 끝에 오는 건, 낙이 아닌 병이다.) 그의 청춘일지, 『눈뜨면 없어라』가 가진 미덕이다. 작가의 젊은 시절, 미국생활의 어려움, 절망, 고통. 그리고 아주 잠깐씩 반짝반짝 빛나는, 아픔을 잠시 잊게 만드는 모르핀 같은, 사랑의 흔적.
이 글들은 아마도 내 젊은 날 가장 힘들고 막막했던 시절의 기록이다.… 동시에 이 글들은, 한편으로는 내 젊은 날 가장 화려하고 행복했던 시절의 기록이다.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한 여자와의 기억들이 여기 곳곳에 살아있기 때문이다.(p.6) |
진짜 다독거림은, 청춘에게 닥친 문제와 화두를,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로 물타기하는 것에 있지 않다. 지난달 24일, 서울 홍대부근, 진짜 다독거림이 담긴 『눈뜨면 없어라』의 김한길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정치권에서 떠난 지금, 그는 “건들거리며 헬렐레 대며 여유작작하게 살고 싶던” 옛 소망과 마주하고 있을까? 아마도?!
어디, 찐~한 연애소설 없소?
독자들과 거리를 좁히는 것부터 이날 만남은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정직하고 진솔하게 이야기 나누기. 사랑방 담소를 나누는 마냥.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물음부터 주어졌다. 그는 우리사회의 화두 중 하나인 복지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데 굉장히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책 읽기의 소중함을 언급했다. 정치를 했던 10여 년 동안 책 읽을 시간이 없었다며.
“세상에 모순이 많지만 정치도 모순인 게,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대지』의 작가 펄벅의 글을 읽었다.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게 배우자 선택이고, 따라서 냉정하게 따져서 해야 하는데, 그 결정을 할 때만 약간 맛이 가서 한다더라. (웃음) 그 말처럼 정치인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데, 책 읽을 시간이 거의 없다.”
복지관련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있다. 복지관련 토론을 보면, 보수 쪽이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리스, 이탈리아처럼 과잉복지로 나라 망하는 꼴 보려고 그러냐?”
“책을 보고 확실히 알았다.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어렵게 된 건, 복지 과잉이 아니라 유럽에서 복지가 가장 낙후돼서다. 그래서 금융위기가 닥치니까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는 흔들린다. 복지가 잘된 유럽 다른 나라는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스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대비 19~20%로 유럽에서 가장 낮다.”
그는 사실, 소설을 더 읽고 싶다고 했다. 특히 찐~한 연애소설. 그가 보기엔, 우리나라엔 아직 탁월한 연애소설이 없다. 우리 문학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했다. 있다면, 추천해달란다.
“문학이 원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한 건데, 그게 아직 없다. 요즘 SNS를 하는데, FTA때문에 속상해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그래서 단풍놀이 가면 좋을 텐데, 난 행복한데, 라고 쓸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불행이, 내가 마음 편히 행복할 수가 없다. 미국이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 대표적인 게, 행복한 만큼 행복해해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조성돼 있지 않다. 우리가 덜 행복한 사회에 사는구나, 실감했다.”
그의 대표적인 연애소설이자 베스트셀러였던 『여자의 남자』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어렵고 가난하던 시절, 그를 구원한 건 이 책이었다. 돈도 엄청 벌고 유명해졌다. 훌륭한 문학작품을 남기자고 쓴 건 아니었다. 가난했으므로, 베스트셀러를 써야지 마음먹었고, 뭘 쓰면 잘 팔릴까를 두고 궁리를 했다. 당시 문단엔 본격 연애소설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민주화투쟁이 여전할 때라 함부로 행복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문단에도 신화나 연애 이야기를 하면 돌팔매 맞는 분위기였다. 사회의식이 있어야 하고 노동자 편에 있어야 하고, 그런 소설이 아니면 당당하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노태우정권이 등장했을 땐데, 그때 민주화가 좀 되면서, 의식 있는 이야기도 아니어도 괜찮을 때였다. 그래서 유치한 연애소설을 쓰면 팔리겠구나, 깜찍한 생각을 한 거지. (웃음)”
경계인이자 문학청년이었던 김한길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 아이들은 허구 헌 날, 조센징이라고 놀렸다. 어느 날, 일본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다가 사고를 쳤고, 부모는 다음날 즉시 그를 한국으로 보냈다. ‘조센징’이라는 놀림을 당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엔 ‘쪽바리’라는 놀림이 날아들었다.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초등학교 시절, 어린 김한길에게 유일한 친구는 책이었다. 놀림이 사라진 것은 중학교였다. 그때 알았다. 친구들과 노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허나 그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회당 소속으로 정치를 했던 아버지. 독재정권의 반대편에 섰던 아버지 덕분에, 중앙정보부는 그의 집에 상주를 했으며, 그들은 친구 부모들까지도 들들 볶았다. 친구 부모들은 어린 김한길에게서 자신의 아이들을 떼어냈다. 시대가 만들어낸 이별이자 불화. 그때도 유일하게 남은 건, 책.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저 읽고 썼다.
“요즘은 노래 잘하면 스타인데, 내 젊을 때만 해도 글 잘 쓰면 스타였다. 그래서 내가 글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환경 때문에 책을 많이 봤고, 아버지 때문에 직장생활 하는 게 불가능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게 글 쓰는 것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지한 습작기를 충분히 갖지 않고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는 대학 다닐 때, 대학신문에 ‘병정일기’라는 글을 연재했다. 원고지 8장으로 이뤄진 글이었는데, 화제가 됐다. 그러면서 기고만장했었다. 정색하고 쓰면 문단이 다 자빠지겠구나!
“그런 생각에 진지하게 2~3개 썼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더라. (웃음) 처음 가볍게 쓴 것에 극찬하던 사람들이 진지하게 쓴 것에 냉담하더라. 그 몇 년이 내가 가진 유일한 습작기였다. 내가 천재도, 문재도 아니구나. 진지하게 다시 쓰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봐도 진짜 작가들이 거친 오랜 습작기간에 비하면 초라한 습작기였을 것이다.”
그런 일도 있었다. 급성장한 신생출판사 편집장으로 있던 김홍신 작가가 출판사 사장과 함께 그를 찾아왔다. 그리고선 하는 말. 문단에 등단하지 않는 게 좋겠다. 우리 문단이 잘못됐다. 기성작가들이 합격?불합격을 매기는 게 타당하냐, 독자들이 해야지. 네가 등단을 거부하면 훨씬 더 멋있어 보일 거다.
“그런데 내가 약하거든. 멋있어 보이니까. 그래서 등단을 거부했다. 신인상을 준다고 할 때, 나는 그런 거 안 받는다고. (웃음) 그러다가 갑자기 미국에 가게 됐다. 『눈뜨면 없어라』를 당시 일기로 연재했다. 왜 연재했냐? 원고료를 준다니까 했다. (웃음)”
미국에서의 김한길을 쓰다, 『눈뜨면 없어라』
미국에 간 김한길. 가난하고 힘들었다. 문예지 《문학사상》에서 연재 제의를 했다. 주유소에서 밤새 일하는데, 할 일은 없고, 일기를 썼다. 이왕 쓴 것을 보내면 돈도 주니까, 좋았다.
“그렇게 30년 전에 쓴 건데, 지금 젊은 분도 공감한다고 해서 놀랐다. 당시 내 인생은 죽 어려웠다. 외롭고 절박했다. 그때의 막막함, 답답함이 오늘 젊은 사람들의 것과 비슷한 건가? 요새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이 많고, 그런 책들이 젊은이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거라면서? 그런데 『눈뜨면 없어라』는 용기나 희망을 주는 게 아니다. 답도 없다. 그냥 답답하다는 거지. (웃음)”
어떤 출판사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을 쓰는 게 어떠냐고 권한다. 그는, 솔직하게 토로한다. 용기를 못 준다. 막막하다는 걸 쓸 순 있어도, 희망을 주는 것은 거짓말 같아서 못 쓰겠다. 그는 미국에서 정말 힘들었다고 말한다.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진 않다고 덧붙인다.
“나는 세상에 울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화만 나 있었지. 공부하든 안 하든 미래는 꽉 막혔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할 일도 없었다. 아버지에겐 반항적인 아들이었고,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세상에 대해 시니컬했다.”
그런 그도 자신에게 다른 점을 발견했다. 놀랐다. 힘들고 어렵게 살다가 한국의 미국 주재 신문사 기자가 됐다. 지독하게 죽어라 일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속물이라고 비웃어댄 것이 내 속에 너무 크게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때 동료들은 날 재수 없는 놈으로 봤을 거다. 반면 사장은 날 무척 좋아했고. (웃음) 내가 얼마나 빨리 진급했냐면, 내게 기사 쓰는 걸 가르쳐줬던 부장이, 내가 지사장이 됐을 때, 내 밑에서 편집국장을 했다. 죽기 살기로 했다. 지면 못 견뎠다. 다른 기자가 톱기사를 쓰면 미치는 거다. 나는 나한테 그런 면이 없는 줄 알았는데…”
부담스럽진 않을까. 자신의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가 책을 통해 오랫동안 읽히고 있는 것이. 그는 부담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럽진 않다고 했다. 그건, 철저히 그때 상황이고 심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회고한다. 밤의 주유소, 기름을 넣을 때는 정비공이 되고 싶었다. 차를 정비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햄버거 가게, 쿡헬퍼를 했을 때의 소원은, ‘쿡’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당시의 소원을 이루지 못한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좀 허허롭게 살자. 구경만 하면서 살자. 훌훌 털어버리고 밑지기만 하면서 살자. 연연해 하지 말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살자. 농담이나 하면서 실속 없이 살자. 피곤하다.(p.237) |
정치인 김한길의 행보
김한길의 첫 소설, 「세네카의 죽음」. 건달인 남자주인공은 야무진 중학교 미술선생인 여자친구와 첫눈 오는 날, 마리아상 앞에서 각자의 소원을 빈다. 대통령을 하고 싶다는 건달에게 여자친구는 정치가 뭔지 묻는다. 건달은, 사회구성원들 꿈과 희망의 일부분을 저당 잡아서 뭔가를 하고, 저당 잡은 것보다 더 크게 돌려주는 기술인 것 같다고 말한다.
“20대 때 쓴 소설인데, 그런 생각을 했었나 보다. (웃음) 정치라는 것, 참 어렵다. 정치하면서 소설 주인공이 얘기했던 걸 실천해보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되지도 않고…”
소설이 히트하고, 토크쇼 진행자로 유명해진 그를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야당 총재가 잇달아 불러 정치를 권했다. 배우 최명길과 결혼한 직후였는데, 가족 모두 반대했다. 그러다 여당에 들어가라는 조건부로 허락받았지만, 그는 야당에 들어가야 정치와 사회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봤고, 자신의 고집대로 갔다. 야당 국회의원이 됐다.
“인생, 모르는 거다. 그때, 김대중 총재가 데리고 가려고 만난 사람들 다, 대통령이 부르니까 여당갔다. 청와대 갔다가 야당을 택한 건 내가 유일했다. 재밌는 건, 다음해 정권이 교체됐다. (웃음) 여당 10년을 했다. 그때 여당을 택한 사람들은 1년하고 계속 야당을 했고.”
정치를 하면서 보람도 많았다. 정책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정치는 효과적이었다. 그는 문학과 정치의 공통점을 들었다. 문학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대한 관심, 그것이 모여 만든 사회에 대한 관심이며, 정치 역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다. 차이라면, 문학은 그 관심을 다른 관점에서 표출하고, 정치는 현실적이고 제도적으로 표출한다는 것.
“소설에서 허용되는 거짓말은 무책임하게 하는 게 아니다. 인간과 사회의 진짜 모습,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거짓말이다. 기자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을 써야하는데, 진실과 간극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칼럼쓰기를 좋아한다. 기사는 사실이라도 진실에 접근하는가에 대해선 괴리가 있다는 갈등이 있다. 칼럼은 파편 같은 팩트를 끄집어내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쓸 수 있다. 인간이나 사회의 진짜 모습에 더 한걸음 접근한 게 아니었나 싶다.”
김한길, 그러니까 사랑!
김한길은 책을 볼 때, 저항하면서 본다. 책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신을 위로하거나 움직인 책을 추천해달라면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보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른 주장의 책도 보려고 한다. 그건, 인생은 어떻게든 자신만의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한다.
“각자에게 인생은 무척 소중한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타인에 의해 (삶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화가 나는 일이다. 별 것도 아니면서. 어쨌든 각자 삶은 소중하니까.”
좋았거나 세상(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책으로, 가브리엘 마르케스 『백 년 동안의 고독』,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 까뮈 「손님」 등을 든다.
그는, 『자기 앞의 생』을 예쁜 소설이라며, 사는 게 이렇게 예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단다. 로맹 가리란 이름, 오랜만이다. 그는 1980년12월2일, 21년 전 이맘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이 ‘에밀 아자르’임을 밝히며. 그는 한 사람에게 두 번 주지 않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두 번 받았다. 한 번은 로맹 가리(『하늘의 뿌리』, 1956)로, 한 번은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 1975)로. 로맹 가리 없는 21년, 그의 문학은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어떤 것도 계획할 수 없는 젊음을 살았다. 버티고 견디고. 기회가 오면 붙잡고 늘어지고. 아주 가끔, 산다는 건 아름답고 의미 있단 생각이 든다. 나머지 대부분은 왜 사나? (웃음) 아주 가끔이라도 사는 게 의미 있구나, 살아볼 만하구나, 아름다운 거구나, 그런 짧은 순간으로 나머지를 퉁친다. 그렇게 퉁 칠 수 있는 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 김한길의 이날 이야기는, ‘사랑’으로 귀결된다. 『눈뜨면 없어라』도 그렇다. ‘젊은 날의 방황과 고뇌’라는 카피가 있지만, 근저에는 오롯이 사랑이 있다. 그것이 질병 같은 생을 버티게 한다. 짧은 사랑의 희열, 나머지 고통과 슬픔을 퉁 치는.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다. 보물찾기를 했다. 아무도 보물을 찾지 못했다. 알고 보니 보물을 숨기기로 한 선생이 술 먹고 뻗어서 보물을 안 감춘 거다. 그러니 보물을 찾을 수가 있나.”
그는 그래서, 사랑을 회의한다.
“사랑이라는 게, 숨겨놓지도 않은 보물을 헤매고 찾는 보물찾기 같은 게 아닌가. 있지도 않은 걸 있다고 사기 쳐서 청춘들이 헤매고 있는 건 아닌가.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있지도 않은 우물로 혼란스러워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의문 가져봤나? 사랑이 존재를 망가뜨리는 병균 같은 거 아닌가. 따분한 인생에서 뭔가 반짝 삶을 빛나게 해주는 요술 같은 게 아닌가.”
그는 그럼에도, 사랑을 확신한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의 실체, 실존감에 대해 생각한다. 그런 보물이 우리 인생에 숨어 있다. 대부분 시간이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되더라도, 사랑 때문에 잠깐의 보람으로 퉁 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아닐까. 젊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사랑 말고, 욕정 말고, 남녀 간에만 있을 수 있는 사랑보다 좀 더 큰 사랑이 세상에 도사리고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2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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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앙ㅋ
2011.12.05
책방꽃방
2011.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