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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후배에게 간만에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에 긴 통화가 지속됐다. 학과를 옮겨 대학을 두 번 졸업해야 했던 후배의 이야기는 이제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문제의 결론은 취업 문제였다.
“어떻게 직장을 잡을 비책이 없을까요?”
솔직히 귀에 인이 박히게 들었을 취직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김어준의 『건투를 빈다』나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 같은 카운슬링 책에 나오는 따끔한 독설이나 따뜻한 충고도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요즘엔 취직을 위해 졸업을 유예하다보니 학교를 10년 가까이 다니는 후배들도 많아서, 이들은 이제 대학을 졸업했지만 대부분 서른을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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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영업이나 마케팅 팀에 들어가는 건 어때?”
“마케팅이요? 책 만드는 편집 팀이 아니구요?”
“내 생각엔 관점을 좀 바꿔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그거 알아? 엘모어 레오나드, 피츠 스코트제럴드, 톰 클랜시, 커트 보네것이 마케팅 팀에서 일했다는 거. 하긴 카프카는 낮에 보험회사 직원으로 일했어. 황무지를 쓴 T.S 엘리엇 있지? 그 사람은 은행원이었어.”
“에이, 말도 안 돼요.”
“다시 생각해 봐. ‘은행원’일이 얼마나 지겨웠으면 엘리엇이 그렇게 길고, 복잡하고, 해독 불가능한 시를 썼겠니. 아마 상사가 자기 시를 볼지도 모른단 불안에 시달린 건 아닐까. 어쩜 엄청난 사이코에 히스테리 환자라 하루에 한웅큼씩 약을 먹는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난해하고 장황한 엘리엇 스타일을 정립한 건지도 모르지.”
내가 한참 궤변을 늘어놓으려던 찰라 후배가 다시 물었다.
“커트 보네거트가 정말 마케팅 팀에 있었다는 거 사실이에요?”
“응. 살만 루슈디도.”
물론이다.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쉽게 상상이 잘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대작가들 중에는 마케팅 부서와 광고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많다. 살만 루슈디 역시 부커상을 받은 『한밤의 아이들』을 쓰는 동안 낮에는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그는 『한밤의 아이들』 작가 서문에서 “광고는 당면한 일을 꿋꿋하게 해낼 수 있는 자제력을 가르쳐주었고, 그 시절부터 나는 글쓰기도 단순히 내가 해치워야 하는 업무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가 기질에 수반되는 모든 (아니, 거의 모든) 향락을 절제했다”라고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고백한 바 있다. 그토록 긴 시간 긴장감을 유지한 채 소설을 쓰려면 소설 쓰기라는 육체노동에도 전략은 필요한 셈이다.
후배는 이미 등단한 소설가였다.
그녀는 백수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직업 작가였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문학상을 받았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신인상을 받은 그녀의 문학적 미래는 전도유망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가난했고, 학비를 벌어야했고, 그래서 직업이 절실히 필요했다. 청탁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었고, 만약 청탁이 온다 해도 소설을 써서 먹고 살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젊은 예술가들의 이런 복잡한 현실을 찾기 위해 굳이 포털 사이트에 ‘최고은’ 같은 가슴 아픈 이름을 집어넣을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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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가 읽는 책이 뭔지 아세요? 『당신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다』에요. 제목이 엄청나죠?”
그녀는 자학하듯 이런 저런 농담을 해댔다.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은 목소리였다. 며칠 후, 도서관에 갔다가 후배가 말했던 문제의 책을 발견했다. 책을 펼치고 몇 줄 읽다가, 대학시절 친구들과 나누었던 우스개 소리도 떠올랐다. ‘신춘문예에 등단하는 101가지 방법’ 같은 책을 출간하면 적어도 전국의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에게는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란 자괴감 어린 농담이었다. 출간된 적 없는 이 상상 속 책의 첫 챕터의 제목은 이것이었다.
첫 문장에 주목하라!
행복한 가정이란 모두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불행한 모양이다.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리는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카프카의 『변신』의 첫 문장을 떠들어대며 만약 작가가 되고, 그래서 우리에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운이 온다면 수업 시간에 제일 먼저 첫 문장에 대한 수업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2.
사춘기 시절 봤던 드라마 ‘사랑의 꽃피는 나무’나 ‘우리들의 천국’에서의 대학은 분명 낭만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낭만은 대학생들과 점점 거리가 먼 단어가 되어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문창과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며 그들에게 가장 처음 듣게 된 말도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도서관 대출이 너무 치열해서 책을 구할 수가 없어요. 교재로 쓴다는 박민규 작가의 『더블』은 두 권이라 책값도 더블 아닌가요?”
‘소설의 이해’ 수업을 시작하고 내게 최초로 질문을 던진 학생이 바로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한 학생이었는데, 그녀의 질문은 문학과 하등 관계없는, 가령 박민규의 문체나 그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아니라 다름 아닌 책값이었다. 책 이름이 ‘더블’이라 책값도 ‘따블’이겠다고 울상이던 그 학생의 얼굴은 정말이지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았다. 학교 앞에선 연일 등록금 투쟁이 이어졌고, 재단 비리를 고발하는 현수막이 나풀거렸다. 93학번인 나는 그곳에서 청춘의 낭만이 아니라, 싸우지 않으면 조금도 얻어낼 수 없는 팍팍한 현실의 비정함을 보았다.
요즘 청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적어도 ‘연애’가 아니다. 취업 뿐 아니라 이제 결혼을 위해 ‘스펙’을 따지는 청춘도 많아졌다. 자신의 가치를 연봉에 비유하는 서글픈 청춘들을 나는 또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3.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은 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돌풍을 일으키며 백 만권쯤 팔렸을 때였다. 이 책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성장’에 대한 얘기는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던 의문 몇 가지를 제대로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참 드문 일이기도 한데 “아! 이 책은 당장 읽어봐야겠구나”란 생각까지 들었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편하고 안정적인 직업만 찾는다고 비난하며 휘두른 우파의 ‘경제적 성장’과, 투표나 정치 참여는 등외시하고 오직 권리만을 외치는 이기주의를 비판하며 휘두른 좌파의 ‘정신적 성장’ 사이에 짓눌린 청춘의 고뇌가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장’이 정답이 아니라 그것이 함정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80년대를 ‘인간이 빛나던 위대한 시대’라고 추억하는 그들은 현재의 대학생들이 자기부정의 윤리는커녕 자기 이익에만 사로잡힌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라고 한없이 비난한다. 어떻게 청춘이 이렇게 보잘 것 없느냐고 비판한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68세대들은 현재의 세대들이 사회로부터 과감하게 탈주하려고 하기보다는 사회에서 빵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기를 쓰는 한심한 종자라고 비난한다……지혜는 진짜 불쾌하다. 왜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것을 한순간에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제껏 피 땀 흘리며 살아온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다. 아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할 권리 따위는 없다……바보같이 편입하려고 기를 쓸 것이 아니라 멋있게 탈주를 꿈꾸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이 체제로부터 ‘탈주’할 바깥이 없다. 이들은 이미 바깥으로 내쳐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착취당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그래서 이들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의 편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착취조차 당하지 못하고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되어 한번 쓰이지도 못한 채 용도 폐기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신이 잉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넘어 이미 하루하루의 삶에서 자신들이 잉여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경험하며 자학하게 된다. |
사랑에 대해서도 저자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랑이 뜨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며, 그것이 단지 조금 더 빨라졌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랑하려면 집이 필요하다며 ‘주거권’을 요구했던 프랑스 학생들의 시위를 설명하면서 지금의 학생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는 그저 ‘공부할 권리’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일침을 놓았다. 등록금 투쟁이 아니라, 사랑을 할 수 있는 권리도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3불 세대’(연애, 취직, 결혼 포기세대)가 된 것은 그들의 사랑이 88만원보다 비싸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랑의 등가교환을 선호한다. 사랑에도 주판알을 튕길만큼 계산적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반대다. 그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새로운 방식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랑이 손해를 감수하고 일방적으로 퍼줌으로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였다면, 지금은 등가교환을 통하려 서로의 곤궁함을 배려한다. 등기교환이야 말로 동등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형식이다. 이것이 문제인가…우리 사회는 대학생들이 사랑을 사랑답게 나눌 어떤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는가. 주는 것도 없이 이들이 점점 더 사랑의 가치를 잃어간다는 비난만 하고 있다…이들이 사랑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거와는 달리 그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이라는 것을 중?고등학교 때 이미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곧 그들은 대학에 와서 새삼 사랑을 하고, 그것을 지켜나가기에는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은, 자신들의 경제적 능력 저 너머에 있다… |
책을 읽다가, 지금의 이십대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를 발견했다. 정치가 즐거운 게임이나 오락일 수 있음을 아는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과 ‘소통’이 도리어 ‘소통해야만 한다’는 폭력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땐, 도리 없이 내게 책값을 고민하던 그때의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제 열아홉 살, 막 대학에 들어온 1학년생이었다. 무엇으로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면,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 스물넷이 고작 아침 7시 12분이다. 집을 막 나서려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은퇴를 하고 노년을 준비하는 60세는? 저녁 6시다.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녁 시간을 즐기려는 때다. 참 절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인생 80을 24시간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내 인생의 탁상시계를 바라본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에 그런 대사가 있다.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
고백하면, 나는 언젠가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정말 늦은 거다’라는 시니컬한 칼럼을 쓴 적이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 대신 고생하면 병 온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출발이 빠르다고 해서 모두가 일등을 하는 것도 아니고, 출발이 늦었다고 꼴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정말 원할 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청춘들아,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노력한다고 모든 사람이 다 박지성 같은 축구 선수가 될 수도, 노력한다고 톨스토이 같은 대작가가 될 수도 없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아는 건 얼마나 중요한가. 다른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간다는 건 또 얼마나 눈물나게 아름다운 일인가. 누구나 다 작가가 될 수 없듯, 누구나 다 좋은 독자가 될 수는 없다. 박지성 같은 훌륭한 축구 선수가 있다면, 그 뒤에 그를 응원해주는 좋은 관객이 있을 것이고, 위대한 정치가가 있다면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한 표를 행사하는 위대한 시민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것이 무엇이건 자신이 판단하고 선택해, 자신의 삶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시간에 주인이 되면 그것엔 빠르고 늦음이 없다. 그러므로 청춘이란 그저 ‘나이’를 뜻하는 단어만은 아닐 것이다.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heliokjh
2013.07.29
sind1318
2013.01.01
브루스
2012.11.30
연애든 뭐든 아프지만 열시미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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