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상처를 가진 세 여자의 치열한 이야기
베테랑 배우들의 답변을 듣다 선우 씨에게 눈길을 돌리니 거의 울상이다. 윤석화, 신애라, 김혜수 등 내로라 할 배우들이 연기했던 아그네스. 그것만도 부담일 텐데...
201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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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정: “우리 이번에 다들 처음 만났어요. 배우들도 그렇고, 연출도 처음이야.”
그도 그럴 것이 이승옥 씨와 윤소정 씨는 동년배에 40년 이상 연기생활을 했지만, 윤소정 씨는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활동한 반면, 이승옥 씨는 국립극단 단원이었다. 또 선우는 <원효>와 <내 마음의 풍금> 등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 그러니 이번이 그네의 첫 만남인 것이다.
기자는 연극 <신의 아그네스>로 여러 배우를 만났으나, 매번 명배우를 만난다는 설렘과 함께 부담이 있었다. 인터뷰 역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입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명작을 만나는 설렘과 어려운 작품을 풀어가야 하는 부담 말이다.
이승옥: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오랜 세월 국립극단에서 활동하다 보니까 밖에서 공연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는데, 읽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윤소정: “1983년 초연 때부터 이번이 세 번째인데, 계속 리빙스턴만 하네. 물론 아그네스는 안 시켜줄 테고, 마리암 원장수녀는 꼭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사실 이번에는 나이가 있다 보니까 두 시간 내내 하이힐 신고 서 있는 리빙스턴 역할이 버겁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초연 때도 기막히게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작가의 내면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에요.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세세하게 보이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얘기를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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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매일 울어요, 작품에 빠져서 울고 야단맞아 울고(웃음). 연극은 처음인데, 연출님이 이번 무대에는 노래하는 아그네스를 원하셔서 제가 운 좋게 하게 됐어요. 그래서 노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잘해야 하겠고요. 연기도 지금 많이 배우고 있는데,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무조건 열심히 해야죠.”
개인적으로 <신의 아그네스>는 참 재밌는데 무척 어렵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는 작품인지 힌트를 구했더니, 윤소정 씨가 틈도 주지 않고 되물었다. 느낀 걸 얘기해보라고. 기자가 주목해서 본 것은 ‘믿음’보다는 ‘상처’였기에, 각자의 상처로 인해 한 사건을 바라보고 풀어가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윤소정: “그렇게 봤다면 지금까지 연출가나 배우가 잘못한 거예요. 세 사람은 다른 상처가 아니라 하나의 상처를 가졌고, 작가는 믿음이나 기적을 말하고 싶어 하죠. 믿음이나 기적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죠. ‘아그네스의 미신 같은 믿음이 나에게 전해졌다. 이게 기적 아니겠습니까?’가 리빙스턴의 마지막 대사거든요. 세 사람이 모두 신을 부정하는데, 리빙스턴 역시 이 사람들을 치료하고 보듬으면서 믿게 되는 거죠.”
이승옥: “아그네스는 20대, 리빙스턴은 50대, 원장수녀는 70대예요. 20대는 처절하게 피 흘리는 삶, 50대는 인생의 지혜와 지식을 얻어 성장하면서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대고, 그 나이를 넘어 70대가 됐을 때는 인생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죠. 인물이나 상처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결국은 하나인 셈이에요.”
이래서 <신의 아그네스> 출연배우를 인터뷰하는 것은 어렵다. 어쨌든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도 학생이 못 알아들을 수 있듯이, 앞선 배우들의 연기에는 문제가 없었음을, 기자의 이해력 부족임을 꼭 얘기하고 싶다.
그렇다면 2011년 가을에 공연될 <신의 아그네스>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윤소정: “이번에는 굉장히 다른 아그네스가 되지 않을까? 기존에는 심각하거나 비극으로 만들어졌다면, 이번에는 좀 더 편안하면서도 깊이가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선우의 노래가 대단하고요. 재밌을 거예요.”
이승옥: “딱 여자 세 명이 등장하는데, 동년배가 아니죠. 연령대별로 치열했던 여자의 삶이 묻어나고, 과거에서 앞으로 나아갈 세 여자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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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옥: “국립극단이 올리는 연극은 스타일이 좀 달라서 지금까지 종교적인 역할을 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상당히 해보고 싶었던 인물이에요. 항상 카리스마 있는 역할만 했는데, 믿음에 대한 고민도 있고 여자의 삶을 회상해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매력이 있네요.”
윤소정 씨의 경우 무대에서는 워낙 강렬한 역할을 도맡아 왔다. 올해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전혀 다른 모습을 선사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인기를 실감하시는지.
윤소정: “그게 배우의 매력이죠. 짧은 인생에 다양한 삶을 살아본다는 건 축복이잖아요.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이것저것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죠. 강렬한 역할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숭동 간통 전문 배우이긴 했지(웃음). 리빙스턴은 어려워요. 대사도 많고 계속 서 있어야 하고. 그래서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 나이에 하자고 찾을 때가 고마운 거니까(웃음).”
문득 50년 가까이 무대를 지켜온 것도 기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연극배우들의 ‘무대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은 무엇일가?
윤소정: “그거야 배우 아니면 모르죠. 가장 솔직해서 그래요. 무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보여주면서 관객과 같이 가잖아요.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희열은 돈이나 명예보다 더 한 거예요. 그래서 많은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돈의 위력을 맛보고도 다시 무대에 서는 것 아니겠어요. 물론 모자란 사람들이긴 해요, 바보 같으니까 이러고 있지(웃음).”
이승옥: “연극인들은 거짓말을 못해요. 사람을 보고 눈동자를 부딪쳐야만 얘기를 하거든요. 거기에 매료된 것이죠. 연극은 인간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성향의 사람들이 아니면 할 수 없어요. 인간을 사랑하는 희열을 어디에서 느끼겠어요. 그래서 여태 머물러 있겠죠. 이렇게 외로워져가는 세상에서 연극은 더욱 살아날 거라는 희망이 있어요.”


3개의 댓글
필자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천사
2012.03.19
앙ㅋ
2011.11.19
하늘처럼
201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