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퍼센트 깨끗한 대통령은 불가능…… 그래도” -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국가에 대한 생각을 한 마디로 위와 같이 밝혔다. 지난 6월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강연회 자리였다. 마련된 1000석의 자리가 거의 채워졌다.
2011.07.19
작게
크게
공유
“국가는 그 국민들이 깨어있는 데에 비례해서 정의로울 수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국가에 대한 생각을 한 마디로 위와 같이 밝혔다. 지난 6월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강연회 자리였다. 마련된 1000석의 자리가 거의 채워졌다.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이번 책을 집필했다는 유시민 대표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꽤 오래된 질문”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닐 때 국기하강식을 하거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라고 할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더욱 고민이 깊어졌다. 해럴드 라스키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영등포 구치소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는 국가는 왜 이럴까? 다른 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국가가 된 것일까? 당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국가는 폭력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들을 실감나게 느꼈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유시민 대표가 20여 년 간 고민했던 문제들을 고전을 빌어 풀어낸 책이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교육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더라. 뭘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와 보니까 이 세상이 있는 것이지, 어떤 사명을 갖고 여기 온 사람은 없다.”
그는 이러한 질문들을 자유, 정의, 국가, 진보, 정치 다섯 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설명했다. 각 테마에 문제를 던져주는 명언을 살펴보고, 지금의 우리 국가를 성찰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용산참사, 미네르바 사건, 쌍용 자동차 사태부터 쥐벽서 상소, 한진 중공업 사태까지 이번 정권 때는 유독 개인?단체와 국가권력과의 충돌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시민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주권자로서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라는 건 분명하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문제 ‘국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유시민 대표의 강연이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1. 자유-“국가의 속박은 정당한가?”
나는 누구에게 강요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므로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시민의 불복종』 핸리 데이비드 소로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속박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속박하지 않으면 방종하기 쉬우므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속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연 국가가 나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정당한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경우 말고는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검찰과 경찰은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문제 삼아 기소했다. “그의 글이 누구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했나? 국가 보안법은 누군가가 ‘3대 세습을 찬성한다’고 외치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다. 그 외침이 누구의 자유를 침해하나? 쥐벽서가 여러분의 자유를 제약했나? 포스터를 더럽혔으니, 그 포스터 값을 물어줘야 할 거다. 국가의 재산을 손괴했기 때문에. 하지만 저 그림의 정치적 의도를 보고 처벌한다는 건, 놀라운 능력이다. 독심술을 하는 분인가? 개인이 웃자고 한 일에 국가가 죽자고 달려든 사건이다.”
2. 정의-“정의는 직감적으로 다가온다”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이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R. 니버
“인간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존재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은 이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이타성을 요구 받지 않는다. 좋은 국가가 실행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다.”
지난 해 초, 정의 열풍이 서점가를 휩쓸었다.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기이할 정도의 관심에 많은 언론과 학자들이 이 현상에 주목했다.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거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직관, 관념을 거스르는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 이명박 정권의 화두는 ‘공정사회 구현’이다. “사회가 온통 비리투성이가 되었는데, 그분이 기여하신 건 없는지 의문스럽다. 요즘 4대강 사업도 그렇다. 모 상업고등학교 출신들이 낙동강 사업 한 구간을 독점했다는 등의 소식을 들으면 부당하다고 느낀다. 정의에 대한 것은 직감적이다.”
정의란 특정한 사물을 평등한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에도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부당함을 느낀다. “조선산업이 한창 잘 나갈 때,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던 직원들이었다. 회사의 사주가 어렵다고 다 해고해 버렸다.” 게다가 정리해고 당시에 한진중공업은 흑자를 내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선박수주가 없어서 폐쇄 및 인원감축했다고 말했지만, 임금이 싼 필리핀 수빅 만 조선소에 올인하기 위해 수주 물량을 모두 수빅 조선소로 돌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여전히 크레인에 올라 고공 농성 중이고, 아슬아슬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성기업 파업도 마찬가지다. 2교대 맞교대 근무라서 ‘새벽에 잠자고 싶어요’라는 소박한 소망을 얘기한 직원들을 불법을 저지른 사람처럼 몰아갔다. 홍익대 사태는 어땠나. 급식업체를 통해 맛있는 밥을 팔면서,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맨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게 했다. 이렇게 평등하지 않은 일이 많이 벌어져서, 사람들이 국가를 생각할 때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 국가 - “지금 정부 역시 국민이 선택한 것”
현대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유시민 대표는 “대한민국이 생지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나름 상식도 통하고 잘 돌아가고 있는데 가끔 국가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물론 ‘니네가 할 땐 얼마나 잘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최근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공권력으로 대응하는 상황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유시민 대표뾽 이런 일 역시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당장 언론에서 ‘유시민, 이번엔 국민탓’이라고 제목을 뽑겠지만(웃음) 이명박 정부는 이 국가의 권력을 5년 동안 맡아 운영할 권리를 합법적으로 받은 정권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 때는 ‘참여정부’였다. 이 정부는? 그냥 이명박 정부라고 이름 붙인다. 정권의 성격을 붙이지 않고, 경솔하게 자기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구나 싶었는데…… 정말 ‘이명박 정부’였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투표권 행사에 대한 문제다. 지금처럼 20대는 20%, 30대는 30%, 40대는 40%, 50대 이상은 50%가 투표한다면, 결코 대학생 편을 드는 정부가 등장할 수 없다는 것. “다들 노태우에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차이가 크다고 본다. 전부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해서 만든 정부고, 국민의 선택으로 세워진 정부다. 주권자로서 하루 잘못 판단하면 5년간 객체가 된다. 우리가 투표권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4. 진보 - “진보란,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
진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 김상봉
진보 정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사회주의가 더 좋은 대안이라면, 사회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는 자본주의에 비해 우월한 대안이라면 저 말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그보다 이와 같은 말에 더 동의한다.”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이다
-『진보를 연찬하다』 이남곡
5. 정치 -“깨어있는 시민만이 극복할 수 있다”
피지배자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정치적 지배자를 통제할 수 있고,
그 통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경제 권력도 통제할 수 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예기치 못한 시민들의 권리가 일어났을 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그것을 원한다는 의사표현을 할 때.” 유시민 대표는 바로 그럴 때 정치를 하면서 희망을 가진다고 말했다. 반면 “너무나 명백한 문제 앞에서 국민이 의사표현을 하지 않을 때. 진보든 뭐든 관심을 놔버린 것 같을 때.”는 암담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지난 정부 때 같으면, 이정도 공권력을 휘둘렀으면, 광화문 광장이 매일 메어터졌을 텐데. 지금은 FTA 비준을 다 마쳤는데도 아무도 시위 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 때는 노점상 하시는 분들이 장사 안 된다고 여의도로 다 달려와 시위했는데, 지금은 매월 몇 만개씩 가게를 철거해도 아무도 시위하지 않는다. 그 분들에게 물었다. 왜 안 하냐고 했더니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 이러면 이 정권은 성공한 게 아닌가? 좋은 정부가 되려면 좋은 정치인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시민들의 좋은 활동이 필요하다.”
“때 묻어 있어도 대체적으로 깨끗하면 봐 달라”
유시민 대표는“푸념 겸 강연”이라고 웃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어 독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책 속에 나오는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라는 개념은 학술적 관점인지 풍자적 관점인지 궁금하다.
“학술적 관점이다. 칼 포퍼를 인용했다. 지배자들은 선하거나 사악하거나, 유능하거나 무능하다. 가장 좋은 건 선하고 유능한 지도자이고, 제일 끔찍한 지도자는 사악하고 유능한 지도자다. 사악하고 무능한 지배자는 좀 덜 해롭다.”
왜 이제 와서 국가란 무엇인가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주권자로서의 자각이다. 대통령이 잘 못하고 있을 때, 내 책임을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에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무엇이 있는가,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사회가 갈수록 혼란에 빠지고 있다. 역사 속 위인 중에 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갈등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 싶은 사람은 누굴까?
“없다. 세종대왕이 와도 해결 못할 문제들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와도 해결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선한 인물에게 권력을 줘서, 선을 많이 행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대한 나쁜 일을 못하게 하려는 제도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생각하면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지? 못했다. 야당 때문에 못한 일도 많다.
반면 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못된 짓을 그렇게 많이 할 순 없다. 4대강 말고는 지금 정부도 못된 짓에 그닥 성공하진 못한 것 같다. 그가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있게끔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시하는 게 해결책이다. 두바이 통치자 쉐이크 모하메드를 데려오자는 얘기도 있었잖나.(웃음) 두바이 왕국이 그 얘기 나온 1년 후에 파산했다. 민중이, 시민이, 함석헌 선생님 말로 ‘생각하는 백성’이, 노무현 대통령 말로 ‘깨어있는 시민’만이 극복할 수 있다.”
100 퍼센트 깨끗한 대통령이 있을까요?
“없다. 기대하지 마시라.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 차이가 적다. 저와 장동건 씨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뼈 두께의 몇 미리(mm), 키가 몇 센티(cm). 극히 작은 외모의 차이가 절세 미녀와 평범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대통령과 일반 사람들의 정신적인 차이도 크지 않다고 본다. 살아가며 만났던 분들을 비교해보자면, 노무현과 한명숙, 이회찬은 아주 약간의 차이다. 하지만 그 약간의 차이가 중요하다. 대한민국 정치문화, 정치풍토에서는 100퍼센트 깨끗할 수 없다. 때가 묻어 있어도 대체로 깨끗하면 좀 봐달라.(웃음)”
정치인 유시민, 지식인 유시민 중 어느 것이 더 잘 맞는 옷인가?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게 훨씬 좋다. 정치하고 나서 욕먹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하루도 없다. 누군가 공개적으로 저를 욕한다. 신해철이 욕 많이 먹어서 영생의 경지에 들었다는 데, 저도 함께 영생의 경지에 들어섰다. 왜 이렇게 욕을 먹을까? 어느 교수님도 욕해주시고, 어느 당 대표도 욕해주시고 매일매일 욕한다. 내게 반성문을 쓰라는 요구가 많다.
내가 정치를 하면서 지식인 냄새를 풍겨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책 쓰는 것도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문필업에 종사하는 정당인이기 때문에 이게 생업이다. 그래서 이렇게 써서 벌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만 하면 욕을 덜 먹을 텐데, 지식인 냄새를 풍기며 정치하니까 공격할 거리가 더 많은 것 같다. 정치인의 임무는 지식인들과 논쟁하는 게 아니잖나. 지식인들이 때로 합당한 비판, 부당한 비난하기도 하는데, 정치인으로 그런 일에 일일히 대응하다 보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하도 많은 분들이 동시에 그래서 괴롭다. 부디 나와 별로 관계없는 기사를 쓰면서 내 이름을 제목으로 뽑지 않아주시면 좋겠다.”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
“군대에서 제대하던 날이다.(좌중 웃음) 정말 제대를 시켜줄까. 걱정을 하면서 강원도 화천에서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나왔다.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처럼 느껴지더라. 세상이 모두 내 발 밑에 있는 것 같고, 모든 승용차가 내 밑에 무릎 꿇고 있는 것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 됐을 때도 이만큼 행복하진 않았다.(좌중 웃음) 공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날은 2002년 12월 19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날이었다.”
『국가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국가에 대한 생각을 한 마디로 위와 같이 밝혔다. 지난 6월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란 무엇인가』 출간 기념 강연회 자리였다. 마련된 1000석의 자리가 거의 채워졌다.
2009년 용산참사를 계기로 이번 책을 집필했다는 유시민 대표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꽤 오래된 질문”이라고 말했다. “학교를 다닐 때 국기하강식을 하거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라고 할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더욱 고민이 깊어졌다. 해럴드 라스키의 『국가란 무엇인가』』는 영등포 구치소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는 국가는 왜 이럴까? 다른 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국가가 된 것일까? 당시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국가는 폭력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들을 실감나게 느꼈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유시민 대표가 20여 년 간 고민했던 문제들을 고전을 빌어 풀어낸 책이다. “국가가 있어야 내가 존재한다.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런 교육을 많이 받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더라. 뭘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 와 보니까 이 세상이 있는 것이지, 어떤 사명을 갖고 여기 온 사람은 없다.”
그는 이러한 질문들을 자유, 정의, 국가, 진보, 정치 다섯 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설명했다. 각 테마에 문제를 던져주는 명언을 살펴보고, 지금의 우리 국가를 성찰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용산참사, 미네르바 사건, 쌍용 자동차 사태부터 쥐벽서 상소, 한진 중공업 사태까지 이번 정권 때는 유독 개인?단체와 국가권력과의 충돌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시민의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주권자로서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라는 건 분명하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문제 ‘국가란 무엇인가’에 관한 유시민 대표의 강연이 한 시간 가량 이어졌다.
1. 자유-“국가의 속박은 정당한가?”
|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시민의 불복종』 핸리 데이비드 소로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속박을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속박하지 않으면 방종하기 쉬우므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속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연 국가가 나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정당한가?”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검찰과 경찰은 미네르바 박대성 씨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문제 삼아 기소했다. “그의 글이 누구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했나? 국가 보안법은 누군가가 ‘3대 세습을 찬성한다’고 외치기만 해도 처벌할 수 있다. 그 외침이 누구의 자유를 침해하나? 쥐벽서가 여러분의 자유를 제약했나? 포스터를 더럽혔으니, 그 포스터 값을 물어줘야 할 거다. 국가의 재산을 손괴했기 때문에. 하지만 저 그림의 정치적 의도를 보고 처벌한다는 건, 놀라운 능력이다. 독심술을 하는 분인가? 개인이 웃자고 한 일에 국가가 죽자고 달려든 사건이다.”
2. 정의-“정의는 직감적으로 다가온다”
|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R. 니버
“인간은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존재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은 이타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는 이타성을 요구 받지 않는다. 좋은 국가가 실행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다.”
지난 해 초, 정의 열풍이 서점가를 휩쓸었다.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기이할 정도의 관심에 많은 언론과 학자들이 이 현상에 주목했다. “정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거다. 우리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직관, 관념을 거스르는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 이명박 정권의 화두는 ‘공정사회 구현’이다. “사회가 온통 비리투성이가 되었는데, 그분이 기여하신 건 없는지 의문스럽다. 요즘 4대강 사업도 그렇다. 모 상업고등학교 출신들이 낙동강 사업 한 구간을 독점했다는 등의 소식을 들으면 부당하다고 느낀다. 정의에 대한 것은 직감적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에도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부당함을 느낀다. “조선산업이 한창 잘 나갈 때,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던 직원들이었다. 회사의 사주가 어렵다고 다 해고해 버렸다.” 게다가 정리해고 당시에 한진중공업은 흑자를 내고 있었다. 한진중공업은 선박수주가 없어서 폐쇄 및 인원감축했다고 말했지만, 임금이 싼 필리핀 수빅 만 조선소에 올인하기 위해 수주 물량을 모두 수빅 조선소로 돌렸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여전히 크레인에 올라 고공 농성 중이고, 아슬아슬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성기업 파업도 마찬가지다. 2교대 맞교대 근무라서 ‘새벽에 잠자고 싶어요’라는 소박한 소망을 얘기한 직원들을 불법을 저지른 사람처럼 몰아갔다. 홍익대 사태는 어땠나. 급식업체를 통해 맛있는 밥을 팔면서, 청소하는 아줌마들은 맨 바닥에 앉아서 밥을 먹게 했다. 이렇게 평등하지 않은 일이 많이 벌어져서, 사람들이 국가를 생각할 때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3. 국가 - “지금 정부 역시 국민이 선택한 것”
|
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
유시민 대표는 “대한민국이 생지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나름 상식도 통하고 잘 돌아가고 있는데 가끔 국가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물론 ‘니네가 할 땐 얼마나 잘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최근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공권력으로 대응하는 상황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유시민 대표뾽 이런 일 역시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당장 언론에서 ‘유시민, 이번엔 국민탓’이라고 제목을 뽑겠지만(웃음) 이명박 정부는 이 국가의 권력을 5년 동안 맡아 운영할 권리를 합법적으로 받은 정권이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 때는 ‘참여정부’였다. 이 정부는? 그냥 이명박 정부라고 이름 붙인다. 정권의 성격을 붙이지 않고, 경솔하게 자기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구나 싶었는데…… 정말 ‘이명박 정부’였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투표권 행사에 대한 문제다. 지금처럼 20대는 20%, 30대는 30%, 40대는 40%, 50대 이상은 50%가 투표한다면, 결코 대학생 편을 드는 정부가 등장할 수 없다는 것. “다들 노태우에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까지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차이가 크다고 본다. 전부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해서 만든 정부고, 국민의 선택으로 세워진 정부다. 주권자로서 하루 잘못 판단하면 5년간 객체가 된다. 우리가 투표권을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4. 진보 - “진보란,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
|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 김상봉
진보 정치에 대해서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사회주의가 더 좋은 대안이라면, 사회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비난해 마지 않는 자본주의에 비해 우월한 대안이라면 저 말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그보다 이와 같은 말에 더 동의한다.”
-『진보를 연찬하다』 이남곡
5. 정치 -“깨어있는 시민만이 극복할 수 있다”
|
정치적 지배자를 통제할 수 있고,
그 통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경제 권력도 통제할 수 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칼 포퍼
“예기치 못한 시민들의 권리가 일어났을 때.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그것을 원한다는 의사표현을 할 때.” 유시민 대표는 바로 그럴 때 정치를 하면서 희망을 가진다고 말했다. 반면 “너무나 명백한 문제 앞에서 국민이 의사표현을 하지 않을 때. 진보든 뭐든 관심을 놔버린 것 같을 때.”는 암담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지난 정부 때 같으면, 이정도 공권력을 휘둘렀으면, 광화문 광장이 매일 메어터졌을 텐데. 지금은 FTA 비준을 다 마쳤는데도 아무도 시위 하지 않는다. 지난 정부 때는 노점상 하시는 분들이 장사 안 된다고 여의도로 다 달려와 시위했는데, 지금은 매월 몇 만개씩 가게를 철거해도 아무도 시위하지 않는다. 그 분들에게 물었다. 왜 안 하냐고 했더니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 이러면 이 정권은 성공한 게 아닌가? 좋은 정부가 되려면 좋은 정치인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시민들의 좋은 활동이 필요하다.”
“때 묻어 있어도 대체적으로 깨끗하면 봐 달라”
|
유시민 대표는“푸념 겸 강연”이라고 웃으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어 독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책 속에 나오는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라는 개념은 학술적 관점인지 풍자적 관점인지 궁금하다.
“학술적 관점이다. 칼 포퍼를 인용했다. 지배자들은 선하거나 사악하거나, 유능하거나 무능하다. 가장 좋은 건 선하고 유능한 지도자이고, 제일 끔찍한 지도자는 사악하고 유능한 지도자다. 사악하고 무능한 지배자는 좀 덜 해롭다.”
왜 이제 와서 국가란 무엇인가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주권자로서의 자각이다. 대통령이 잘 못하고 있을 때, 내 책임을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에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무엇이 있는가, 이게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사회가 갈수록 혼란에 빠지고 있다. 역사 속 위인 중에 이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갈등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 싶은 사람은 누굴까?
“없다. 세종대왕이 와도 해결 못할 문제들이다.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와도 해결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선한 인물에게 권력을 줘서, 선을 많이 행하게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대한 나쁜 일을 못하게 하려는 제도다. 그 놈이 그 놈이다 생각하면 무관심해질 수 밖에 없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지? 못했다. 야당 때문에 못한 일도 많다.
반면 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못된 짓을 그렇게 많이 할 순 없다. 4대강 말고는 지금 정부도 못된 짓에 그닥 성공하진 못한 것 같다. 그가 계속 좋은 일을 할 수 있게끔 시민들이 참여하고 감시하는 게 해결책이다. 두바이 통치자 쉐이크 모하메드를 데려오자는 얘기도 있었잖나.(웃음) 두바이 왕국이 그 얘기 나온 1년 후에 파산했다. 민중이, 시민이, 함석헌 선생님 말로 ‘생각하는 백성’이, 노무현 대통령 말로 ‘깨어있는 시민’만이 극복할 수 있다.”
100 퍼센트 깨끗한 대통령이 있을까요?
“없다. 기대하지 마시라.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 차이가 적다. 저와 장동건 씨의 차이는 얼마나 될까? 뼈 두께의 몇 미리(mm), 키가 몇 센티(cm). 극히 작은 외모의 차이가 절세 미녀와 평범한 사람을 만들어낸다. 대통령과 일반 사람들의 정신적인 차이도 크지 않다고 본다. 살아가며 만났던 분들을 비교해보자면, 노무현과 한명숙, 이회찬은 아주 약간의 차이다. 하지만 그 약간의 차이가 중요하다. 대한민국 정치문화, 정치풍토에서는 100퍼센트 깨끗할 수 없다. 때가 묻어 있어도 대체로 깨끗하면 좀 봐달라.(웃음)”
정치인 유시민, 지식인 유시민 중 어느 것이 더 잘 맞는 옷인가?
“글 쓰는 사람으로 사는 게 훨씬 좋다. 정치하고 나서 욕먹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하루도 없다. 누군가 공개적으로 저를 욕한다. 신해철이 욕 많이 먹어서 영생의 경지에 들었다는 데, 저도 함께 영생의 경지에 들어섰다. 왜 이렇게 욕을 먹을까? 어느 교수님도 욕해주시고, 어느 당 대표도 욕해주시고 매일매일 욕한다. 내게 반성문을 쓰라는 요구가 많다.
내가 정치를 하면서 지식인 냄새를 풍겨서 그런 게 아닐까. 이런 책 쓰는 것도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문필업에 종사하는 정당인이기 때문에 이게 생업이다. 그래서 이렇게 써서 벌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만 하면 욕을 덜 먹을 텐데, 지식인 냄새를 풍기며 정치하니까 공격할 거리가 더 많은 것 같다. 정치인의 임무는 지식인들과 논쟁하는 게 아니잖나. 지식인들이 때로 합당한 비판, 부당한 비난하기도 하는데, 정치인으로 그런 일에 일일히 대응하다 보면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하도 많은 분들이 동시에 그래서 괴롭다. 부디 나와 별로 관계없는 기사를 쓰면서 내 이름을 제목으로 뽑지 않아주시면 좋겠다.”
언제가 가장 행복했나?
“군대에서 제대하던 날이다.(좌중 웃음) 정말 제대를 시켜줄까. 걱정을 하면서 강원도 화천에서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나왔다.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처럼 느껴지더라. 세상이 모두 내 발 밑에 있는 것 같고, 모든 승용차가 내 밑에 무릎 꿇고 있는 것 같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 됐을 때도 이만큼 행복하진 않았다.(좌중 웃음) 공적으로 가장 행복했던 날은 2002년 12월 19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날이었다.”
7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도 전
2011.07.23
다만,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겠지만 어차피 정치란 것이 많은 이들을 충족시킬 수 없기에 애초에 불가능한 기대가능성이겠지만서도...
유시민님의 광범위한 분야에 대한 학습능력이 매우 부럽습니다. 가장 행복했는지는 모르지만 저 역시 2002년 12월 19일에 대한 기억이 즐거운 한 때로 머리에 남아있습니다.^^
천사
2011.07.20
감 동훈
2011.07.20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