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삶은 최악” - 박민규 북콘서트
소설가 박민규는 독자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선사하듯 단편집을 ‘더블 앨범’으로 엮어 냈다. 단순히 여러 개의 단편을 두 권의 책에 묶은 것 이상의 의미가, 추억이, 향수가 박민규의 『더블』에 묻어난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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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앨범> 즉, 두 장의 LP 같은 느낌으로 이 책을 묶고 싶었다. 책은 실제 LP 사이즈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정말 펼쳐서 책을 꺼내는 패키지 등으로 발전했다가 여러 현실의 벽에 좌초, 책은 결국 <冊>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다시는, 아마도 이와 같은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블 아트 북,p.2)

소설가 박민규는 독자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선사하듯 단편집을 ‘더블 앨범’으로 엮어 냈다. 단순히 여러 개의 단편을 두 권의 책에 묶은 것 이상의 의미가, 추억이, 향수가 박민규의 『더블』에 묻어난다. 복면을 쓴 작가의 얼굴, 그리고 그와 같은 디자인의 그림으로 꾸며진 컨셉 표지며, 두 권을 담고 있는 박스 케이스하며, 무엇보다 “무수했던 더블 자켓의 아트웍 속에” (더블 아트 북,p.2) 결코 빠지지 않았던 속지까지 들어있다.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LP 시대는 판이 커서 펼치면 새롭고 근사한 기분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이런 책 하나 주고 싶었다.” 지난 해 12월, 상상마당에서 열린 ‘북콘서트’ 무대에서 박민규는 『더블』의 소회를 덤덤히 말했다.

비록 LP 시대의 더블 감동을 직접 체감해본 적은 없지만, LP 아닌 CD 음반이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더블 앨범을 만나는 일은 감격스럽고 기쁜 일이다. 양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믿음직한 아티스트의 작품이라면 다다익선 아닌가. 그의 성실한 태도와 왕성한 창작욕을 담보하는 ‘더블앨범’은 예나 지금이나, 아티스트에게나 팬들에게나 특별한 이벤트임은 분명하다.

“사람은 결국 누구나 마이너리티다.”


주인공 박민규 작가를 만나기 전에, 오프닝 무대를 연 것은 ‘카스텔라 밴드’였다. 박민규 작가의 팬카페에서 결성된 박민규 오마주 밴드라고 그들은 소개했다. “결성을 할 때 각자 어려움을 갖고 있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괴로움을 느끼거나, 집을 압류당해 쫒겨났거나, 군 제대하고 가평에서 접시 닦기 일을 하던, 그러니까 박민규 소설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네 사람이 불현듯 “인생이 이게 뭐냐” 싶어 모이게 됐단다. ‘우리까지 이러면 꼴찌는 누가하라고.’라는 컨셉을 안전장치 삼아 “제멋대로” 음악을 즐기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과격한 소리를 내던 보컬이 기타를 들고 장렬히 쓰러지는 퍼포먼스로 ‘카스텔라 밴드’의 무대를 얼떨떨하게 감상하고 난 후에, 박민규 소설가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빨간 코트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난 박민규 작가. “안녕하세요.” 중후한 목소리에 객석은 큰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그는 ‘카스텔라 밴드’를 두고, “굉장히 행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 목표가 먼 미래에 힘없고 초라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좌중 웃음) 고마운 친구들에게 ‘카스텔라 밴드’의 오마주 작가로 활동하고 싶다.”며 이 밴드를 많이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음악 평론가 성기완이 누차 몇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박민규 작가는 짧고 묵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마치, 단문체인 자신의 문장처럼 말이다. 객석의 독자들은 이내 그런 화법에 익숙해졌지만, 사회자는 답답한 듯 재차 그의 대답에 대해 언급했다.

이를테면, “이런 까칠한 면이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은데, 평소 독자의 입장은 어떻게 배려하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에 박민규 작가는 화들짝 놀라며 “이 모습이 결코 까칠한 게 아니”라고 부연했다.

“내 생활이 그렇다. 지금 작업실을 구해서 혼자 읽고 쓰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하루 종일 대화를 할 일이 없다. 와이프와 통화 한 두 번 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갑자기 이런 자리에 오면 굉장히 서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나는 굉장히 즐거운데, 이런 질문에 ‘어, 무슨 말을 해야 되지’ 생각하다 보니까 말이 늦어진다. 부끄러워하거나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

사회자와 박민규 작가의 짧은 인터뷰는 계속되었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원동력이 그런 단절된 시간인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다. 나는 36살에 작가가 됐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늘 시간이 부족하다. 가능한 시간을 아끼려고 하고 있다.”

늘 비주류 주인공이 등장한다. 비주류나 마이너리티인 인물들에게 좀 더 애정을 느끼는 까닭은 뭔가?

“마이너리티에 대한 나름의 규정이 있었는데,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마이너라는 개념 자체가 바뀐 것 같다. 확산되었다고 할까. 예전에는 패자, 빈자를 두고 그렇게 불렀는데, 요즘은 인간 자체가 결국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불행을 안고 있고, 불쌍한 존재인거다. 모두에게 인간이라는 마이너리티를 차차 극복해가는 과제가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많이 위로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그런 소설을 쓸 것 같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이 있을까?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대단한 일은 못한다. 나는 ‘발효’라도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썩는 걸 막지는 못하지만, 곁에서 발효라도 되게끔 돕고 싶다. 작가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당신에게 주는 글이다.”


이날의 ‘북콘서트’ 무대에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초대됐다. 말로는 지난해 전통가요를 재즈로 재해석해낸 음반 '동백아가씨’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말로와 박민규의 인연은 꽤 깊다. 지난 해 열린 박민규의 북콘서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기사보러가기)때에도 말로가 축하 무대를 장식했다. “내가 원래 팬이어서, 집에 박민규 컬렉션도 만들어 놨다.(웃음) 이전까지는 발이 땅에 붙어있는 기분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발이 둥둥 뜬 기분이 든다. 세계가 확장된 느낌이랄까.”

이 말에 박민규 작가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말로 씨를 알게 된 건, 오래 전 잡지사에서 일할 때다. 그때 말로 씨 인터뷰를 하러 갔다가 사진도 찍고, 처음 무대에 선 걸 봤다. 말로씨 키가 165정도라면, 마치 해발 165센티의 활화산을 보는 듯 했다. 그 느낌에 매료됐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북콘서트’ 할 때마다 모시고 싶다.”

이어 말로의 ‘신라의 달밤’을 들을 수 있었다. 말로의 짙은 감성 물씬한 목소리가 이내 홀을 가득 채운다. 그녀의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가 되어 울려 퍼진다. 어쿠스틱 베이스, 키보드, 드럼, 그리고 말로의 소리가 ‘신라의 달밤’을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달했다. 꿈결 같은 소리가 멎고, 다시 박민규와 말로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박민규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에, 혹은 쓰고 난 후에, 그것을 선물할 누군가를 떠올린다고 했다. ‘속지’라고 표현한 ‘Double Art Book’에는 각 단편소설이 누구를 위한 선물인지 밝혀두었다.

이를테면, 「누런 강 배 한척」은 작고하신 아버지를 위해, 「낮잠」은 어머니를 위해, 「끝까지 이럴래」는 구글의 창시자 래리 페이지와 서지 브린을 위해, 「크로만, 운」은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킹을 위해 쓰인 글이다. “왜? 라고 그들이 묻는다면 뭐? 라고 나는 답할 것이다.”(Double Art Book, p.12)

“선정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미안함 때문에 드리기도 하고, 그 분의 굉장한 작품을 보고 드리기도 하고, 이 사람과 얘기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물하기도 하고. 그렇게 다 드린다.” 그 중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라는 작품은 평소 가까이 지낸다는 소설가 천명관에게 선물한 소설이다.

“원래 영화배우 존 굿맨에게 주기 위해 쓴 글인데 글을 쓴 바로 직후, 작업실에 놀러온 천명관 형이 <바톤 핑크>야말로 마치 내 인생을 얘기한 듯한 영화였어! 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여하튼 보다 큰 재능을 가진 작가와 같은 시대를, 함께 써나간다는 일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라 나는 믿고 있다.(Double Art Book, p.31)” 이 글을 읽은 “천명관 형에게 처음, 유일하게 감사인사를 받았다”고도 덧붙였다.

“우리 모두가 한 편의 이야기다.”


박민규 작가의 말에 귀를 쫑긋 새우고, 공중파 방송국 방청객 못지않은(!) 뜨거운 반응을 보여준 객석에서도 질문을 받았다. 몇몇 독자들은, 박민규 작가의 소설 덕분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어려운 순간에 용기를 얻었는지 고백하기도 했다. 박민규 작가는 부끄러워했지만, 한자 한자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쓰겠습니다.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내 삶 역시 작가님 소설 인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벌써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보다 더 잘살고 싶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가 이 면적 위에, 이만한 인구를 가지고 경제 10위 권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놀랍다. 지구본 돌리면서 보면 우리가 이 정도로 살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우리보다 순위? 위의 나라는 수백 년의 역사, 드넓은 땅과 자원이 있는 나라들이다. 우리는 조건을 보자면 경제 순위 70위~80위여도 이상할 게 없는 나라다.

현재 기성세대들, 나이든 인간들은 평생 각오만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전쟁에 기아에 쫓겨 ‘더 잘살아야지’ 각오를 하고…… 각오만 하고…… 죽을 때까지 각오만 할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마저 각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는 각성을 해야 한다.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각성을 해야 한다.”


최근 멕시코 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어땠는지 들려달라.

“멕시코가 위험하다던데, 그쪽 사람들은 내가 전쟁 때문에 한국에서 피난을 온 줄 알더라.(좌중 웃음) 태양이 신의 선물 같았다. 햇볕을 쬐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여유가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루차리브레(프로레슬링) 경기를 직접 본 일이었다. 거기서 복면도 많이 사고, 망토도 많이 샀다.

힌트를 주자면, 멕시코에는 젊은 남자들이 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다. 멕시코 젊은 여자들이 가장 선망하는 남성이 동양남자다. 멕시코 남자들은 책임감이 전혀 없다고 한다. 동양 남자들은 (멕시코 남자들에 비해) 덜 가부장적이고, 이혼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매우 환영을 받고 있다.”


박민규 작가에게 성공과 행복의 의미가 궁금하다.

“성공한 인간들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여러분들도 알잖나. 초등학생 애들한테도 쥐 소리를 듣고 하잖나. 물론 세상에는 그렇게 남들을 이끌어가는 자리에 앉아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굉장히 힘든 운명이다. 다만 그것이 승리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고 패배가 아니라는 거다. 그들이 과연 뭘 이긴 건가? 과연 뭘 패한 걸까? 우리는 같이 살아가잖나.

내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 자체가 그런 거다. 사실, 이제껏 매체에 나가서 찍은 사진들, 고글 쓰고 이런 것들 내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건 일종의 코스프레다. 회사를 다니며 다른 사람을 많이 지켜봤다. 유명세 때문에 망가지고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나는 남의 시선을 차단하고 싶었다. 최악의 인생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가 츄리닝을 입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며 사는 삶을 보호하고 싶다. 그럴 때 누가 ‘박민규 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묻는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각오하지 말고, 각성하자는 말이 인상적이다. 구체적으로 각성하는 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

“우리가 갖고 있는 걸 생각해보자는 거다. 내려갈 곳도 많고, 버릴 것도 많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뭔가 갖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는 너무 자발적으로 오버 히팅하고 있다. 삶에서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드라이브다. 이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중에 작가를 부러워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작가라고 본다. 힘든 세상 속에서도 결혼을 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키우고, 자라나는 아이도 한 편의 이야기인 셈이다. 모두가 한편의 이야기다. 모두가 그 위에 행복한 삶을 써나가길 바란다.”




#박민규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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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10.22

인간 자체가 마이너니티라는 말이 어떤 걸 의미하는 건지 문득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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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1968년에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직후,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 일약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박민규는 30편의 단편을 신춘문예에 지원했지만 예심을 통과했던 것은 「카스테라」뿐이었는데, 등단 후 예전에 신춘문예에 떨어진 작품들이 주요 문학상 후보에 올랐다고 감회를 밝혔다.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 소설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을 썼다. 그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어릴 때부터 학교 가기가 싫었다. 커서도 학교 가기가 싫었다. 커닝을 해 대학에 붙긴 했지만 여전히 학교 가기가 싫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먹고 살기가 문학보다 백 배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회사 가기가 좋을 리 없었다. 해운회사, 광고회사, 잡지사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불현듯,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직장 생활을 접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꼴에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쉬엄쉬엄 밴드 연습도 하며, 밥 먹고 글 쓰고 놀며 나무늘보처럼 지내고 있다. 누가 물으면, 창작에 전념한다고 얘기한다. "말로는 뭘 못해"라고 모두를 방심시킨 후, 정말이지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는 '키치'를 지향하는 듯한 표지나 떠벌떠벌대는 작가의 문체에서 가벼운 유쾌함을 얻을 수 있지만, 곱씹어 보는 뒷맛은 꽤 씁쓸한 작품이다. "주변인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경쟁과 죽음을 부추기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로 이어진다. 그가 기억하는 1982년은 "37년 만에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고, 중·고생의 두발과 교복자율화가 확정됨은 물론, 경남 의령군 궁유지서의 우범곤 순경이 카빈과 수류탄을 들고 인근 4개 마을의 주민 56명을 사살, 세상에 충격을 준 한해였다. 또 건국 이후 최고경제사범이라는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거액어음사기사건과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난 것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이 자행되고,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사망하고, 미국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발사되고, 끝으로 비운의 복서 김득구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레이 '붐붐' 맨시니와의 WBA 라이트급 타이틀전에서 사망한 것도 바로 그해의 일이었다." 이런 시대에 '삼미슈퍼스타즈'가 1982년,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탄생했다. '어려운 공은 치지 않고 잡기 어려운 공은 포기하는' 만년 꼴찌 팀이었던 삼미슈퍼스타즈를 통해 80년대 우리 모두는 피해자였으며 또한 꼴찌였다는 말을 풀어낸다. 『지구영웅전설』에 대해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남진우씨는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 라는 매우 묵직한 주제를 만화라는 대단히 가벼운 양식을 차용해 천착한 작품이다. ”라고 평한다. 슈퍼맨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내’가 이끌어가는 만화 같은 이 소설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을 비판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앞세운 경제 통제, 세계경찰을 자임하며 미국식 정의를 강요하는 독선 등이 그 비판의 대상이다. 『카스테라』는 2003년 여름부터 2005년 봄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단편집으로 전생에 훌리건이 아니었을까 의심스러운 냉장고 이야기, 링고 스타와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나는 우주여행 등 특유의 만화적 상상력이 넘실대는 단편 열 편이 실려있다. 이 책에서 소설가 이외수는 “대한민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지목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박민규라는 작가의 출현을 지목하겠다.”라는 추천평을 남기기도 했다. 『누런 강 배 한 척』([문학사상], 2006년 6월)은 노년의 묵중하고 허허로운 시선을 잘 빚어낸 작품이다. 생의 주변을 정리하고 똑같은 생의 반복이 무서워 스스로 자살하려고 여행을 떠나는 화자의 심정이 고요한 묵상의 표현으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박민규식 농담이 실존적 내면 풍경의 진지함으로 착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 12월부터 6개월간 인터넷 서점 YES24에 연재한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외모 경쟁에서 뒤떨어진 여성들, 나아가 늘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이 시대 모든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연서이다. 또한 이 소설은 인간을 이끌고 구속하는 그 ‘힘’에 대한 문제제기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해 왔듯이, 미모를 지닌 극소수의 인간들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를 사로잡아온 역사, 결국 극소수가 절대다수를 지배하는 시스템 오류에 대한 지적이다. 그는 이 작품을 내놓으면서 “저는 늘 스펙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경쟁력 없이 살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남자들을 위한 소설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여자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고 얘기하기도 하였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40세 독신남의 귀향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 「근처」로 그는 2009년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심사위원들로부터 '작가 박민규라는 맥락에서 볼 때 의미 있는 변화의 표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한,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성을 근원적인 생명의 가치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을 통해 새롭게 형상화하고 있는 단편 「아침의 문」은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과 삶의 영역이 궁극적으로 생명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귀결되는 과정은 매우 극적이며, 이것은 사소한 일상의 테두리에 얽혀 있는 소설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작가적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