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여관, 스무 가지 반찬에 감탄!
100년 된 여관에서 아름다운 하룻밤 - 옛날식 여관답게 방 안으로 각각 저녁상을 들이는데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든다. 얼핏 봐도 스무 가지쯤 되는 반찬이 상에 올랐고 일단 냄새부터 기차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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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시 여행의 로망
고선영 글/김형호 사진 | 시공사
이 책은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을 다독이고 위안하는 여행을 떠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잘 꾸며진 관광지가 아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소박하고 정겨운 우리의 ‘소도시’들이다. 그곳에서 푸근한 동네 사람들의 노변정담에 끼어 보고, 맛나는 지역 음식도 맛보고,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도 둘러보면서 여행자는 일상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스트레스를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놓아 버린다. 녹록지 않은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휴식같은 시간. 여행자는 길 위에서 새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는다.
100년 된 여관에서 놀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해남은 정말 멀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꼬박 6시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여행 책자에는 4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고 쓰여 있지만 죄다 거짓부렁이다. 휴게소 두어 번 들렀다 가면 어쨌든 6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땅끝까지 가는 데 반나절로 족하다면 그리 먼 것도 아닌 듯싶다.

어쨌거나, 나는 지금 땅끝마을 바닷가에 서 있다. 하늘은 참으로 맑아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고, 갯벌이 훌렁 드러난 남녘 바다는 금빛을 칠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곧 노란색 산악열차를 타고 땅끝 전망대로 오를 참이다. 산이 산이고 바다가 바다인 듯하나,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끝나고 다시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에 우뚝 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과 바다의 모습이 사뭇 기대됐다. 실은, 그 기대에 설레기까지 했다. 촌스럽게도.

유선관은 두륜산 자락에 들어앉은 고찰인 대흥사 입구 바로 아래 있었다. 정갈한 돌담이 서너 채의 건물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 높이가 어른 가슴께까지 와 까치발을 들고 안을 들여다보면 꽃 심은 마당이며 안채의 반질반질한 툇마루까지 보였다. 돌담의 한편은 대흥사 일주문과 연결되는 피안교라는 이름의 돌다리와 이어져 있다. 긴 담장 길을 돌아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단아한 열두 칸 전통 한옥 본채의 모습이 펼쳐졌다. 집은 가운데 작은 정원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ㄱ’자 건물이 왼편에는 ‘ㅣ’자 건물이 놓여 있어,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지난 겨울, 유선관은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넘치는 사람들로 꽤 긴 몸살을 앓았다. 방 구하기가 만만찮겠다, 걱정했는데 운이 좋아 딱 하나 남은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내가 묵을 곳은 ‘동백꽃’ 방이란다. 댓돌 아래 얌전히 운동화를 벗어 놓고 방문을 열었다. 세 평쯤 되는 단출한 방이다. 붓글씨 작품이 하나 걸렸고 옛날식 경대와 옷걸이 하나, 두 명분의 이부자리가 세간의 전부다. 별것 없지만 어차피 필요한 것도 없다. 대신 방의 앞과 뒤로 문을 활짝 열 수 있어 바람이 시원하게 들락거린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손바닥만 한 정원에 핀 꽃이며 두륜산 정수리 부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지랑이를 구경하고 있자니, 마음 속에도 건듯건듯 바람이 인다. 옆방에는 두륜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아주머니 세 분이 들었는데, 여고 동창 사이라는 그들의 방에서는 웃음소리가 쉼 없이 호호호 흘러나온다.

부엌에서는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지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고 장작 타는 냄새도 난다. 생선 굽는 냄새,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몰큰몰큰 풍겨 왔는데, 그 참에 잠잠하던 뱃속이 요동을 친다. 아주 죽을 지경이다. 유선관 안주인의 음식 솜씨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 잠시 후면 그의 장맛 손맛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간신히 허기를 달래 본다.


드디어, 기다리던 저녁상이 등장했다. 옛날식 여관답게 방 안으로 각각 저녁상을 들이는데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든다. 얼핏 봐도 스무 가지쯤 되는 반찬이 상에 올랐고 일단 냄새부터 기차다. 배추된장국은 소박하지만 구수하고 시원했고, 두툼한 돼지고기 볶음은 매큼했으며, 쏠쏠히 살이 오른 굴비구이는 간이 딱 맞았다. 여기에 고소한 들깨로 버무린 요즘 나는 너덧 가지 나물과 버섯, 숙주, 김자반까지 어느 것 하나 손이 가지 않는 찬이 없다. 그렇지, 이게 바로 남도의 맛이지, 감탄을 하며 밥 한 공기 더 청해 남김없이 상을 비웠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부엌에서 따끈한 숭늉이 도착했다. 훌훌 숭늉까지 들이켜고는 더없이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막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유선관 산보에 나섰다.

“지금 쓰는 ‘유선관’이라는 이름은 다섯 번째로 알고 있어요. 이전 이름은 잘 모르겠어요. 아마, 45년 전쯤이었을 거예요. 광주도청 옆에 유명한 여각이 있었는데, 그곳서 기생 살던 ‘장화’라는 여인이 45년 전 이곳에 ‘유선여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어요.”

마당 산책 중 유선관 주인 윤재영 씨를 만났다. 그가 장독대 앞 의자에 앉아 유선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옥 자체는 1913년에 지어졌고, 처음부터 여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란다. 1960년대 중반 ‘장화’라는 이름을 쓰던 기생 박미희 씨가 구입해 운영하다가 2000년 즈음 윤재영 씨가 인수했다고 한다.

“술도 팔고 흥도 팔던 멋있는 여각이었어요. 장화, 그분은 진짜 소리를 멋들어지게 하는 양반이었지요. 내 고향이 해남이라 젊었을 때 이곳에 종종 들러 막걸리를 마시곤 했죠.”

유선관이 알려진 것은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고부터다. 이후 영화 ‘장군의 아들’과 ‘서편제’, ‘천년학’ 등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알음알음 세간에 알려졌다. 임권택 감독은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씩은 유선관을 찾는다고 한다. ‘천년학’의 촬영 중 칠순을 맞은 노감독의 생일상도 이곳 유선관 마당에 차려졌단다.

- 본문 中에서


여행자의 수.첩.

가.기.
서울에서 간다면, 먼저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IC까지 간 다음 2번 국도를 따라 영암군을 지난다. 이후 월산IC에서 빠?나와 해남읍 방면 13번 국도를 달리는 것이 제일 빠르다. 유선관은 대륜산 자락 대흥사 입구 바로 아래에 있다. 땅끝마을은 다시 남쪽으로 77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먹.기.
‘해남 맛집’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곳이 바로 떡갈비로 이름난 천일식당(061-535-1001)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들른 맛집으로 알려졌다. 대흥사 인근의 ‘원조장수통닭(061-536-4410)’에서는 토종닭을 잡아 갖가지 부위를 특색있게 요리한 코스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머.물.기.
대흥사에서 10분 거리의 삼산면 무선동 한옥마을에서도 빈티지한 멋이 있는 남도 민박을 경험해 볼 수 있다. 해남 명창 채옥란 선생이 운영하는 영산홍민박(061-534-6166), 도예가 박상경 씨의 우인도예민박(061-533-9245), 차밭이 딸려 있는 새금다정좌(061-532-5070) 등에서 숙박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유선관에는 감나무, 벚나무, 매화꽃 등의 이름을 딴 10개의 방이 있다. 두세 명이 묵는 작은 방은 하룻밤에 3만 원, 4~7인은 6만 원, 8인 이상은 12만 원이다. 식사는 미리 예약해야 하며, 돈이 결코 아깝지 않은 맛이므로 유선관에서 묵는다면 꼭 식사를 해 보도록 한다.

알.아.두.기.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061-530-5919
유선관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19-6번지, 061-534-2959, 3692
땅끝마을 전망대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산 43-9, 061-530-5906



#전라도 #여행
1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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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7.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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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23

2013.02.03

100년된 여관이라니...정말 신기합니다 ㅎㅎ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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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rim49

2012.08.27

좋은 정보감사합니다. 해남은 한번도 가본 적 없는데 자주 거론되서 그런지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내일로 혜택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가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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