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메시지 전달, 그리고 대중적 성공까지 쾌척하다 - 패닉(Panic) (1995)
이적이 프로젝트 앨범으로 활동하기 전 래퍼 김진표와 함께한 ‘패닉’의 데뷔앨범입니다. 이제는 「달팽이」가 그들의 시그니처 송이 되었지만 사실은 「아무도」 같은 저돌적인 리듬과 패기 넘치는 가사가 그들의 지향이었습니다. 후속곡인 「왼손잡이」, 감성 충만한 「너에게 독백」 등 모든 곡들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었죠. 패닉의 1집, 입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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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는 이적과 김동률의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을 소개했었죠. 이번에는 이 카니발의 멤버였던 이적이 프로젝트 앨범으로 활동하기 전 래퍼 김진표와 함께한 ‘패닉’의 데뷔앨범입니다. 이제는 「달팽이」가 그들의 시그니처 송이 되었지만 사실은 「아무도」 같은 저돌적인 리듬과 패기 넘치는 가사가 그들의 지향이었습니다. 후속곡인 「왼손잡이」, 감성 충만한 「너에게 독백」 등 모든 곡들이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었죠. 패닉의 1집, 입니다.


패닉(Panic) (1995)

1990년대 가요 팬들은 ‘룰라’의 댄서블한 리듬에 열광했지만 한 곳에서는 뮤지션의 ‘자기 정신’이 투영된 음악을 찾았고, 예쁜 멜로디의 가요 발라드도 원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강도 있는 메시지와 파급력도 절실했다. 그러던 때에,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돌고 돌던 한 데모 테입을 듣고, 도로를 달리던 차를 멈추고 데모의 러닝타임이 끝날 때까지 꼼짝 않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어떤 뮤지션의 말처럼, 그 데모를 들은 음악인들과 음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얘네들, 천재 아니야?”

1995년, 그 데모의 주인공인 이적과 김진표가 패닉(Panic)이라는 이름으로 1집을 공개한다. 하지만 그 가시적인 성과를 보기 위해서는 조금 더 기다려야했다. 저돌적인 리듬, 패기 넘치는 가사와 래핑으로 그들의 지향을 압축한 타이틀 곡 「아무도」는 미지근한 반응으로 일찍 접어야했고, 양양한 미래를 예고했던 그들의 1집도 이대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스트링이 그리는 서정적인 발라드 「달팽이」가 라디오 전파를 서서히 잠식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TV의 각종 가요 순위 차트까지 점령했던 것이다. 김진표의 지분이 전혀 없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달팽이」의 히트는 제작자는 물론, 패닉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또한 단발성 히트의 ‘아이돌’이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자신들 음악의 바탕은 달콤한 발라드가 아닌 ‘록’이길 원한 그들이 「너에게 독백」을 제쳐두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에 관해 노래한 「왼손잡이」를 후속곡으로 내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이 곡에서조차 이적 특유의 경쾌하고 재기 넘치는 멜로디가 흘러 다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그의 발군의 멜로디 감각 덕분이다.

패닉 1집을 관류하는 것은 이렇듯, 사회적 의식을 담을 줄 알았던 자기 음악과 이것이 한낱 사회 타령 하는 데 머물지 않고 ‘대중가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강력한 ‘한 방’이 있는 ‘훅’이다. 「달팽이」는 말할 것도 없고, 「너에게 독백」이 그랬고,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이루어진 「기다리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특히, 오르간으로 복고적 느낌을 주도하고 3박자의 블루스 리듬까지 접목한 「안녕」에 이르러서는 그 세련된 감각이 정점에 올랐다. 이것이 그들이 ‘예술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패닉 1집은 이적과 김진표의 2인조 라인업으로 이루어진 명백한 ‘그룹’의 형태였지만,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그래밍과 여러 악기들까지 섭렵한 이적과는 달리 김진표의 영역은 너무도 좁았다. 「Mama」 「벌레」 등 가사에 본격적으로 린치를 가하기 시작한 2집부터 그의 시도가 정제되고 다듬어지기 시작했으며, 후에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100% 한국어 랩 앨범을 시도한 아티스트로서의 초석을 다지게 되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는 이적의 음악적 취향과 시도,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랩과 노래의 이분이 너무 뚜렷해 약간의 어색함을 주기도 한 이들의 3집보다 내적으로 통어하는 이적의 강력한 구심적 힘의 산물인 1집에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루어진 명백한 ‘그룹’의 형태였지만,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그래밍과 여러 악기들까지 섭렵한 이적과는 달리 김진표의 영역은 너무도 좁았다.

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후에 보여줄 이적의 다양한 장르 탐험에 가능성을 모두 타진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비틀스의 로큰롤을 동경하고 특히 프린스(Prince)의 펑키(funky)함에 애정을 쏟은 그의 역량은 후에, 패닉 2집의 「혀」에서 시작하여 김동률과 발표한 프로젝트 앨범 <카니발>에서의 (앨범 크레딧에는 김동률과 공동 작사/작곡으로 표기했지만 그의 것이 분명한) 「롤러코스터」, 한정밴드 멤버들과 함께한 <긱스(Gigs)>에서 만개했지만, 그전에 이미 「아무도」 「왼손잡이」에서 밀고 당기는 펑키리듬으로 팬들을 춤출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받은 셈이다.

이적은 대부분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그의 평범한 건반 편곡과 연주 실력은 그를 아주 뛰어난 키보디스트로 만들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좋은 성량을 가진 보컬리스트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라이브를 통해서 들려주는 불안정한 고음부 목소리는 실망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 넘치는 보컬은 신기하게도 발라드, 록, 펑키 등의 장르와 잘 들어맞았으며, 팬들의 예리한 감성을 건드리고, 몸을 흔들게도 하며 때로는 폭발시키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또, 작곡을 잘한다고 해서 그가 대단한 화성학의 코드 진행과 텐션을 이용한 복잡한 음계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는 기본 세 코드가 주도하며, 한음씩 상승하고 다시 한음씩 하행하는 단순한 베이스 진행으로 이루어진 「기다리다」, 한 가지 모티프로 계속 엮어나가는 「왼손잡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기본적 구성 속에서 뽑아내는 선율은 애틋했으며, 그 선율은 무엇보다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임팩트를 가졌다.

그런데 이 1집에 찬란한 영광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던 때 일각에서 불거진 「달팽이」의 표절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닐 영(Neil Young)의 「After the gold rush」의 멜로디를 닮았고, 벤 폴드 파이브(Ben Fold Five)의 「Brick」의 인트로 부분이 「달팽이」의 건반 편곡과 똑같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가열 찬 그룹의 데뷔작은 표절 의혹으로 얼룩진 「달팽이」로 평가절하하기에는 그것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수록곡들로 가득했고, 이는 계속된 표절시비에도 불구하고 이어져 나온 후속곡들에 대한 팬들의 열렬한 지지로 증명된다.

후에, 어떤 치열한 실험성의 시도보다는 언제나 대중이 납득할만한 수준에서의 변화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좋은 멜로디’의 끈을 놓지 않으며 대중과의 피드백을 마련해갔다. 사회적인 시각과 의식을 담은 혼자만의 외침이 아니라, 대중에게 들려주기 위해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한 이 앨범은 ‘자신의 메시지 전달과 대중적 성공의 쾌척’의 발현이며 신인이 갖추어야 할 미덕인 신선한 패기의 표본으로 남는다.

글 / 조이슬(esbow@hanmail.net)

#패닉 #Panic #달팽이 #이적 #김진표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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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7.22

패닉의 '달팽이'는 지금도 좋아하는 분들이 적지 않지요. 저도 패닉의 '달팽이'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노래방에 가게 되면 꼭 불러보는 노래이기도 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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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