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리운 살바도르
“아쉐!!” 바이아에서는 언제나 통하는 마법의 주문. 살바도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을 논할 때 언제나 통하는 말.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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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vador, O Mais Querida

살바도르에서 여름을 보낸다는 것. 대장간에서 뜨거운 불길 속에 들어갔다가 두들겨 맞고 찬물이 끼얹어지는 쇳덩어리 같은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원색의 도시, 내리쬐는 태양과 사람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끊이지 않는 음악. 24시간 최면에 걸린 듯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춤을 추게 되는 그곳, 살바도르.

살바도르를 떠나온 지 벌써 1년 반이 되어 간다. 그해 여름, 고막이 터질 듯 울리는 음악에 맞춰 끊임없이 바닷가 옆 거리를 걷고,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다시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밤과 새벽에는 거짓말 같이 고요해진 바닷가에서,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르는 구슬프고 조용한 멜로디에 맞춰 열을 식히고, 한낮의 열기 속에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던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한번도 겪어 보지 못했던 열정적인 삶을 33년 만에 갑자기 경험한다는 것. 아무리 오래전부터 브라질에 가는 것을 꿈꾸어 왔고 삼바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피가 흐르지 않는 이상, 무언가에 완전히 빠지지도 못하고 미치지도 못하는 소심하고 융통성 없는 내가, 어제와 내일을 모두 접어두고 일단 지금 들려 오는 음악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몰두할 수 있는 그들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한 달 반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들과 완벽하게 섞일 수 없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마냥 열에 들뜬 살바도르가 지겨워져 서둘러 떠났었다.

하지만 떠난 뒤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는 살바도르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 정열과 일탈의 순간이 세상 그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것이었음을 그 불구덩이 안에 있을 때는 깨닫지 못했었다. 그들이 몰두하던 춤과 음악과 하룻밤 사랑이, 그들의 힘든 하루하루와 고된 인생을 잊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그렇게 괴로운 일을 음악 한 자락, 춤 한 곡에 실어 보내고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나는 꼭 배워야만 했다.


Ai, ai que saudade eu tenho da Bahia
Ai, se eu escutasse o que mamae dizia
“Bem, nao va deixar a sua mae aflita
A gente faz o que o coracao dita
Mas esse mundo e feito de maldade e ilusao”

Ai, se eu escutasse hoje nao sofria
Ai, esta saudade dentro do meu peito
Ai, se ter saudade e ter algum defeito
Eu pelo menos, mereco o direito
De ter alguem com quem eu possa me confessar.

아, 바이아가 너무 그립구나.
그때 엄마가 해주신 충고를 들을 것을.
“얘야, 엄마가 너를 걱정하게 만들지 말아다오.
세상은 악과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단다.”

그때 그 말을 들었더라면 지금처럼 괴롭지 않을 것을
고향이 너무 그립다 못해 괴로운 내 마음
만약 그리움이 죄짓고 난 괴로움 같은 거라면
적어도 고해하고 뉘우칠 사람을 찾아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Saudade da bahia. 바이아, 네가 정말 그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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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e!!

“아쉐!!” 바이아에서는 언제나 통하는 마법의 주문. 살바도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음악을 논할 때 언제나 통하는 말. 카니발은 2월에 시작되지만, 크리스마스와 12월 31일 새해 파티인 헤베이용(Reveillon)을 시작으로 카니발 모드로 전환한다.

아쉐는 원래 바이아의 전통 종교인 칸돔블레(Candomble)에서 자주 쓰는 말로 힘, 강한 정신, 어떤 상서로운 기운을 뜻하는 말이다. 음악을 시작할 때나 칸돔블레 행사 중간에 추임새로 자주 넣어 주는, 바이아 사람들에게는 덕담, 축복, 용기를 주는 단어인 셈이다.


1990년대부터 아쉐는 바이아 사람들만이 아닌 브라질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80년대 후반부터 바이아에서는 기존의 아프리칸 리듬을 바쇅으로 한 블로쿠 아프로Bloco Afro들이 자주 쓰는 리듬과 악기에 신시사이저와 전자 기타를 추가하고, 리듬도 도미니카의 메렝게merengue처럼 두 박자로 단순화한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살바도르 카니발 때 주로 연주되었던 만큼, 가사도 종교적인 것보다는 사랑과 카니발, 살바도르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살바도르 사람들만을 위한 음악 장르였다. 댄서 출신 가수 다課엘라 메르쿠리Daniela mercury가 90년대에 발표한 곡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아쉐는 바이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닌 브라질 음악의 메인 스트림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아쉐 뮤지션들이 음악 차트의 상위권에 진입하고, 이제는 브라질 카니발의 본고장 히우(Rio) 사람들이 아쉐를 듣기 위해 살바도르의 카니발을 찾아오고 있다.

무엇보다 카니발을 위한, 카니발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니 CD로 듣기보다는 반드시 그들과 섞여서 몸을 움직이며 들어야 한다. 살바도르의 길거리에 비좁게 서서 열기를 내뿜는 사람들의 팔다리와 부딪히지 않고 듣는 아쉐는 ‘죽은’ 아쉐다. 아쉐는 음악 안에 있는,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살아 있는 정신이니까. CD를 틀어 놓고 앉아서 듣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편곡과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리기 힘든 자극적이고 단순한 가사들. 하지만 아쉐를 즐기기 위해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에게 뮤지션들이 연주를 시작하며 외치는 이 한마디와 그 말에 화답하는 관중들의 에너지가 있다면 그때 아쉐는 살아나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살바도르를 뒤덮는다.


Axe, Axe, gente!
여러분, 더 힘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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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의 기억

한번도 와본 적 없었던 장소에 우연히 도착했는데 그 풍경이 너무나도 익숙하다면, 익숙하다 못해 ‘여기쯤에 뭐가 있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에 돌아봤을 때, 정말 그 풍경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분명 전생에 내가 오랫동안 머문 곳이 아닐까?

예전에 들어본 적도 없고 관광지를 안내한 책자에서는 더더욱 볼 수 없는, 살바도르에 사는 사람들도 별로 갈 일 없는 아주 오래된 사창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은 그곳에 간 날은 새해 첫날, 노을이 바닷가를 가득 덮은 오후였다.

예전에는 분홍빛, 노란빛 색색으로 아름다웠을 오래된 건물들. 색이 거의 벗겨져 나간 낡은 건물이지만 베란다 창가의 멋을 낸 창살들과 작게 열린 창가에 얹어 놓은 화분이 마음을 울린다. 어떻게 이렇게 낯익을 수가 있을까! 놀라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사진작가인 친구의 남편이 오래된 건물과 여인의 이미지로 작업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는 이곳. 그는 작업을 하면서 만난 이곳 사람들과 친해졌고, 하루가 끝날 때마다 들러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물론 내 친구는 사창가라는 장소에 남편이 드나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 또한 작업할 때 말고도 이곳에 와서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는 그를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내가 전생에 이곳에서 살았다는 느낌은 거의 확신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애정도 아닌 증오도 아닌 묘한 감정으로, 과연 내 것인지, 그리고 몇 년일지 알 수도 없는 그 지나간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골목에 서서 익숙한 집들과 바닷가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익숙한 풍경. 난 정말 여기서 한 생을 보냈나 보다.


브레가Brega. 살바도르의 오래된 사창가는 중심부인 펠로리뇨Pelourinho의 아랫동네로 내려가는 길, 그 한가운데에 있다. 카스트로 알베스Castro Alves 광장을 지나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생긴 이후로는 뜸해졌지만 여전히 이 사창가 골목은 바닷가로 내려가는 지름길이다. 봉핌 축제Lavagem do bomfim 때 사람들은 윗동네에서 모여 나팔을 불고, 꽃 항아리를 이고 바닷가 옆 메르까도 모델루Mercado modelo 앞 광장까지 걸어간다. 그 사람들을 위해 꽃을 뿌리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축복의 말을 부탁한다. 아무도 숨지 않는다. 그냥 그들은 이곳에 아주 오래전부터 머물러 왔던 살바도르의 구성원일 뿐. 윗동네 사람들도 내려가다가 들르고, 아랫동네 바다 일을 하는 노동자들도 하루 일을 끝마치고 들렀던 그런 곳이었을 뿐이다.

시의 재개발 계획으로 인해 이 건물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 살바도르에서 가장 쓸쓸하고 아름다운 장소, 어쩌면 전생에 나의 집이었을지 모르는 이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운명의 흐름에 이끌려(이렇게밖에 설명 못하겠다.) 다시 이곳을 찾고 모든 풍경을 눈과 머릿속에 새기고 갈 수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잠시 대화를 나누었던 흰옷을 입은 포주의 인생에 달관한 듯한 표정, 피곤함과 동시에 무언가 즐거운 일이 있었던 것 같은 만족감이 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얼굴, 주크박스에서 들은 삼바 몇 곡과 싸구려 맥주 한 병. 그 모든 풍경 안에 나를 내버려두고 어떻게 내가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 본다. 재미 삼아 봤던 한 점술가의 말처럼, 난 지독하게 사랑 받았던 브라질 여자였을까? 바이아를 사랑하면서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꿈 많은 여자였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일이 있었을까……?

살바도르를 떠난 다음 당신에게 이곳의 풍경을 보냈을 때, 뭔지 모르는 끌림을 느꼈다는 말을 듣고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아마 모르겠지. 난 아무래도 이 생애에서 당신에게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하나 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 버리니 지긋지긋한, 당신에 대한 미련이 이해가 된다. 그렇게 위로할 수밖에. 그렇게 살아가야 할 밖에.

내가 언젠가 저 골목에서 만났던 당신에게 무언가 크게 잘못해서 지금 이렇게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그 전생에서 꿈꾸었던 자유를 누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대신 그때 놓쳐 버린 누군가에 대한 값을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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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raje e Abara

바이아를 대표하는 음식은 당연 ‘아카라제’다. 신이 사람에게 내리는 음식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아카라제는 쥐눈이콩보다 좀더 작은 콩 black eyed peas의 껍질을 벗기고 마늘, 양파를 넣고 갈아 반죽을 둥글게 튀긴 다음 가운데를 갈라 이런저런 소스들과 토핑을 얹어 먹는 음식. 튀기는 기름은 반드시 바이아에서 나는 오렌지빛 코코넛 덴데Dende 오일이어야 한다. 바이아 음식의 키워드는 덴데 오일과 타피오카 가루, 코코넛과 소금에 절여 말린 새우 그리고 피멘따pimenta라고 부르는 엄청나게 매운 고추소스들.

아카라제를 시키면 기본적으로 캐슈넛과 토마토와 오이, 고수를 섞은 살사, 작은 새우 말린 것과 핫소스를 얹어 주는데, 위에 얹어 주는 좀 큰 새우는 따로 가격을 매긴다. 바타파vatapa라는 캐슈넛과 말린 새우, 덴데 오일 등을 넣고 갈아 만든 페이스트의 맛도 맛있는 아카라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아카라제도 그날그날 빚은 신선한 반죽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바라abara는 튀기지 않고 찌는 아카라제로, 반죽에 덴데 오일을 섞어서 바나나 잎에 싸서 찐다. 반을 갈라 바타파와 양념을 얹는 것은 동일하다.


바이아 음식은 타피오카를 비롯해 농축된 녹말을 사용하는 음식이 많아 쉽게 배가 부른다. 그러므로 각자 주문하는 것보다 스튜 종류로 밥을 곁들여 나눠 먹을 수 있는 메뉴와 곁들이로 한두 개 정도 주문하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살바도르에 머물 때 아카라제보다 같이 파는 길고 둥근 타피오카 케이크에 중독되어 만드는 법까지 배웠는데, 그 케이크의 애칭이 참 걸작이다. 바로 ‘마스터베이션’! 흰 타피오카 가루에 코코넛 밀크를 넣어 질게 반죽하면 그 죽죽 늘어나는 모양(?)이 많이 닮았단다. 만들어 보니 확실히 닮긴 좀 닮았다.

살바도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아티푸아Itapua에서 파는 시라Cira의 아카라제가 아마 가장 유명한 아카라제가 아닐까 싶다. 다들 티셔츠도 맞춰 입고 조직적으로 일한다. 잘 팔리는 만큼 재료도 신선하고, 금방 만들고,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M’ 케이크도 팔고, 코코넛 채친 것을 설탕으로 버무린 다음 뭉친, 바이아에서 흔한 디저트인 꼬까다cocada도 판다. 그야말로 숨이 꼴까닥 넘어갈 만큼 단 음식이니 웬만큼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잘 생각해 보고 주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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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리고 기도

Uma duzia de rosas, cheiro de alfzema, presentes eu fui levar
E nada pedi
Entreguei ao mar

열두 송이의 장미와 향수, 그밖에 바치고 싶은 선물들을 가져갔지.
되돌려 줄 필요 없어요.
바다에 바친 거니까요.


어딜 가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에 대해 느끼는 경외감의 깊이를,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100퍼센트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난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도 하느님께 도와 달라고 매달릴 줄 모르는, 조금은 뻣뻣하고 건방진 신자였다. 그래서일까, 사소한 것에도 꽃을 바치고 기도하고 찬미하는 바이아 사람들과의 모습이 왠지 무척 부러웠다. 왜 나는 저렇게 순수하게 자신들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빌고 부탁할 줄 모를까. 무릎 꿇을 줄도, 완전히 기댈 줄도 모를까. 혼자서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포르투갈인들이 전파한 가톨릭에 아프리카의 종교가 혼합되어 정착한 칸돔블레. 아프리카의 토속신과 가톨릭의 성인들이 묘하게 얽혀 있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종교다. 아마도 원주민이나 노예들에게 효율적으로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섞는 데서부터 시작되었을 것. 가톨릭적인 것이 섞이지 않은 전통적인 칸돔블레 의식이 열리고 있는 까사 블랑카Casa Blanca도 아직 건재하지만, 성당 앞마당에 자리잡고 앉아 사람들에게 아픈 곳을 낫게 해 주는 기도를 하거나 점을 보는 브라질 만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이 특이한 종교가 바이아에서 자리잡고 이어져 왔는지 알게 된다. 봉핌bonfim 성당 앞의 성물聖物 파는 곳에서도 가톨릭 성인의 이름과 이곳 토속신의 이름이 같이 새겨져 있는 여러 가지 끈들과 토속신의 의상을 재연해 입고 찍은 엽서들을 같이 팔고 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더 주술적인, 흑마술에 가까운 다른 종교들의 성상도 같이 진열되어 있다. 이곳 사람들은 그야말로 말이 아닌 온몸으로, 생활의 일부분으로 신과 자연을 섬기고 믿고 있다.

그 모든 신앙의 한가운데에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매년 2월 2일, 바다의 여신을 위한 축제인 페스타 지 이에만자Festa de Yemanja가 열린다. 그 어떤 칸돔블레 신들을 위한 축제보다 크고, 잘 알려져 있다. 바이아 사람들은 이날 모두 앞다투어 바닷가에 있는 이에만자 집으로 몰려가 꽃과 향수와 구슬로 된 장식품들을 바친다. 배에 재물을 올려 오후에 그 배를 띄워 보내기도 하고, 바닷가에 꽃을 들고 나가 소원을 빌며 꽃을 던지기도 한다.

뾰족하고 위험한 바위 위에 서서 꽃을 던지는 사람들 틈에 끼어 나도 준비해 온 장미꽃을 던진다. 꽃 한 송이마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과 소원을 실어. 옆에 같이 소원을 빌러 온 수많은 사람들도 연달아 꽃을 던진다. 난생 처음으로, 매달리는 심정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꽃을 던져 본다. 처음으로,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기도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바다를 보고 늘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일까? 바닷가에 나가서 우연히 혼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기도하는 것처럼 보여 가슴이 뭉클했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기도를 하게 된다. 살바도르 어딜 가도 보이는 바다에 대고 기도한다는 것은 순간순간마다 기도를 한다는 뜻이다.

살바도르에 와서야 나는 누군가를 위해 순수하게 기도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바다가 보일 때마다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는 것. 진정한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갖고 싶거나 원하거나 애태우는 것이 아닌, 그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바다처럼 각자 그 자리에서 평화롭고 행복해지도록 기도하는 것.

당신들이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이 멀리 떨어진 바닷가에서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가 행복한 것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고, 따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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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진
『청춘남미』
경원대학교 섬유미술과를 졸업하고, 딴지일보 음악 홍보 및 공연 기획, 재즈 전문 기자를 거쳐 영국의 땅뜨마리 요리학교(Tante Marie School of cookery)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홍대 부근에서 쿠킹 스튜디오 ‘손녀딸의 테스트 키친’을 운영하며 새로운 맛을 테스트하고 전파하는 즐거움에 빠져 살았다. 지금은 푸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음식문화에 관한 다양한 주제의 책들을 준비 중이다.
핵심 중남미 100배 즐기기
전혜진,김준현 공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브라질

브라이언 딕스 글/홍연미 역 | 주니어김영사
브라질 들여다보기

이승덕 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브라질

박영진 저 | 혜지원


#브라질 #여행
2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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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23

2013.02.03

명칭이 달리와 같은 이름이라는게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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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2to

2012.12.10

잔잔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곳 같네요. 어떻게든, 공통점든 '따뜻함'인 것 같습니다. 열정과 순수 모두 갖춘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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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7.07

축제도 재미있어 보이지만 역시 먹을 거에 더 관심이 가네요. 신이 사람에게 내리는 요리라니 얼마나 맛있기에? 먹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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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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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유진

차유진을 아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손녀딸'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친숙하다. 이 닉네임의 기원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PC통신이 처음 전파될 무렵 국내 치초로 생긴 무라카미 하루키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그녀는 하루키의 소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 "분홍 옷을 즐겨 입고 요리를 잘하고 얼굴이 예쁘고 영리한 뚱뚱한 손녀딸"에서 자신의 닉네임을 따왔다. 경원대학교 섬유미술과를 졸업하고, 딴지일보 음악 홍보 및 공연기획, 재즈 전문 기자를 거쳐 영국의 「땅뜨마리요리학교(Tante Marie School of cookery)」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 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홍대 부근에서 쿠킹 스튜디오 「손녀딸의 테스트 키친」을 운영하며 새로운 맛을 테스트하고, 전파하는 즐거움에 빠져 살았다.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에 흥미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미술관에 가고, 음악을 듣고, 시장통에서 건진 생각들을 글로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따뜻한 감성파. 어느 날 불현듯, 현실을 훌훌 털고 7개월 동안 남미와 멕시코, 미국을 여행하며 가슴에 담았던 요리와 문화 이야기를 글로 담았다. 2004년, 세상에 내놓은 첫 책 『푸드 러버를 위한 차유진의 테스트키친』 이후 두 번째로 묶어낸 『청춘남미』는 더 깊숙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은 타로와 사주역학 상담 전문 살롱인 ‘에이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