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강의실] 『달나라 도둑』 김주영 작가
그는, 내 안에 발화되는 상상력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동기를 책 읽는 데에서 얻으라고 말했다. 오프라 윈프리의 예를 들면서, 책 읽는 일이 어떻게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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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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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책을 읽자 희망을 읽자 Yes! Book 캠페인>과 함께하는 책 읽는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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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강연회에 참석한 박지혜 회원님이 쓰신 후기입니다.


‘시인은, 공기를 훔치는 도둑’이라는 만델스탐의 문장은 이날의 강연에서 김주영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잘 설명해준다. 삶이 너무 답답해서 공기를 조금 빼내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상상력을 훔치는 도둑일 것이다.


 

그는 문득 하늘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라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도둑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다리가 유난히 긴 그 도둑은 마침 하늘에 둥그렇게 떠 있던 달을 훔쳐서 커다란 자루에 담고 어디론가 줄행랑을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길도 없는 하늘로 도망치고 있는 도둑을 어떻게 뒤쫓을 수 있을까요. 달을 도둑맞았다면, 그것은 곧 절망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당장 손이 닿을 수 있는 것들만 소중하게 여기고 게걸스럽게 챙겨왔던 졸렬한 안목이 낳은 불찰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달은, 사냥개에게 목줄을 매어둔 것처럼 언제나 그 하늘 그 자리에 있겠거니 하고 방심했던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세상에,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쌈해가는 해괴한 도둑이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인들 했겠습니까.(pp.227~278)


바로 이 해괴한 도둑이야말로 광기로 번뜩이는 시인을 말하지 않을까. 당장 눈에 보이는 것과 당장 손에 닿을 수 있는 것들, 일상 속에 안주해 온 사람들은 시인의 상상력을 맞닥뜨렸을 때, '세상에’ 하며 놀라고 ‘엉덩방아를 찧’게된다. 달이 없는 세계란 아주 낯선 세계의 출몰이다. 다리가 유난히 길어 방랑벽을 지닐 수밖에 없는 시인들은, 지구와 우주를 넘나들며 달과 별을 훔쳐가고, 당연한 줄만 알았던 밤하늘의 모습이 시인의 ‘도둑질’로 인해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연자실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 멍한 표정의 사람들은 어떻게 도둑을 잡을 수 있을까. 김주영 작가는 그 방법으로 책 읽기를 권한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그는 “오늘날은 예술계?기업계?교육계 상관없이 감성 경영을 한다.”고 말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을 강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서 상상력의 가치가 높아진 셈이다. 김주영 작가가 생각하는 상상력이란 관찰 이후 거기서 창의적 이미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비행기는 만화에서 나온 것이고 만화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책에서 얻는 자양분인 상상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영화 <리틀 킹>을 소개했다.

매우 가난한 가족이 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주인이 없는 채로 버려진 건물에 산다. 요즘의 모텔과도 비슷한 그 건물에는 지나가는 사람, 떠돌이, 노숙자들이 기거한다. 가장인 아버지는 양초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아버지는 9살 소년인 아들에게 돈을 벌어 다시 돌아올 테니 “절대로 이 방을 비워서는 안 된다.”며 반드시 이 방 한 칸을 사수하고 있으라고 당부한다. 소년은 아버지의 엄명 때문에 결코 방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먹을 것 하나 없는 방에서 소년 혼자 견디기는 매우 힘들었다. 보름 후, 소년은 기진맥진해서 방 안을 엉금엉금 기어다니게 된다.

어느 날 소년은 정장을 차려입고 식탁에 앉는다. “밥 먹을 준비를 완벽하게 끝냈는데도 먹을 음식이 없는 거죠. 관객은 도대체 저 소년이 뭘 하려고 저럴까, 하는 긴장을 가지게 돼요.” 이때 소년은 식탁 위로 잡지책 한 권을 가져온다. 소년은 햄버거를 오려 쟁반 위에 놓는다. 또 포크와 나이프를 찢어서 햄버거 옆에 놓는다. 소년은 햄버거를 먹기 시작한다.

김주영 작가는 이 장면에서, 소년을 동정하던 모든 관객들이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는 “바로 이것이 상상력이 만들어낸 감동이다.”라고 말하며, 37세의 영화감독이 천재적인 감각을 지녔다고 칭찬했다. 그 가난과 앞뒤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었다면 소년의 비참함을 일차원적으로 서술하고 말았을 텐데, 감독은 이러한 평면적이지 않은 장면을 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주영 작가가 다음으로 이어간 이야기는 자신의 고향 풍경과 어린 시절이었다. 전깃불 하나 빛나지 않는 캄캄한 고장. 그는 늘 머슴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40세의 머슴이 해준 이야기인데 상상력이 놀라웠다. 생각이 자유로운 사람만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며, 머슴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촌에서 읍내 장에 나가는 일은 마치 지금 시대에 해외 유학과도 같은 것이던 때, 소년은 아버지와 장에 나간다. 신나서 ‘떡 먹고 엿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든다. 아버지가 없다. 운다. 그래도 아버지가 눈에 띄지 않는다.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이때 옆집 아저씨가 소년에게 다가와 “네 아버지는 술주정뱅이니, 지금도 어디서 술 퍼먹고 있을 거다. 나와 같이 가자.”고 하며 함께 버스에 탄다. 그런데 고갯길에서 갑자기 버스가 멈추게 된다.

버스 앞에는 호랑이가 버티고 앉아 있다. 아무리 쫓아내려 해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 승객 가운데 한 명이 “이 차에 호식을 당할 팔자가 있다. 그러니 그 사람을 내려주고 우리는 가자.”며 의견을 내고 모두 찬성한다. 한 사람씩 윗도리를 벗어 호랑이에게 던져 주었는데도 호랑이는 반응이 없다. 지친 사람들 중 또 한 명은 “쟤일지도 모른다.”며, 짐칸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년을 가리킨다. 한두 명만으로도 벗길 수 있는 소년의 윗도리는 한꺼번에 달려든 사람들에 의해 거침없이 찢겨져 나간다. 이상하게도 소년의 윗도리를 던져주자 호랑이는 옷을 물고 놓질 않는다. 사람들은 소년을 버스 아래로 내팽개쳐 버린다.

“고갯길 한 고개 두 고개 너머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 차가 남기고 간 먼지가 모두 가라앉을 즈음 이 길에는 호랑이와 소년 둘만 남은 거죠.” 그런데 이상하게 호랑이는 이 두려워하는 소년에게서 슬그머니 비켜서고 만다. 소년은 부리나케 달아나 버스를 쫓아가지만 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버스는 한두 고개를 넘은 뒤 전복되고 말았다.

이야기를 마친 뒤 작가는 “이 반전!”이라 말한 뒤 한참 시간을 끌었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이야기에서 “넌 이런 놈이야.” “넌 이렇게 될 거야.” 이런 말을 하지 말자는 교훈과 함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따라서 그는 고향인 시골에서의 경제적인 문제와 뻔한 앞날에 대한 고민을 접고, 글을 쓰며 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왜 글을 쓰게 되었나?”라는 독자의 질문에, “지금 내 생활에 대한 불만과 응어리, 그 응어리가 나로 하여금 글 쓰게 만들었다.”고 대답한 김주영 작가는, 확실히 답답한 삶에서 공기를 훔쳐내고자 하는 시인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시골이 고향이었던 그는,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지내는 분위기에서 생활했다. 그곳은 하루에 한두 대의 마을버스가 오가고, ‘매일 보는 사람이 보는 사람인’ 지루한 동네였다. 이 벗어나고 싶음이 자신의 가난 때문에 해소되지 못한 채 맺혀 응어리가 되었다.

한날은 오밤중에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산너머로 몰려갔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산을 넘던 꽁치 트럭이 전복되어 꽁치를 주우러 갔다는 것이다. 이때, 어린 김주영 작가는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저 꽁치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버스가 이쪽에서 와서 저쪽으로 사라지는데, 거기에는 무슨 짐승이 살까?’ 하는 생각은 차차 상상력으로 뻗어나가고, 그는 장학금을 받고 글 쓰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응어리는 호기심이 되고, 호기심은 상상력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일상을 벗어난 다른 세계에의 감수성이 풍부하게 드러나 있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로 가는 도로를 따로 건설할 필요가 없었기에 안내판 역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곳까지 이끌어주었던 도로가 사라진 이상, 지척에 바라보이는 파라다이스를 향해 냉큼 달려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루도 아니고 한 달도 아닌 10여 년을 꼬박 혹독한 모래 바람을 뒤집어쓰면서 오직 오아시스로 가는 도로만을 찾아 헤맸으나 끝내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p.44)


작가는 일흔의 나이가 되자 치매와 유사한 현상으로 자신의 감수성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잎과 꽃과 벌이 사라진 채, 기둥만 남아 왔다 갔다 하는 듯 뻣뻣해지는 자신을 느낀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상상력을 되돌려 놓고 싶었다.”는 이유로 이번 『달나라 도둑』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사막’을 ‘감수성이 없는 세계’ 혹은 ‘감수성이 메말라 있는 세계’라고 본다면, ‘오아시스’는 ‘상상력의 공간’일 것이다. 도둑은 무언가를 훔치기 위해 담을 넘어야 하지 않은가. 일반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막 속의 사람들은, 사막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을 이끌어 준 도로만을 찾는다. 사막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에 대해 김주영 작가는 ‘끊임없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김기택과 문태준 등의 시집을 읽으며 감탄하곤 한다는 작가는, 책을 끊임없이 읽을 것과 감수성을 끊임없이 유지할 것을 강조했던 것이 아닐까.


작가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처음의 의문점 ‘책을 왜 읽는가?’로 되돌아갔다. 내 안에 발화되는 상상력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동기를 책 읽는 데에서 얻으라는 것이다. 그는 오프라 윈프리의 예를 들면서, 책 읽는 일이 어떻게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강연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프라 윈프리의 그 양아버지처럼 나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으세요. 인생이 바뀝니다.”라고 말하는 열정을 보였다.

#달나라 도둑 #김주영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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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8.17

표지보니 뭔가 명랑한 책일 거같다고 했는데 강연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어두워보여요. 책을 읽는 다는 것 어떤 식으로 인생이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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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20대부터 30대까지 16년 동안 엽연초 조합의 4급 주사 경리 직원으로 이름없이 살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얼마 뒤 그는 소설가로 제 이름을 알리는데, 그가 바로 김주영이다. 『객주』를 통해 ‘길 위의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활빈도』, 『화척』 등의 대하소설로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우리 시대의 거장 김주영.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탁월하게 재현해내는 작가이다. 1939년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1년 단편소설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봉놋방 구석"으로 밀려난 민중 생활의 세부를 풍부한 토속어 문체로 되살려 낸 『객주』는 뛰어난 이야기꾼의 기량이 유감없이 빌휘된 김주영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우리 소설상의 큰 성과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화석으로 굳어가는 조선 시대의 언어와 풍속을 발굴하고, 당대의 풍속사를 유장한 서사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평론가 황종연은 『객주』를 두고 "신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상인들의 모험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코드, 숱하게 많은 모략과 술수의 이야기들은 의협 로맨스의 코드, 저잣거리를 비롯한 사회적 장소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풍속 소설의 코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객주』는 조선 말기의 특정 집단을 내세워 당대 풍속사를 꼼꼼하게 그려낸 작품일 뿐더러, 더 나아가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루어진 봉권 권력 집단의 와해와 사회 질서의 재편 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한 작품이다. 『객주』에의 곳곳에는 당대 상업의 현황, 다시 말하면 특권 상업 체제인 시전, 그것과 대립하는 사상 도가와 난전, 전국 각처의 외장, 객주와 여각, 금난전권, 매점 매석, 밀무역, 개항 이후 왜상의 진출 상황 등 조선 말기의 물화의 생산과 유통의 양상이 사실적이며 박물적으로 그려진다. 김주영은 절륜의 술실력으로 유명하다.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 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또한 김주영은 여행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소설에서 번 돈을 모두 여행에 쏫아부었다고 틀린말이 아니다. 작가는 여행할 때 결코 메모를 하지 않는다. 그 공간과 그 나라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라리 난장』, 『멸치』, 『빈집』, 『잘 가요 엄마』, 『뜻밖의 生』, 『광덕산 딱새 죽이기』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유주현문학상(1984),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3), 이산문학상(1996), 대산문학상(1998), 무영문학상(2001), 김동리문학상(2002), 은관문화훈장(2007), 인촌상(2011), 김만중문학상(2013), 한국가톨릭문학상(2018), 만해문예대상(2020)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