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시피, 우리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두발자전거 경제 체제에 있다. 멈춤 없이 내달려야 유지될 수 있는 경제 시스템. 누군가의 이익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는 지금의 자본주의. 돈이 없으면 인간의 존재감과 자존감마저 말살당하고 마는 엄혹한 시대.
작금의 경제공황은 그런 시스템 내부에서 암약한 탐욕이 곪아 터진 것이다. 그러니까 공황의 초기, 금융위기라고 지칭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금융, 특히 부실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파생상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면서 우리의 탐욕을 조장했다. 그 설탕 묻힌 꽈배기 금융상품의 달콤한 감언이설은 우리의 이가 썩고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결국 지금은 이를 송두리째 빼야 할 지경에 이르고야 말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그는 그런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를 강력히 경고해 왔다. 지금이 결국 그런 시기다. 실물과 격리된 채 따로국밥으로 퉁퉁 불어터진 금융 파생상품과 영미식 신자유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가 불러온 파국. 그가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무척 비관적이다. 최근 인터넷매체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그는 “대공황보다 더 큰 위기”이며 “특히 파생상품이 많아서 끝을 짐작하기가 더 어렵고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사태가 좀 더 심각해져야 근본적 개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불온(!)한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답다. 개발도상국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 흡혈귀 노릇을 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악행을 고발(?)한 그의 책은 대한민국 국방부에 의해 낙인이 찍혔다. 불온서적 꽝. 지나가던 개가 콧방귀를 꼈단다. 믿거나말거나. 덕분에 불온서적으로 지정됐던 책들이 더 잘 팔리는 현상을 낳는 긍정적 효과를 거두긴 했지만 말이다. 항간에는 국방부가 출판업계의 불황을 걱정한 나머지, 그런 노이즈 마케팅을 펼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더불어 불온서적의 저자인 불온교수 장하준 교수도, 되레 지금-여기의 잘나가는 ‘상품’이 됐다. 경제공황으로 심적 공황을 맞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되묻기 시작했다. 주류 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파국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저발전의 원인을 문화적 비합리성이나 게으름 등에서 찾아 저들의 경제?사회적 지배를 공고히 한 서구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장 교수의 얘기도 마침 먹혔다. 자본주의를 넘기 위한, 대안을 발견하기 위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조금씩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불온교수 장 교수는 현 정부가 많은 문제를 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의 개입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가 시장의 ‘심판’이자, 혼자 튀려는 시장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말마따나, “천사처럼 행동하는 정부는 없”지만, 잘못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요구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파국의 추가 진행을 막기 위한 방법도 그는 제시한다. 민주주의가 허용한 한도 내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운동을 하는 것. 블로그에 글을 쓰든, 선거를 통하든, 작은 힘을 하나둘 모아서 사회를 개선시키자고. 불가능한 소리라도 자꾸 요구하자고.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신자유주의에 역습을 가해야 한다. 학생식당의 밥값 인상에 반대해 데모를 펼쳐 결국 밥값을 내리게 한 가난뱅이의 ‘역습’처럼, 신자유주의에 ‘똥침’이라도 날리기 위해 우리에겐 지금 연대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 어째, 듣기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지난 14일 서울 홍대 민들레영토.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은 11인의 독자들이 소담하게 그와 마주 앉았다. 장 교수를 향한 지상파 방송 3사의 인터뷰 구애를 이기고 장 교수를 차지한 운 좋은 독자들. 유병선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사회를 보고, 독자들의 질문에 이은 장 교수의 답변으로 진행된 화기애애했던 현장을 중계한다. 내 생각엔, 이건 <1박 2일>의 코너가 마련됐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건 앞으로 읽는 여러분의 몫이다. 요구하라, 그러면 실행에 옮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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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실물경제를 강조해서 좋았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요.
사실 방법론적으로 다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생물학과에 가보면 생물체 이해를 위해 DNA를 분석하거나 아프리카 고릴라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죠. 어떤 이는 동물행태를 수학모델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여러 방법을 써서 생명체를 연구합니다. 왜냐면 생명체는 복잡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경제도 엄청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방법이 공존해야 합니다. 제가 문제 삼는 것은 주류경제학자들이 ‘우리 식으로 안 하면 경제학이 아니다.’ 혹은 ‘저급하다.’고 하는 겁니다. 하나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복잡한 현상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다른 접근 방법도 필요하고 어떤 이론이 주류가 돼야 한다고 생각진 않습니다. 핵심 신고전파경제학도 신자유주의로 흘러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걸 이용해서도 신자유주의에 반하는 이론을 뽑아낼 수도 있습니다.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가 대표적이죠. 모든 학파에는 배울게 있습니다.
책에서 실물경제를 강조한 것이 좋았다고 해서 감사한데(웃음) 금융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금융이 없었으면 자본주의도 없었어요. 금융이 필요하되, 실물에서 자꾸 떨어져 나가니까 문제라는 겁니다. 외환시장이 제일 좋은 예죠. 전 세계적으로 외환거래를 볼까요. 무역이나 해외실물투자를 위한 돈과 세계 외환거래량을 비교하면 1대100입니다. 1년에 3일 하면 (외환) 실물 수요는 충족되는 거죠. 나머지 362일은 외환거래를 위한 외환거래입니다. 투기거래라고 봐도 좋고요. 그 돈이 몰려다니면서 우리와 같이 기축통화도 없는 나라에서 환율 널뛰기 등과 같은 폐해를 일으키는 거죠. 그래서 저는 금융을 실물과 더 근접시켜야 된다고 주장하는 거죠.
지금 전 세계적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해지고 우리나라는 양극화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선진국도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 원인이 신자유주의 때문일까요, 다른 원인이 있을까요.
그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합니다. 예외적으로 룰라 대통령 들어서면서 빈부격차가 개선된 브라질 같은 국가들이 있긴 해요. 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악화됐습니다. 그것이 꼭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한 게 신자유주의입니다. 1950년대를 보면 최고경영자와 일반노동자 월급 차가 30대1이나 40대1이었는데 지금은 스톡옵션이 아니면 300대1이나 400대1까지 차이가 나요. 스톡옵션을 포함시키면 1000대1까지도 갑니다. 이건 상층부로의 소득재분배를 위한 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88만원세대니 비정규직이 문제인데, 유럽에서도 100유로세대가 있지만 우리만큼 문제가 안 되는 게 일단 비정규직 비율이 우리만큼 높지 않습니다. 또 복지제도가 잘돼 있어 비정규직이라도 기본 생활이 보장됩니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이 겪는 고통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거죠.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될 수 있으면 비정규직 안 쓰고 고용안정을 시켜줘야 합니다. 그게 불가능하면 복지국가라도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업 차원의 고용안정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유럽식의 복지국가를 만들어서 기본 생활이 보장되게 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그래야만 진취적인 선택을 할 수가 있어요. 지난 10여 년 동안 의사, 변호사가 엄청난 인기 직종이 됐습니다. 그전에도 인기였지만 외환위기 전까지는 지금만큼은 아니었어요. 경제학 상식으로 이해 안 가는 게 의사, 변호사가 늘어서 상대보수가 떨어졌는데도 되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고용이 너무 불안하다보니 그래요. 부모들도 공대나 과학자 같은 것 말고 자격증 따서 의사가 돼서 안정된 삶을 살라고 요구합니다. 개인적으로 2번이나 수술을 통해 살아나서 의사는 존경하고 고마운 직업이지만, 어느 나라도 70~80%가 의사가 적성인 국가는 없습니다. 자원 배분이 왜곡되고 있는 거죠. 신자유주의에 의한 소득불균형이나 삶의 불안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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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부가 큰 권력을 가진 한편, 거기서 폐해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고용안정이나 양극화 해소를 위해 국가에게 권력 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신자유주의가 잘못됐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2학기까지 한 대통령 밑에서 살았어요.(웃음) 요즘 젊은 세대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이겠지만, 대학 때는 사복전경과 같은 장소에서 도시락도 먹고 그랬어요. 그렇게 살아서 독재에 대해 우려도 이해합니다. 지금 정부는 형식상으로는 민주화된 정부지만 안으로는 아니다보니, 정부에 그런 권력을 주는 게 옳으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건 정부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그걸 싫어하죠. 그들이 전문가 운운하는 것도 국민들 얘기를 듣기 싫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가 묘한 게,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반민주적인 게 많다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통한 국가 개입밖에 없다고 봐요.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규제 없이는 시장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방향 자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그랬는데, 그러려면 왜 대통령을 한 거예요? 우리는 반대로 불행한 정치적 역사 때문에 개입과 독재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걱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그렇게 생각하면 반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중국과 러시아가 발전 과정에서 처음엔 석탄 등을 많이 써서 지구온난화가 확대된 것 같은데요, 아프리카가 러시아 모델 등을 따라간다면 전 지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아마 지금까지의 기술패러다임으로 온 세계가 작동되면 지구 환경이 견디질 못하겠죠. 대기 중 온실가스는 추산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65~85%가 미국, 일본 등의 선진국에서 비롯된 건데, 그래놓고선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를 제한하면 문제가 되죠. 예를 들면, ‘동네의 식량공급이 제한돼 있고 남은 게 없으니 먹지 마라.’ 후진국들한테는 그렇게 들리죠. 그걸 공평하게 하려면 선진국이 후진국에게 돈을 주든지, 친환경기술을 싼값에 공급해주든지, 친환경기술을 촉진하고 후진국 환경에 맞는 기술을 만들어주든지 해야죠. 그런데 사실 선진국들, 그런 거 안 하거든요. 그러면서 산업화 말라고 하면 (개발도상국 입장에서는) 부당하게 느껴지는 거죠.
또 후진국 입장에서는 해결하기 힘든 게 친환경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없다는 거죠. 선진국들이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이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정말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 강제력으로 후진국의 산업화를 방해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쪽으로 가면 안 되겠죠. 지금 당장은 중국을 제외하고는 인도도 산업화 정도가 낮아서 그런 나라들이 산업화를 한다고 지구 환경에 아주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그런데 20~30년 후면 그런 나라들도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그런 때가 오기 전에 시스템을 만들고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환경 문제 전공은 아니라서 어디까지 얼마만큼 해야 한다 말은 못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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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관료들은 올드보이들이 귀환했습니다. 미국 행정부 인선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요. 또 개도국한테는 유치산업이 유리하고, 선진국에겐 자유무역이 유리하다면, 그 선이 어느 정도에서 정의될 수 있는지요.
폴 볼커(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인)는 레이건 시절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위원을 하면서 통화주의를 앞장서서 했던 사람이고, 로렌스 서머스(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는 미 재무부 차관하면서 IMF 때 우리에게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윽박지르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비서실장인 람 이메뉴엘은 공식적으로 월가 헌금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모아놓고 (금융시스템을) 고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소장)라는 사람은 그걸 보면서 “오사마 빈 라덴을 데려다가 테러를 뿌리 뽑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도 한심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전과 똑같이 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으로 한쪽으로 쏠려 있는 사람들이라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기본적으로 회의가 들어요. 오바마는 원래 좌파도 아니지만 (정부에) 데려다 놓은 사람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집니다. 월가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라. 상황이 (지금과) 많이 바뀌어서 그 사람들이 나가고 스티글리츠 교수와 같은 사람이나 다른 사람으로 바뀌기 전에는 기대하기 힘들 겁니다.
유치산업이 언제까지 유효한 거냐. 사실 이건 선진국에도 나라에 따라서는 유치산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뒤늦게 특정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경우에 말이죠. 가령, 유럽은 에어버스를 만들 때 엄청 보조해줬어요. 지금은 에어버스가 보잉을 뛰어넘는 회사가 됐지만, 당시 유럽 입장에서는 항공이 유치산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죠.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디에 속하는지 보면, 국민소득, 제조업 생산성 등을 미국에 비교하면 40~50%정도 되는 나라예요. 그런 나라 같으면 아직 (유치산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준이 70~80% 가면 그땐 개방해서 자극을 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는 거고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유치산업 보호를 포기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우리 경제 현실을 보면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할 공공적 성격의 금융기관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산업은행의 민영화에 대한 견해와 방향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은행은 영어로 하면, 개발은행(Development Bank)입니다. 상업은행들은 길게 꿔주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기금융을 주로 하죠. 외국에서도 개발은행 중에 산업은행은 잘한 경우로 평가하고 있어요. 중화학공업 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요. 그런 산업은행이 투자은행(IB)을 해야 한다고 요즘 얘기하는데, 걱정하는 건 IB는 산업은행이 원래 해왔던 것, 미국 IB들이 19세기말에 했던 기능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IB는 레버리지 높여서 금융을 위한 금융을 하는 곳인데, 저는 (산업은행이) 그 모델을 따르면 안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것을 뛰어서 민영화하는 게 능사냐는 거죠. 제가 산업은행 민영화 법안을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장기융자는 누가 할 것인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있던 중소기업은행은 ‘중소’를 빼고 기업은행으로 만들고, 산업은행을 투기적 IB로 만들겠다니. 저는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할 기능이 뭔지, 옛날에 잘한 게 뭔지 비춰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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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재벌과 대타협해서 공생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가령 지금의 삼성은, 사회적으로도 지배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당근과 채찍을 써야할까요.
2003~2004년인가 SK소버린 사태 때, 재벌과 사회적 대타협하는 것을 얘기했어요. 도덕적 당위론적 차원이 아니라 현실론적으로 가능한 방법 중 전 국민에게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2005~2006년 한겨레에 기고하던 시기인데,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관련해 칼럼을 썼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댓글에 이런 글이 있었죠. ‘외국에 오래 있어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삼성은 사카린 밀수를 한…….’ 2003년부터 거르지 않고 언론에 기고를 했지만 독자 댓글에 반응한 적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했어요.(웃음)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세상에 깨끗한 자본이란 없습니다. 서양 자본들은 식민지를 착취해서 돈을 모은 거고 온갖 부정을 다 저질렀습니다. 카네기도 사설탐정 총으로 노동자들을 쏴 죽였어요. 그렇게 따지자면 차라리 사회주의 혁명을 하는 게 낫습니다. 저는 동조하지는 않지만, 일관성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소액주주 운동도 훌륭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액주주 운동하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그래서 현실 가능한 방법 중에 뭐가 제일 좋겠냐고 생각하다보니 그런 주장을 내놨죠.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맥락이 바뀌고 있습니다. 자통법(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 재벌들도 금융자본으로 변신하려고 꾀하고 있어요. 당시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당시의 맥락을 보면 법을 바꿔서 자본들한테 다른 양보를 받아내야 한다는 거였죠. 복지가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이슈에 대한 올바른 행동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얘길 한 거죠. 재벌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도 없고, 이걸 이용해야 하는데, 제 가치관으로는 복지국가 받아내는 게 맞다고 본 겁니다.
국가재정이 악화되는데 감세가 바람직한지, 1% 특권층한테 당신네들 혼자 성공한 게 아닌데 그것을 계속 강화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각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사다리 걷어차기’처럼, 우리도 자국 이익 때문에 걷어차고 차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정부는 부유층 감세 등을 통해 지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요를 부양하는 것이 필요하니까 정부재정 적자를 확대하는 게 맞을 수 있어요. 이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거나 지출 늘리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는 세금을 깎아주기보다는 지출을 늘려야 합니다. 경제규모에 비해 복지지출이 너무 형편없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이 높게 봐도 9%가 안 되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3%보다 낮은 것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적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보다 낮아요. 가난한 사람들의 소비성향이 높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 정부가 감세하겠다는 것은, 부자들한테 돈을 벌 수 있는 인센티브를 더 줘야 부를 창출해서 모든 사람이 잘살게 할 거라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경제성장이 잘된 국가는 하나도 없어요. 1978년 중국처럼 지나친 평등주의를 풀어줘서 잘된 적은 있지만, 더 불평등하게 만들어서 잘된 적 없습니다. 부자도 혼자 잘나서 성공한 것도 아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자기가 진 빚이 뭔가 생각하면 무조건 세금을 덜 내겠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겠죠?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감세하겠다고 하는 건, 이런 비유를 들 수 있겠습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옆집의 잘사는 살찐 사람이 다이어트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나라도 사다리는 이미 차기 시작했습니다. 선진국들만큼 공격적이지 않지만 WTO 가면 선진국 편에 서서 얘기합니다. 또 우리도 선진국의 해적판을 보고 자랐는데, 지금 중국, 베트남에게 우리 것을 베낀다고 뭐라고 그러죠. 안 그랬으면 하는 게, 역사적으로 한국의 독특한 위치 때문이에요. 지금 선진국들은 동아시아에 비해 경제성장을 느리게 해서 예전에 자기네들 국가가 가난했을 때,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지적재산권 도용하면서 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본도 그 세대는 이미 지나갔고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국제무대에서 정치적으로 목소리나 역할을 낼 수 없는 나라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가 유일하게 한국인데, 한국이 그걸 안 끊으면 누가 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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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무리를 희망적으로 쓰셨습니다. 슈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성도 다른 상품처럼 가격만 맞으면 사고팔 수 있고, 도덕적 의무도 사고팔 수 있는데, 너무 낙관적으로 쓰신 것은 아닌지요.
학생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요. 20세기 초 사상가인 그람시는 이런 말을 했죠. “이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 현실은 냉혹히 판단하되,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조금씩이라도 발전합니다. 노예, 여성투표권 등 옛날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이뤄졌어요. 사실 금융위기가 일어났는데도 덮고 넘어가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꾸기는 힘들지만 당장 안 되면 아이들 세대에서라도 좋아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보다는, 한 분이라도 (얘기를) 들어 주신다면 그런 분들이 모여서 사회가 좋아지고 바뀌지 않을까요.
지금 정부는 비전도 없고 신자유주의를 가속화하려고 하는데, 이를 막으려면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밖에 없슴 것인지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할 수 없다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요.
민주주의에서 정부가 잘 못하면 국민의 책임이죠.(웃음) 어려운 문제입니다. MB를 찍은 많은 분들이 신자유주의 강화를 위해 그렇게 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죠. 하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계속 알려야 합니다. 보궐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고 주변을 설득해야 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 김수행 교수님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길 나눴습니다.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각자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글 쓰고 강의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자리에 있는 분들은 다른 형태로 할 수 있겠죠. 언론사에 충고나 비난을 할 수도 있고,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 다같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통해서건, 선거를 통해서건, 의사를 표시해야죠. 개인의 힘은 작지만, 그것이 모여서 전체의 힘이 됩니다. 서 있는 자리가 각자 다르지만 작은 힘이라도 하나둘 같이 모여야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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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했습니다. 요즘 금융위기를 보면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위기는 모두에게 조금씩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유동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금융이 공익성을 방기하고 수익만 추구하는 탐욕을 드러낸 거죠. 이번 위기의 요인과 전개를 어떻게 보시며,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는 말이 사실 맞는 말인데, 현실은 그렇게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국민들이 세금을 내서 메워주고 있거든요.(웃음) 실물과 괴리된 금융을 만들어서 이 지경까지 온 겁니다. 유동성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규제를 완화해서 주고, 만든 자신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을 규제당국이나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런 파생상품들이 없어지고 소비자들도 그런 걸 안 써야 합니다.
선진국에서 의약특허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 큰 제약회사 임원이 신문에 기고를 해서 ‘왜 우리가 아프리카 문제를 해결해야 하냐’고 적었어요. 그러나 저는 (그 회사가) 그런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기업체보다 사회적 책무가 더 크니까 규제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IB나 헤지펀드는 사실상 은행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규제를 더 받는 게 맞습니다. 사회적 책무를 봐서도.
어쨌든 천사처럼 행동하는 정부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고민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 낙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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