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특강②]“공존,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출간한 박경철
“내일 아침에 자신이 가진 주식 30%를 무조건 파세요. 그건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라는 겁니다. 망해도 30%는 보호가 됩니다. 주가가 오를 때는 3분의 2가 올라가서 좋고요.”
20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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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지식인’ 우리 시대의 대표 지성 강준만, 세계경제와 금융위기에 대한 냉철한 통찰력의 박경철. YES24에서는 연말을 맞아 두 저자의 특강을 마련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정치?경제?사회적 현실에 대한 정확하고 예리한 통찰과 분석,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강연회 현장을 채널예스에서 함께합니다. ▶ 강준만, 대한민국의 현실에 청진기를 대다 - 『한국 근현대사 산책』 완간한 강준만 교수 ▶ “공존,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다” -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출간한 박경철 |
지난 11월 29일, 갑자기 겨울바람이 매서워진 토요일, 을지로의 한 빌딩에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주식시장이 얼어붙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득한 요즘, 자신의 주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경제는 언제쯤 좋아질 것인지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을 안고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의 저자 박경철의 강연을 듣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인 것이다.
“이 책은 별로 친절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책은 일부러라도 까칠하게 씁니다. 그래서 읽으시는 분들이 ‘얘가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고 왔습니다.”
그는 일방적인 강연 대신 청중이 궁금한 것에 대해 답변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했다. 첫 번째 질문은 박경철이 진행하고 있는 한 일간지의 인터뷰 코너에 대한 것(그는 한 일간지에 정치인, 배우, 가수 등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는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다). 질문자는 ‘한 대학 강연에서 미래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을 인터뷰한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인터뷰하면서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으신 게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너무 많은 걸 내놓으라는 이야긴데.(웃음)”라며 우스갯소리로 답변을 시작한 그는 ‘인터뷰는 좀 더 강화된 입장에서 만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인물을 아무나 쉽게 만날 수 없지만, 인터뷰를 통해서 접근성이나 편의성이 높아진다. 또 최근에 사회 활동을 늘리다 보니 일반인보다는 (인터뷰할 때) 수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의 혁명을 기대하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그가 느낀 것은 시스템이 바뀐다는 것이다. 80년대 이후로 이어져왔던 시스템은 기계보다는 사람, 서비스업에 투자해 왔고, 미국은 전체 투자액의 70퍼센트가 IT쪽이지만, 그 대부분은 금융에 투자되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지닌 부가가치 창조 측면의 레버리지(차입금?사채 등의 고정적 지출과 기계?설비 등의 고정비용이 기업경영에서 지렛대leverage와 같은 중심적 작용을 하는 일)나 효율성이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다 보니 부 역시 극단적인 편차를 보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단적인 예를 들었다.
“여기 계신 100분이 모두 펀드매니저라고 가정합시다. 우리가 운영하는 자금? 1,000조라고 가정하면, 각자가 10조씩 나눠서 운영하는 게 정상 아니겠습니까. 능력의 차이에 따라 어떤 사람은 9조, 어떤 사람은 11조 그런 차이가 있겠지요. 그런데 이 금융이라는 것은 가장 잘하는 한 사람에게 극단적인 크레딧을 부여하는 겁니다. 그러면 1,000조의 펀드 자금 중에 한 사람이 900조를 운영하고, 나머지 99명이 1조씩 운영하는 겁니다. 우리가 60억분의 1의 정자 전쟁에서 살아남은 경이로운 존재들 아닙니까. 그런데 제2차 정자전쟁이 벌어지는 겁니다. 극단적인, 상대적인 최고의 레버리지를 가진 사람에게 그 크레딧이 다 부여되고, 이 사람이 사실상 생산성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는데, 이런 걸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틀 전에 발표된 자료에 미국의 기부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워렌 버핏이 지난 한 해에 기부한 금액이 60조입니다. 빌&멜린다 재단을 통해서 빌 게이츠가 기부한 금액이 약 35조 정도 되고, 헤지펀드 매니저인 조지 소로스가 25조를 기부했습니다. 한 해에. 굉장히 부럽지 않습니까?
역으로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일 년에 20조, 30조, 60조를 기부해도 그 사람의 부가 줄지 않는 정도의 부의 편재성. 단일 인간이 60조를 기부해도 그 부는 조금도 줄지 않고, 세계 최고의 부를 유지하는 그 엄청난 시스템. 이것이 얼마나 두려운 겁니까. 이게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이야기죠. 부러워 할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면에는 두려운 진실이 숨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지난 10~20년의 블루오션이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반성은 일어나고 있을 거란 말이죠. 그러나 그 이면의 진실, 사람에 관련된 애정, 인간이 소외되는 과정 이런 걸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동력이 필요할 겁니다. 지식산업과 제조업이 접목되고 그 상황에서 모두가 불필요하고 종속적인 존재가 아닌,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생산성을 영위하면서 또한 지식이 접목될 수 있는, 또 사람에 대한 산업이 중심이 되고, 지금 현재 우리가 거치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할 수 있는 무엇. 프로그레션, 즉 조금씩 나아가는 진보가 아닌 레볼루션, 혁명으로 간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 비행기가 아닌 우주선, 우주선이 아닌 타임머신…… 이런 혁명적인 뛰어넘기에 가까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 혁명이 뭐냐. 현재 어떤 산업이 대중을 열광시키고 대중으로부터 동의를 받고 자본의 시설투자를 이끌어내고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희망을 만들고, 또 새로운 투자자를 거기 몰려들게 하고, 수많은 투자자가 거기에 새로 참여하고, 경제는 그로 인해 호황을 일으키고, 새로운 경쟁산업이 등장하고, 그 와중에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것이 영원하고 번영할 거라는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것이 답이 아니겠습니까. 뭘까요?(청중 웃음) 어떤 것이 가능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그중 첫 번째는 ‘환경’이었다.
“환경, 좋습니다, 에코. 문제는 그 환경이라는 것이 크리에이티브한 것일까요, 아니면 리스토어, 복구하는 것일까요? 환경이라는 것이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새로 찾을 수 있는 신천지일까요, 기존의 것에 녹색의 옷을 입히는 것일까요? 환경이라는 것은 기존의 것에 녹색 옷을 입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진보라고는 얘기할 수 있으나, 혁명이라고는 얘기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 환경이라는 것이 당장 눈앞에서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내면서 모든 투자나 산업의 동력이 되고, 앞으로 5년에서 10년 이내에 신산업으로 등장해서 그 많은 사람, 자본이 투자되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그렇게 갈 수 있는 산업이 될 수 있을까요?
환경은 당위죠, 당위.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조금씩 붙어 있어요. 진보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건 정답은 아닙니다. 여기에 대해서 또 반박을 하셔야 해요. ‘아니야, 그게 아니야.’ 이런 얘기가 나와야 하죠. 저는 여기 현자로 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눈높이로 토론하는 거지요. 또 뭐가 있을까요?”
두 번째는 ‘에너지.’
“에너지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우리가 화석 에너지가 아니다? 화석 에너지를 저감하는 장치를 개발한다? 그에 대응하는 것이라? 태양광이 아닌 태양열? 태양광은 에너지 효율이 일정한 거니까 아무리 해봐야 오늘 집 안에 물 데우는 정도 말고는 어려울 거고, 태양광 자동차는 제비처럼 이만 한 태양광 패널을 해야 갈 수 있는 정도여서 이동하기 좀 어렵고, 요새는 유리 전부를 태양광 셀로 만들어야만 쓸 수 있는 정돈데,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만, 당장 효율성에서는 어렵다는 겁니다.
풍력? 높이 올리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풍력발전기의 쇠막대기를 만드는 기술이 괜찮아서 풍력산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바람을 이용하는 산업이 당장 모두가 뛰어들 수 있는 산업일까? 그러면 뭘까요? 그건 대체에너지입니다. 조력발전은 더더욱 그렇고요.
할 수 있는 건 수소라든지 핵융합 이런 건데, 핵융합이나 수소는 아무리 빨라야 20년은 가야 합니다. 20년 후에는 인류의 생존에 새로운 산업이 되겠지만 태양광에서 태양열로 가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런 것들도 역시 하나의 대안으로서 가는 게 아닐까. 결국 에너지에서의 혁명은 수소나 핵융합인데, 그건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 같아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세 번째는 ‘생명공학.’
“빙고. 왜냐하면…… 근데 지금 이거 정답으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청중 웃음)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시도되고 있는 것 중에 혈액암 관련 백신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간이나 폐, 위 등의 실질종양은 바이오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혈액암이나 면역암 등은 면역체계나 혈액체계에 대해서 백신으로 대처하는 것이 현재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
세포증식 분야, 예를 들면 화상을 입었을 때, 돼지 피부나 사체의 피부를 이식했는데, 면역 거부 반응 때문에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세포증식인자를 통해서 자기 피부를 증식해서 이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배아가 아닌 성체, 면역치료, 항암치료, 바이오테라피 이런 분야에서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바이오와 로봇이 결합된 바이오 메커니즘, 바이오와 나노가 결합된 바이오 케미컬, 이런 부분으로 엮이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짧은 질문에 30분이나 되는 답변을 한 그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라는 거. 저는 제가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웃음)”이라며 자신의 말을 참고하여 또 다른 대안은 스스로 생각해보시길 바란다고 했다.
미국은 끝났다
두 번째 질문은 세계 경제에 대한 것으로,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고, 중국도 움직이고 있고, 우리나라도 MB정부가 어려운데, 과연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마디로 딱 잘라 “미국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희망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공황 때 뉴딜정책이 성공한 이유가 뭐냐면 대압착정책 덕분입니다. 루즈벨트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해서, 기업이 경기침체를 빌미로 임금을 후려쳐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법으로 막아준 겁니다. 두 번째로, 강력한 소득세율와 상속세율을 적용했는데, 상속세가 당시 얼마까지 올라갔느냐면 96%까지 올라갔습니다. 소득세가 얼마나 강하게 매겼던지 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떻게 했느냐. 소득세 과세점에 들어가지 않게 임금을 주고, 대신 복지가 확산됩니다. 그래서 근로자퇴직연금이나 의료보험 등이 도입되고, 실업연금, 실업급여까지 소위 말하는 사회복지가 번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위에서는 누르고, 밑에서는 올리는 겁니다. 그것을 대압착정책이라고 하죠. 계층 간의 폭을 압착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는 경제성장률이 낮았어요.
그 후에 공화당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감세를 하고, 상속세, 부유세를 낮추고 빈부격차를 허용해 주었을 때는 경제성장이 확확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소위 말하는 ‘큰파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대개 보수적인 체제를 유지했을 때는 감세를 하고, 기업친화적으로 가고 ‘파이를 키워서 나눠먹자. 그게 맞는 거다.’라고 하고, 레프트는 ‘빵을 같이 만들어서 나눠서 먹자’는 건데, 그게 진짜 맞느냐 보면 안 맞아요.
왜냐하면 주식시장의 다우 지수를 보면 그렇게 보이는데, 실제 전체 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좌파가 잡으나 우파가 잡으나 크게 변화가 없어요. 실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함께 건설해 가는 것이나, 한 명이 파이를 키우는 것이나 결국 같다는 거예요.
미국의 중산층이 제일 많아진 시기가 1930~70년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중산층은 감소합니다. 자본시장은 10배가 커지는데. 그러면 그 부를 우리가 함께 누렸느냐. 천만의 말씀입니다. 소수의 부자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생산시설은 해외 이주하고, 나머지는 금융 분야에서 자본이익을 취하는 구조가 되고,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도태되는 사람들은 초급 근로자로 주저앉게 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보입니다.
이런 상황이 미국이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은 겁니다. 쉽게 말하면, 제조업의 기반을 해외로 다 이전해 버리고, 대압착의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지하에서 외계까지 부의 편차가 벌어지고, 모든 부자들은 자본소득을 취하게 되고 근로소득은 미미해진 상황입니다.
이게 장하준 교수가 이야기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가 이런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끝났어요. 저도 동의합니다.”
중국은 불안하지만 희망이 있는 나라
“중국은 굉장한 희망이 있는 나라면서도, 10~20년간은 굉장히 불안한 나라죠. 현재 중국의 일인당 GDP가 2,500불 정도 되는데, 대개 3,000불 넘어가면 사회가 시끄러워집니다. 왜냐하면, 3,000불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에 대해서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중국이 지금처럼 버티는 건 중국 지도부가 탁월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 가장 큰 문제는 내수시장이 약하다는 겁니다. 큰 생산시설을 가진 나라가 내수시장이 약하면 외부 충격에 약합니다.
중국은 미국 금융위기 이전에 작년 7월 미국의 소비지출이 감소하면서 이미 무너졌습니다.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건 사실 작년 연말 넘어서였는데, 그와 거의 동시에 한 달 시차를 두고 중국이 조금씩 무너집니다. 중국의 중소기업이 부도나기 시작해요. 왜냐하면 박리다매의 거대한 산업시설이 대단한 기술이 있어 마진이 큰 것도 아닌데, 맥도날드에서 당장 햄버거만 덜 만들어도 (중국산) 알루미늄 포장지 덜 쓸 거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중국은 미국의 실질소비지출과 거의 동시에 움직입니다.
중국의 현재 중산층이 5에서 6%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생산시설은 40억을 겨냥한 겁니다. 그것도 고부가가치가 아닌 저가상품들. 그러니까 바깥에서 조금만 충격을 주면 완충이 전혀 안 됩니다. 수출주도형으로 거대한 산업시설을 가진 나라가 내부의 내생력을 강화하면서 내수 중산층을 강화하는 시간까지는 성장과 후퇴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내수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 국민소득이 만 불, 이만 불 넘어가야 그때부터 비로소 자생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한국은 중환자실에 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심각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건데, 왜 중환자실에 들어갔느냐, 문제는 은행 때문입니다. 지난 97년의 위기는 대기업의 위기가 아니라 은행의 위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대기업들이 무한대출을 해서 망했다.’ 우리는 이렇게 들었죠. 아닙니다. 은행이 안 빌려줬으면 안 망했습니다. 은행이 부채비율이 500, 600, 700, 800% 되는 기업에 돈을 빌려준 게 잘못되었고, 안 빌려줬으면 그렇게까지 안 망했어요.
다중이 가지고 있는 산발적 잉여재산을 모아서 그걸 필요한 곳에 투자해주는 것, 이것이 은행의 역할 아닙니까. 여기서 말하는 ‘다중’이라는 말에는 윤리성과 공공성을 이미 부여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의 결과인 자산을 모아서, 빌려줄 때는 ‘떼일까, 안 떼일까.’ 생각하고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수백만, 수천만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빌려달라고 한다고 몇 조씩 덥썩덥썩 빌려주다가 IMF 맞았죠. 이번에 또 은행이 비슷한 짓을 했습니다.”
그는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 은행들이 외국은행에서 단기 자금을 빌려 무리한 장기대출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진단하며, 은행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정부의 통화 스와프는 잘한 정책이었지만, 그 자금을 실제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포커의 패를 깠다‘는 비유를 들며 비판했다.
공존, 우리가 사는 길
쉼 없는 강연은 금세 한 시간을 넘었고, 그는 앞으로의 전망과 희망을 말하며 강연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다만 2월이나 3월에는 진짜 어려울 것 같아요. 왜 추운 한겨울이 오기 전에 잠시 따뜻하잖아요. 연말에는 유동성 효과, 연초에 대한 기대 등으로 자산시장은 일시적으로 부풀 수가 있습니다. 2월, 3월 돼서 최악의 상황을 거치고 부동산 가격이 연착륙하면 우리는 다시 회복할 거고, 부동산 가격이 경착륙하면 진짜 어렵습니다. 지금은 중산층이나 중산층 이하가 부동산에서 무너지는 걸 막아야 합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다들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사는 길은 딱 하납니다. 공존, 이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거예요. 독존은 없습니다. 지금 제일 겁나는 것은 중간계층 이하가 무너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소비가 줄어들고 고용이 흔들립니다.
시장에 가서 콩나물 한 움큼 더 집어들지 말고 놓고 나올 줄 알아야 하고, 괜히 밖에 나가서 누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도 손님 없는 자장면 집 가서 자장면 한 그릇 사먹어 주고, 이런 게 공존입니다. 이게 우리나라가 사는 법입니다.
저는 어떤 경우라도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시점에는 안 될 겁니다. 대중이 ‘여기’라고 생각하는 시점은 항상 답이 아닙니다. 또 대중이 ‘이 정도’ 생각하는 지점도 아닐지도 몰라요.
예측하지 맙시다. 민간부채 증가율, 부동산 연착륙, 은행의 상황을 보고 판단하시면 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마음의 여유를 강조했다.
“내일 아침에 자신이 가진 주식 30%를 무조건 파세요. 그건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하라는 겁니다. 망해도 30%는 보호가 됩니다. 주가가 오를 때는 3분의 2가 올라가서 좋고요. 적어도 내 영혼의 30%는 자유롭다는 겁니다.”
강연을 마친 그는 안동행 버스를 타기 위해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강연회장을 가득 메웠던 200여 명의 사람들도 각자 자신의 일터와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과연 다음 날 아침 자신이 가진 주식의 30%를 팔고 조금이나마 영혼의 자유를 얻었을까. 아무쪼록 그랬기를.
'공존‘을 생각하라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내일은 허름한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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