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떡국 개개개개
동물은 항상 함께 생활하는 존재였기에 그 소리 역시 친밀했던 것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8.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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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 속에는 암탉이, 꼬꼬댁 / 문간 옆에는 거위가, 꽥꽥
배나무 밑엔 염소가, 음매 / 외양간에는 송아지, 음매
깊은 산속엔 뻐꾸기, 뻐꾹 / 높은 하늘엔 종달새, 호르르
부뚜막 위엔 고양이, 야옹 / 마루 밑에는 강아지, 멍멍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 본 국민 동요 <동물 농장>이다. 동물 소리를 흉내 낼 때면 마치 자기가 그 동물인 양 목청껏 노래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찌 보면 최초로 성대모사를 시도한 셈이기도 한데, 그때는 다양한 동물 소리가 마냥 재미있고 신기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옛 선인들은 동물 소리를 흉내 내는 데만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동물 소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비슷한 말과 연관 지어 생각하곤 하였다. 동물은 항상 함께 생활하는 존재였기에 그 소리 역시 친밀했던 것이다.

뻐꾸기 소리를 예로 들어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뻐꾹뻐꾹’ 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떡국 떡국’ 하고 우는 것이란다. 글로 적으면 전혀 다른 말 같지만 실제 발음해보면 두 말은 참 비슷하다. 좀 더 자세히 뻐꾸기 소리를 들어보면 ‘떡국 떡국, 개개개개’ 하고 운다고도 한다. 뻐꾸기 울음소리 사이에 존재하는 여음까지 잡아낸 것이다. 그리고는 여기에 이야기를 덧붙였으니 한번 들어보시라.

옛날에 박고개 아래에 한 홀아비가 심성 곱기로 소문난 달미라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달미네 부녀는 비록 가난하지만 오순도순 즐겁게 살았는데 다만 걱정이라면 열심히 일해도 매년 늘어만 가는 빚이었다. 달미네가 소작하는 땅주인이 어찌나 고약한지 소작료가 추수한 것의 배가 넘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주인이 달미네 집에 들이닥쳤다.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으면 소작료를 제대로 내야 할 것 아니야. 지금 쌓인 빚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해?”

달미 아버지는 다그치는 주인에게 계속해서 머리를 숙이며 조금만 더 기간을 연장해 달라고 간청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돈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보아하니, 자네 딸이 쓸 만하니 빚 대신 데려가 종으로 쓰면 되겠군.”

달미와 달미 아버지는 주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원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종들에게 매질만 당한 뒤 부녀는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주인집에 끌려 온 달미는 온갖 구박과 천대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내외가 나들이를 간다고 아침부터 난리법석을 떨었다.

“우린 잠시 나들이 좀 다녀올 테니 나 없다고 집안일 게으름 부릴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마라, 다녀와서 모두 확인할 테니까. 그리고 오늘 저녁으론 떡국이 먹고 싶으니 저기 꺼내놓은 가래떡으로 떡국 좀 맛있게 끓여 놔라. 떡국에 손 댈 생각은 애당초 말고.”

인색하고 모질기로는 남편 못지않은 안방마님은 집을 나서며 달미에게 일렀다. 달미는 하루 종일 집안일로 종종걸음을 치다가 저녁 때 안방마님의 분부대로 떡국을 끓였다. 종일 찬밥 한 덩이밖에 먹은 게 없는 달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국을 보고 있으니 침이 꼴깍 절로 넘어 갔다.

‘맛있겠다, 딱 한 숟가락만이라도 먹어봤으면……. 떡국을 보니 아버지 생각이 오늘따라 더 나네. 우리 아버지도 떡국 참 좋아하셨는데. 지금쯤 저녁진지는 드셨을라나.’

달미는 혼자 계실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잠시 앉아 아버지 생각에 잠겨 있던 달미는 새벽부터 일하느라 힘들었던 탓에 고단함이 밀려와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 하필 그때 개가 부엌에 들어왔다. 배가 고팠던 개는 부뚜막 위에 있던 떡국을 보고는 웬 떡이냐 싶어 흔적도 없이 모두 먹어 치워 버렸다.

얼마쯤 지나자 잠에서 깬 달미는 부뚜막 위를 보았다. 그런데 분명히 그 자리에 두었던 떡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달미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사이, 마침 대문에서 주인 내외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온 주인 내외가 떡국을 찾았지만 달미는 대령할 수가 없었다. 잠시 졸았다 눈을 뜨니 만들어 놓은 떡국이 갑자기 없어졌다고 사실대로 말했지만, 주인 내외가 달미의 말을 믿을 리 없었다.

“네가 떡국을 다 먹고 그렇게 시치미를 떼면 우리가 모를 줄 아느냐.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까지 하는 게냐.”

아무리 사정을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었다. 화가 난 주인은 달미에게 매질을 했다. 평소에 잘 먹지도 못 하고 일만 해서 몸이 약해진 달미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주인의 매를 온전히 견뎌 낼 리 없었다. 달미는 매를 맞다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런 달미를 주인 내외는 마당에 내팽개쳐 두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밤이 되어 겨우 정신을 차린 달미는 죽기 전에 아버지를 보고싶다는 생각에 주인집을 도망쳤다. 저 멀리 박고개가 보였다.

‘박고개만 넘으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 조금만, 조금만 더…….’

그러나 박고개 근처에 다다른 달미는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아버지를 끝끝내 보지 못한 채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다.

이듬해 초여름, 달미가 죽은 자리 근처 밤나무에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울기 시작했다.

“떡국, 떡국, 개개개개…….”


그랬다. 뻐꾸기는 원래 ‘뻐꾹뻐꾹’하고 운 것이 아니라, ‘떡국 떡국, 개개개개’하고 울었던 것이다. 달미의 죽음에는 떡국도 관계가 있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개’이다. 그래서인지 달미는 죽어서도 ‘떡국’과 함께 그것을 훔쳐 먹은 ‘개’를 원망하며 진범을 밝히려는 듯 ‘떡국 떡국, 개개개개’ 하고 울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개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뻐꾸기의 입에 평생 오르내릴 만큼 그렇게 커다란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떡국이 보였고 배가 고파 먹었을 뿐인데,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울어대는 모양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래저래 뻐꾸기와 개는 앙숙이 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민간의 속설에 화장실에서 일을 보다가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재앙을 맞게 된다고 한다. 이때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 온 쪽을 향해 개 짖는 소리를 세 번 내면 재앙을 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뻐꾸기와 개 사이의 앙숙 관계에 바탕을 두고 생겨난 것이 아닐까.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떡국’이 아닌 ‘박국’으로 들었다고도 한다. 발음상 거기서 거기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와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가 앞의 것과는 내용이 완전 반대이다.

하늘나라에 있던 사람이 어느 날 인간 세상에 구경을 왔다. 지상의 사람들이 나름대로 귀인을 대접한다고 바가지에 국을 담아 천인(天人)에게 권했다. 그런데 노는 물이 달랐던 그 천인은 끝까지 ‘천한 것들’의 박국을 사양했다. 그러나 겸손도 지나치면 무례가 되는 법. 결국 화가 난 인간들이 천인에게 뜨거운 박국을 끼얹어버렸다.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결국 천인은 죽어 뻐꾸기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리고는 늘 하늘을 보며 “박국, 박국”하고 운다는 것이다.

달미는 못 먹어서 한이었는데, 천인은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뒤집어써서 한이 되고 말았으니, 뻐꾸기 소리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이 이야기에서는 새가 하늘과 관련이 깊다는 점을 들어, 하늘나라 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뻐꾸기가 되었다고 했다.

하늘나라 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하나 또 있다. 바로 꿩에 대한 이야기다. 이왕 새소리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김에 꿩 소리의 유래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꿩은 원래 하늘나라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느님은 딸이 몹시 아프자 약초인 ‘반하(半夏)’를 캐어오라며 한 신하를 인간 세상으로 내려 보냈다. 그런데 막상 그 신하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반하를 캐어 먹어보니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신하는 그것을 캐어 먹느라 하늘에 올라갈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답답한 것은 하느님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반하를 캐러 간 신하는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난 하느님은 인간 세상에 있는 신하에게 천둥을 내리치면서 호통을 쳤다.

“네, 이놈! 도대체 언제 올라 올 것이냐? 반하는 캤느냐?”

그때마다 그 신하는 하늘을 향해 소리를 쳤다.

“캐거덩 올라갈게요! 캐거덩!”

결국 기다리다 못해 화가 난 하느님이 신하를 꿩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뒤로 꿩은 천둥이 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며 “캐거덩 캐거덩” 하고 운다고 한다.


산길을 가다 보면 갈대숲이나 풀숲에서 무엇을 찾는지 부스럭거리다가 갑자기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는 꿩을 보곤 한다. 그 모습이 마치 약초를 캐다가 놀란 모습으로 비춰져서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졌으리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반하는 한약재로 쓰는 약초이다. 꿩은 실제로 반하의 알뿌리를 매우 좋아하여, 이것을 보면 주둥이로 캐내어 먹는다고 한다. 하느님의 아픈 딸을 살려낼 정도로 지상 최고의 약초인 반하를 평생 먹고 자란 꿩은 얼마나 대단한 기운을 지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꿩은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삼국유사》에 보면 김춘추는 세 끼 중 아침과 저녁만 먹었는데 하루에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리가 필요했다고 한다. 대식가인 김춘추에게 그만큼 꿩고기는 별미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민간에서도 꿩고기는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였다. 우리가 자주 쓰는 속담 중에 ‘꿩 구워 먹은 자리’란 말이 있다. 이는 어떤 일의 흔적이 전혀 없을 때 쓰는 말인데, 꿩고기가 너무 맛이 있어 뼈까지도 버릴 것이 없다는 얘기다. 하늘에서 탐내는 반하를 평생 먹고 산 꿩인데 그 맛이 오죽하랴!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새 울음소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새 울음소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러한 새들을 쫓을 때 쓰는 ‘훠어이, 훠어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일까. 왜 많고 많은 말 중에서도 하필이면 ‘훠어이’를 쓰는 것일까? 혹시 그 말 속에는 새들이 무서워하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옛날에 ‘유궁후예(有弓后O)’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중국 하나라 때 태어난 사람인데 후일 유궁국의 왕이 되었다. 그는 활을 아주 잘 쏘았는데, 날아가는 새의 오른쪽 눈이나 왼쪽 눈을 선택해 맞힐 정도였다. 이런 명궁에게 제자들이 모여들지 않으면 이상한 일. 후예는 소문을 듣고 몰려든 제자들에게 그의 뛰어난 활솜씨를 전수했다. 그러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은 말처럼 쉽지 않아서 제자들은 후예만큼 활을 잘 쏘질 못했다.

그러한 제자들 중 특히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있었는데,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는 재주가 특출 났으나 스승의 실력을 따라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재주는 이르지 못하나 천하제일의 명궁이 되겠다는 욕심은 누구보다 앞섰던 제자는 결국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고 말았다.

‘언제까지나 스승의 그늘에 가려져 있을 수는 없지. 하늘에 두 개의 해가 있을 순 없듯이 세상의 최고 명궁은 나 하나로 족해.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제자는 결국 스승인 유궁후예를 죽이고 말았다. 그러나 유궁후예가 죽은 뒤에도 그 명성은 여전했다. 새들도 그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새들을 쫓을 때 ‘훠어이, 훠어이’ 하는 말을 쓰면 모두 놀라 달아났다. 이 말은 원래 활을 쏘았다 하면 새의 눈을 맞추는 유궁후예가 왔다는 의미로 ‘후예에, 후예에’라는 말이 변해서 된 것이다. 즉, 사람들이 ‘후예에, 후예에’ 하면 새들은 ‘어이쿠, 후예가 왔구나!’ 하고 줄행랑을 친다는 것이다.


태양을 향해 활을 쏘고 있는 예 활을 잘 쏘는 천신 예가 삼족오로 상징되는 태양을 쏘아 없애고 있다. 후예도 이처럼 활을 잘 쏘았는데, 예를 본받고자 스스로 ‘후예’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새를 쫓을 때 외치는 ‘훠어이 훠어이’란 말을 명사수 후예와 연결시키는 것이 재미있다. 이는 후예가 새를 특히 잘 맞췄다는 것과 ‘후예’라는 말이 ‘훠어이’라는 말과 발음이 비슷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새소리를 거의 들을 수가 없다. 또 ‘뻐꾸기는 뻐꾹뻐꾹 울고, 참새는 짹짹 울어.’라고 어릴 때부터 배우기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새 울음소리를 듣고 그것을 상상할 여지가 없어졌다. 혹 주말에 대공원이나 교외로 나들이를 나갔다가 뻐꾸기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것이 떡국인지, 박국인지, 개개개개 하는 소리도 들리는지, 또 꿩 소리를 듣는다면 정말 캐거덩 캐거덩 하는지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설화 #동물
1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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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여신

2012.10.25

오 -_-...김용택시인의 소쩍새에 대한 이야기도 참 흥미로웠는데..
그런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달미 입장에서는 개가 더 나쁜 아인데 왜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더 안좋은 일이 생긴다 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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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17

뻐꾸기 울음소리 달미 이야기외에도 다른 것도 있었던 거같은데. 역시 울음소리가 독특해서겠죠? 그런데 꿩고기가 그렇게 맛있다니,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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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4.03

ㅎㅎ 떡꾹떡꾹이게 꿩소리였나요. ㅎㅎ 목청에서 비음이 섞인 꿩!꿩!이라고 외쳐서 꿩인줄 알았는데 ㅎㅎ 캐거덩 캐거덩 꿩의 울음은 여러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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