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왈, 맹자 왈. 옛 사람들은 공자에 살고, 공자에 죽었다. 아직까지도 은연중에 공자와 유학은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나 공자라는 이름을 안 듣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그러나 우리는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의 이름을 많이 들었지만 그것으로 공자를 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공자는 누구였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것이 내가 『논어』를 집어든 계기였다.
『논어』에 대한 번역본과 주석들은 많았다. 원전을 읽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어서 번역본을 여러 개 빌려 비교해보며 읽었다. 번역본들은 여러 곳에서 서로 달랐고, 주석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가지 해석들 사이에서 나는 각각의 해석이 가질 수 있는 의미들에 관해 생각했다. 일찍이 헤겔은 공자의 『논어』를 처세격언이라 비웃은 적 있다. 그러나 내가 읽은 『논어』는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책은 아니었다. 개인적 삶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처세격언을 넘어 개인과 사회, 세계의 근본적인 이치를 말하고 있었다.
『논어』를 끝까지 읽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양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 없는 듯 담긴 뜻들을 읽어내기에는 내 안목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논어』는 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몇 개의 구절들을 옮겨본다.
공자가 말했다. “배우고 항상 실천하니 기쁘지 않은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만나니 즐겁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번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학이」편 중에서)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논어』에서 의외로 많이 볼 수 있었다. 『논어』는 감정에 기대어 적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것은 인과 의, 효와 충 같은 가치들에 대해 거스르지 않고 순리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공자는 배움의 기쁨을 말한다. 단지 학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게다. 사람이 되는 것을 배우고, 지식과 기능을 익혀 실천하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이 된다. 삶에 있어서의 배움이란, 그런 의미에서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 만난다는 점에서는, 그가 개인의 배움에서만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기쁨을 나눌 줄 안다는 뜻이리라.
마지막 구절은 어떤 의미일까. 니부어가 말했듯, 군중 속의 개인은 혼자 있을 때보다 비윤리적 행위를 행하는 데 있어 죄책감이 없는 편이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번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비록 무리 속에 살더라도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말일 테니,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겠다.
실로 우리는 군중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격하시키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서 군중 속에 숨은 채 ‘악플’을 달며 스스로 가치를 낮추는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날까지도 자주 인용되는 「학이」 편 제1구. 앞으로도 오랫동안 읽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공자가 말했다. “과거를 돌이켜 익혀서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선생이 될 수 있다.” (「위정」편 중에서)
『논어』는 중국의 척추를 이루는 사상서이다. 『논어』에서 말했던 여러 가치와 사상들은 아직도 그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 나라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익혀 미래를 알 수 있다면”이라 하였다.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역사는 무한의 반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미래와 현재를 위해서는 과거의 탐구가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사기』와 『춘추』 등을 비롯해, 중국만큼 역사서가 많은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서는 외적의 침입에 의해서거나, 심지어는 스스로의 손으로 버려지고 태워진 것이 많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에서는 옛 선현들의 말을 빌려 말하기를 좋아한다. 경험, 사실, 역사로부터 출발해 미래를 그려 대비하는 것. 변화의 시대를 앞에 두고 우리에게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너와 다른 이단 학설을 공격하면 도리어 해를 줄 뿐이다.” (「위정」편 중에서)
다른 것을 추구하면서도 자기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지 않는 것이 바로 관용 정신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날이 서 있었다. 사문난적斯文亂賊. 무엇이든 자신과 다른 것은 포용하는 법 없이 내쳤다. 그 많던 절들은 산으로 올라가거나 없어졌고, 도교 역시 성행할 수 없었다. 사邪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여러 박해를 통해 학자들은 자신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편을 탄압했고, 내쳤다.
그러한 태도는 근대화 시기까지도 이어졌다. 동북아 중 일본이 제일 앞서, 그 다음은 중국이 변했다. 반면 우리의 근대화는 강제로, 가장 늦게 이뤄졌다. 우리는 쇄국정책 이후 위정척사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근대화를 거부했다.
현대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여전히 공격한다. 성적 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이런 배타적인 시각으로는 결코 사회 전체의 안정을 이뤄내지 못한다. 사람이든 사회든, 관용과 포용이 중요하다.
공자가 말했다. “지식인이 진리를 추구하는 데 뜻을 두고서도 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런 사람과는 함께 무엇을 토론할 가치가 없다.” (「위인」편 중에서)
지식인의 사명은 무엇일까. 고대에는 지식인에게 사명감이 강하게 요구되었다. 은자들도 때를 만나면 하늘을 받들어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옳은 것으로 여겨, 세상을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에는 지식과 교양이 있는 사람에게 사명감을 요구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지식인에게 사명감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일일 것이다. 고대에서의 지식이라 함은 치세를 위한 것이었고, 현대에 있어서의 지식은 여러 방면에 쓰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식인들의 사명감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단지 돈과 명예를 위한 지식은 아니지 않은가. 검은 것을 희다 하고, 굽은 것을 곧다고 해야 자리보전이 가능한 세상에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바로잡아 옳게 하는 것이 지식인의 소명 아닐까. 글로 적어 부당함을 드러내었던 에밀 졸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자가 말했다. “질박함이 문채를 초과하면 거칠고 문채가 질박함을 초과하면 판박이가 된다. 문채와 질박함이 알맞게 결합해야 군자인 것이다.” (「옹야」편 중에서)
문채란 무엇이고, 질박함은 무엇일까. 원문엔 각각 “문文”과 “질質”이라고 썼다. 질은 바탕을 이르고, 문은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옛 사람들은 형식을 중시했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의미 없는 형식주의만을 좇았던 게 아니다. 문채가 질박함을 초과하면, 즉 형식이 바탕을 넘으면 판박이가 됨을 공자도 지적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여러 차례 형식에 대해 말한다. 효와 예, 충을 비롯한 유교적 가치들이 그의 발현이다. 후세의 우리는 이를 형식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허례허식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물론, 바탕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질박함이 문채를 초과하면, 그것을 인간이라 할 것인가. 사람 간에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오히려 그럴 것이다. 문채가 질박함을 추구하면, 그것은 기계와 다를 게 없다.
어느 한 쪽이 중요하다고 공자는 말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형식, 형식으로 만드는 마음. 둘 모두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독실하게 믿으면서 배우기를 좋아하며, 죽음으로 지키면서 도를 잘 행한다. 위험한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거처하지 않는다. 천하가 태평하면 나와서 일하고, 천하가 태평하지 않으면 숨는다. 나라가 태평하면 가난하고 천한 것이 부끄럽고, 나라가 태평하지 않으면 부유하고 귀한 것이 부끄럽다.” (「태백」편 중에서)
유가와 도가의 차이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공자는 이상 실현을 위해 떠돌았다. 세상은, 그러나 도가에게 있어 도피의 대상이었다. 인위는 해악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들에게 세상은 어디나 어두웠고, 훌륭한 정치와 국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이런 비관적인 주장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구조의 힘은 개인을 결정한다. 이런 구조하에서, 개인이 도가적인 도피를 택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바람직한 차선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 그것만으로 삶을 영위할 것인가.
여기에서 공자는 숨는 것을 말했지만, 숨어서 몸을 보존하여 때를 기다리는 것이므로 오히려 진취적인 것이 아닐까. 공자는 천하를 바꾸는 일이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개인과 사회, 세계에 관하여 공자는 공부하고 이야기했다. 스스로 남긴 것은 아니지만, 제자들에 의해 씌어진 『논어』에는 공자가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여러 차례 『논어』에서 그는 스스로 배움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도’라면 그는 어디에서건 구했다. 유가의 근본은 포용과 관용에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끌어안아 변했고, 그럼으로써 그는 성인으로 남았다.
몇 년 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신드롬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에게 죽여야 할 공자가 남아 있기나 한 건지…. 공자는 이미, 죽어 있다.
많은 것이 변하지만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논어』는, 그런 책이었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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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for10
2009.05.24
나는 얼마나 책을 읽는지, 한번 생각들 해봅시다.
예스맘
200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