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가의 회전목마
오래 전, 글만 쓰겠다고 모든 일을 집어 던진 적이 있다. 두 해가 넘도록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개나리꽃 같은 노란 등불을 켜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벽을 건넜다. 눈물 같은 강을 건넜다. 졸음이 넝쿨장미처럼 쏟아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잠결에 띄엄띄엄 들려왔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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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글만 쓰겠다고 모든 일을 집어 던진 적이 있다.
두 해가 넘도록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글쓰기에만 매달렸다.
개나리꽃 같은 노란 등불을 켜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벽을 건넜다.
눈물 같은 강을 건넜다.
졸음이 넝쿨장미처럼 쏟아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바닥에 누워 잠이 들었다.
소쩍새 울음소리가 잠결에 띄엄띄엄 들려왔다.
누워 자지 않으려고 줄넘기로 내 몸을 의자에 묶은 적도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은 꽁꽁 묶은 줄넘기를 마술처럼 풀어 헤쳤다.
눈을 떠보면 나는 아랫목에 버젓이 누워 있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늘로 행군하기 위해 나무는 강해져야 한다.
어둡고 단단한 땅 속을 맨손으로, 맨발로 뚫어야 한다.

착한 아내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아내는 가난으로 빵을 만들었고
나는 고단한 하품으로 빵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말들을 수박씨처럼 가슴 속에 박아 놓아도
아름다운 마음이 될 수 없었다.
무장무장 마음이 아팠으나 절망하지 않았다.
담벼락 위로 몽달지게 피어 오른 나팔꽃들이
나를 위해 행군의 나팔을 불어주었다.
일어나 걸으라고 행군의 나팔을 불어주었다.

두 해가 지나도록 수입은 일 원도 없었다.
어린 딸아이가 날마다 놀이공원을 졸랐다.
딸아이는 막 배운 서툰 말로, 회전목마가 타고 싶다고 했다.
놀이공원에 데려갈 돈이 없었다.
놀이공원 대신, 나는 방바닥에 두꺼운 이불을 깔았다.
이불 위에 무릎을 세우고 회전목마처럼 넙죽 엎드렸다.
어린 딸아이를 등 위에 태우고
나는 짱가처럼, 파도처럼 어깨를 출렁이며
신나게 신나게 동요를 불렀다.
동요를 바꿔 불러가며 밤낮으로 행복한 회전목마가 되었다.
나를 바라보는 아내 눈에 민들레꽃씨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눈물 젖은 아내의 눈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나오지도 않는 하품을 했다.
슬프지 않았다.
건너야할 강이 있었으므로 나는 슬프지 않았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다.
슬펐지만 슬퍼하지 않았다.

슬픔과 기쁨은 서로를 채워주는 빵이다.
서로를 비춰주는 환한 등불이다.
햇볕과 바람이 손을 잡아야, 꽃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이철환 #반성문
1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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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전

2011.08.08

자신이 해야 할 일, 자신이 가야할 길이 있다면 절대 낙담하거나 현실의 부족함과 결핍에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자께서는 그것을 실천하신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신들은 배를 곯아도 자신들은 끼니를 먹이려고 하십니다.
물질적 가난한 상태에서 정신적 풍요함을 누릴 수 있는 삶을 본듯합니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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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장자

2007.09.30

글속에 쓰인 어체가 정말 섬세하게 한곳한곳 눈길이 스쳐지는 곳마다 아름답습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어체 를 따라가다보면 글내용도 머리속에 쫘악하고 펼쳐지면서 눈앞에 흑백영상이 틀려져나오는 티비를 바라보는것 같습니다.
들어오는 돈은 없고 .. 가난하다고해서 좌절하지않고 슬퍼하지 않고..
많은사람들이 배워야 될 자세같아요. 가진것도 만으면서, 다죽어가는 소리나하고, 다죽어가다못해서 가난앞에서 긍정이다 못해 부정적인 사고방식들,,
보면서, 수만은 교훈들이. 가슴을 메우고, 아른아른 떠오르네요.
그리고
슬픔과 기쁨은 서로를 채워주는 빵이다.
서로를 비춰주는 환한 등불이다.
햇볕과 바람이 손을 잡아야, 꽃은 아름답게 피어난다. 여기서 만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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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a702

2007.09.30

할 말이 없네요. 어린 시절 아부지가 태워주시던 목마 생각도 나고, 회전목마 태울 돈이없는 이야기속의 아부지 땜에 맘이 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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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

소설과 동화를 쓰는 작가이다. 수년 동안 여러 지면에 ‘침묵의 소리’와 ‘풍경 너머의 풍경’을 주제로 그림을 연재했다. 지난 10여 년간 TV·라디오 방송과 학교, 기타 공공기관 및 기업체 등에서 1000회 이상 강연을 했으며, 풀무야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작품집으로는 『연탄길(전3권)』, 『행복한 고물상』, 『위로』, 『곰보빵』, 『눈물은 힘이 세다』, 『송이의 노란 우산』, 『낙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아버지의 자전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 등 20종이 있다. 400만 이상 독자들이 읽은 『연탄길』은 일본과 중국, 대만에 수출되었고 『곰보빵』은 일본에, 『송이의 노란 우산』과 『낙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는 중국에 수출되었다. 『연탄길』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소극장창작뮤지컬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작품 중 총 9편의 글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뮤지컬 연탄길〉의 대본은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1편의 글이 영어로 번역돼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KBS 1TV [아침마당 목요특강],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총 3회), KBS 2TV 특강, JTBC 특강, MBC TV 특강 등 여러 방송에서 강연했다.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홍보대사로도 활동했으며, 2000년부터 책 수익금으로 운영해온 ‘연탄길 나눔터 기금’을 통해, 낮고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