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세계로의 초대
무엇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기본이 탄탄하다. 이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아주 매혹적인 작품이다.
200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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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재출간’은 한때의 유행이나 추세를 넘어 하나의 출간 장르로 굳어졌다. 재출간물이 새로운 독자의 호응을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책의 내용이 좋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신판은 구판에 비해 뭔가 달라야 한다. 덴마크 작가 페터 회(Peter H?eg)의 장편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2005)은 그런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이 소설은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상?하)』(정영목 옮김, 까치, 1996)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바 있다. 그러니까 새 판은 제목과 책의 체제와 번역자, 그리고 출판사가 바뀐 셈이다. 제목은, 낱말의 순서를 바꿨을 뿐이지만, 그것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신판을 찍은 출판사는 제목을 살짝 바꾸면서 구판을 펴낸 출판사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기본이 탄탄하다. 이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아주 매혹적인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기법과 장치를 활용하면서도 수학 이론을 곁들여 ‘학술소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녹아 있다.
소년 이사야의 죽음은 단순사고사로 처리된다. 이사야가 발견된 사고현장에서 스밀라는 뭔가 찜찜한 구석을 직감한다. “나는 갑자기 누가 이사야에게 손을 댔는지 알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수호천사’ 엘사 뤼빙의 도움을 받으며 수리공 페터 푀일과 함께 소년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이사야의 죽음에 얽힌 사연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다. 하지만 뒷마무리는 분명치 않다.
“‘우리에게 말해 줘’라고 사람들이 내게 와서 말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문제를 이해하고 끝맺을 수 있잖아’라고.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결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스토리라인을 따라잡는 일이 부차적일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다. 주인공의 신상명세부터 살펴보자. 수사당국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건을 해결하려고 나선 스밀라 카비아크 야스페르센은 누구인가? 그녀에게는 그린란드 원주민의 피가 흐른다. 또 그녀는 눈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스밀라는 직선적인 성격이 아니다.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것의 목록에선 그녀의 성격의 일단이 드러난다. 스밀라는 낯선 이와 말하는 것, 무리를 지어 일하는 덴마크 일꾼, 무리지어 있는 남자, 전화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화 대화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의사소통 방법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결국에는 보안 인터콤이 훨씬 더 나쁘다.” 그녀는 사람을 보고 말하고 싶어 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스밀라는, 어찌 보면 당연히, “차의 종류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못 된다. 나로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차들을 압축분쇄기로 짜부러뜨린 뒤 성층권 너머로 날려보내서 화성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물론 택시는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하겠지만.” 스밀라는 강건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넘치는 여자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독서 취향에 호감이 간다.
“우리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다. 나는 그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그 책에 표현된 여성적 공감은 전율을 불러일으켰고 분노는 설득력이 있었다. 단순히 변화를 일으킬 의지만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처럼 강력한 신념을 가진 책을 그 외에는 알지 못한다.”
나는 스밀라의 매력 포인트로 추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바로 개를 싫어하는 거다. “결코 극복하지 못할 개 공포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나는 후천적인 개 공포증이 있다. 어릴 때 개에 정강이를 물린 뒤로 나는 개에 근접하는 것조차 꺼린다.
한편, 덴마크 경찰이 작성한 신상보고서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양면적이다. 37세의 스밀라는 민간 탐사단이 극지 탐험에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유능한 항법사이자 한랭수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얼음에 관한 전문가다. 경찰 또한 그녀가 야망과 재능으로 잘 관리해온 특출한 자질을 지닌 “아주 독립적인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반면, 어린 시절 그녀는 가출을 반복했고, 초등학교에서 여러 차례 쫓겨났다. 20대 후반에는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실업중에 있고, 가족도 없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죠. 결코 어딘가에 적응할 수 없는 여자. 공격적이고요.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두 입장을 왔다갔다 했죠.”
“툴레 공군 기지가 설립된 이래로, 각 비행기가 그린란드로 싣고 갈 수 있는 민간인 승객 수에는 제한이 있었다. 모든 승객들이 정보기관에 루터교 교회에서 견진 세례를 받았는지, 좋은 집안 출신인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부에서 유래한 공산당 열기에 면역이 되었는지에 대해 조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덴마크의 그린란드 식민정책과 덴마크 주류사회의 이념 지향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린란드는 알래스카와 마찬가지로 자살률이 높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은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와 인디언 원주민보다 심각한 이중고를 겪었다.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식민통치가 가혹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정부의 “그린란드에 대한 오래되고 무자비한 식민 정책은” 1960년대가 돼서야 폐지되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주종관계는 영국과 아일랜드, 일본과 조선의 제국주의와 피식민지 관계의 판박이다. 공교롭게도 그린란드가 과거의 우리를 말한다면, 덴마크는 요즘 우리의 실상을 보여준다.
“북부 그린란드에서 사람들은 아주 가깝게 산다. 한방에서 여럿이 잔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덴마크 사회가 위계적이고, 특정 업계에선 이면계약이 차고 넘친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피상적 인식과는 많이 다르네! 작중인물의 분류를 통해 그려진 덴마크 사회의 단면은 꽤 시사적이다.
“부분적으로는 얼음으로부터 해방되려고 몸부림을 쳐왔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덴마크.
로옌과 안드레아스 리크트. 다른 현태의 욕망에서 의해서 내몰린 사람들.
엘사 뤼빙, 레어만, 라운. 회사와 의료직과 정부 기구에 대한 신념이 그들의 힘인 동시에 딜레마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렇지만 동정심에 의해서, 기벽에 의해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자신의 충성심에서 빠져나와 나를 도와준 사람들.
라너. 부유한 사업가. 흥분과 수수께끼 같은 감사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
수리공은 숙련된 일꾼이고, 노동자다. 율리아네는 쓰레기다. 그리고 나, 나는 누구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는 작가의 경험과 관찰, 철학과 성찰이 빛나는 주옥같은 구절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몇을 골랐다. “극지방에서 동정은 덕목이 아니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람들은 시계를 도구로 삼아 서로의 삶을 묶는다.” “침묵을 지키는 것 또한 하나의 기술이다.” “산업항에는 뭔가 정직한 구석이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소년 이사야를 공소공포증 환자로 설정한 것을 눈여겨보았다. 나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다. 경찰전문학교 뒷산으로 초등학교 1학년 소풍을 다녀올 때, 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부평역 철로 위를 가로지른 엄청난 높이의 육교를 지나던 기억은 참으로 아찔하다. 그렇다고 내 상태가 한 달에 한 번 고소공포증이 심해지면 “이틀 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야의 평상시 증상과는 꽤 비슷했다.
“그 애는 2층까지 뛰어올라가곤 했었죠. 그렇지만 거기서부터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서 기어올라갔어요. 그 광경을 그려보세요. 매일 건물 안 계단 위에서요. 이마에 땀이 맺히고, 무릎은 후들후들 떨면서 말이죠. 2층에서 4층까지 가는 데 5분이나 걸렸죠. 그 애 엄마는 이사올 때 1층에 아파트를 얻으려고 했었어요.”
초등학생인 나는 때때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만 그러는 줄 알고 어디에 하소연도 제대로 못했다. 커가면서 고소공포증이 다소 나아졌지만 요즘도 높은 곳에 오르면 이따금 눈앞이 아찔하다. 고소공포증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것에 시달리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페터 회의 세 번째 장편소설의 한국어판인 『여자와 원숭이』(황보석 옮김, 까치, 1999)는 이 책을 펴낸 출판사와 같은 계열의 출판사를 통해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청미래, 2006)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는 “사랑, 자유,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종을 넘어선 사랑이야기다.” 특기할 것은, 신판의 표지와 1998년 12월 20일에 쓴 ‘옮긴이의 글’에 있는 페터 회의 대표작의 제목이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아니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독자의 호응은 힘이 세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기본이 탄탄하다. 이 소설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필적하는 아주 매혹적인 작품이다. 추리소설의 기법과 장치를 활용하면서도 수학 이론을 곁들여 ‘학술소설’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녹아 있다.
소년 이사야의 죽음은 단순사고사로 처리된다. 이사야가 발견된 사고현장에서 스밀라는 뭔가 찜찜한 구석을 직감한다. “나는 갑자기 누가 이사야에게 손을 댔는지 알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수호천사’ 엘사 뤼빙의 도움을 받으며 수리공 페터 푀일과 함께 소년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이사야의 죽음에 얽힌 사연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다. 하지만 뒷마무리는 분명치 않다.
“‘우리에게 말해 줘’라고 사람들이 내게 와서 말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문제를 이해하고 끝맺을 수 있잖아’라고.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결코 결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스토리라인을 따라잡는 일이 부차적일 정도로 내용이 풍부하다. 주인공의 신상명세부터 살펴보자. 수사당국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건을 해결하려고 나선 스밀라 카비아크 야스페르센은 누구인가? 그녀에게는 그린란드 원주민의 피가 흐른다. 또 그녀는 눈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나는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긴다.”
스밀라는 직선적인 성격이 아니다.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것의 목록에선 그녀의 성격의 일단이 드러난다. 스밀라는 낯선 이와 말하는 것, 무리를 지어 일하는 덴마크 일꾼, 무리지어 있는 남자, 전화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따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화 대화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의사소통 방법이라는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결국에는 보안 인터콤이 훨씬 더 나쁘다.” 그녀는 사람을 보고 말하고 싶어 한다.
운전면허증이 없는 스밀라는, 어찌 보면 당연히, “차의 종류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못 된다. 나로 말하자면 세상의 모든 차들을 압축분쇄기로 짜부러뜨린 뒤 성층권 너머로 날려보내서 화성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다고 해도 상관없다. 물론 택시는 필요할 때 마음대로 쓸 수 있어야 하겠지만.” 스밀라는 강건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넘치는 여자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독서 취향에 호감이 간다.
“우리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다. 나는 그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그 책에 표현된 여성적 공감은 전율을 불러일으켰고 분노는 설득력이 있었다. 단순히 변화를 일으킬 의지만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처럼 강력한 신념을 가진 책을 그 외에는 알지 못한다.”
나는 스밀라의 매력 포인트로 추가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바로 개를 싫어하는 거다. “결코 극복하지 못할 개 공포증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나는 후천적인 개 공포증이 있다. 어릴 때 개에 정강이를 물린 뒤로 나는 개에 근접하는 것조차 꺼린다.
한편, 덴마크 경찰이 작성한 신상보고서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은 양면적이다. 37세의 스밀라는 민간 탐사단이 극지 탐험에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유능한 항법사이자 한랭수 연구자들이 인정하는 얼음에 관한 전문가다. 경찰 또한 그녀가 야망과 재능으로 잘 관리해온 특출한 자질을 지닌 “아주 독립적인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반면, 어린 시절 그녀는 가출을 반복했고, 초등학교에서 여러 차례 쫓겨났다. 20대 후반에는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단체에 가입하여 정치활동을 하기도 했다. “실업중에 있고, 가족도 없는.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이죠. 결코 어딘가에 적응할 수 없는 여자. 공격적이고요.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두 입장을 왔다갔다 했죠.”
“툴레 공군 기지가 설립된 이래로, 각 비행기가 그린란드로 싣고 갈 수 있는 민간인 승객 수에는 제한이 있었다. 모든 승객들이 정보기관에 루터교 교회에서 견진 세례를 받았는지, 좋은 집안 출신인지, 이데올로기적으로 동부에서 유래한 공산당 열기에 면역이 되었는지에 대해 조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덴마크의 그린란드 식민정책과 덴마크 주류사회의 이념 지향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린란드는 알래스카와 마찬가지로 자살률이 높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은 알래스카의 에스키모와 인디언 원주민보다 심각한 이중고를 겪었다. 그린란드에 대한 덴마크의 식민통치가 가혹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정부의 “그린란드에 대한 오래되고 무자비한 식민 정책은” 1960년대가 돼서야 폐지되었다.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주종관계는 영국과 아일랜드, 일본과 조선의 제국주의와 피식민지 관계의 판박이다. 공교롭게도 그린란드가 과거의 우리를 말한다면, 덴마크는 요즘 우리의 실상을 보여준다.
“북부 그린란드에서 사람들은 아주 가깝게 산다. 한방에서 여럿이 잔다.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보고 들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덴마크 사회가 위계적이고, 특정 업계에선 이면계약이 차고 넘친다고 표현한다. 우리의 피상적 인식과는 많이 다르네! 작중인물의 분류를 통해 그려진 덴마크 사회의 단면은 꽤 시사적이다.
“부분적으로는 얼음으로부터 해방되려고 몸부림을 쳐왔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덴마크.
로옌과 안드레아스 리크트. 다른 현태의 욕망에서 의해서 내몰린 사람들.
엘사 뤼빙, 레어만, 라운. 회사와 의료직과 정부 기구에 대한 신념이 그들의 힘인 동시에 딜레마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렇지만 동정심에 의해서, 기벽에 의해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 의해서 자신의 충성심에서 빠져나와 나를 도와준 사람들.
라너. 부유한 사업가. 흥분과 수수께끼 같은 감사의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
수리공은 숙련된 일꾼이고, 노동자다. 율리아네는 쓰레기다. 그리고 나, 나는 누구지?”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는 작가의 경험과 관찰, 철학과 성찰이 빛나는 주옥같은 구절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 몇을 골랐다. “극지방에서 동정은 덕목이 아니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아주 적다.” “사람들은 시계를 도구로 삼아 서로의 삶을 묶는다.” “침묵을 지키는 것 또한 하나의 기술이다.” “산업항에는 뭔가 정직한 구석이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소년 이사야를 공소공포증 환자로 설정한 것을 눈여겨보았다. 나도 고소공포증이 있어서다. 경찰전문학교 뒷산으로 초등학교 1학년 소풍을 다녀올 때, 지금은 철거되고 없지만, 부평역 철로 위를 가로지른 엄청난 높이의 육교를 지나던 기억은 참으로 아찔하다. 그렇다고 내 상태가 한 달에 한 번 고소공포증이 심해지면 “이틀 동안 기저귀를 차고”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야의 평상시 증상과는 꽤 비슷했다.
“그 애는 2층까지 뛰어올라가곤 했었죠. 그렇지만 거기서부터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는 난간을 잡고서 기어올라갔어요. 그 광경을 그려보세요. 매일 건물 안 계단 위에서요. 이마에 땀이 맺히고, 무릎은 후들후들 떨면서 말이죠. 2층에서 4층까지 가는 데 5분이나 걸렸죠. 그 애 엄마는 이사올 때 1층에 아파트를 얻으려고 했었어요.”
초등학생인 나는 때때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러웠지만 나만 그러는 줄 알고 어디에 하소연도 제대로 못했다. 커가면서 고소공포증이 다소 나아졌지만 요즘도 높은 곳에 오르면 이따금 눈앞이 아찔하다. 고소공포증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것에 시달리는 어린이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
페터 회의 세 번째 장편소설의 한국어판인 『여자와 원숭이』(황보석 옮김, 까치, 1999)는 이 책을 펴낸 출판사와 같은 계열의 출판사를 통해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청미래, 2006)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에라스무스, 사랑에 빠지다』는 “사랑, 자유,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 종을 넘어선 사랑이야기다.” 특기할 것은, 신판의 표지와 1998년 12월 20일에 쓴 ‘옮긴이의 글’에 있는 페터 회의 대표작의 제목이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아니라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라(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독자의 호응은 힘이 세다.
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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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성일
violasorrow
2012.08.18
하지만 그래서 더 읽을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은 것 같네요
ceng
2007.11.25
loneblues
200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