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동물 관련 책을 읽게 된 사연
어려서 동물에게 해코지를 당한 경우, 동물과 더욱 친해지거나 아니면 아주 싫어하는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동물과 척이 지는 쪽으로 고착한 모양이다.
200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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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을 별로 안 좋아한다. 게다가 애완동물은 딱 질색이다. 물론 나의 동물기피증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천성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과 불화를 겪는 듯도 하지만, 열 살 무렵 다리를 개한테 심하게 물리고 나서는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을 좀더 꺼리게 되었다. 개에 물린 상처도 몹시 아팠으나, 개 주인이 내게 처방한 민간요법은 참으로 끔찍했다. 나를 문 개의 털을 잘라 상처 부위에다 붙여 줬으니 말이다.
어려서 동물에게 해코지를 당한 경우, 동물과 더욱 친해지거나 아니면 아주 싫어하는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동물과 척이 지는 쪽으로 고착한 모양이다. 당연히 나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별로다. 동물을 다룬 책 역시 마찬가지여서 잘 안 읽는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1948- )의 책에 심취한 것은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그건 필시 드 발이 뛰어난 동물행동학자이면서 탁월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인 것 같다.
드 발의 이름을 전세계 독자에게 각인시킨 『Chimpanzee Politics』는 전인미답의 분야를 개척하여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른 과학교양서다. 고전의 명성과 권위가 세워지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한국어판 2종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원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황상익?장대익 옮김, 바다출판사, 2004)의 풍모는 ‘21세기 뉴 클래식’의 한 권으로 모자람이 전혀 없다. 이 책은 1998년 나온 증보판을 번역 저본으로 한다. 증보판은 권력 투쟁에 대한 애초의 설명을 그대로 살렸고, 새로운 지식의 관점에서 내용을 손보는 한편, 최근의 연구에 초점을 맞춰 주석을 덧붙였다. 아울러 새로운 사진들을 추가하였으며, “아넴 집단에서의 뒤이은 발전 경로를 상세히 기록한 후기를 첨부하였다.” 또 데즈먼드 모리스의 초판 서문이 증보판에선 빠졌다.
드 발은 증보판의 주석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세계 각국의 표피적인 수용과 속된 활용을 나무라도 한다. 언론인들이 니키, 루이트, 이에론 같은 침팬지들을 정치인들과 비교하면서 아넴 동물원에서의 권력투쟁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해왔다는 것인데, “이런 경향은 특히 프랑스의 여러 매체에서 두드러졌다.”
그런 경향은 1987년 프랑스의 ditions du Rocher 출판사가 프랑수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 사이에서 침팬지가 히죽 웃는 사진을 넣어 이 책의 표지를 꾸미면서부터 본격화한다. 드 발은 이 책의 논점을 흐린 또 하나의 사례로 1983년 Harnack Verlag 출판사에서 출간된 독일어판을 꼽는다. 독일어판의 제목은 『우리의 털복숭이 사촌들』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마케팅적 판단은 이 책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이 책의 논점은 정치 지도자나 유인원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근본적인 유사성을 주장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성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어판 2종에도 약간의 마케팅적 판단이 개입돼 있다. 증보판 번역서는 미 의회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의 코멘트를 띠지에 새겨 놓았다. “나는 의회 필독서 목록에 수년간 이 책을 올려놓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펜타곤, 백악관, 의회가 예전과는 달리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1982년 출판된 초판을 우리말로 옮긴 『정치하는 원숭이- 침팬지의 권력과 성』(황상익 옮김, 동풍, 1995)은 제목과 침팬지의 캐리커처 표지 그림이 그렇다.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는 네덜란드 아넴에 있는 부르거스 동물원의 대규모 야외 사육장에서 수년간 침팬지의 집단생활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드 발은 제인 구달이 이정표를 세운 현지조사로는 침팬지 집단 사회 변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르거스 동물원은 침팬지 집단생활의 포괄적 연구가 가능한 유일한 곳이다.
드 발은 아넴의 부르거스 동물원에서 진행된 연구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껏 우리가 유인원과 인간이 매우 흡사한 부류라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침팬지의 사회구조? 인간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드 발은 증보판의 서문에서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웰의 정치에 대한 정의-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는가를 결정하는 사회적 과정’ -를 거론하면서 이 책의 결론을 살짝 드러낸다.
“그의 견해에 따르자면 침팬지들에게도 정치적인 속성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과 그들의 친척 모두에게 정치라는 과정은 허세, 연합, 고립 같은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 결론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된다.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한 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아리스토텔레스도 잘 몰랐을 거라는. 그리고 이어지는 결론.
“우리의 정치적 활동은 인간과 가까운 친척과 공유하는 진화적 유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만일 내가 아넴에서 연구하기 전에 누군가 이와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면 너무 교묘한 유추라며 그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넴에서의 연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결론의 맺음 부분은 제인 구달이 『인간의 그늘에서』에서 묘사한, 일몰 직전 야생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에게 드리워진 그녀의 그림자를 통해 야생 침팬지의 운명을 성찰하는 대목만큼이나 감동적이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이 책은 동물행동학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동물행동학(ethology)이란 동물의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1930년대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와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의 영향으로 생겨난 이 학문은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드 발은 동물심리학과의 대비를 통해 동물행동학의 범주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동물행동학은 “어디까지나 ‘자연환경’에서 또는 적어도 가능한 한 자연적인 조건에서의 ‘자발적인 행동’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물행동학자에게 야외조사는 필수 과정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강한 관찰자라야 한다. 어떤 실험 목적을 위해 특정 행동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한없이 기다리는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동물행동 연구의 핵심을 간파한 구절에서는 자연스레 천재들이 공유하는 덕목인 겸손이 묻어난다.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 해석한다는 뜻인데, 그 해석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점을 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더하여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많은 해석들 또한 진실이라는 것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겠는가.”
『Bonobo: The Forgotten Ape』는 한국어로 번역된 드 발의 두 번째 책이다. 『보노보』(프란스 랜팅 사진, 김소정 옮김, 새물결, 2003)의 표지에는 “살아가기 함께 행복하게”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지만, 원서의 부제목이 책의 지향성을 더 잘 간추렸다. 이 책은 드 발과 네덜란드 출신의 야생동물 촬영전문 사진가 프란스 랜팅의 공동저서로 드 발의 글과 랜팅이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책은 글쓴이의 이름을 ‘프란스 드 왈’로 표기한다. Waal을 네덜란드어가 아니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반면, 동물행동학의 정립에 기여한 동물학자의 이름은 ‘니콜라스 틴베르헨’이라고 네덜란드식으로 읽는다. 사실, 드 발 번역서의 이름과 지명 표기는 들쭉날쭉하다. 이 글에서는 de Waal을 드 발로 통일하되 나머지는 해당 번역서의 표기 방식을 따른다.
‘잊혀진 유인원’ 보노보가 독립된 종으로 학계의 정식 인정을 받은 것은 1929년의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후로도 꽤 오랜 동안 보노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보노보의 경우 심지어 이들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조차 드문 편이다.” 찰턴 헤스턴이 출연한 영화 〈혹성탈출〉에서 핵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위치가 뒤바뀐 영장류 중에도 보노보는 없었던 것 같다.
‘최쓈의 유인원’ 보노보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과 함께 사람상과(科)에 속하는 영장류다. 침팬지와 더불어 판(Pan)속(屬)을 이루는데 보노보와 침팬지는 3백만년 전에 분리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과 판속은 6백만년 전에 갈라졌다. 보노보의 학명은 ‘판 파니스쿠스(Pan paniscus)’로, 종의 명칭인 ‘파니스쿠스’는 ‘작다’는 뜻이다. 침팬지의 종명은 ‘동굴 거주자’라는 의미의 ‘트로글로디테스(troglodytes)’이다.
“새로운 것은 항상 통념과 비교된다. 실제로 보노보를 둘러싼 논의도 이들이 침팬지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 같은 종으로 간주했을 만큼 보노보와 침팬지는 외모부터 비슷하다. 관찰된 50가지 이상의 행동 유형 가운데 보노보와 침팬지 두 종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이 절반을 넘는다. 드 발은 두 종의 차이점을 “침팬지는 성 문제를 권력으로 해결하는 반면 보노보는 권력 문제를 성으로 해결한다”고 간추린다.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가 드 발이 아넴의 부르거스 동물원에서 직접 관찰한 침팬지 행동에 바탕을 둔다면, 『보노보』는 보노보 연구자들의 관찰과 분석에 크게 빚지고 있다. 보노보에 대한 현장 연구는 197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보노보 연구자와의 인터뷰와 프란스 랜팅이 찍은 사진들로 다채롭게 꾸며진 이 책은 보고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영장류의 언어 능력을 연구하는 수 세비지-럼바우, 1973년부터 아프리카 대륙의 자이르강 남쪽의 왐바에서 연구기지를 운영해온 일본 교토대학의 가노 다카요시 교수, 독일인 부부 동물행동학자인 바바라 프루트와 고트프리드 호만 등과 가진 인터뷰는 보노보의 연구의 몇 가지 갈래와 그 핵심을 알려준다.
드 발은 이 책의 사진을 맡은 프란스 랜팅과도 인터뷰했는데, 랜팅은 자기 “작업의 주요 목적은 우리가 보노보와 그리고 보노보가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주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랜팅은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아이들이 멀리서 도로를 뛰어 건너가고 있는 보노보 가족을 바라보는” 장면을 꼽는다. 이 사진은 이 책의 226-227면에 실려 있다.
“보노보들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식물에서 나는 먹이를 먹지만, 특히 잘 익은 과일을 좋아한다.” 또, 보노보의 “특징은 암컷 중심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영장류로서 공격(성)을 섹스로 대체한다는 점으로 가장 잘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드 발은 섣부른 예단은 경계한다. 곧 “보노보에 대해서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 말이다.”
또한 이것은 생물학과 인류학의 역사가 “특정한 생물종이나 인간의 문화를 이상화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예로는 제인 구달의 탄자니아 곰비 캠프에서 벌어진 침팬지들의 잔혹한 전쟁을 들 수 있다. 드 발은 아직까지 관찰된 바가 없는 까닭에 보노보의 성격이 침팬지처럼 잔혹한지 여부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나, 이들이 성인(聖人)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노보의 활달한 기질에 비춰 이들의 사회를 지배하는 조화가 천성적인 평화주의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 같진 않다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보노보 사회의 모습이 모두 장밋빛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사회에서는 경쟁보다 평화가 더 중시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협력하려는 경향은 경쟁하려는 경향과 함께 고려해야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법칙으로부터 이 종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친연성에 관한 드 발의 통찰 또한 범상치 않다. 드 발은 유인원의 언어 능력과 관련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들에게 언어가 있고 없고의 여부가 아니라 “과연 이들이 언어 활동에 필요한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을 갖고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대한 드 발의 답변은 타협의 여지마저 없어 보인다. “과(科)적인 유사성이라는 관점에서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한다. 즉 바로 우리가 그들 중의 하나이거나 아니면 그들이 우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일부 삽화의 설명 글에 담긴 출처 표시- “(칼라 시몬스의 원본 그림에 기초한 삽화, 아드리엔 질먼 제공)” “(도널드 요한슨, 『루시의 후손Lucy's child』에 포함된 지도에 기초)” -는 남의 지적 자산을 제대로 인용하는 충실한 사례라 할 만하다.
『The Ape and the Sushi Master』(2001)를 우리말로 옮긴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박성규 옮김, 수희재, 2005)의 표지와 책등에 붉은 글자로 병기한 “동물행동학자가 다시 쓰는,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문구는 이 책의 부제목으로 봐도 좋다. (영한사전이 ape를 원숭이로 풀이하더라도, 이 책의 맥락을 감안하면, 번역서의 제목은 좀 아쉽다. 원숭이를 ‘유인원’이나 ‘침팬지’로 했으면 어땠을까? 몽키(monkey)는 침팬지가 아니다.)
프놀로그에서 드 발은 자신이 탐구하려는 주제를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동물이 문화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런 탐구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동물이 문화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문화와 인간의 본성이 양극에 있다는, 시대에 뒤처진 서양의 이원론을 무덤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다.” 드 발은 문화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경”으로 본다.
이 책은 각기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큰 주제인 세 가지 쟁점을 하나로 엮었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이다.
제1부의 앞부분에서 드 발은 “사고나 감정을 동물에 투영하여 실제 이상으로 인간다운 존재로 파악하려고 하는” ‘의인화’를 작심한 듯 옹호한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공통 특징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의인화 거부’로 규정하며 비판한다. 연구 대상인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 의인화하는 것은 서구 학계에서 금기로 여겨 왔으나, 연구자가 연구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오히려 성과가 더 좋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 책이 앞의 두 권과 다른 점은 드 발이 그의 비판적 지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강단 마르크스주의와 동류로 보이는 ‘안락의자 영장류학’을 비꼬는 장면도 흥미로우나, 학파와 학자들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드러난 대목은 아주 흥미진진하다. 드 발은 로렌츠와 틴베르헨, 그리고 일본의 영장류학자 이마니시 긴지를 적극 편든다.
“로렌츠가 동물을 사랑하는 공상가였다면, 틴베르헨은 체계적이며 신중한 과학자였다.” 드 발은 이마니시 긴지를 영장류 연구의 한 갈래를 이루는 교토학파의 태두로 높이 평가한다. 보노보 연구자인 가노 다카요시도 이마니시의 제자다. 반면에 행동주의 심리학을 창시한 B.F. 스키너는 호되게 비판받는다. 어느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동물의 개체성을 인정치 않는 초창기 행동주의 심리학파의 태도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한편, 특정 학문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에서 후학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사례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거명되어 눈길을 끈다. 드 발이 굴드를 보는 시각은 중립적인 것 같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새로운 세대의 다윈주의자들에 의해 부친살해 한 건이 진행 중이다. 표적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진화론 작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그는 너무 오래 현역에 머물러 있어 시대에 뒤처졌고, 심지어는 관점마저도 잘못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술궂은 강연이 행해지고, 야비한 편지가 출판되었다. 그뿐 아니라 ‘우발적 창조론자’의 딱지마저 붙었으니, 누구보다 창조론에 회의적이었던 굴드에게는 최대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대가(guru)도 인상적으로 싸우긴 했다.”
굴드의 대응과 논란을 둘러싼 프란스 드 발의 코멘트는 이 책의 101면에서 독자께서 직접 확인하심이 어떨는지.
어려서 동물에게 해코지를 당한 경우, 동물과 더욱 친해지거나 아니면 아주 싫어하는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고 하는데, 나는 동물과 척이 지는 쪽으로 고착한 모양이다. 당연히 나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도 별로다. 동물을 다룬 책 역시 마찬가지여서 잘 안 읽는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1948- )의 책에 심취한 것은 스스로도 놀랄 일이다. 그건 필시 드 발이 뛰어난 동물행동학자이면서 탁월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인 것 같다.
드 발의 이름을 전세계 독자에게 각인시킨 『Chimpanzee Politics』는 전인미답의 분야를 개척하여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른 과학교양서다. 고전의 명성과 권위가 세워지는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건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 책의 한국어판 2종은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원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황상익?장대익 옮김, 바다출판사, 2004)의 풍모는 ‘21세기 뉴 클래식’의 한 권으로 모자람이 전혀 없다. 이 책은 1998년 나온 증보판을 번역 저본으로 한다. 증보판은 권력 투쟁에 대한 애초의 설명을 그대로 살렸고, 새로운 지식의 관점에서 내용을 손보는 한편, 최근의 연구에 초점을 맞춰 주석을 덧붙였다. 아울러 새로운 사진들을 추가하였으며, “아넴 집단에서의 뒤이은 발전 경로를 상세히 기록한 후기를 첨부하였다.” 또 데즈먼드 모리스의 초판 서문이 증보판에선 빠졌다.
드 발은 증보판의 주석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세계 각국의 표피적인 수용과 속된 활용을 나무라도 한다. 언론인들이 니키, 루이트, 이에론 같은 침팬지들을 정치인들과 비교하면서 아넴 동물원에서의 권력투쟁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해왔다는 것인데, “이런 경향은 특히 프랑스의 여러 매체에서 두드러졌다.”
그런 경향은 1987년 프랑스의 ditions du Rocher 출판사가 프랑수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 사이에서 침팬지가 히죽 웃는 사진을 넣어 이 책의 표지를 꾸미면서부터 본격화한다. 드 발은 이 책의 논점을 흐린 또 하나의 사례로 1983년 Harnack Verlag 출판사에서 출간된 독일어판을 꼽는다. 독일어판의 제목은 『우리의 털복숭이 사촌들』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마케팅적 판단은 이 책의 핵심을 놓친 것이다. 이 책의 논점은 정치 지도자나 유인원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근본적인 유사성을 주장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성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어판 2종에도 약간의 마케팅적 판단이 개입돼 있다. 증보판 번역서는 미 의회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의 코멘트를 띠지에 새겨 놓았다. “나는 의회 필독서 목록에 수년간 이 책을 올려놓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펜타곤, 백악관, 의회가 예전과는 달리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1982년 출판된 초판을 우리말로 옮긴 『정치하는 원숭이- 침팬지의 권력과 성』(황상익 옮김, 동풍, 1995)은 제목과 침팬지의 캐리커처 표지 그림이 그렇다.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는 네덜란드 아넴에 있는 부르거스 동물원의 대규모 야외 사육장에서 수년간 침팬지의 집단생활을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정리한 책이다. 드 발은 제인 구달이 이정표를 세운 현지조사로는 침팬지 집단 사회 변화의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부르거스 동물원은 침팬지 집단생활의 포괄적 연구가 가능한 유일한 곳이다.
드 발은 아넴의 부르거스 동물원에서 진행된 연구에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껏 우리가 유인원과 인간이 매우 흡사한 부류라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바로, 침팬지의 사회구조? 인간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드 발은 증보판의 서문에서 정치학자 해롤드 라스웰의 정치에 대한 정의-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는가를 결정하는 사회적 과정’ -를 거론하면서 이 책의 결론을 살짝 드러낸다.
“그의 견해에 따르자면 침팬지들에게도 정치적인 속성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과 그들의 친척 모두에게 정치라는 과정은 허세, 연합, 고립 같은 전략과 관련되어 있다.” 결론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된다.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규정한 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아리스토텔레스도 잘 몰랐을 거라는. 그리고 이어지는 결론.
“우리의 정치적 활동은 인간과 가까운 친척과 공유하는 진화적 유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만일 내가 아넴에서 연구하기 전에 누군가 이와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면 너무 교묘한 유추라며 그런 발상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넴에서의 연구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결론의 맺음 부분은 제인 구달이 『인간의 그늘에서』에서 묘사한, 일몰 직전 야생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에게 드리워진 그녀의 그림자를 통해 야생 침팬지의 운명을 성찰하는 대목만큼이나 감동적이다.
“그러나 수면 아래의 상황은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권력의 균형은 매일매일 시험되며, 만일 그것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도전이 일어나고 새로운 균형이 찾아올 것이다. 결국 침팬지들의 정치도 건설적이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로 분류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야만 한다.”
이 책은 동물행동학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동물행동학(ethology)이란 동물의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1930년대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와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의 영향으로 생겨난 이 학문은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드 발은 동물심리학과의 대비를 통해 동물행동학의 범주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동물행동학은 “어디까지나 ‘자연환경’에서 또는 적어도 가능한 한 자연적인 조건에서의 ‘자발적인 행동’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물행동학자에게 야외조사는 필수 과정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강한 관찰자라야 한다. 어떤 실험 목적을 위해 특정 행동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한없이 기다리는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이다.”
동물행동 연구의 핵심을 간파한 구절에서는 자연스레 천재들이 공유하는 덕목인 겸손이 묻어난다.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결국 해석한다는 뜻인데, 그 해석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점을 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더하여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많은 해석들 또한 진실이라는 것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겠는가.”
『Bonobo: The Forgotten Ape』는 한국어로 번역된 드 발의 두 번째 책이다. 『보노보』(프란스 랜팅 사진, 김소정 옮김, 새물결, 2003)의 표지에는 “살아가기 함께 행복하게”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지만, 원서의 부제목이 책의 지향성을 더 잘 간추렸다. 이 책은 드 발과 네덜란드 출신의 야생동물 촬영전문 사진가 프란스 랜팅의 공동저서로 드 발의 글과 랜팅이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책은 글쓴이의 이름을 ‘프란스 드 왈’로 표기한다. Waal을 네덜란드어가 아니라 영어식으로 읽은 것이다. 반면, 동물행동학의 정립에 기여한 동물학자의 이름은 ‘니콜라스 틴베르헨’이라고 네덜란드식으로 읽는다. 사실, 드 발 번역서의 이름과 지명 표기는 들쭉날쭉하다. 이 글에서는 de Waal을 드 발로 통일하되 나머지는 해당 번역서의 표기 방식을 따른다.
‘잊혀진 유인원’ 보노보가 독립된 종으로 학계의 정식 인정을 받은 것은 1929년의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후로도 꽤 오랜 동안 보노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보노보의 경우 심지어 이들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조차 드문 편이다.” 찰턴 헤스턴이 출연한 영화 〈혹성탈출〉에서 핵전쟁으로 말미암아 사람과 위치가 뒤바뀐 영장류 중에도 보노보는 없었던 것 같다.
‘최쓈의 유인원’ 보노보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과 함께 사람상과(科)에 속하는 영장류다. 침팬지와 더불어 판(Pan)속(屬)을 이루는데 보노보와 침팬지는 3백만년 전에 분리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람과 판속은 6백만년 전에 갈라졌다. 보노보의 학명은 ‘판 파니스쿠스(Pan paniscus)’로, 종의 명칭인 ‘파니스쿠스’는 ‘작다’는 뜻이다. 침팬지의 종명은 ‘동굴 거주자’라는 의미의 ‘트로글로디테스(troglodytes)’이다.
“새로운 것은 항상 통념과 비교된다. 실제로 보노보를 둘러싼 논의도 이들이 침팬지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20세기 초반까지 같은 종으로 간주했을 만큼 보노보와 침팬지는 외모부터 비슷하다. 관찰된 50가지 이상의 행동 유형 가운데 보노보와 침팬지 두 종 모두에게 나타나는 것이 절반을 넘는다. 드 발은 두 종의 차이점을 “침팬지는 성 문제를 권력으로 해결하는 반면 보노보는 권력 문제를 성으로 해결한다”고 간추린다.
『침팬지 폴리틱스-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가 드 발이 아넴의 부르거스 동물원에서 직접 관찰한 침팬지 행동에 바탕을 둔다면, 『보노보』는 보노보 연구자들의 관찰과 분석에 크게 빚지고 있다. 보노보에 대한 현장 연구는 197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보노보 연구자와의 인터뷰와 프란스 랜팅이 찍은 사진들로 다채롭게 꾸며진 이 책은 보고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영장류의 언어 능력을 연구하는 수 세비지-럼바우, 1973년부터 아프리카 대륙의 자이르강 남쪽의 왐바에서 연구기지를 운영해온 일본 교토대학의 가노 다카요시 교수, 독일인 부부 동물행동학자인 바바라 프루트와 고트프리드 호만 등과 가진 인터뷰는 보노보의 연구의 몇 가지 갈래와 그 핵심을 알려준다.
드 발은 이 책의 사진을 맡은 프란스 랜팅과도 인터뷰했는데, 랜팅은 자기 “작업의 주요 목적은 우리가 보노보와 그리고 보노보가 우리와 얼마나 가까운가를 보여주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랜팅은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아이들이 멀리서 도로를 뛰어 건너가고 있는 보노보 가족을 바라보는” 장면을 꼽는다. 이 사진은 이 책의 226-227면에 실려 있다.
“보노보들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식물에서 나는 먹이를 먹지만, 특히 잘 익은 과일을 좋아한다.” 또, 보노보의 “특징은 암컷 중심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영장류로서 공격(성)을 섹스로 대체한다는 점으로 가장 잘 규정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드 발은 섣부른 예단은 경계한다. 곧 “보노보에 대해서 너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경향 말이다.”
또한 이것은 생물학과 인류학의 역사가 “특정한 생물종이나 인간의 문화를 이상화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예로는 제인 구달의 탄자니아 곰비 캠프에서 벌어진 침팬지들의 잔혹한 전쟁을 들 수 있다. 드 발은 아직까지 관찰된 바가 없는 까닭에 보노보의 성격이 침팬지처럼 잔혹한지 여부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나, 이들이 성인(聖人)은 아니라고 말한다. 보노보의 활달한 기질에 비춰 이들의 사회를 지배하는 조화가 천성적인 평화주의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 같진 않다고 덧붙인다.
“다시 말해 보노보 사회의 모습이 모두 장밋빛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사회에서는 경쟁보다 평화가 더 중시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협력하려는 경향은 경쟁하려는 경향과 함께 고려해야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법칙으로부터 이 종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인간과 유인원 사이의 친연성에 관한 드 발의 통찰 또한 범상치 않다. 드 발은 유인원의 언어 능력과 관련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들에게 언어가 있고 없고의 여부가 아니라 “과연 이들이 언어 활동에 필요한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을 갖고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대한 드 발의 답변은 타협의 여지마저 없어 보인다. “과(科)적인 유사성이라는 관점에서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존재한다. 즉 바로 우리가 그들 중의 하나이거나 아니면 그들이 우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일부 삽화의 설명 글에 담긴 출처 표시- “(칼라 시몬스의 원본 그림에 기초한 삽화, 아드리엔 질먼 제공)” “(도널드 요한슨, 『루시의 후손Lucy's child』에 포함된 지도에 기초)” -는 남의 지적 자산을 제대로 인용하는 충실한 사례라 할 만하다.
『The Ape and the Sushi Master』(2001)를 우리말로 옮긴 『원숭이와 초밥 요리사』(박성규 옮김, 수희재, 2005)의 표지와 책등에 붉은 글자로 병기한 “동물행동학자가 다시 쓰는,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문구는 이 책의 부제목으로 봐도 좋다. (영한사전이 ape를 원숭이로 풀이하더라도, 이 책의 맥락을 감안하면, 번역서의 제목은 좀 아쉽다. 원숭이를 ‘유인원’이나 ‘침팬지’로 했으면 어땠을까? 몽키(monkey)는 침팬지가 아니다.)
프놀로그에서 드 발은 자신이 탐구하려는 주제를 분명히 밝힌다. 그것은 “동물이 문화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런 탐구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동물이 문화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문화와 인간의 본성이 양극에 있다는, 시대에 뒤처진 서양의 이원론을 무덤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다.” 드 발은 문화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환경”으로 본다.
이 책은 각기 책 한 권을 쓸 수 있는 큰 주제인 세 가지 쟁점을 하나로 엮었다. 그건 바로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문화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이다.
제1부의 앞부분에서 드 발은 “사고나 감정을 동물에 투영하여 실제 이상으로 인간다운 존재로 파악하려고 하는” ‘의인화’를 작심한 듯 옹호한다. 혹여 있을지도 모를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공통 특징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를 ‘의인화 거부’로 규정하며 비판한다. 연구 대상인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 의인화하는 것은 서구 학계에서 금기로 여겨 왔으나, 연구자가 연구 대상에게 감정이입을 하면 오히려 성과가 더 좋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 책이 앞의 두 권과 다른 점은 드 발이 그의 비판적 지성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강단 마르크스주의와 동류로 보이는 ‘안락의자 영장류학’을 비꼬는 장면도 흥미로우나, 학파와 학자들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히 드러난 대목은 아주 흥미진진하다. 드 발은 로렌츠와 틴베르헨, 그리고 일본의 영장류학자 이마니시 긴지를 적극 편든다.
“로렌츠가 동물을 사랑하는 공상가였다면, 틴베르헨은 체계적이며 신중한 과학자였다.” 드 발은 이마니시 긴지를 영장류 연구의 한 갈래를 이루는 교토학파의 태두로 높이 평가한다. 보노보 연구자인 가노 다카요시도 이마니시의 제자다. 반면에 행동주의 심리학을 창시한 B.F. 스키너는 호되게 비판받는다. 어느 동물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식으로 동물의 개체성을 인정치 않는 초창기 행동주의 심리학파의 태도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한편, 특정 학문의 지도자에 대한 평가에서 후학들의 애증이 교차하는 사례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거명되어 눈길을 끈다. 드 발이 굴드를 보는 시각은 중립적인 것 같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새로운 세대의 다윈주의자들에 의해 부친살해 한 건이 진행 중이다. 표적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진화론 작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그는 너무 오래 현역에 머물러 있어 시대에 뒤처졌고, 심지어는 관점마저도 잘못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술궂은 강연이 행해지고, 야비한 편지가 출판되었다. 그뿐 아니라 ‘우발적 창조론자’의 딱지마저 붙었으니, 누구보다 창조론에 회의적이었던 굴드에게는 최대 모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대가(guru)도 인상적으로 싸우긴 했다.”
굴드의 대응과 논란을 둘러싼 프란스 드 발의 코멘트는 이 책의 101면에서 독자께서 직접 확인하심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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