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를 함께 걸었던 엄마와 아들. 그 여운을 잊지 못해 ‘산티아고 앓이’를 하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동양의 산티아고’라고 불리는 일본 시코쿠로 향했다.
『엄마는 시코쿠』는 일본 시코쿠 순례길을 엄마와 함께 걸으며 써내려간 아들의 여행 에세이이다. 1200년 전 진언종 창시자인 코보 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88개의 절을 순례하는 시코쿠 헨로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삶을 돌아보고 마음을 걸어가는 길이다. 도쿠시마, 고치, 에히메, 카가와·시코쿠의 4개 현을 겨울부터 가을까지 네 계절에 걸쳐 함께 걸으며 마주한 풍경, 사람, 생각들을 기록했다. 88개의 절을 잇는 수많은 길목마다 마주한 풍경과 다채로운 시간들이 어우러지는 문장과 사진, 일러스트가 페이지마다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엄마는 산티아고』 이후 11년 만의 신작입니다. 왜 두 번째 순례지로 일본의 시코쿠를 택하셨나요?
안녕하세요, 엄마는 시리즈의 저자 원대한입니다. 반갑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후에는 저희가 걸었던 ‘프랑스길’ 외의 다른 루트를 걷는 것이 저와 엄마의 새로운 꿈이 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를 따라 걷는 ‘북쪽길’, 세비야에서 출발하는 ‘은의 길’, 포르투갈에서 출발하는 ‘포르투갈길’ 등 매력적인 루트가 많죠. 하지만 제가 졸업 후 일을 시작하면서 한 달씩 서울을 비우는 것이 어려워져 긴 여행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산티아고에서 만난 일본 순례자가 알려준 ‘동양의 산티아고’로 불리는 일본 시코쿠 불교 순례길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이내, 시차도 없는 이곳은 퇴사나 긴 휴가, 휴직 없이도 나누어 걸을 수 있는 좋은 순례길이라 생각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 때 휴가마다 이어서 걸어가던 유럽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우리도 1,200km의 긴 여정을 일정에 맞춰 자유롭게 쪼갤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시코쿠를 선택하게 된 큰 이유였습니다. 또 제가 일본을 오가며 일을 시작하던 시기였고, 엄마 역시 한자와 일본어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행을 떠나던 2017년 즈음에는 저비용항공사(LCC) 취항지가 늘면서 시코쿠 직항편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결국 순례길을 네 개 현(도쿠시마·고치·에히메·카가와), 그리고 네 개의 계절로 나누어 걷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대한 작가님께 ‘순례’는 어떤 의미이신가요? 이번 시코쿠 순례에서는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보통 ‘순례’라고 하면 성지나 사찰을 찾아가 기도하고 수행하는 종교적 행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요즘은 신앙을 넘어, 걷기 자체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내적인 의미를 찾는 여정으로 이해되죠. 저도 느슨한 가톨릭 신자이지만, 산티아고 순례도 시코쿠 순례도 종교적 의례보다는 걷는 과정에서 배운 점이 더 많았습니다. 저보다 느린 엄마의 보폭에 맞춰 걸으며, 다양한 순례자들과 느슨하게 교류하며 여러 삶의 속도에 맞춰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서양미술·서양음악·서양종교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동양’이라는 말 앞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던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불교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사찰들을 살피고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나라와 종교의 순례길에서 같음과 다름, 그리고 ‘달라도 좋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또 산티아고 때는 제가 엄마의 가이드 겸 짐꾼 겸 통역이었지만, 시코쿠에서는 한자에 약한 저에게 엄마가 다양한 정보를 읽어주는 ‘인간 파파고’가 되어주셨습니다. 시코쿠 순례 중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동행이인(同行二人)’인데요,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저희의 순례에서는 이미 엄마와 ‘동행이인’이 되어 든든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엄마와 발맞춰 걸으며, 엄마의 삶과 지혜를 더 많이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시코쿠 순례길은 어떤 길인가요?
시코쿠 순례길은 일본 본섬 네 개 중 가장 작은 시코쿠 섬의 테두리를 따라 1,200km를 걷는 불교 순례길입니다. 일본 불교의 아버지 코보대사(홍법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여정으로, 시코쿠를 이루는 네 개 현을 모두 거치며 88개의 사찰을 들러 다시 1번 절에 도착하면 순례가 마무리됩니다.
네 개의 현은 각각 ‘도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도쿠시마 현은 순례의 시작을 알리는 ‘발심(發心)의 도장’, 고치 현은 바다와 산이 험준해 수행처럼 견뎌야 하는 ‘수행(修行)의 도장’, 에히메 현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보리(菩提)의 도장’, 마지막 카가와 현은 순례를 마무리하며 완성을 상징하는 ‘열반(涅槃)의 도장’입니다. 순례자들은 네 개 현을 가로지르며 발걸음 하나하나를 수행으로 삼고, 그 자체로 삶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되새기게 됩니다.
시코쿠 순례길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면요?
시코쿠 순례길의 정수는 바로 ‘오셋타이(お接待) 문화’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순례자를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코보대사의 현신처럼 여기며, 귤이나 차, 간식은 물론 때로는 식사와 숙박까지 정성껏 내어줍니다. 그래서 순례자는 ‘오헨로상’이라 불리며, 길 위에서 늘 따뜻한 환대를 받습니다. 제 책에는 주민들과 다른 순례자들에게 받은 오셋타이, 그리고 도쿄에서 직접 ‘오셋타이’가 되어 순례길을 찾아와준 친구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전작 『엄마는 산티아고』를 읽으신 분들은 스페인 나바라 지방 이라체 수도원의 ‘무료 와인 수도꼭지’를 기억하실 텐데요. 순례자들이 무료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명소입니다. 그런데 시코쿠에도 비슷한 명소가 있습니다. 카가와현 다카마쓰 공항에는 ‘우동 국물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있어 따끈한 우동 국물이 실제로 흘러나옵니다.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무료로 맛볼 수 있죠. 순례를 시작한 추운 겨울날, 그 공항의 무료 우동국물 수도꼭지가 저희 순례의 첫 오셋타이가 되었습니다.
이번 순례 중 위기의 순간, 한계는 언제였나요?
엄마의 컨디션을 걱정했는데, 정작 위기의 순간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가을 순례 때 빗물에 미끄러져 사찰 입구의 돌계단을 구른 것이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밤이 된 산중에서 하산조차 어려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죠.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웃음)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우리가 순례자일까?’라는 질문이 위기였습니다. 자전거로 순례하기도 하고, 로프웨이로 하산하기도 했죠. 무더운 여름에는 렌터카를 빌려 이동하면서 ‘순례는 반드시 두 발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절버스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고 사찰에 들어가는 노인 순례자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순례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정하는 것이라는 걸요.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서 걷든 결국 중요한 건 마음먹기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습니다.

시코쿠 여행 하면 떠오르는 게 많지만, 고치현은 ‘호빵맨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더라고요. 순례 중에 호빵맨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고치현은 ‘호빵맨’의 창작자 야나세 다카시의 고향입니다. 순례 중 우연히 호빵맨 모양의 빵을 사 먹으면서 그의 철학을 떠올렸습니다.
호빵맨은 힘이 세지도 않고, 얼굴을 떼어 주면 전투력까지 잃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자기 얼굴을 내어주는 희생을 통해 ‘헌신이야말로 진정한 정의’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또 야나세 선생이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호빵맨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저 역시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나아가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순례길에서 우연히 사 먹은 빵 하나가 만화가의 철학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제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이 길이 준 소소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덕분에 ‘앙팡맨 뮤지엄’을 찾아 하루 순례 오프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이야기도 책에 담겨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시코쿠 순례길에서 다른 점이 있으셨다면요?
우선 산티아고 순례길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출발해 스페인 서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다양한 루트를 일컫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각자의 출발지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 특별한 경험이죠. 반면 시코쿠 순례길은 1번 절에서 시작해 88번 절까지 들른 뒤, 다시 1번 절로 돌아오는 순환형 구조의 하나의 루트입니다. 목적지가 제자리이기 때문에 걷는 길은 원을 이루고, 어디서 멈춰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서양의 목적지 중심 사고와 동양의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다른 순례자들과의 교류입니다. 산티아고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과 도미토리에서 묵으며 함께 걷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는데요. 시코쿠 순례길은 95%가 자동차로 순례하기 때문에 길 위에 사람이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인사만 나누며 각자의 사색 속에 걷습니다. 숙소도 도미토리가 아닌 민박이나 템플스테이의 개인실, 가족실을 이용하기 때문에 교류가 적습니다. 대신 그 시간이 나의 사색으로 채워지는, 조금 더 조용한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난이도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초반의 피레네 산맥, 중반의 메세타 평원, 후반의 칸타브리아 산맥 등 몇몇 구간만 어렵고 나머지는 비교적 완만합니다. 반면 시코쿠 순례길은 사찰 대부분이 산속에 위치해 전 구간이 오르내림의 연속입니다. 특히 ‘헨로 고로가시’라 불리는 험한 구간이 여러 곳 있지만, 그조차 이 길의 특징이자 매력이 되었습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요?
유독 짧아진 가을이 아쉬운 요즘입니다. 함께 발맞춰 걷기 좋은 이 계절에, 소중한 사람과 집 앞 공원부터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출퇴근길의 평범한 길도 마음먹기에 따라 마법 같은 순례길이 될지 모릅니다.
시코쿠 순례길을 다녀온 지 벌써 7년이 지났네요. 저도 다시 시간을 내어 엄마와 계속 걸어보려 합니다. 앞으로도 ‘엄마와 함께하는 순례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