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홍아 이리 와 봐 사진 찍자. 오늘 너무 멋있게 하고 온 거 아니야?”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장난스러운 어조로 ‘찬홍이‘를 찾는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채웠다. 여기서 말하는 ‘찬홍이’는? 뮤지컬 <빨래>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랭보> <렛미플라이> 등 다수의 뮤지컬에서 음악을 쓴 바로 그 민찬홍 작곡가다. 그렇다면 이 오랜 경력의 작곡가를 이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학 시절 <빨래>를 함께 만든 추민주 연출가와 서나영 배우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로 만나 <빨래>의 시작을 함께하고, 어느덧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을 이어오고 있는 세 사람. 각자의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겨온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마음속 타임머신은 재빠르게 시간을 돌려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한예종 재학 시절로 그들을 소환했다. <빨래>에 관한 기억을 꺼낸 추민주 연출가, 민찬홍 작곡가, 서나영 배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 분이 함께 촬영하는 건 처음일 텐데,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20년의 세월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걸까요.
서나영 공연을 준비할 때는 ‘연출님’, ‘작곡가님‘ 하면서 깍듯하게 대하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셋이 모이니까 정말…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계속 장난을 치게 되네요. (웃음)
추민주 오늘은 우리 둘이 합심해서 찬홍이를… (웃음) 찬홍이가 평소에는 약간 접근하기 힘든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민찬홍 전혀 그렇지 않고요. (일동 웃음) 오늘 촬영 분위기 재미있게 해주시려고 두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웃음)
<빨래>는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공연으로 시작했어요.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정식 초연을 올렸고요. <빨래>가 시작되던 때를 돌아보면 어떤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추민주 그때는 처음이니까 프로덕션 노트를 정말 열정을 다해서 썼거든요.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때 정리해 두었던 프로덕션 노트를 다시 펼쳐봤는데,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요. ‘2003년 7월 서나영 섭외.‘ 그러니까, 대본도 아직 안 쓰고, 정확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서나영 배우 먼저 섭외한 거예요. (웃음) ‘이 친구랑 뭐가 됐든 공연을 할 거야. 서나영이랑 함께 할 때가 제일 재미있고, 4년 동안 함께 공부해 온 내 동기랑 마무리를 하고 싶으니까!’ 그게 저의 첫 번째 기억이에요. 그래서 <빨래>의 주인공 이름도 서나영이 됐고요. 사실 졸업 공연으로 창작 공연을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특히 저는 제가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했으니 해내야 할 일이 정말 많았어요. 바쁜 와중에 연습실에 항상 같이 있으면서 노래를 만들어 주고, 배우들 이야기를 들어준 민찬홍 작곡가, 그리고 서나영 배우. 이 두 친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공연이었어요.
서나영 그때는 창작 뮤지컬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시절이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작품이 만들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냥 추민주 연출과 졸업 작품을 같이 하기로 한 것, 그리고 추민주 연출이 뭔가를 가져왔길래 그걸 열심히 한 것. 그 두 기억이 남아있어요. 그때는 모든 게 다 처음이었고, 다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특히 <빨래>가 장면 전환이 굉장히 어려운 공연이거든요. 이렇게 전환이 많은 공연을 하는 게 처음이었어서, 실수 없이 잘 해내기 위해 정말 많이 긴장했던 기억이 나요.
추민주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어요. 그 당시에 학교 안에서 소화해야 할 프로젝트가 정말 많았어요. 일주일에 4시간 자면 다행일 정도로요. 수업이 끝나면 다음 수업 전까지 밤새 장면 쓰고, 연습하고…. 심지어 졸업 공연은 준비 기간이 6주를 넘으면 안 됐어요.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서 민찬홍 작곡가에게 11월 25일에 작곡을 부탁했어요. 공연이 12월 17, 18일이었는데요. 제가 부탁하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나요. 석관동 골목길에서, ’찬홍아 네가 할 수 있겠니?‘ 물어봤더니 찬홍이가 ’네.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러는 거예요. 캬아. (웃음) 사실 부탁할 때부터 걱정은 안 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니까 한시름 확 놓게 되더라고요. 그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30일 날, 5일 만에 첫 노래가 나옵니다. 처음 나온 노래가 뭐였는지 아세요? 놀라지 마세요. ‘참 예뻐요‘랑 ‘빨래‘. 다 같이 모여서 그 두 노래를 듣는데, 다들 엄청 많이 울었어요. 너무 아름다워서요. 오래된 마룻바닥과 큰 창이 있는 연습실에서, 그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서, 작곡가는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하고, 배우들은 피아노를 둘러싼 채 노래를 듣고 있는 순간. 그때 ’아, 이게 우리의 시작이구나.‘ 싶었어요.
민찬홍 제안을 받고 너무 함께하고 싶었어요.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뮤지컬 창작을 많이 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저도 개인적으로 조그맣게 작업을 해나가던 시절이었고, 민주 연출님의 작품도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민주 연출님의 졸업 작품에 내가 곡을 쓴다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안을 받자마자 하겠다고 큰소리는 쳤는데, 시간이 너무 없더라고요. (웃음) 그때부터 집에 갇힌 채로 곡을 쓰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참 예뻐요’와 ’빨래‘는 일필휘지로 빠르게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노래가 7곡 정도만 들어가서 공연 전에 다 쓸 수 있었어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나 ’슬플 땐 빨래를 해‘ 같은 곡들이 그 당시에 만들어졌어요. 저는 공연할 때가 기억에 참 많이 남아요. 예산이 많지 않으니 제 키보드 직접 가져가서 연주하고, 전문 세션이 올 수가 없으니 기타 칠 줄 아는 연출가 형에게 부탁해서 그 형이 기타 쳐주고, 드럼 연주자도 없어서 타악기 연주하는 친구 섭외해서 드럼이 아니라 장구를 치게 하고. (웃음) ‘서울살이 몇 핸가요’를 장구 장단과 함께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졸업 공연으로 창작 뮤지컬을 공연한다는 게 독보적이기도 했고, 학교 내에서 재밌다고 소문도 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러왔어요. 공연 끝나는 날까지 즐거웠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졸업 공연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렀어요. <빨래> 20주년에 다시 만나니 기분이 어떤가요.
서나영 두 사람이야 창작진으로서 계속해서 <빨래>와 함께해왔지만, 저는 정말 오랜만에 <빨래>를 만나는 거라 감회가 새로워요. 졸업 공연 이후 2009년 5차 프로덕션에서 희정엄마 역을 맡았었고, 이번 시즌에 주인할매 역을 맡아서 오랜만에 함께하는 거거든요. 요즘 매 순간이 벅차고 감동적이지만, 제일 울컥했던 순간은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예요. 오디션장에 두 사람을 포함한 창작진분들이 쭉 앉아 있는데, 힘든 환경 속에서도 긴 시간 동안 저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었던 내 동료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워서 눈물이 났어요.
오디션장에 들어서는 나영 배우를 본 두 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추민주 대문자 T처럼 생각했죠. ’똑바로 해라.’ (웃음) 오디션에서는 이 배우가 이 작품과 잘 맞는지, 작품 안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는데, 그 똑같은 기준으로 서나영 배우를 바라보는 일이, 배우 대 연출가로 만나는 그 긴장감이 짜릿하더라고요. 이 사람과 친하다고 해서 어떠한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오디션을 계속 보게 했어요. 시키고 또 시키고. 오히려 그게 내가 친구한테 할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민찬홍 서나영 배우뿐만 아니라, 이번에 유독 지난 시즌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새로운 캐릭터로 오디션에 지원하는 케이스가 많았어요. 사실 저희와 오랜 시간 함께 공연한 만큼 친하고 돈독한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배우들과 다를 바 없이 열심히 준비하고, 동일한 과정으로 오디션에 참여하는 모습이 되게 멋지더라고요.
자신의 이름을 딴 캐릭터가 이렇게나 오래도록 생명력을 가진 채로, 어떻게 보면 ‘사회 초년생의 대명사’가 되어 무대 위에 살아있다는 게 배우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서나영 정말 감사하고… 그만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주인할매 라는 역할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정확히 나를 보고 만든 캐릭터는 아니겠지만, 저와 비슷한 지점도 많다 보니 나영을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추민주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서나영 배우는 언제나 용기 있고,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캐릭터여서 제가 많이 의지했던 친구예요. 그런 면모를 작품 속 나영에게 투영했죠.
민찬홍 예전에 나영 배우님이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힘든 일이 있으면 ‘나는 <빨래>의 나영, 그 서나영이야!’ 이렇게 되새긴다고요. (웃음)

저도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10년 만에 다시 <빨래>를 봤는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연을 보기 전에는 ‘이 작품이 지닌 메시지가 이 시대의 관객에게도 여전히 유효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있었거든요. 근데 첫 번째 넘버인 ’서울살이 몇 핸가요?‘를 듣는 순간, ‘우문이었구나’ 싶었어요. 작품이 지닌 위로와 공감이 매 장면 직관적으로 와닿았거든요.
추민주 대학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잠깐 했었어요. 그때가 IMF 직후여서 주변에 부당해고가 남발하던 때였어요. 그 일 잘하던 선배들이 말도 안 되게 잘려 나가는 걸 보면서 ‘현실이 이런 건가?’ 싶더라고요. 그럼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한예종 연극원에 들어갔죠. 그 당시에 제가 보고 느낀 것들이 아마 대본을 쓰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서울 생활을 하면서 솔롱고 같은 여러 인물도 만났고요. 그런데, 요즘의 저는 나영이나 솔롱고 같은 기분보다는 희정엄마의 기분을 많이 느껴요. 사실 최근에 결혼을 했거든요. 저는 그냥 내 방 하나 차지하고 살면 족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문득 ‘내가 희정엄마가 됐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삶이 참 이런 처지도 되고 저런 처지도 되는구나 싶었어요. 정말 오랫동안 나영이의 삶을 살다가, 희정엄마의 삶을 살게 된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 작품 안에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서나영 요즘 공연을 하면서도 나영이 대사에 공감할 때가 많아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니’ 싶은 순간도 있고, 철퍼덕 주저앉아서 울고 싶을 때도 있고. 꼭 나영이처럼 20대 후반에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들고,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미역국 한 그릇 끓여 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고, 문득 엄마 물김치 생각날 때가 있는 것처럼.
민찬홍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나영, 솔롱고의 입장에 많이 이입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저를 돌아보고, 제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하면서 희정엄마나 주인 할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또, 최근에는 부당한 대우를 하는 빵 사장의 모습을 보면서 임금 체불이나 계약상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동료, 후배들을 생각하기도 하고요. 요즘에는 유독 제일서점 남직원 캐릭터가 눈에 띄어요. 교활한 캐릭터인데, 너무나도 내가 아는 누군가인 거예요. (웃음)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겹쳐 보여서 화가 나더라고요. 이렇게 점점 다양한 인물에게 이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빨래>의 배경은 작품이 쓰인 2000년대 초반의 서울 같을 때도 있고, 어떤 장면에서는 현재의 서울 같을 때도 있어요. 이 모호함이 오히려 <빨래>가 세대를 관통하는 위로를 줄 수 있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추민주 작품의 근간이 되는 삶의 양식이 ‘비접촉’이 아니라, ‘접촉’이에요. 말하자면 코로나 이전의 삶이죠. 그런데 그런 삶의 양식이 바뀌는 순간 <빨래>가 담고 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바뀌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금 섞어뒀죠. ‘맞아요, <빨래>는 ‘접촉하던’ 때의 삶의 양식을 다루는 작품이에요.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라는 마음으로요. 다만,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굳이 현재의 요소를 섞지 않아도 ‘이 작품은 코로나 이전의 삶의 양식이 남아있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듯해요.
세 사람에게 <빨래>는 어떤 의미인가요.
서나영 지금의 저에게 <빨래>는 프라이드예요. 내 자랑. 작품 초기에는 그저 내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내느라 이 작품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빨래>가 제 곁에 늘 저의 자부심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추민주 <빨래>에 관한 인터뷰를 안 한 지 꽤 됐어요. <빨래>는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존재인데,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해진 답만 말하게 되는 기분이 들고, 어느 순간에는 거짓말하는 기분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인터뷰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좋다고 대답했어요. 20주년에, 오래된 동료들과 함께 <빨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기분이 좋을 것 같았고, 그게 저한테도 좋은 일일 것 같았어요. 사실 저는 저에게 좋은 일을 잘 하지 못하면서 살아왔어요. 워커홀릭이어서, 제 일상을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거든요.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빨래하는 시간도 아깝고…. 근데 <빨래>에는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적어놨잖아요? 이번에 <빨래>를 다시 돌아보면서, 이제 내게도 그 일상의 시간이 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한 마디로, <빨래>는 남들한테 그만 말하고 싶을 정도로 소중한 작품이면서, ‘근데 내가 자랑하지 않으면 또 누가 자랑해?’ 싶은. 그런 작품이에요. (웃음)
민찬홍 너무 오랜 시간 함께해왔기에 짧게 요약하기가 어렵지만, 제게 <빨래>는 인생 그 자체예요. <빨래> 덕분에 젊은 나이에 뮤지컬 작품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고, 운이 좋게도 그 이후로도 작곡가로서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죠. <빨래> 덕분에 인생을 배웠다는 생각을 해요. <빨래> 덕분에 처음 해보는 일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거든요. 제 성장의 과정을 함께한 작품, 인생을 배울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빨래>가 20년 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20년을 걸어 온 만큼, 앞으로 다가올 20년에 대한 기대도 큽니다.
추민주 무엇보다, 배우들이 이 작품을 너무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니 작품 속 이야기에 자신들의 모습을 많이 투영해요.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경험을 인물에 녹여내서 연기를 정말 열심히 하죠. 예전에 주인할매 역을 맡았던 이정은 언니가 이런 말을 했어요. “<빨래>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야. 우리가 연기를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노동이잖아. 우리가 이 노동을 절실하게 열심히 하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다면 이 작품은 빛날 거야.“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해요. 배우들의 그 절실한 마음이 곧 관객분들이 <빨래>를 20년 동안 사랑해 주시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서나영 사실 <빨래>처럼 오랜 시간 사랑받은 작품은 크게 준비를 하지 않아도 잘 흘러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연습하면서 보니, 창작진들이 마치 초연을 올리는 듯한 열정으로, 정신을 바짝 차린 채로 공연을 준비하더라고요. 창작진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으니 배우들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든, 그런 열정만 남아 있다면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해요.
민찬홍 앞에서 말했듯이 이번 시즌에 유독 지난 20년간 활약했던 배우들이 다시 참여한 경우가 많다 보니, 이번 31차 프로덕션의 첫 공연을 모니터하는데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11월에 열리는 20주년 기념 콘서트에도 <빨래>와 함께했던 역대 출연진이 정말 많이 출연할 예정이라서, 그때도 또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이번 콘서트에서는 새로운 편곡을 하는 등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많이 보여드릴 예정이거든요. 이렇게 <빨래>의 또 다른 색깔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도 더 주어진다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오페라의 유령>이나 <레 미제라블>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이 작품이 오랜 시간 사랑 받아서 ‘한국에는 <빨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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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뮤지컬 전문 매체 <더뮤지컬> 기자. 좋아하는 건 무대 위의 작고 완벽한 세상.
표기식
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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