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위키는 필요악이다.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고 수정하는 일종의 참여형 인터넷 백과사전인 나무위키는 소위 ‘애니 프사’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서브컬처 친화적 남성 사용자 그룹을 중심으로 편향된 정보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어 여러 SNS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예컨대 ‘나무위키 꺼라’ 같은 밈이 대표적이다. ‘꺼라위키’, ‘꺼무위키’ 같은 파생을 낳은 이 밈은 검증되지 않은 데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사견을 마치 ‘팩트’인 양 제시하는 나무위키에 의존하는 경향을 지적하기 위해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굳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나무위키가 구글 검색 결과 상단에 뜬다는 사실 때문에 나무위키에 접근하기란 비교적 너무 쉽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을 고려하자면 레포트에 ‘출처: 나무위키’를 써놓은 대학 신입생에게 굳이 탄식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그냥… 쉬운 길을 갔을 뿐이다. 더욱이 국내 한정 인터넷의 사건사고와 밈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무위키만 한 자료 보관소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당장 ‘나무위키 꺼라’를 검색하면 나무위키는 이 밈의 기원과 영향에 대해 다소 불필요할 정도로 길게 알려준다.
나무위키는 실존 인물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과 가짜 정보를 방치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뿐만 아니라 나무위키 커뮤니티 ‘아카라이브’는 성착취물 공유와 유포의 온상으로 알려지며 언론 보도를 타기도 했다. 이러한 평판에도 불구하고 나무위키는 일종의 역전된 ‘리버스’ 백과사전으로 활발하게 기능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백과사전은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따위의 과학과 자연 및 인간의 활동에 관련된 모든 지식을 압축하여 부문별 또는 자모순으로 배열하고 풀이한 책”이라는 뜻이다. 나무위키는 정확히 그 반대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전혀 지식이 되지 못할 지식만이 나무위키에 등록된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견의 분리는 나무위키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7,431,510개에 달하는 항목 속에서 정보는 취소선과 괄호 범벅의 ‘썰’로 전락한다.
나무위키의 존재 자체가 지금까지의 백과사전이 누렸던 권위에 대한 모독이자 복수다. 혹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그렇다. 나는 이따금 나무위키의 ‘아무 문서로 이동’ 버튼을 누르고 정말 누가 무슨 이유로 개설했을까 싶은 조잡스러운 항목들을 구경한다. 아무 짝에 쓸모없는 ‘불쉿’ 정보를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대체 이걸 왜 알아야 되지?” 평생 알 필요도 없고 심지어 알 가치도 없는 대상에 대한 지극히 편견에 가득 찬 지나치게 구체적인 정보를 읽는 건 정말이지 시간 낭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리버스’ 교양에는 뇌를 물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확실히 말하건대 나는 나무위키 옹호자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드 커버에 금박 제목을 두른 양장 제본의 백과사전을 간단히 CD-ROM으로 대체하던 시점에서 이미 지식과 교양의 민주화, 나쁘게 말하면 ‘불싯화’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게 내 의견이다. 나의 엄마는 1990년대 중반 서적 외판원으로 뛰며 백만 원이 훌쩍 넘던 27권짜리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을 공부 욕심 좀 있다는 ‘선생들’ 집에 몇 질씩 겨우 팔아 영업 실적을 냈다. 당시 중산층에게 세계 시민과 보편 교양에 대한 열망은 정확히 백과사전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 말에 따르면 “CD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시기”가 왔다. 비싸고 무겁고 자리 깨나 차지하는 백과사전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정보화 강국’을 구호로 내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인 전국적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금방은 아니지만 곧 700MB의 자료를 담을 수 있는 은색 원반 또한 ‘필요가 없어지는’ 때가 온다.
조선시대 책쾌 조신선이 소매 안에 무려 70권의 ‘샘플’을 넣고 다니며 판매했다는 허풍 같은 일화는 IMF 직전까지 건재했던 서적 외판원에게도 해당된다. 엄마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 총체적 지식 그 자체인 백과사전을 모시고 다니기 위해 면허를 땄다. 나에게도 엄마가 월부로 사준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이 있었다. ‘서태지’를 최신 항목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홍보 전략으로 쓰던 그 백과사전은 지금쯤 책의 무덤에서 나무위키의 ‘아무 문서로 이동’ 버튼을 연타하는 나를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보의 ‘급’이 나누어져 있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백과사전은 고급 인력의 선별과 해설을 거친 고급 정보로 입장하는 특별 전용 티켓이었다. 단지 정보 접근 권한뿐만 아니라 이른바 교양 시민으로서의 공통 감수성 또한 매개하고 유통했다.
천종환, 전종현의 『대한민국 독서사』에는 다음의 구절이 나온다. “1960~80년대 도시 중산층 가정의 ‘책 읽는 아이’는 부모가 사서 쟁여둔 ‘전집’ 덕분에 길러졌다.” 물론, “그런 전집을 가정과 회사에 보급한 것은 외판원들이었다.” 돌고 돌아 백과사전이 아니라 실은 엄마가 나를 길렀다는 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는 과잉 정보로 인한 만성 소화 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새천년’에 들어선 2000년대 초반 신세계를 접한 듯이 게걸스레 인터넷으로 정보를 긁어모으던 시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더는 인터넷에 경이를 느끼지 못한다. 주식 리딩방을 제외하고 모든 정보는 평등하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단지 정보가 일으키는 노이즈만이 중요하다. 나무위키와 같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방치형’ 인터넷 백과사전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가설은 ‘팩트’로 굳어진다. 놀랍게도 우리는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이라는 구식 보편 교양을 팔아 치우고 그 대가로 나무위키를 받은 모양이다. 물론 지금 내가 편찬 위원회를 둔 백과사전의 선별 시스템을 그리워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무위키나 백과사전이나 배제의 논리를 존재 근거에 둔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결코 전체를 포괄하지 못한다. 반드시 잉여가 발생한다. ‘모든 지식’에 포함되지 못할 ‘나머지 지식’이라는 잉여가.
처음부터 백과사전이 지향하는 ‘모든 지식’ 자체가 ‘나머지 지식’의 삭제와 무시라는 희생의 대가였다.1 그렇다면 나무위키도 ‘브리태니커’도 아닌 다른 백과사전은 과연 어떻게 가능할까. 영화 <말콤 X>(1992)에서 교도소에 수감된 말콤 X는 동료 수감자의 권유로 영어사전의 A부터 Z까지 읽으며 세상 공부를 한다. 그가 최초로 사전에서 찾게 되는 단어는 흑인을 가리키는 ‘Black’이다. ‘음흉한’, ‘어두운’, ‘더러운’과 같이 모든 의미가 부정적으로 쓰여 있다. 반대로 백인을 가리키는 ‘White’를 찾자 이번에는 모든 의미가 긍정적으로 쓰여 있다. 이 장면에서 사전은 갑작스럽게 지식의 매체가 아닌 인종 차별의 경전처럼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후 그는 적의 언어를 그의 죄목처럼 절도하고 흑인 인권 운동가로 거듭난다. 여기서 관건은 ‘나머지 지식’의 회복을 위한 ‘모든 지식’의 사용이다. 나는 오직 이런 규칙을 따르는 미래의 불가능한 백과사전을 상상한다.
1 이 지점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나머지 지식’을 주제 삼아 일종의 대항 백과사전을 제작하려 시도한 페미위키(femiwiki.com)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대한민국 독서사
출판사 | 서해문집

이연숙(리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 2015 크리틱엠 만화평론 우수상, 2021 SeMA-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진격하는 저급들』, 『여기서는 여기서만 가능한』, 『아빠 소설』이 있다. 공저로 『당신은 피해자입니까, 가해자입니까』, 『크래시 – 기술·속도·미술시장을 읽는 열 시간』, 『미친, 사랑의 노래』, 『퀴어 미술 대담』이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hotleve를 운영한다.
srbin94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