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 대하소설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
결국 ‘좋은 정치’가 행해져야 나라의 역량을 모을 수 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확고한 교훈이죠.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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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은 고려가 국운을 걸고 맞섰던 결전의 대서사시 ‘구주대첩’을 복원한 기록이다.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피란길에 오르던 그 겨울, 고려는 끝난 듯 보였다. 하지만 혼란의 중심에서 젊은 왕 현종은 흔들리는 백성과 조정을 끌어안으며 진정한 통치자로 성장해간다. 그는 도망친 군왕이라는 오명을 딛고 스스로를 회의하면서도 끝내 공동체의 책임을 짊어진다. 구주대첩은 단지 승리한 전투가 아니다. 유민이 되고 피난민이 되어서도 살아남고자 했던 백성들의 의지, 패배를 감수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은 관료들의 판단, 그리고 칼을 들고 전장을 누빈 무수한 장수들의 싸움이 빚어낸 생존의 기록이다.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인가요?

우리나라의 소설 중에 대하역사소설은 매우 드문 편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소설을 좋아해서 이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죠. 혹 있더라도 대개 슬픔의 정서를 중심축으로 놓은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모두 훌륭한 소설들이어서 읽으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저 역시 그랬고요. 그런데 저는 좀 다른 관점에서 쓰고 싶었어요. 슬픔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기억을 중심축으로 하는 소설을 말이죠. 위기가 닥쳤을 때,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여 극복해내는 이야기 말입니다.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저의 서술 방향에 딱 부합하는 소재였어요. 그래서 이런 역사적 사실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소설로 만들어 여러분께 소개하고 카타르시스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구주대첩’은 교과서에선 짧게 소개되지만, 이 책에서는 오히려 그 앞뒤의 시간과 공간이 더 강조된 듯합니다. ‘결정적 전투’보다 ‘전쟁의 구조’를 조명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임진왜란 같은 경우에는 역사 기록도 풍부하고 연구 성과도 대단히 많기에 교과서에 발발이유나 과정 등이 꽤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주대첩의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사건임에도 기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과서에 지나가듯이 너무 짧게 서술되어 있어요. 사실 기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죠. 구주대첩의 주요 지역이 대부분 북한에 있어요. 연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남한 역사학계에 연구자가 별로 없어요. 연구가 되어 있지 않으니 교과서에 자세히 실릴 수 없는 것이죠. 소설이 역사 논문이나 교과서는 아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전쟁의 구조를 서술해서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전쟁의 구조 안에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죠.

 

강감찬은 흔히 민족 영웅으로 기억되지만, 이 책에서는 군대 지휘와는 거리가 먼 문관에서 전략가로, 다시 실제 전투를 지휘하는 장수로 변화하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작가님이 바라보는 강감찬은 어떤 존재인가요?

정말 독특하고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강감찬은 36살에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 이후로 강감찬에 대한 기록은 26년 후, 그러니까 62살의 나이에 ‘정4품의 예부시랑’이라는 관직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교육부 차관’ 정도의 자리죠. 그런데 이 당시 과거시험 급제자들이 ‘정4품’이 되는 데는 보통 10년 정도 걸립니다. 강감찬은 굉장히 느린 편이죠. 마치 회사에서 승진이 잘되지 않는 ‘만년 부장’ 느낌의 관료였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 강감찬은 잘나가는 관료가 아니었죠. 이후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게 되고(1010년 2차 침공), 거란군은 당시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옵니다. 거란군을 막을 병력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고려 신하들이 현종에게 항복을 권유하죠. 그렇지만 강감찬만이 항전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자고 현종에게 말하죠. 현종은 강감찬의 건의를 받아들여 항전을 결심하며 전라남도 나주까지 몽진을 갑니다. 이후 강감찬은 현종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인이 말한 대로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게 되죠. 강감찬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면 앞뒤를 재지 않고 그 길을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설 속에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은 매우 즐겁고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번 하권에는 거란군이 재침공하며 흥화진 전투, 수공 작전, 추격전 등 비교적 덜 알려진 장면들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집필하며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사료가 있었을까요?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요소는, 전 작품인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의 주인공인 ‘양규’였습니다. 양규는 회군하는 거란군을 정말 미친 듯이 공격하는데, 소설을 쓰면서도 양규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겨우 2천 명의 병력으로 수십만의 거란군을 섬멸시킬 듯이 달려드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을 쓰면서 양규의 의도를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거란군은 바로 고려를 재침공하려고 하지만 양규에게 당한 피해를 대강이라도 회복하는 데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양규는 알고 있었던 것이죠. 자신이 거란군에 피해를 주면 줄수록 고려가 더 안전해진다는 사실을요. 양규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헌신에 새삼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는 강감찬의 파격적인 전술입니다. 당시 광활한 초원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거란은 ‘말’이라는 운송 수단을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흔히 이러한 민족을 ‘유목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우리나라와 같이 농사를 주로 하는 민족을 ‘농경민’이라고 하고요. 유목민들이 농경민들보다 당연히 기동력이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유목민들은 우세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전술을 사용하게 되고, 기동력이 약한 농경민들은 성곽과 같은 거점을 이용하여 유목민들을 상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강감찬은요! 그런 상식을 뒤엎습니다. 기동력으로 거란군을 압박하죠. 어떻게 압박하는지는 『고려거란전쟁: 구주대첩』에 자세히 묘사해놓았습니다. 

 

전쟁사 속에 담긴 고려 조정의 회의, 지방 세력의 결집, 외교 전략 등 정치·사회적 맥락도 중요한 축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한 '전쟁기'를 넘어선 서술을 의도하신 걸까요?

‘전쟁’이라는 것은 단순히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행위죠. 전쟁을 통해, 상대를 이기거나 적어도 존립을 보전하려면 강한 군대가 있어야 합니다. 군대가 강하려면 잘 훈련된 병사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잘 먹이고 좋은 병장기를 지급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국가의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만큼 국가 재정이 튼실하고 잘 분배되어야겠죠. 만일 국가 정치가 부패하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좋은 정치가 행해져야 가능합니다. 현종이 좋은 정치를 펼치려는 뜻을 품어 좋은 신하들을 등용하고, 그 좋은 정치에 감응하여 주체적인 역량을 발휘하는 백성들의 총합! 그것이 고려를 승리로 이끌었고 향후 평화기를 가져왔으며 문화·경제적 중흥기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려가 현대 한국의 근간이 되었죠. 그걸 보여주려고 의도했습니다. 

 

구주대첩의 전개와 결과는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고려의 전략과 선택에서 지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역사는 계속 반복되어 왔습니다. 구주대첩 후에도 외적의 침입은 계속 있어 왔죠. 그중 전개 양상이 아주 비슷한 것은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조선시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등입니다. 구주대첩 200여 년 후에 몽골이 침입하는데 고려는 못 막아냈죠. 더구나 거란은 자신들의 국력을 총동원해서 고려를 멸망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몽골은 모든 국력을 동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보낸 병력도 거란보다 훨씬 적었어요. 못 막아낸 이유는, 당시 고려는 무신집권기로 중앙 정치가 엉망이었습니다. 무신정권의 집권자들이 몽골군을 막으러 가는 장수에게 정예병을 주지 않아요. 허약한 병력만을 주어서 보내죠. 정예병을 주지 않은 이유는 혹시 반란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서였죠. 이러니 몽골군에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은 청나라 군대를 막아낼 역량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내부적으로 정치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조선의 북방 방어를 맡은 ‘이괄’이 난을 일으키고 스스로 자멸하고 맙니다. 결국 ‘좋은 정치’가 행해져야 나라의 역량을 모을 수 있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확고한 교훈이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좋은 정치’가 어떻게 성립되고 펼쳐져야 할지는 저도 계속 고민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독자들이 이 책에서 꼭 발견해주셨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요?

어릴 때 집에 ‘삼국지’가 있었는데요. 한 10번 이상 읽은 것 같아요. ‘초한지’, ‘열국지’ 등도 아주 좋아해서 몇 번씩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90년대 초에는 일본 문화가 정식으로 수입되어, 일본의 인기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 등 일본의 역사소설도 재미있게 읽었죠. 저처럼 이런 종류의 역사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드립니다. 또한 사극이나 역사 웹툰, 웹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추천합니다. 역사콘텐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제 소설을 재미있게 읽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조금씩 확장하다 보니, 모든 한국인께 추천드리고 싶어지네요. 하하하. 우리와 문화적·생물학적으로 연결된 멋진 역사상의 인물들을 접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니까요. 제 소설에서 독자님들이 꼭 발견했으면 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역사 웹툰이 있는데요. 어떤 장면에서 몸에 전율이 솟는 감동을 느꼈어요. 그래서 나중에 웹툰 작가님을 만났을 때 제 감동을 말씀드렸더니, 제가 그 장면에서 감동받을지 모르셨더군요. 하하하. 제 소설을 읽으시며 자신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감동을 꼭 발견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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