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성혜령 “실패에 익숙해지는 중이에요”
성혜령 작가의 ‘처음과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글 : 채널예스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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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젊은 작가 특집 

예스24는 매년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를 찾습니다. 올해는 20명의 작가를 후보로 6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젊은 작가 20인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볼까요?



작가님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첫 책은 무엇인가요?

첫사랑인 책들이 너무 많아서, 제가 기억하는 첫 책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저는 어린아이들이 많지 않은 시골에서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저의 윗집, 위 윗집에 살던 언니들이랑 놀았어요. 저랑 한 살, 두 살 차이 나던 언니들이었는데, 언니들이 먼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혼자 남겨졌죠. 그때 알아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면 좋았겠지만, 저는 엄마한테 놀아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엄마가 저랑 놀아주기 귀찮을 때마다 책을 읽으면 시간이 잘 간다고 반강제로 설득했어요. 햇볕 드는 마루에 앉아서 대문 밖을 기웃거리며 언니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길, 혹은 제가 빨리 커서 학교 갈 나이가 되길 기다리며 책을 읽었던 기억이 제 최초의 독서 경험인 것 같아요. 

 

그때 읽은 책은 저보다 열 살 많은 친척 언니네에서 물려받은 고풍스러운 그림체의 세계 명작 동화 시리즈였어요. 돌이켜 보면, 내용은 그다지 고풍스럽지 못한 게 많았어요. 왕비였던 언니가 죽자, 왕이 동생을 부인으로 맞이하려 해 동생이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쓰고 도망을 간다는 이야기인 ‘당나귀 가죽을 뒤집어쓴 소녀’, 난쟁이의 이름을 맞히지 않으면 심술궂은 난쟁이가 매일 밤 나타나서 물건을 하나씩 빼앗아가다 결국 아기까지 가져가게 되어, 필사적으로 난쟁이를 따라가 이름을 엿듣고 난쟁이를 죽이는 동화… 저는 다들 어릴 때 이런 동화를 읽고 자라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를 아는 친구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이 무섭고 잔혹한 동화들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첫 책을 출간하기 전에도 많은 이야기를 써오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최초의 습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소설이란 형식의 글을 대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써봤어요. 병원 생활을 하느라 입학도 또래에 비해 삼 년 정도 늦었고요. 그러니까 한 스물서너 살 무렵 첫 소설, 아니, 소설 비스름한 어떤 글을 써본 거죠. 문예창작과에는 예고 출신인 친구들도 있었고, 백일장에 다니던 친구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조금 조급했던 것 같아요. 저만 너무 미숙할까 봐요.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 첫 소설을 쓰기 전에, 어떤 걸 쓸까, 어떻게 쓸까, 이런 기술적인 고민보다, 내가 과연 원고지 80매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이었어요. 처음이다 보니, 그 많은 분량의 글을 써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죠. 그래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았습니다. 제목이 (부끄럽게도) ‘섹스비디오 그리고…’였고, 한 교사가 학생이 PDP로 불법 녹화된 듯한 포르노 영상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 압수해요. 그런데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이 자신이고, 의식이 없는 자신을 강간하고 있는 사람이 남편이란 걸 알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다시 보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썼지, 싶은데, 또 지금 제가 쓰는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세계가 뒤바뀌는 인물이라든지, 친밀한 사람에게 배신당하게 되는 설정이라든지요. 처음부터 줄곧 뭔가 이상한 글만 써왔다는 생각도 새삼 드네요. 

 

습작과 출간의 큰 차이 중 하나는 독자가 있다는 점 같습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독자와의 첫 접촉의 순간이 궁금합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 독자분들과 만날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세 곳의 독서 모임에서 저를 감사히 초대해 주셨어요. 그 세 번의 만남이 모두 각각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제가 쓰는 이야기들을 읽고 독자분들이 감동을 느끼거나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하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불친절한 부분도 있고, 이야기가 확확 꺾이거나 이상한 데서 갑자기 끝나기도 하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독자분들과 만남이 조금 무섭기도 했어요. 이건 왜 이렇게 쓰셨어요? 이 인물은 왜 이래요? 하고 물어보시면,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이 사실 굉장히 빈약해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썼다, 가 아마 가장 솔직한 대답일 거예요. 그런데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니, 독자분들이 제가 생각도 못했던 부분을 짚어 주시기도 하면서, 또 제가 걱정했던 부분에 의외로 굉장히 너그럽기도 하시고, 제 기우와 예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반응과 해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소설을 쓰고 처음 느끼는 즐거움이었어요. 

 

사실 쓸 때는 그다지 재밌지 않거든요. 쓰고 나서 잠깐 기쁘다가, 또 독자분들에게 반응이 없는 것 같으면, 에효, 내가 또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책을 반복해요. 그런데 이렇게 직접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듣고 나면, 무작정 열심히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소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 아니고, 소설 쓸 때는 항상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 끝을 더 자주 생각하는데, 독자분들을 만나고 올 때마다 스스로 긍정하기 어려운 미래를 빌려오는 것 같아 무척 감사합니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분들에게 가장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감히 어떤 조언이나 위로를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무언가를 새로 쓸 때마다, 습작에서 시작하는 건 똑같거든요. 필연적으로 실패를 겪고, 다시 써야 하죠. 다만 지금은 그 실패에 익숙해지고 있긴 한 것 같아요.  

 

제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저는 쓰고 싶은 게 뚜렷하거나 쓸 게 넘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무엇을 써야 할지 늘 막막했고, 억지로 한 편 완성하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보지도 않았어요. 투고도 적극적으로 안 했고요. 내가 봐도 안 좋은데 누구에게 보여주기가 싫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계속 쓰기는 했어요. 내가 나아지고 있다거나, 재능이 있다거나,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쓸 때마다 자책하고 절망하면서도요. 왜 확신도 없으면서 계속 썼을까, 생각해 보면 계속하고 싶은 일이 이것뿐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랫동안 꾸준히 해서 끝내 잘하고 싶은 일. 그게 소설 쓰기였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지금 막 글을 써보려고 마음을 먹었거나, 혹은 이미 오랫동안 글을 써오신 분들에게 감히 무언가 말할 수 있다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이런 막연한 말뿐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출간한 작품 중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꾸만 되돌아가게 되는 인물이나 작품이 있나요?
 보통은 한 편을 쓰고 나면 저는 약간 지긋지긋한 심정이 되어 어떤 인물을 계속 생각하거나 돌아보게 된 경우가 많지는 않았는데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소설인 「독재자의 오른발」에 나오는 노인을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노인은 80년대 대공과에서 근무한 형사로, 고문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인물입니다. 현재는 병환으로 집에서 딸의 간병을 받으며 누워서 지내고 있는데, 딸이 강박적으로 깔끔한 성격이라 간병인을 수시로 바꾸는 바람에 새로운 간병인이 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이 새 간병인이 약간 정의감에 중독된 인물이거든요.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노인을 향해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게 됩니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구성할 때는 간병인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어요. 시점도 간병인 시점으로만 진행하려고 했고요. 그러다가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 중이라고 들려줬는데 남편이 그럼 너무 일방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노인의 시점을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저도 빌런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불행한 유년을 보여주면, 그 범죄자에게 감정이 이입되면서 왠지 그 사람의 범행을 용서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이런 감정적 공감이나 정당화 없이 들여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의 작동 방식을 탐구해 보는 거죠. 어떤 사람이 원래 특별히 악하거나 뇌가 망가진 채 태어났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잖아요. 그 작용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노인의 과거를 생각해 보고, 현재를 그려봤어요. 그 과정이 아직 마음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한 번 다뤄보고 싶은 소재나 인물이 있나요?

저는 요새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병원 생활을 할 때 종교를 가진 분들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제가 아프다는 이유로 종교를 강요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네가 아픈 건 믿음이 없어서,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어떤 믿음은 정말 강력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 여러 사이비 종교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이야기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만약 평행 우주에서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갖고 싶나요?

직업이 생계유지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라면, 사실 저에게 작가는 직업은 아니에요. (아마 앞으로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 현재, 두 평행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작가로서의 삶이 있고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있죠. 물론, 작가로서의 삶은 직장인에게 기생하고 있으니 독립적이지도 평행하지도 않지만요. 현재 저는 번역일을 하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AI가 대체 가능한 직업 순위에 항상 오르는 직업이죠. 그래서 저도 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하고는 싶은가 생각할 때가 많은데, 아직은 제가 제 직업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떤 텍스트를 다른 언어로 복원하는 일이 제겐 소설 쓰기만큼 멋진 일이거든요.  

 

인류 멸망을 앞두고 지하 벙커에 도서관을 지을 예정입니다. 딱 세 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다면 어떤 책을 고르시겠습니까?

단권만 되나요? 『토지』는 안 되겠죠? 단권만 된다면, 『코스모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 이렇게 고르겠습니다. 『코스모스』는 아직 안 읽어봤는데, 계속 시간 나면 읽어야지 미루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종말을 앞두고 우주의 시작에 관한 책을 읽으면 왠지 멋질 것 같아서 골랐습니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과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제가 좋아하는 책 중에 가장 두꺼운 책들이고, 몇 번씩 다시 읽었는데 여전히 좋아하는 이야기들이어서 골랐습니다. 지하 벙커에서 책을 읽으며 지구 멸망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하니 왜인지 마음이 평화로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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