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
프랭크 오하라 저/송혜리 역 | 미행
『시차와 시대착오』에 실린 단편 소설 「경로 이탈」의 주인공 ‘최사해’는 부분적으로 프랭크 오하라를 떠올리며 쓴 인물이다. 프랭크 오하라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안내 데스크에서 일할 때 진지하게 글을 쓰기 시작해 몇 년 후 같은 곳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며 전시를 기획했던 시인이다. 그는 도시와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쓴 시들을 모아 『점심 시집』을 출간했다. 오 년 전부터 나는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럴 텐데 이따금 점심시간이 되면 프랭크 오하라를 생각하곤 한다.
제프리 유제니디스 저 | 민음사
책장을 정리하다가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이 책은 김사과와 최민우 두 소설가에 의해 번역되었다)을 펼쳐보게 되었는데,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첫 장편영화 〈The Virgin Suicides〉의 원작 소설을 쓴 제프리 유제니디스와의 인터뷰 글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가 쓴 책 중 하나가 4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는데…… 나는 홀린 듯 그의 소설을 찾아 읽었고, 다시 영화를 봤고, 이 두 작품은 반드시 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설에 없는 것이 영화에 있고, 영화에 없는 것이 소설에 있다.
아나 록산느(Ana Roxanne)
작년 10월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서 열린 아나 록산느의 공연을 보고 ‘엠비언트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술관 홈페이지에 쓰인 소개 글을 인용하자면, “엠비언트 음악은 분위기, 대기, 혹은 공간감을 만드는 음악”이며 “또렷한 노래나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는 하나의 ‘음향적 장소’를 만드는 일로 확장된다.” 소설집 교정을 보던 기간에는 취침하기 전 한 시간 정도 아나 록산느의 음악을 명상하듯 틀어놓고 듣다가 잠들었다.
영화
아나 바즈 감독
최근 브라질의 필름메이커 아나 바즈의 단편영화들을 보고 있다. 올여름 개최될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EXiS)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협력하여 작가를 한국에 초청하고 다수의 작품을 상영할 예정이다. 작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가 상영되었던 바로 그 인디-비주얼 프로그램이다. 아나 바즈는 2008년 〈Sacris Pulso〉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개인적으로 촬영된 8mm 필름 영상과 함께 이 작품의 주된 푸티지로 활용된 단편영화 〈Brasiliários〉(1985)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브라질리아」(『달걀과 닭』)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아나 바즈의 부모님은 각각 음악감독과 배우/나레이션으로 참여하였는데 그들은 이 작품을 만들며 연인이 되었고 이듬해 아나 바즈가 태어났다.
※ 〈Brasiliários〉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링크)
이인규 저 | 마티
우리 가족은 1987년부터 2014년까지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을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 있을 정도로 그곳은 나에게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2010년대 초반 나는 재건축을 앞둔 둔촌주공아파트에 관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즈음 저자의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시리즈가 출간되었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냉큼 책을 사보았으나 이내 질투심에 휩싸이고 말았다. 마치 아이디어를 누군가에게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것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그러나 이제는 사라진 나의 고향,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를 이처럼 훌륭한 아카이브로서 우리 모두의 기억으로 거듭나도록 애써준 저자의 오랜 노고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전하영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다수의 단편영화와 영상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2019년 단편소설 「영향」으로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로 2021년 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