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작품 활동을 시작해 곧 40년의 작가 인생을 맞이하는 소설가 위화는 자신에게 문학적 과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20세기 근대 중국을 모두 문학에 담아보고 싶었다는 그는 1950년대 대약진 운동을 배경으로 한 『인생』과 1960년대 문화 대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허삼관 매혈기』, 자본주의 중국 사회를 다룬 『형제』를 쓰고, 남은 한 시기에 집중했다. 『원청』은 1998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마침내 완성한 작품으로, 청나라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다. 대전환의 시기, 위화는 이 시기가 '현대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라는 점에 주목했다.
딸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 '샤오메이'를 찾아 그가 자신의 고향이라고 밝힌 '원청'을 찾아 길을 떠나는 '린샹푸'는 원청이라는 도시를 찾지 못하고 '시진'에 머문다. 젖동냥을 해가며, 그렇게 만난 '천융량' 가족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창궐하던 '토비' 무리를 피해 도시를 지키는 데 함께 힘을 쓰며 살아가는 린샹푸. 위화는 『원청』에서 보통의 사람들, 민중의 이야기를 그리며 한 시대의 면면을 보여준다. 역사에 기록된 영웅을 그리기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서민을 다루는 것이야말로 '그 시대의 기초를 다루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청』은 '민중들이 역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10만 자를 지웠다
『원청』은 1900년대 근대의 중국을 문학으로 재현해보겠다는 작가님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지요. 청나라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하는 대격변기를 그리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먼저 이 시기를 배경으로 고른 이유는 우선 소설에 나오는 이 시기가 지금, 현대 중국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에요. 그 시기에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해서 서양의 여러 사상들이 중국으로 많이 들어왔고요. 제왕적 봉건주의 사회에서 복잡다단한 사회로의 변화 역시 그 시절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지금 중국에 형성되어 있는 사상적 조류도 신해혁명을 주축으로 해서 그 시기부터 생겨난 것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이유는 작가로서는 20세기, 한 세기를 다 쓰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요. 이 부분이 비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 부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중국에서 출간과 동시에 150만 부가 팔리며, 열풍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20여 개국에 판권을 판매했고요. 이런 뜨거운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예상했어요.(웃음) 왜냐하면 최근에 책을 냈을 때 반응이 대부분 좋았거든요. 『형제』, 『제7일』 등이 출간될 때마다 중국이 떠들썩했고, 뜨거운 반응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의 신작 장편 소설이 한 편 출간되는 것이 문화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예상은 했습니다.
『원청』은 1998년도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간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집필되어야 했던 데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일단 저의 집필 방식 때문인데요. 저는 어느 작품을 쓰다가 잘 안 되면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고, 또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써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아무데도 못 가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한 작품에 집중해서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쓰는 데 많이 힘들었다고도 말씀하셨는데요.
일단 작품에 인물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죠. 더욱이 주요 인물인 '린샹푸'나 '구이민', '텐다' 형제들 등은 각 인물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놓지 않으면 독자들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죠. 흐트러지지 않게 읽혀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고민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어요.
거의 600쪽에 달하는 분량임에도, 작품에 완전히 빠져들어 단번에 읽게 되는 책이었어요. 작가님 이야기의 흡인력에 언제나 감탄하고는 합니다. 한편, 작품을 쓰는 입장에서 작가님이 특히 고심하셨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아주 간단해요. 저는 작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작품에 스스로 빠져들 수 있어야 독자들도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글을 쓸 때는 작품이 작가 자신을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하죠. 어떤 작가가 자신조차 빠져들지 못하는 작품을 쓴다면 독자들도 빠져들지 못할 거예요. 따라서 몰입할 수 없는, 흡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발견되면 계속 고쳤어요. 고쳐도 안 되면 그냥 지워버립니다. 『원청』의 경우, 거의 10만 자 정도를 지웠어요. 그러다 보면 이야기의 연결이 끊어지기도 하잖아요. 어떤 부분을 삭제하면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다시 쓰고, 또 다시 쓰는 작업을 계속 했어요.
입체적인 인물들의 매력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인 사실, 이를테면 '토비'들의 횡포나 전투장면 등을 소설에 담을 때 가졌던 작가님만의 기준도 있었을 것 같아요.
대부분 실질적으로 있었던 사건들이기도 하지만요. 거기에 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제가 재창작해서 쓴 것이에요. 그 가운데 특히 제 마음에 드는 장면은 귀가 잘린 사람들이 목숨을 바친 전쟁 부분인데요. 저의 아들에게 보여줬을 때 그도 잘 썼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아내도 마찬가지였고요.
나아가서 저는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천융량'과 '장도끼'의 전투를 더 크게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내가 말렸어요.(웃음) 그렇게 계속 싸우는 얘기를 쓸 필요가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장면이 된 거예요. 그럼에도 저는 싸우는 장면 쓰는 것을 좋아해요. 전쟁 소설이나 전쟁 영화도 다 좋아하고요.
천용량과 장도끼의 장면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주 강렬해요.
일단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스님'이 어떻게 죽느냐였어요. 그러고 나서 '장도끼'가 죽었어야 했는데요. 제 아내도 이 인물이 너무 싫다고, 이 사람은 죽여야 된다고 하기도 했고요.(웃음) 제가 생각하기에도 장도끼는 죽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인물을 죽이려면 어떻겠어요.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천융량밖에 없잖아요. 그러나 천융량은 또 그렇게 사람을 막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인물이 아니죠. 그래서 고민을 한 끝에 장도끼를 스님과 싸우게 만들어서 장도끼가 눈이 멀도록 한 거예요. 그러면 천융량이 비교적 쉽게 죽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되도록 설계를 했어요.
싸우는 장면 쓰는 것도, 전쟁 영화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밖에 이 작품에서 작가님께서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되게 많아요. 많은 부분이 마음에 드는데요. 구이민이 '시진'이라는 곳을 시키기 위해서 북양군을 받아들이는 부분이 좋아요. 또, 린샹푸와 천융량의 우정을 다룬 부분은 대부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중국 출판사 대표님은 우여곡절 끝에 구이민이 민병대의 대장이 된 다음 가마를 타고 가려고 하는 장면을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시진을 지키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던 구이민이 막상 군대의 대장이 되니까 일종의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장면에서 그 인물의 입체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요.(웃음)
인물 가운데는 '샤오메이'를 좋아한다고 밝히셨죠. 샤오메이의 어떤 점이 마음에 남았을까요?
맞아요, 샤오메이를 특히 좋아합니다. 샤오메이는 일생동안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에요.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요. 죽을 때까지 굉장히 힘들게 살아야 했어요. 딸을 낳고 난 이후에도 그렇고, 딸과 헤어지고 나서도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을 보낸 적이 없잖아요. 그는 우리가 동정하고 사랑해야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들은 샤오메이와 린샹푸의 결말도 무척이나 궁금해했을 것 같습니다. 이들의 결말을 쓰실 때 고민은 없었나요? 이들의 삶이, 결국 보통의 인생이기도 하다는 의미로도 읽히는 대목이었는데요.
살아서 만나는 건 아니지만 둘이 어쨌든 만나긴 만나죠. 이런 만남이 진정한 삶의 만남은 아니지만 톈씨 형제가 린샹푸의 시신을 고향으로 가지고 갈 때 샤오메이의 무덤을 지나갔잖아요. 사실 살아서 둘을 만나게 하는 게 약간 두렵기도 했어요. 그들이 만난 뒤에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랬다면 저는 아마도 모든 아름다운 것이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민중
급변하는 시기, 사회 변화의 거친 파도에 많은 사람들이 휩쓸리고 스러지는 시기의 이야기를 담은 『원청』은 한편으로 보통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잖아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영웅이나 앞장서서 사회를 이끄는 인물이 중심이 아니에요. 여기에도 작가님의 의도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시절에 생존했던, 그 시절을 살았던 보통 사람들을 그려야만 그 시기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대표하는 것은 이 사회의 진정한 기반이에요. 중요한 인물이나 영웅을 그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시대의 뉴스거리겠죠. 반면, 그 시대에 살았던 보통 서민들을 다루는 것은 정말 그 시대의 기초를 다루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어렸을 때 마오쩌둥 주석이 했던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민중이 역사를 만드느냐 영웅의 역사를 만드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민중이 역사를 만든다고 말했어요. 민중이 역사를 만든다는 이 말이 저한테는 뿌리 깊게 남아 있어서요. 『원청』이야말로 그 민중들이 역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라고 생각한 거죠.
작가님께서는 그런 민중들을 작품에 담아 일종의 진짜 역사를 그리는 일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죠, 저는 문학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문학사를 쓰는 건 평론가들이 아니라 독자예요. 문학을 연구하고 평론하는 사람들도 수십 년이 지나면 다 세상을 떠나겠죠. 오히려 오늘의 문학사를 쓰는 사람들은 아마 지금 유치원에,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일 거예요. 말하자면 예비 독자들인데요. 바로 그들이 현대 문학사를 쓰는 것이죠.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고 여러 연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문학사를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 권 한 권의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가 없었다면 미래의 젊은 독자도 그 작품을 읽지 못했겠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어떤 문학 작품이 있는데 아무 독자도 그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그 후세대 독자들도 읽지 않게 될 거고요. 그럼 그 작품은 문학사의 일부가 되지 못할 거예요.
작품을 읽는 내내 삶의 비극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럼에도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기도 했고요. 끝은 없고 시작만 있는 삶을 산 린샹푸를 통해 작가님께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일생을 사는 동안 린샹푸는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샤오메이가 그를 속이긴 했지만 그에게는 딸이 생겼고요. 그와 딸이 서로 정말 의지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결국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찾지는 못했지만, 찾는 과정을 통해서 린샹푸의 인생에는 더욱 의미가 생겼어요. 깊은 우정도 얻을 수 있었고요. 만약, 샤오메이를 찾으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린샹푸의 인생이 그렇게 의미 있었을 것 같지 않아요. 샤오메이를 찾는 일은 말하자면 인생의 목표였잖아요. 린샹푸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이었던 거죠.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상황은 아무런 목표도 없고, 찾아야 할 게 없는 것이거든요.
위화가 말하는 '공명'이란
2017년 <채널예스>와의 인터뷰 당시 '가장 우려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환경과 정부의 과도한 통제를 꼽으셨는데요. 5년이 지난 2022년 현재, 작가님은 이 질문에 어떤 답변을 갖고 계신가요?
일단 코로나19로 환경은 좋아졌어요. 공장이 많이 멈췄잖아요. 어떤 일이든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 것 같아요. 정부의 통제는, 그때와 변함이 없습니다. 여전히 과도하고 엄격해요.
역시 같은 인터뷰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로 '서로 돕고 존중하는 것', 즉 동정과 연민을 말씀하셨죠. 『원청』을 읽으며 그때의 답변을 되새기게 됐습니다. 서로 돕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니까요. 한국어판 서문에서 '공명'을 말씀하시기도 했는데요. 작가님이 말씀하신 공명이란 무엇인가요?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공명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직접 그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말이죠. 타인이 어려움을 겪을 때 나도 어려움을 느끼고, 타인이 행복할 때는 나도 기뻐하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감정이에요. 공명이라는 말은 낯선 사람, 모르는 사람을 발견한다는 의미거든요. 일종의 공감대 같은 것인데요. 비록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떤 일에 대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같은 감정을 느꼈거나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바로 그때 어떻게 보면 인생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때 우리는 삶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나타나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코로나 이후에 처음으로 한 해외 방문이라고 하셨는데요.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셨나요? 많은 장면들을 화두 삼으셨을 것 같거든요.
작가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는 크게 없어요. 작가들은 대부분 집에서 일을 하니까요. 반면에 밖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변화가 굉장히 컸죠. 코로나19의 영향이 아주 컸어요. 소득이 없어진 사람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전까지 어느 정도 저축했던 것을 이 기간 동안 다 써야 했을 거예요. 다시 0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거죠. 그런 분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졌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역시 사회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개인, 민중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중국에는 '유연한 취업'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흔히 국가에서 발표하는 데이터 중에 취업률, 실업률이 있잖아요. 취업은 직업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고, 실업은 직업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인데요. 유연한 취업이란 하루 일을 하고 일당을 받는 사람들, 아니면 이번 달은 일했는데 다음 달은 일이 없는, 그러다 또 일이 생기기도 하는 반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에요. 그런 인구가 중국에 2억 명입니다. 그런 상태로 돈을 벌어야 했던 사람들이 지난 3년 동안 아마 가장 힘들었을 거예요. 그들에 관심을 가져야죠.
『원청』의 한국어판 서문에서도 한국 독자들에게도 질문을 건네셨죠. 이 책을 읽을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싶으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지난 3년 동안 한국도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취업과 실업 같은 부분에서 다 영향을 받았겠죠. 사실 코로나19를 피한 나라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한국 독자 분들이 이 책을 읽고 그래도 그 당시 상황보다는 지금이 낫다는, 약간의 위안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난세의 전기적 이야기를 다룬 『원청』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은 이 시기의 중국 역사를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시기 한국에 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중국은 치욕스러운 영토 할양과 배상금 지급을 강요받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면서 청나라는 지리적, 경제적으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됐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해야 했지요. 하지만 조선은 자주 독립국이 되지 못하고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일본은 세 차례의 '한일협약'을 통해 조선(대한제국)의 내정과 외교를 완전히 장악했고, 3년 뒤에는 조선을 직접적으로 집어삼키는 '한일병합조약'을 맺었습니다.
저는 그런 난세 속 대한제국에도 『원청』 같은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_『원청』, 한국어판 서문, 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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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