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음식에 집중하는 글쟁이 유두진 소설가의 장편 소설 『그 남자의 목욕』. 소설의 주인공은 권고사직을 거부하여 괘씸죄로 인해 부당전직을 당해 제품 디자이너에서 목욕탕 청소부가 되었다! 유두진 소설가가 『그 남자의 목욕』을 통해 사회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소설과 작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그 답을 들어보고자 한다.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소설 쓰는 유두진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특이해 중고등학교 시절 놀림도 많이 받았고 작명가 선생님 원망도 많이 했는데요. '작가'라는 대중적인 직업을 갖게 되니 오히려 유난스러운 이름을 가진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소설을 쓴 건 2009년, 제가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할 때였습니다. 주요 언론사들에 기사를 실으며 꽤 인정받던 기자이긴 했지만, 프리랜서 특성상 매일 일이 있는 건 아니어서 남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단편과 콩트들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죠. 그렇게 습작한 글들을 모아 2010년에 출간을 하긴 했는데 미등단 작가여서 문단의 인정을 받진 못했습니다. 문장과 은유도 거친 편이었고요. 이후 도서관에서 소설 작법 책들을 독학하며 신춘문예를 준비했습니다. 다행히 2012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에서 대상을 받으며 공식적으로 등단할 수 있었습니다.
장편 소설 『그 남자의 목욕』은 어떤 내용인가요?
부당한 인사 발령을 받고 괴로워하는 직장인의 일상을 그렸습니다. 정확히는 디자이너로 일하다 회사 부속 스포츠 센터의 목욕탕 청소부로 가게 된 한 젊은이의 분투기입니다. 각종 스포츠 용품의 디자인을 담당하며 성실히 일하던 주인공에게 회사 측은 갑자기 권고사직을 종용합니다. 경영자의 내연녀가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오면서 잉여 인력이 생겼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그를 희생양 삼은 것이었죠.
억울함을 느낀 주인공은 권고사직을 거부하지만, 이를 괘씸하게 여긴 회사는 그를 목욕탕 청소부로 발령 내버립니다. 주인공은 수건 정리, 욕실 청소 등 목욕탕 업무를 수행하면서 제품 디자이너로의 복직을 기다립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그를 쫓아내기 위해 각종 트집, 사내 왕따, 부당한 업무량 등으로 압박합니다. 견디다 못한 주인공은 지방 노동 위원회에 '부당 전직 구제 신청'을 제기하며 회사와의 투쟁을 선언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외에도 복직을 위한 여러 플롯들이 얽히고설킵니다.
부당 전직이라는 건 아직 우리가 겪지 못한 것일 뿐이지,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어떤 계기로 『그 남자의 목욕』을 집필하셨는지 궁금해요.
일단 저의 경험담이 일정 부분 녹아 있다는 답변부터 드려야겠네요. 그렇다고 자전적 소설은 아니고요. 픽션이지만 제 경험을 어느 정도 녹였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듯합니다. 그동안 먹고살기 위해 여러 직장을 전전했는데요. 그중 한 곳에서 부당전직을 통보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엔 회사를 많이 원망했습니다. 시커먼 광야를 홀로 헤매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이후 나이를 먹다 보니 회사 측 입장도 조금은 헤아리게 됐지만... 그래도 어쨌든 근로 현장에서 노동자는 '을'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위험과 부당함을 감내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최근 SPC 제빵 공장에서 20대 여직원이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잖아요.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비판도 다방면에서 제기되고 있고요. 노동자의 아픔을 공감하고 개선책을 강구하는데 있어 문학도 분명히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소설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막상 그 캐릭터들의 상황을 보면 그들도 똑같은 직장인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물론 그럼에도 선택은 개인에게 있지만요) 작가님이 생각하셨을 때, 주인공 강기웅을 가장 힘들게 한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강기웅을 괴롭히는 인물은 많죠. 일단 인사권자인 경영자가 있을 것이고 직접적으로 전직을 통보하며 약을 올린 본부장도 있을 것이고 목욕탕 고참인 서방준도 있고요. 이외에도 직장 동료 몇몇이 더 있겠죠. 개인적인 생각으로 강기웅을 가장 힘들게 한 사람은 서방준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대외적인 면이나 인사 발령의 본질을 따지자면 경영자가 가장 미운 사람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의외로 단순한 면이 있습니다. 당장 눈앞에서 나를 괴롭히는 목욕탕 고참 서방준의 존재가 가장 아팠을 겁니다. 원류를 따져가며 인사권자를 원망하는 건 다음 문제입니다. 그런 면에서 서방준 또한, 어쩌면 불쌍한 캐릭터일 수 있습니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 또한 '힘없는 노비'로서 회사의 사주를 받고 강기웅을 괴롭힌 것일 뿐이니까요.
바로 전에 에세이 『끼니』를 내셨는데요. 소설 속에서도 음식 먹는 장면이 나오는 것 보고, 작가님은 음식을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싶었어요. 글을 쓰는 데 있어 음식이라는 주제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제 모습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음식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덩치입니다(웃음).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또래 친구들은 로봇이나 곤충 등에 관심을 가질 때였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아침 방송 <오늘의 요리>가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따라하겠다고 수선 피우다 어머니께 등짝도 여러 번 맞았죠. 이후 우연의 장난인지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차출이 됐어요. 그래서 음식은 피할 수 없는 제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여러 복잡한 상황이 얽히면서 요리 쪽으로 가진 못했고요. 음식을 사랑하는 글쟁이가 되었습니다. 『끼니』는 음식을 빗대어 우리네 삶을 이야기한 산문집입니다. 최대한 간결하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그래서인지 브런치 연재 당시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물론, 음식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워낙 흔한 소재이기에 평균적인 기대치가 있어서죠. 이를 넘어 독자에게 뭔가를 남기려면 적어도 반 끗 정도는 달라야 하기에 정성을 많이 쏟았습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사람'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사람의 관념론적 가치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의미보다는 존재가 먼저라고 생각해요. 일단 살고 보는 것이죠.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의 원초적인 모습을 '아등바등거린다'고 보지 않고 '아름답다'고 보는 겁니다. 『그 남자의 목욕』의 원제는 '목욕하는 남자'였습니다. 몇 해 전 전태일문학상에 출품해 최종심까지 올랐는데요. 전태일 열사는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시절의 아이콘입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이후의 세대가 좀 더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분이죠.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걸 건 사람의 위대성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강성 노동주의자라는 건 아닙니다. 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니까요. 말 나온 김에 『그 남자의 목욕』의 출간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전태일문학상 출품 이후 심사평을 참고해 내용에 부분 수정을 가했고요. 그 후 수원문화재단에 다시 출품해 창작 지원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프로필에서 스스로를 '글쟁이'라고 소개해 주셨는데요. 어떤 글을 쓰시는지, 글로써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가끔 자유기고 형식으로 기사도 쓰고 짧은 운문도 씁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건 역시 소설입니다. 최근엔 중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을 기획 중인데요. 내러티브의 설득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제가 소설만큼 노력을 기울이는 장르는 바로 동화입니다. 동화 작가로도 등단하고 싶어 여러 공모전에 문을 두드렸는데, 최종심까지는 여러 번 올랐지만 수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등단 루트를 거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꼭 동화책을 내고 싶다는 작은 꿈도 있어요. 그리고 글로 이루고 싶은 목표라면, '진짜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누군가에게 저를 작가라고 소개한 적이 없어요. 그냥 작가 흉내내는 글쟁이 정도로만 말하고 다녔죠. 그런데 한 지인이 충고하더군요. "진짜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당신 스스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라"고요. 그 말 듣고 움찔했어요. 사실 저는 신춘문예도 통과했고, 책도 4권 냈으니 그렇게 움츠러들 필요는 없었거든요. 이제 진짜 작가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유두진 소외된 그 누군가, 그 무언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글쟁이다.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몽상가는 아니다. 그래도 바람직한 방향은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소시민이다. 단편 옵션으로 제7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대상을 수상했고, 현재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을 수행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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