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이 한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석원 작가의 신작 『나를 위한 노래』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오랜 슬럼프로 침잠했던 시기에 이석원 작가는 마음산책 출판사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다. '돈 몇 푼 벌고자 제안을 수락했던' 그는 이 경험으로 인해 슬럼프를 극복하고 창작자인 자신의 삶을 재정의했다고 한다. 강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4개월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다. 이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석원 작가는 『나를 위한 노래』가 자신을 변화시킨 '어떤 사건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나는 달라졌고,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엮으며 묶는다. 과연 한 사람의 삶이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그 변화는 타인에게 어떤 모습을 가닿게 될까.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나의 작은 대답이다." _『나를 위한 노래』, 7쪽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 무대가 나를 변화시켰다
강연을 요청받았을 당시, 오랜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고요.
글을 쓰기가 싫어서 힘든 날들이었어요. 오죽하면 글이 쓰기 싫어 죽겠다고 말하는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에도 참여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던 차에 마음산책에서 강연 섭외를 받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리 기꺼운 마음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강연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강연의 어떤 점이 작가님을 달라지게 만들었던 걸까요?
저도 그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책에 운과 운명을 그렇게 강조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대가 싫어서 그곳을 떠났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제 앞에서 강연을 하신 임경선 작가님이 마이크를 잡고 서 계신 모습을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게 제가 변한 이유의 전부죠. 그때부터는 강연이 억지로 해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열정과 기쁨에 차서 준비하는 '무대'가 되었습니다.
강연 이후 삶에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요?
너무 많지만, 무엇보다 작가로서 혹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지금까지의 저는 '직업인으로서 주어진 일을 성의껏 해낸다'는 마음으로 일을 대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마음은 가져본 적이 없고, 그게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죠. 하지만 강연을 하고, 그걸 책으로 엮는 작업을 하면서 이 생각이 깨졌어요. 온전히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이 변화는 창작자로서 남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에서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작업하는 과정도 남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전작들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저는 말하기를 워낙 좋아하는 데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말 걸기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래서 이 작업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구술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전작들과의 차이라면 그야말로 말과 글의 차이가 아닐까요? 전작들이 내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번역한 거라면, 이번 책은 좀 더 직접적으로 독자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죠. 마치 수많은 독자들을 상대로 홀로 무대에 서서 모노드라마를 펼치는 느낌이랄까요. 책을 쓰고 만든다는 차원이라기 보다 하나의 무대를 준비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또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나를 위한 노래'라는 제목은 그 마음의 연장선이겠네요.
강연 준비를 처음 시작했던 4월부터, 강연을 마친 후 책을 출간하기 위해 다시 원고를 정리하기까지 총 8개월의 시간이 걸렸어요. 이 작업을 다 마치고 나니 한 권의 책이 꼭 한 편의 긴 노래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노래는 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스스로를 위한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3가지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셨어요. '관계의 고통과 자유로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선택들', '왜 쓰고 만드는가'였죠.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청중을 앞에 두고 강연을 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어요. '관계'는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죠. 저 또한 그렇기 때문에 쉽게 이 주제를 선택했어요. 평생 창작자로 살아온 만큼 무언가를 쓰고 만드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선택' 역시 마찬가지예요. 삶을 살아가려면 숨쉬는 내내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잖아요.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저의 삶을 엮어 생각하면서 편집부와 방향을 잡아나갔습니다.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쓴다
첫 강연에서 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규정하는 행위를 '요약의 폭력'이라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고, 어렵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20~30대와 50대가 된 자신을 비교했을 때,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변화가 있다면요?
'어제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자'가 제 삶의 모토이기 때문에 스스로 늘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실제로도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아마 이십 년 전의 저는 지금과 너무나도 다른 사람일 거예요. 그 세월만큼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는 점이 가장 흡족한 변화입니다.
작가님이 무엇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어떤 부분에서의 선택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업적인 선택에 있어서는 돈, 자유, 존중, 작품의 질이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강연에서는 창작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면서 "가능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대체 불가능한 창작자가 되기 위해 하는 노력이 있을까요?
그동안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해'라고 의식하고 노력하며 고유성이나 개성을 만든 건 아니에요. 저는 스스로의 개성을 키우고 지키기 보다 세상의 틀에 맞추는 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누구보다 오리지널리티가 강한 창작자로 받아들여졌죠. 그래서 사람이 자신의 매력이나 개성을 노력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가 있습니다.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에 머리카락을 빨갛게 염색한다고 그게 개성이 되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몰개성이나 촌스러움으로 비춰질 수도 있죠. 그렇듯 저는 특별히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문체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써왔어요. 이게 저의 강점이자 장점이고, 어떤 측면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담백함'과 '솔직함'을 매력으로 꼽습니다. 글을 퇴고할 때 어떤 부분을 특히 신경쓰시나요?
툭 터놓고 말씀드리면 '솔직함'이라는 매력은 딱히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기준보다는 내가 전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퇴고를 할 때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뜻, 의미, 표현 등이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생각하며 글을 고칩니다.
강연 당시, 관객으로부터 받은 다양한 질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1강의 주제가 '관계'였는데요. 질문하는 관객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손절'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타인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어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조심스러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출판계가 고사(枯死) 직전이 아니라, 이미 고사했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제가 음악을 하던 시절, 앨범을 발표하면 꼭 앨범을 사는 분들이 있었어요. 유튜브만 켜면 얼마든지 무료로 들을 수 있는데도요. 왜 그런지 여쭤보니 단순히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뮤지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결국, 그건 앨범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사주는 것'에 더 가까운 행위였는데요. 덕분에 그 수익으로 또 다음 작품을 낼 때까지 창작자가 버틸 수 있는 최저선이 마련되곤 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좋아하고 지지하는 작가의 책이 출간됐을 때 한 권씩 '사주신다면' 그게 작가에게 큰 힘이 될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다른 물건을 살 땐 그렇지 않은데, 유독 책에는 인색해지는 경우가 많죠.
요즘은 중고로 책을 구입하시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보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좋은 책을 저렴한 비용으로 읽을 수 있는 건 정말 의미있는 일이지만, 중고책은 작가와 출판사에 어떤 수익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도 그렇고요. 도서관에서 책을 구입하면 소액의 수입이 생기지만, 책을 대여할 때는 아무런 수익도 발생하지 않거든요. 외람되지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 여러분이 귀한 돈을 지불해서 책을 사주신 덕분에 제가 이렇게 또 새로운 책을 낼 수 있었으니까요.
이 강연이 작가님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줄곧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작가님을 종종 볼 수 있을까요?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고, 내 의견과 주장을 펼치며 소통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불러주신다면 어디든 가서 이야기를 나눌 용의가 있습니다.
*이석원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른여덟이 되던 해 첫 책을 낸 이후로 지금까지 모두 다섯 권의 책을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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