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다정한 호명 - 『이름을 알고 싶어』
애도의 꽃 대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주거나 직접 고른 책을 사서 읽어 주세요.
글ㆍ사진 이상희(시인, 그림책 작가)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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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산골집 마당을 지키는 개들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이름을 지어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알로'에서 '단강이'까지, 온 가족 함께 머리를 맞댄 채 그 생김새와 내력에 알맞은 단어를 떠올리고 발음해 가며 결정한 이름으로 두근두근 설레며 인사할 날을 기다리는 시간과 세상을 떠나거나 문득 사라져버리는 주인공의 이름을 외치던 끝에 상실감을 어금니로 누르며 버티는 시간이 오가던 나날이었어요. 위생 의료 환경이 척박했던 지난날처럼, 언제 떠나보내게 될지 모르는 갓난 아기를 무명(無名)으로 밀쳐둔 채, 두어 해 이상 너끈히 살아남는 생존력을 확인하고서야 제대로 이름을 지었다던 민간 풍습의 무정을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달까요. 그러한 연유에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덩치 커다란 개는 '꼬맹이'로, 상대적으로 체구는 작지만 형님뻘인 개는 '돌돌이'로, 무성의한 이름을 원망하지도 않고 병고와 재해를 이겨내며 무심히 장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안 개들 이름 짓는 일 하나는 일부러 소홀히 하게 되었지만, 일상 곳곳에서 마주치는 길고양이며 새며 개구리에게는 여전히 언제나 빠짐없이 아는 체를 하고 인사를 건네는 편입니다. 나무와 풀꽃에도요. 하지만 나무며 풀꽃은 눈길이 닿는 순간 학자들이 정해둔 이름이 있다는 사실, 아주 널리 알려진 몇몇 말고는 도무지 이름을 기억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해 얼른 고개를 돌리곤 합니다. 고프스타인의 그림책을 진작 만났더라면, 그처럼 옹졸히 굴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 이름을 몰라 부를 수 없으니 고개를 돌리기도 하지만, 이름을 몰라 알고 싶다며 다가가기도 한다...

'나는 / 세상 모든 이름을 / 알고 싶어'로 시작하는 M. B. 고프스타인의 시 그림책 『이름을 알고 싶어』 첫 장면 그림은 숲을 이루는 나무 줄기일 테지 싶은 갈색 기둥 여럿입니다. 아직 이름을 알기 전의 무명(無名)하고 무명(無明)한 상태를 고프스타인은 이런 식의 반추상적 이미지로 표현한 듯해요. 하늘과 바다와 땅의 돌과 육지와 바다 섬 호수 산 해안 사막 강의 모든 이름을 알고 싶다고 말하는 시적이고도 직설적인 글과 반추상적 이미지들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역할을 바꾸지요.

'모두를 하나하나 알아보고 / 이름을 부르며 / 따뜻하게 맞아 주고 싶어'로 마무리짓는 다정하고 추상적인 글에 파란 하늘 아래 바닷가 모래밭을 걷는 색색깔 말들을 구체적으로 그려 보여 줍니다. 이 책을 첫눈에 얼핏 시화집 같다고 여겼던 독자라 하더라도 뒤표지를 덮으면서는 각 장면의 흐름과 연결이 분명한 그림책이라는 데 동의하게 될 거예요.

세상 만물의 이름을 마침내 알게 되고 그리하여 그 존재의 형태와 특성을 또렷이 인지하고 마음에 새기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단순명료하고도 무척이나 애틋하게 그려낸 이 그림책에 먼저 매혹된 이수지 작가가 직접 번역해 소개하는 일을 떠맡았어요.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고프스타인과 이 다정한 호명에 너무 늦지 않게(요즘 어슐러 K. 르 귄의 에세이집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때문에 읽고 싶은 책들에 더욱 조급해졌답니다) 동참하게 되었지요. 고프스타인의 다른 그림책 『우리 눈사람』과 『브루키와 작은 양』, 『할머니의 저녁 식사』는 조금씩 또는 꽤  화풍이 다르지만 작품 모두에 천진한 질문과 기쁨이 가득해서 침대 곁 탁자에 두기 좋아요. 

그림책을 열었다 덮을 때마다 '고프스타인'이라는 낯선 이름을 여러 차례 되뇌어 보곤 합니다. 미술과 문학을 공부해 그림책 작가가 되었고, 자연과 가족과 사람과 예술가의 일에 대해 쓰고 그렸다는 이 작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 안달이 나곤 해요. 

애도의 꽃 대신 가까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주거나 직접 고른 책을 사서 읽어 주세요.

일흔 일곱에 세상을 떠나면서 남겼다는 이 말도 마음에 들어 수첩에 베껴 둡니다.

고프스타인... 고프스타인... 이름 하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참입니다.



이름을 알고 싶어
이름을 알고 싶어
M. B. 고프스타인 글그림 | 이수지 역
미디어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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