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5분 간격으로 아이들이 다녀가는 곳, 배가 아프다던 아이가 보리차 한 잔에 금세 얼굴이 환해지는 곳, 아이들의 울음이 그치고 상처가 아무는 곳, 바로 보건실이다.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는 20년 차 초등학교 보건 교사가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치료하며 쓴 보건실 에세이이다. 저자 김하준 보건 교사는 업무적인 보건일지가 아닌 아이들의 표정과 이야기가 담긴 보건일지를 쓰게 되었다.
『여기서 마음껏 아프다 가』 띠지를 보면 “아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들여다보는 보건 교사의 특별한 보건일지”라는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이 ‘보건일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요?
보건 교사로 20년간 일해왔고, 오랜 기간 학급수가 많은 학교에서 일하다 보니 아이들을 보는 데 한계가 오는 시점이 있었어요. 5분 간격으로 아이들이 몰려올 때면, 어느 순간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이러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을 미워하게 될까 걱정이 되었어요. 특히, 보건실에 틈만 나면 오는 ‘단골’ 아이들을 미워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주 오는 아이들의 말이나 특징을 업무적인 보건일지가 아닌 제 방식대로 적어두었어요. 아이들을 좀 더 다정히 보는 방법을 스스로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죠. 아이들의 투명한 모습, 엉뚱한 모습, 기특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기록들이 아픈 아이를 내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했고, 다음에 같은 아이를 만났을 때 어떻게 치료해주어야 하는지 작은 단서가 되어주었어요.
보건실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기록한 ‘쏟아지는 아이들’ 장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들이 적게 오는 날이었는데도 60명의 아이들이 오고 가더라고요. 아이들이 어떤 이유로 이렇게 자주, 또 많이 보건실을 찾아오나요?
자잘한 상처들이 가장 많고,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오는 타박상, 그리고 많은 경우 복통과 두통(또는 어지럼증)이에요. 복통의 원인은 똥이 마려워서,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뛰어서, 전날 매운 것을 먹어서, 때론 학원 가기 싫어서 등 다양해요.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경우는 열이 나는 걸 제외하고 약을 준 적이 거의 없어요. 살펴보면 10명 중 3명 정도만 진짜 아픈 아이예요. 나머지는 흔히 말하는 꾀병이죠. 그래도 초등학생에게 꾀병은 병이라고 생각해요. 스트레스가 복통과 두통의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니까요. 따뜻한 물 한 잔을 먹고 가게 하거나, 적외선 찜질을 해주거나, 잠시 쉬다 가게만 해도 대부분 생기를 찾고 돌아가요.
매일 이런 바쁜 날들을 보내시지만 ‘보건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나 편견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직업인으로서 ‘보건 교사’는 어떤 일을 하나요?
보건 교사는 아픈 아이들을 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일이에요. 그 밖에 학생 건강검진, 감염병 관리, 보건 교육이 주 업무이나 갈수록 부가적 업무에 훨씬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었어요. 성 고충 상담원 업무, 학폭 위원, 교직원 응급처치 교육, 정서행동특성검사 등의 업무도 하고 있어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방역 행정업무, 보건 수업도 몇 배로 늘어나게 되었어요. 보건 수업을 하다가 보건실에 가서 응급처치를 하게 되는 경우도 꽤 있고요.
보건 교육은 초등학생에게 꼭 필요하지만 실제 아픈 아이들을 잘 보는 일이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거든요. 큰 학교는 종일 아이들만 봐도 하루가 다 가요.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어떤 이들은 ‘꿀직업’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보건 교사로 일하는 동안 그런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중요한 건 언제나 아이들을 보는 것이 보건 업무의 중심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 기억하며 일하고 있어요.
아픈 곳을 적는 칸에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났어요”라고 적는 아이, “붕대를 감으면 기분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아이 등등, 마치 아이들의 표정이 그려지는 듯한 글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하는 사소한 행동과 이야기들을 어떻게 포착하시나요?
언젠가 아파서 온 아이에게 10cm 자를 주면서 ‘아픈 정도가 어디쯤인지 표시해볼래?’라고 물었더니, ‘더 긴 자는 없어요?’라고 묻더라고요. 아이들이 느끼고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제가 생각지도 못한 답변들이 나와서 깜짝깜짝 놀라요. 아이들의 ‘아프다’는 말 뒤에는 사실 다른 하고 싶은 말들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작은 목소리를 누군가 기억해서 기록해준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아이들은 아프니까 말하는 거고, 아프다는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그건 슬픈 일이잖아요.
코로나19로 인해서 학교 보건이 더없이 중요해졌습니다. 방역 담당자로서 많은 고충을 겪으셨을 것 같은데요, 요즘 상황은 어떠신가요?
올해 3~4월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어요. 교직원의 절반과 전교생의 60% 이상이 코로나를 앓고 지나갔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좀 여유로워 보여 좋습니다. 대신 보건실이 북새통이 되었어요. 코로나19 초반에는 아이들이 보건실에 편히 오는 것조차 불가능했거든요. 가벼운 열이나 인후통은 귀가 조치를 했었고, 아이들의 입속을 들여다보는 일이나 코피를 막아주는 일도 조심스러웠어요. 학교 방역 담당자로서 여전히 긴장감과 부담감을 가지고 보건실을 지키고 있지만, 아이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이들이 꼭 몸이 아프거나 어딘가 다쳐서 보건실에 오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꾀병인 경우도 많고 걱정, 고민이 있어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고요. 아이들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작은 아픔을 발견하고 도와주는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외된 아이를 마주했을 때 따뜻한 말, 힘을 주는 말을 해주는 어른들이요. 마음이 아픈 게 몸으로 오기도 하니까 실제로 몸 어딘가가 불편해져요. 그러니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도록 어른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이 책이 지금 나와 가장 나와 가까이 있는 아이의 아픔을 발견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든 열려 있는 공간”, “아플 때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보건실’이라는 공간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보건실이 필요한 어른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어른이 된 저희에게 ‘보건실’이라는 공간은 상담실이나 병원이 될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특정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것들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라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아요. 보건실이 몸과 마음의 불편한 곳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 아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곳이라면요. 아픈 거 참지 말고, 어디가 아픈지, 쉬고 싶은지, 마음껏 아파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하준 대학병원에서 3년간 간호사로 근무했으며 이후 20년간 보건 교사로 일하고 있다. 하루 평균 50명의 아이들이 드나드는 보건실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선 아이들을 좀 더 사랑하는 법을 스스로 배워야 했다. 그 방법으로 업무적인 보건일지가 아닌,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까지 기록하는 특별한 보건일지를 쓰게 되었다. 배가 아픈 아이, 당뇨가 있는 아이, 꾀병을 부리는 아이, 오늘도 저마다의 이유로 보건실을 찾아오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눈 맞춰주기 위해 노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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