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을 탄생시킨 화가에게는 어떤 친구가 있었을까
"조명이 무대 위의 주인공을 비출 때 조연들은 어둠 속에 묻혀버리지요.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무대에서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결국 보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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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저자

『화가의 친구들』은 화가의 도구, 과학과 미술의 만남 등 남다른 주제와 시선으로 미술책을 써온 미술 저술가 이소영의 신작이다. 이번 책에서는 위대한 화가와 명화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었던 화가의 주변 인물들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아름다운, 혹은 불꽃 같은 만남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간 화가와 그 친구들의 관계는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되었을까. 출간의 과정과 책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작가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저자 소개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하고 과학칼럼을 쓰셨다니요! 어쩌다(?) 그처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일을 하게 되셨는지요?

호기심은 많고 진득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여기저기 기웃하며 산 결과겠지요. 기자, 웹기획자, 서점 직원, 과학 칼럼니스트 등 해온 일들이 각양각색이라 친구들이 “직업 바꾸는 게 직업이냐?”고 농담을 하곤 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겠지요.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는 어쩌면 지금과 비슷했어요. IMF 이후 세상이 달라졌죠.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긴 어려워졌지만 대신 인터넷이라는 새 세상이 열렸습니다. 그 덕에 전공과 무관하게 IT 업계와 그와 관련된 과학 정보를 소개하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한 우물을 파서 전문가가 되지 못한 미련도 있지만,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 배회하며 관찰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역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인 덕분에 이렇게 책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화가의 친구들』은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화가의 주변 인물들에 초점을 맞춘 책입니다. 주류가 아닌 이야기여서 자료 조사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사람이라서 그럴까요? 주인공 옆에 있는 조연들에 마음이 갑니다. 조명이 무대 위의 주인공을 비출 때 조연들은 어둠 속에 묻혀버리지요. 그래서 그들의 존재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무대에서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니까 결국 보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앙상한 줄거리뿐 실제 삶을 재구성할 자료가 없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정보가 너무 많아서 추리기 어려운 인물들도 있었어요. 양쪽 모두 비슷하게 힘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피카소나 마네, 워홀처럼 늘 사람들을 몰고 다닌 ‘스타’들은 어떤 사람을 친구로 묶을지, 어떤 정보에 중점을 둘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장 오래 사귄 친구나 가장 격의 없는 사이가 아니라 제 나름으로 의미를 두고 싶은 친구를 골라 썼습니다. 아무리 뒤져도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자료가 없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굳이 묶어놓은 화가와 친구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엄밀함을 따지는 학자들이라면 쓸 수 없을 상상의 영역이 있고, 독자들이 읽으며 나름의 해석을 더해볼 여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여러 예술가가 등장합니다. 작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관계나, 혹은 작가님과 닮았다고 느끼는 관계가 있으셨나요?

친구니 연인이니 숙적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건 단순 명쾌하게 정리하긴 어렵죠. 에드바르 뭉크와 그림 '마돈나'의 모델 다그니 유엘,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었던 폴란드 작가 스타니슬라프 프시비셰프스키에 관해 쓰면서 여러 번 저 자신의 선입견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관계는 화가와 모델,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삼각관계, 희생하는 아내와 난봉꾼 남편으로 간단히 보기 쉽습니다. 그런 납작한 도식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인간으로 다그니 유엘과 그녀의 남편을 보기까지 꽤 헤맨 것 같아요.

이들에 관해 쓰면서 한때 불륜으로 인생을 망친 여자쯤으로 치부되었던 화가 나혜석을 떠올렸어요. 다그니 유엘을 결혼으로 인생을 망친 모델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이겠지요. 대책 없는 인물로 표현되는 프시비셰프스키 역시 폴란드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작가더군요. 뭉크만 보고 있을 때 그 둘은 단지 모델 또는 연적일 뿐이었지만, 그들 각각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흥미진진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우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끈끈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복잡하고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친구들은 없는 것 같습니다. 보름달 밤마다 만나서 세상의 신기한 것들에 대해 떠드는 루나 소사이어티가 제가 친구들과 도모하고 싶은 만남이지요. 그 자리를 조지프 라이트처럼 멋진 화가가 기록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사람은 누구나 친구를 얻고 잃는 일로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닫히는 경험을 한다. 위대한 화가도 다르지 않다”라는 표지의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2년 가까이 ‘거리두기’ 중인 현실에서,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우정 혹은 친구의 의미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태어날 때 인생이 벌써 결정되어 있다는 자조적인 얘기들이 많지요. 코로나로 인해서 사회의 약한 부분들은 더 세게 타격을 입고, 부와 교육, 기회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전염병도 무섭지만, 그 재난 앞에서 더 불평등해지는 현실에 절망하게 됩니다. 타고난 환경과 부모,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결정하진 않습니다. 자라면서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도 그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지요. 제가 운영하는 마그앤그래의 단골손님이 이 책을 읽고 ‘#우정은나의종교’라고 태그를 달아주셨더군요. 끄덕끄덕했습니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제 인생의 마디마다 함께해준 친구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되는 관계도 있고, 제 무심함 때문에 끊어진 인연도 있습니다. 어떤 관계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왔더군요. 시작은 우연과 행운의 덕을 보더라도 지속하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거죠.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당연히 유지되리라 생각했던 관계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고, 노력과 정성이 없으면 스르르 사라져버린다는 걸 절감하게 되었어요.

어느 예술가에게든 영향을 끼친 친구가 존재할 텐데요, 책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소개하고 싶은 또 다른 화가와 친구가 있으신지요?

친구 하나 없는 화가는 없었을 테니까요, 더 다뤄볼 화가도 무궁무진하겠지요. 그런데 책에 소개한 화가들을 더 살펴보는 일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책에는 고흐와 고갱, 세잔과 피사로를 짝으로 썼지만, 고갱과 피사로도 풀어낼 얘기가 많지요. 드가의 친구로 메리 카샛이 소개되었지만 드가와 마네의 얘깃거리도 풍성합니다.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친구 릴케는 조각가 로댕과 인연이 있고, 터너와 평론가 러스킨도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예술가들을 살펴보는 일이 참 재밌습니다.



특히 좋아하시는 화가나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떤 화가의 작품이든 시간을 갖고 천천히 바라보면 놀라운 세계를 보여주지요. 그러니까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나 작품을 답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화가의 친구들』 『실험실의 명화』『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에 이은 저의 세 번째 미술책입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세 권 모두 서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로 시작하더군요. 저도 발견하고 살짝 놀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그앤그래에는 책장 한 칸이 다빈치에 관한 책들로 장식되어 있더군요. 다빈치는 애정을 품기에는 너무 대단한 상대라서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요, 저도 모르는 제 사랑을 들켜버린 기분입니다. 

평소에 제가 의식하고 있던 건 터너나 드가 같은 화가들이지요. 안쓰러울 정도로 고집불통이고 모난 사람들. 이들은 저랑 닮았기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 없이 자꾸 눈길이 갑니다.

여전히 미술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하나의 그림에 집중하기란 점점 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어요. 우리는 유튜브처럼 자막과 해설이 있고 재생 시간 확실한, 짧은 영상물 보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지요. 그런데 미술 작품은 애당초 친절하지 않습니다. 미술관과 영화관은 얼마나 다른가요. 극장에선 정해진 좌석에 앉아 눈과 귀로 쏟아지는 정보를 흡수하면 되지만 미술관에선 걸어 다니면서 집중력도 발휘해야 하죠. 음악, 춤, 연극, 영화… 어떤 예술 장르도 미술처럼 관람객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린 그 때문에 미술을 더 어렵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관점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의 그림을 관람하는 데 정해진 시간 같은 건 없습니다. 3초 만에 그림 앞을 떠나도, 30분 동안 지그시 바라봐도 괜찮은 겁니다. 1미터 떨어져서 보든 2미터 떨어져서 보든 상관없죠. 미술 작품은 우리에게 감상 방법을 정해주지 않아요. 전적으로 관람자의 자유의사에 맡깁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나요? 그림 앞에서 나는 자유다!




*이소영

대학원에서 현대 미술사를 전공하고 IT기업에서 일하며 과학 칼럼을 써왔다. IT잡지 기자로, 다음 등의 인터넷 포털 기업에서 웹기획자로 일했다. 지금은 없어진 홍대 앞 예술책 서점 아티누스에서 매니저로 일하기도 했다. 수원에서 책방 ‘마그앤그래’를 운영하면서 예술과 과학이 던지는 질문들을 글로 옮기고 있다.

미술사와 과학이라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두 장르를 아우른 『실험실의 명화』를 썼다. 명화 속에 숨겨진 신기한 과학 이야기들을 다룬 책으로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됐다.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를 가족과 함께 여행한 후 펴낸 『엄마도 행복한 놀이터』는 부모의 관점에서 환경과 도시, 놀이터와 육아 문제를 살핀 책으로 세종도서(교양부문)에 선정됐다. 이외에 도구로 본 미술의 역사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 등을 썼다.



화가의 친구들
화가의 친구들
이소영 저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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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