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요리연구가 김민희의 제주 음식 에세이 『푸른 바당과 초록의 우영팟』이 출간되었다. 해녀왕 할머니, 수산물 유통업에 종사한 아버지, 고사리 꺾기 고수인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산해진미를 먹으며 자란 저자는 탁월하게 훈련된 미각을 바탕으로 9년째 요리를 가르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제주 흑돼지, 고기국수만 아는 육지 사람들에게 진짜 제주의 맛을 소개하고, 음식에 얽힌 가족, 사랑, 꿈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푸른 바당과 초록의 우영팟』은 작가님의 첫 책인데요. 책을 쓰게 된 계기, 집필하는 동안의 에피소드 등이 궁금합니다.
책을 쓰는 건 오랜 꿈이었어요.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던 꿈의 심지를 당기게 된 건 비행기에서 만난 신경숙 작가님을 통해서였어요.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비행기가 착륙할 즈음 주저하며 말을 꺼냈어요. “책을 내고 싶은 오랜 꿈이 있어요”라고요. 그런데 작가님께서 선뜻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꿈을 이루셔야죠! 꿈을 이루고 저를 찾아오세요!”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사실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어요. 아무 경력도 없는 신인 작가가 책을 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코로나19로 요리 수업을 줄이면서 시간이 조금 생겼어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혼자 기획안을 작성하고 원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대략 원고의 절반 정도가 완성되었을 때 평소 제가 좋게 읽었던 음식 에세이들을 펴낸 출판사들에 투고를 했어요.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답신을 준 곳이 앨리스였어요. 지금 제 책을 펴낸 출판사죠.
기자로 일하셨고, 지금은 쿠킹클래스를 운영하고 계시지요. 언론인의 길을 걷다가 요리의 세계로 빠지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방송기자를 꿈꿔왔어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1년여 직장생활을 하다가 시험을 쳐서 제주에 내려가 기자로 일했어요. 하다 보니 일이 적성에도 맞고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좀더 큰물에서 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어, 서울에 다시 올라와 배수의 진을 치고 2년간 시험에 도전했는데 실패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며 소소하게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영화 「줄리&줄리아」의 요리 블로거 줄리처럼 그날그날의 소소한 음식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기록한 거죠. 근데 그게 굉장히 잘 됐어요. 구독자도 늘고 반응도 생기면서 쿠킹클래스를 열어달라는 요청까지 생겨, 무심결에 시작한 원데이 쿠킹클래스가 지금에 이르렀네요.
우연히 이 업계로 들어와 원데이 클래스를 몇 번 하고 정규클래스를 두 달 하고 나니까 한평생 요리 가르치는 선생으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심을 하고 나서 이왕 할 바에는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훈련하고 공부했어요. 서툰 칼질부터 바로 잡아야겠기에 동영상과 책을 찾아보고 매일 시간을 정해 무를 썰었어요. 요리와 관련된 책도 계속 사서 읽었고,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가 공부하고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요리를 배웠어요.
책 속에서 작가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할머니와의 일화가 들어있는 「해녀왕 양원홍」을 꼽고 싶어요. 해녀였던 할머니는 억세고 강인하고 생활력이 정말 강한 분이셨어요. 해녀왕이셨는데 할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진귀한 해산물을 정말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자랐어요. 어렸을 때라 그게 귀한 것인지도 해녀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에 대한 감이 아예 없었어요. 냉동실에 할머니가 채취해 보내주시는 성게알이 종이컵에 가득 들어 있어서 그걸 자판기에서 꺼내 먹듯 집어와 밥 위에 수북이 올려서 비벼 먹곤 했거든요. 그러다 여름방학에 할머니와 오랜 시간을 보낼 기회가 딱 한 번 있었어요. 그 하루의 기억이 제 책에 들어갔는데 그 글을 쓰면서 그냥 많이 울었어요.
독자분들께 제주 음식 딱 한 가지를 추천한다면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시험에 떨어지고 잔뜩 풀이 죽은 채 제주에 내려와 내리 잠만 자다가 ‘이 국’ 냄새에 벌떡 일어났다는 내용이 책에 나오는데요. 바로 제주의 대표적 향토음식 몸국이에요. 몸국은 돼지등뼈를 푹 고아 만든 육수에 해초인 제주 몸(모자반)과 메밀가루를 넣어 오래 끓인 국이에요.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지만 힘이 불끈 솟아나는 소울푸드 같은 요리라 정말 좋아해요. 독자분들도 기회가 되면 몸국 꼭 드셔보세요. 몸국을 드시고 제 책을 읽어보시면 내용이 한층 더 진하게 와닿을 거예요.
책에서 소개된 제주도 사투리가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어요. 독자들에게 제주식 맛 표현을 하나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주 사투리가 생소하기도 하고 억양이 좀 투박한 편이죠? 겉은 무뚝뚝해도 속정 많은 제주 사람들의 성향이 제주어에도 고스란히 묻어 있는데요. 만일 육지 사람인 독자님이 제주 토박이가 요리하는 식당에 가서 이렇게 말하면 식당 주인분이 크게 웃으시면서 반찬이라도 한 종지 더 갖다 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사장님, 음식이 베지근~하니 코시롱해서 아주 좋네요!”
베지근하다는 것은 맛이 담백하니 깊이가 있고 진하다라는 뜻이고, 코시롱하다는 것은 맛이 좋다라는 뜻이에요. ‘베지근’과 ‘코시롱’ 이 두 단어 기억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처음 생각한 꿈이 아니어도 괜찮아’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꿈에 대한 열정을 접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독자분들께 격려의 말이나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커리어가 망가지고 내 인생에 더이상의 반전은 없어 보였던 그때도 완전히 의기소침하진 않았어요. 물론 내적 타격은 상당했죠. 직업 안정성도 떨어지고, 급여도 예전에 제가 받았던 것에 비하면 적은 액수였고, 자격지심으로 괜스레 울적해지는 일도 많았고요. 그럼에도 늘 무언가를 꿈꾸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던 거 같아요. 그 모든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거쳤기에 지금의 제 상황에 더 큰 고마움을 느끼고, 겸허히 세상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제 수업에 온 수강생들 중 나이가 어린 친구들은 물론 주부들도 진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주부들도 시간이 생기면서 뭔가 다시 해보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데 경력 단절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죠. 그런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요. 자신이 무얼 바라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언지를 잘 생각해보라고요. 당장 생각이 안 나면 책도 많이 읽고, 매체도 접하면서 사방팔방에 관심을 주고, 취향과 취미를 살려 꼼꼼히 기록을 해보라고요. 쉬지 않고 계속 갈고 닦다 보면 의외의 곳에서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다고 믿거든요. 제 삶만 봐도 그렇고요.
이 책의 독자와 예비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주 관련 책이 참 많죠? 그중에는 제주 핫플이나 맛집, 관광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은 거 같아요. 이 책에는 핫플이나 맛집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어요. 대신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진짜 제주’의 이야기가 있죠. 이 책을 통해 음식도 맛보고, 바다와 들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제주 사람들도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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