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경의선 철길을 따라 형성된 ‘연트럴파크’와 과거 경마장이었던 성수동 ‘서울숲’ 일대, 스웨덴의 아름다운 관광지가 된 공동묘지 ‘우드랜드’, 가우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바르셀로나의 ‘구엘 공원’까지 우리가 사랑한 공간과 건축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오랜 시간 ‘짓는’ 일에 몸담아온 건축가 조진만은 『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를 통해 건축의 정의와 역할, 사랑받는 도시를 만드는 건축의 비밀, 좋은 건축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진지한 성찰을 건넨다. 뇌과학자 정재승이 “공간에 대한 통찰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긴 책”이라고 말한 것처럼 건축을 ‘구조물 공학’에서 나아가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틀’로써 바라보는 저자가 소개하는 흥미로운 건축 이야기를 밀도 있게 책에 담았다. 뜻밖의 건축물이나 건축가로부터 전혀 새로운 혁신과 발상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는 어떤 일을 하나요? 어떤 계기로 건축가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건축가는 작게는 가구부터 건축물, 공원과 광장, 나아가 거대한 도시 계획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제반 생활 배경이 되는 공간들을 만듭니다. 이러한 공간의 형성을 통해 작게는 개인부터 넓게는 사회를 조직하죠.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회, 자연 등 복잡다단한 관계성의 조직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하는 일을 합니다. 저는 유난히 어릴 적부터 국내외 이곳저곳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 생활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른 생활방식이나 독특한 장소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공간은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흥미를 느낀 것이 오늘날 건축가로서 살아가게 된 계기죠.
신문에 연재하시던 글들이 이 책의 뼈대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처음 글을 쓰시며 주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신문이라는 특성상 해당 시점의 사회적인 문제에 들어맞으면서도 좀 더 긴 안목으로 우리 삶과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내용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건축 이야기지만 비단 건축에만 제한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이나 다른 분야에서도 창의성을 촉발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열악한 우리 건축문화에 대해 일침을 놓을 수 있는 건강한 비판이되,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이후로 다양한 분야에서 급속도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건축’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달라질까요?
인류가 만든 것으로 유사 이래 가장 구태의연한 것이 건축입니다. 도시 문명의 역사가 깊은 유럽의 경우 길게는 수천 년, 짧게는 수백 년 전의 도시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거의 같습니다. 주택이나 기타 건물들도 그사이 코로나만큼 위협적인 스페인 독감을 비롯한 여러 차례 대재앙을 겪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재앙이 ‘더 크게 더 높게 더 많이’라는 우리의 슬로건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여백이나 다양성, 자연과의 관계성 같은 보다 본질적인 가치로 회귀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일반 독자분들이 건축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가장 큰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시원하게 오해를 풀어주세요.
우리는 흔히 건물에 대해 평가할 때 “형태가 매력적이다.”, “쓰인 자재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건축에서는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예술의 표현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관계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는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남, 자연과 인간, 개인과 사회, 안과 밖 등 다양한 관계성을 통해 우리 문화와 사회는 발전했습니다. 우리 주변 일상의 공간들은 모두 사회와 제도의 산물로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합니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미학적인 껍데기를 제거하면 드러나는 관계성이라는 속살이 가장 중요합니다.
건축가가 지녀야 하는 자세나 태도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종래 건축가의 이미지가 작업실에 앉아서 사색하고 조용히 스케치하는 정적인 모습이었다면 오늘날 건축가들은 기회가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한 걸음에 달려가 설계공모전에 참가하는 격투기 선수 같은 투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주변을 잘 살피고, 보통의 정답을 제시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를 얼마나 잘 제시할 수 있는가입니다. ‘성공 경험을 어떻게 축적해 나가는가’라는 보다 전향적인 자세가 앞으로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만드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건축의 민낯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신 부분들이 있던데, 책에는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부동산을 비롯해 건축물 관련 매년 새로운 제도가 쏟아집니다. 과연 이런 것들만으로 우리의 도시와 안전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마오쩌둥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새가 곡식을 먹는다고 하여 참새를 모두 잡은 것이죠. 그런데 다음 해에 메뚜기가 이상 증식을 해서 참새가 곡식을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기근이 발생했고, 사망자가 넘쳐났습니다. 건축 문화는 하나의 살아있는 생태계와 같습니다. 규제와 처벌 위주의 정책들은 반드시 뜻하지 않은 역효과를 내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여러 부조리함에 대하여 앞으로 건축가로서 작업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논하고 싶습니다. 섣부른 글이나 대안 없는 불평에 머무는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건축에 대해 새로운 인상을 받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이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리는 건물을 '만든다'라고 말하지 않고 '짓는다'라고 말합니다. 뚝딱뚝딱 되풀이해서 '만드는' 것과 달리 개개인의 삶을 이루는 바탕이 되는 창조 행위이기에 '짓는다'라고 표현한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건축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사회와 그것이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이자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 행위입니다.
무작정 채우기보다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비움 있는 건축’, 큰 질서보다 느슨한 부분들의 조합으로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열린 공간’, 안전제일주의로 인해 외부로부터 철저히 단절되기보다 조금의 불편함 속에서 스스로 ‘삶을 사유할 수 있는 건축’. 주변의 다양한 것들과 소통하고 도시의 구성원으로서 건강한 공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건축이 보다 우리 삶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든다고 봅니다. 건축의 진정한 가치는 함께하는 장소를 만들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하나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진만(건축가) 편리함과 익숙함을 넘어 일명 ‘뒤통수치는 건축’, ‘당황시키는 건축’을 표방하는 젊은 건축가. 한양대학교와 베이징의 칭화대학교에서 공부하고, 건축가 렘 콜하스의 ‘OMA’와 승효상의 ‘이로재’를 거치며 중국과 유럽에서 건축 수련을 했다.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를 역임했다. 제 역할을 잃어버린 도시의 죽은 공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관습화된 공간을 창의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특기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도서관’, ‘창신 숭인 채석장전망대’, 옥수동 고가하부의 ‘다락옥수’, 대방동 지하벙커의 ‘청소년 창의혁신 체험공간’ 등을 설계했으며, 공공건축뿐만 아니라 판교동의 ‘층층마루집’, 대치동의 ‘K2타워’ 등을 설계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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