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가 선사하는 인류에게 필요한 따뜻한 온기, OK Human
위저는 이 음반을 기점으로 이들을 미처 모르는 현세대에게도 새로운 추억을 아로새길 수 있는, 그런 생명력을 가진 밴드가 됐다.
글ㆍ사진 이즘
2021.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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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저의 관심사는 다름 아닌 ‘발굴 작업’ 이었다. 명곡의 재해석을 다룬 과 과거 아티스트에게 연모를 표하던 , 심지어 발매를 앞둔 는 밴 헤일런(Van Halen)의 추모라는 취지 아래 강렬한 하드 록 트랙으로 빽빽히 채워질 예정이었다. 물론 1992년도 데뷔 이래 꾸준히 명맥을 이어온 이들에게 어느 정도 과거에 대한 찬양과 헌사는 마땅해 보이기도 한다. 애초에 파격 변신의 신선함보다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온 데 의의가 있는, 마치 늘 정겹고 편안한 단골 가게와 같은 밴드가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눈여겨볼 건 본작이 택한 본격적인 외도(外道), 즉 여러 작법을 시도한 이나 전자음을 가미한 의 사례를 상정하더라도 일정 오차는 벗어나지 않던 그들이 처음으로 완전한 전복을 꾀했다는 점이다. 영감의 원천은 해리 닐슨(Harry Nilsson)과 비치 보이스(Beach Boys) 등 여전히 과거에 두고 있지만, 서른여덟 명의 오케스트라 세션 투입과 의 프로듀서 제이크 싱클레어(Jake Sinclair)와 주도한 콘셉트는 이전에 없던 영역으로의 탐사를 예고한다. 라디오헤드의 가 고도 문명사회의 차가운 소음을 담아냈다면 은 그로부터 대척점에 존재한다. 그 초점은 비단 급속도의 과학 발전뿐만 아닌, 범유행이 야기한 관계의 고립 속 작금의 인류에게 필요한 따뜻한 온기다.

All my favorite songs’ 를 시작으로 부드러운 선율 중심으로 울림을 자극하는 챔버 팝(Chamber Pop) 트랙이 이어진다. 한 편의 오페라를 보는 듯, 진행에도 막힘이 없다. 여러 악기를 번갈아 취함에도 곡간 연결부를 매끄럽게 가다듬은 덕에 마치 하나의 장편처럼 다가온다. 새로운 작풍 가운데 리버스 쿼모의 감각적인 선율 창출력은 완급을 조절하며 진부함의 경계를 유연하게 피해 나간다.

차례차례 등장하는 건반과 관현악에 맞춰 재치 있는 비유를 풀어나가는 ‘Numbers’ 나 뚜렷한 기승전결 가운데 본인의 성장 서사를 내포한 ‘Bird with a broken wing’ 은 음반이 지향하고자 한 웅장한 공간감과 미묘한 아날로그적 향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s’ 의 스킷으로부터 연결되는 ‘Here comes the rain’ 는 비틀스의 곡 ‘Here comes the sun’ 을 반대로 소환함과 동시에 그들만의 희망적 주제로 탈바꿈하는데, 이는 복합적 형식 가운데 그들이 선포한 거창한 주제 의식을 만족하는 순간이다.

다만 빈약한 부분도 존재한다. 쿼모는 씻지 않은 채 줌 미팅을 피하고(‘Playing my piano’), 코로나 이전 평범한 데이트를 회상하거나(‘Aloo gabi’), 오디오북에 빠져 사는 등(‘Grapes of wrath’) 팬데믹 사태를 반영한 소소한 공감 거리를 제시하지만, 이러한 소재는 꽤 얕은 수준에 그치며 매력적 요소로 격상하지 못한다. 대부분 곡의 후렴구 또한 적당한 감탄사나 고음으로 끝맺음 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대개 비슷한 종류의 고양감이 반복되기에 청자로써 모호한 기시감을 남기기도 한다.

은 확실히 위저가 계승해온 결과 다르다. 그렇기에 혹자는 명반이라 불리는 ‘블루 앨범’ 의 지저분한 기타와 젊음의 난동의 부재를 지적하며, 기성 팝의 일부로 ‘변질’ 되어 버린 밴드에게 정통성을 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수식어가 정녕 자리를 비우고 오로지 음악만이 남을 때, 밴드 사운드와 오케스트라의 조화를 일궈낸 의 포용성은 빛을 발한다. 지금껏 1994년도 시절의 추억을 토대로 커리어의 연장선을 빚어온 밴드가 위저라면, 이제 위저는 이 음반을 기점으로 이들을 미처 모르는 현세대에게도 새로운 추억을 아로새길 수 있는, 그런 생명력을 가진 밴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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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