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알로 파크스, 청춘의 성장 시집

알로 파크스(Arlo Parks) <Collapsed In Sunbeams>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거리두기와 마스크의 어두운 시대 속에도 눈부시게 화창한 날을 꿈꾸게 하는 청춘의 성장 시집. (2021.02.24)


아지랑이 피는 잔향 속 시는 노래가 되어 따사로운 햇살처럼 부서진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Frank>처럼 자유롭고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처럼 우아하며, 코린 베일리 래의 숙련된 자연스러움이 어우러진 이 세계는 청각으로 다가와 구어체의 가사로 읽히고, 다채로운 공감각의 심상을 펼쳐낸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는 아니지만 견고한 만듦새가 반복 청취의 욕구를 자극한다.

풍부한 감상은 앨범의 주인공 알로 파크스(Arlo Parks)가 2000년생, 올해로 만 스무 살이라는 신인이라는 데서 놀라움으로 바뀐다. 익히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감탄보단 재능의 증명처럼 다가와 뿌듯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긴 패션 브랜드 구찌와 영화감독 구스 반 산트의 선택을 받고, 영국 국영 방송국 BBC의 ‘사운드 오브(Sound of)’ 시리즈에 이름을 올리며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티스트 겸 시인이 된 그의 데뷔작이 서툴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일 터.

네오 소울과 재즈, 1990년대 영국 트립합을 아우르는 알로 파크스의 음악은 빛바랜 노스탤지어 필름처럼 로파이(Lo-fi) 질감의 인디 팝이다. 짙은 리버브의 기타 연주와 날 것의 비트, 안개 짙은 코러스 위 사춘기의 혼란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코로나 19로 건조해진 세상을 바라본다. 여타 MZ세대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곳 가라앉은 음울이 감지되지만 그의 음악은 물 빠진 무채색이 아니라 겨우내 몽우리 진 꽃봉오리처럼 생기롭다.

그 바탕에는 깊은 목소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 선배들과 더불어 더 인터넷의 시드(Syd),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등 시카고 소울 싱어들을 연상케 하는 알로 파크스의 노래는 선명하다. 또박또박한 발음과 깊은 목소리로 노래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강약을 조절한다. 앨범을 여는 ‘ Collapsed in sunbeams’ 의 시낭송으로부터 선명한 ‘Too good’과 쓸쓸한 울림을 담은 ‘ Caroline’ 의 대비, 라디오헤드의 영향이 느껴지는 ‘Eugene’ 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가창에서 탄탄한 기본기를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온화하다. 이유 없는 좌절과 친구에 대한 오해는 ‘Bluish’ 처럼 십대의 특권이지만 그는 보다 낮은 곳을 향해 위로하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데 집중한다. 우울에 몸부림치는 친구에게 건네는 'Black dog'의 위로는 현실적이고 ‘Hope’ 는 제목처럼 긴 설명 대신 ‘넌 혼자가 아니야’ '라며 따뜻하게 손을 잡는다. ‘삶의 어려운 부분을 직면하면서도 비참하지 않고, 순진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적이어야 했다'라 밝힌 애플 뮤직과의 인터뷰가 문득 머리를 스친다.

차분한 작품임에도 ‘가디언’ 지가 ‘비정한 겨울의 깊은 곳에 불어온 따뜻한 바람’ 이라 평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때때로 곡의 차별성이 흐릿해지고 일상에 중점을 둔 노랫말이 단조롭게 들릴 때도 있지만, 오히려 방금 막 사춘기 터널을 벗어난 젊음의 솔직한 자기표현 같아 반갑다. 로파이 힙스터들의 취향을 저격하면서도 현학적인 태도 대신 직관적인 언어로 노래하며 대중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점 역시 좋다. 거리두기와 마스크의 어두운 시대 속에도 눈부시게 화창한 날을 꿈꾸게 하는 청춘의 성장 시집.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나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좋을 단 하나, 사랑

임경선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주인공의 일기를 홈쳐보듯 읽는 내내 휘몰아치는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자기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그 마음을 멈추지 못하는, 누구나 겪었을 뜨거운 시간을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로 표현해낸 소설.

매혹적인 서울 근현대 건축물

10년째 전국의 건축물을 답사해온 김예슬 저자가 서울의 집, 학교, 병원, 박물관을 걸으며 도시가 겪은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살펴본다. 이 책은 도시의 풍경이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당신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해줄 것이다.

2024 비룡소 문학상 대상

비룡소 문학상이 4년 만의 대상 수상작과 함께 돌아왔다. 새 학교에 새 반, 새 친구들까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처음’을 맞이하고 있는 1학년 어린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섬세한 시선이 눈부신 작품. 다가오는 봄, 여전히 교실이 낯설고 어색한 친구들에게 따뜻한 격려와 응원을 전한다.

마음까지 씻고 가는 개욕탕으로 오시개!

『마음버스』 『사자마트』 로 함께 사는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김유X소복이 작가의 신작 그림책. 사람들이 곤히 잠든 밤, 힘들고 지친 개들의 휴식처 개욕탕이 문을 엽니다! 속상한 일, 화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까지 깨끗히 씻어 내는 개욕탕으로 오세요!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