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마음의 병이 찾아왔을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이 책을 매개로 이야기되고, 함께 위로를 나누고, 더 나은 시간을 위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작은 소명을 다한 거로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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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의 병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어두운 방에서 고개를 무릎에 묻은 채 울고 있는 딸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청소년기부터 우울증을 겪어온 대학생 딸과 그 우울증을 이해하고 견디는 과정에 동행한 엄마가 함께 책을 썼다. 엄마 지숙 씨는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고, 딸 서현 씨는 ‘그림’으로 응답했다. 이들이 함께한 과정은 ‘혈투’라고 할 만큼 힘들고 치열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듬고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비단 우울증을 겪지 않더라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보았을 갈등과 복잡한 감정을 놀랄 만큼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낸 저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한편으로 용기를 얻을 것이다. 엄마 최지숙과 딸 김서현, 두 저자를 만나본다.



두 분이 함께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최지숙: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동에서 입원했다 퇴원한 서현이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고, 심해어처럼 집안을 맴돌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산책을 청했는데 먼저 현관 쪽으로 향하던 서현이가 창문에 방충망까지 열고 10층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기에 놀랐습니다. 그 무렵, 아파트 옥상에서 오도카니 어딘가를 응시하는 여자아이를 그린 서현이의 그림을 봤던 터라, 마음이 더 무너져 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현이에게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서현이는 희망적이고 즐거운 계획이 있으면 눈에 띄게 밝아지곤 해서 제가 그런 제안을 했던가 봅니다. 자신의 그림이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잠깐 혹한 건지 서현이가 “좋다”고 하더군요.

이 책의 제목은 서현 씨가 “엄마, 매일 실패해서 미안해”라고 보낸 카톡 메시지에서 따온 것인데, 이 메시지를 보낼 당시 서현 씨와 지숙 씨의 마음이 어땠는지 들려주세요.

김서현: 그 메시지를 보낸 건 2학년이 시작되는 2017년 봄이었습니다. 저는 1학년 때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점을 거의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 무렵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했는데,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 같고요. 통학하는 데 2시간이 걸리는 학교에 매번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도 힘들었고, 친구들과 좀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책에 썼던 것처럼,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어요. 1학년 내내 학점을 챙기지 못했는데 새 출발을 결심한 2학년도 휴학으로 마무리되니까, 저도 너무 괴롭고 엄마한테도 미안했던 것 같습니다.

최지숙: 처음부터 책 제목으로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를 마음에 두었지만, 글을 쓰면서는 ‘닥치고, 불량공주’나 ‘불량공주는 오늘도’라고 바꾸고 싶단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서현이 덕분에 보게 된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의 주인공 모모코가 워낙 서현이와 겹치는 캐릭터이고, 우울증으로 힘든 분들에게 더는 무거운 얘기를 보태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메시지를 주고받을 무렵 서현이와 저의 마음을 담은 지금의 제목이 책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지숙 씨의 글에 공감하며 마음 아파하다가, 서현 씨의 상황에 안타까운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최지숙: 우울증을 겪는 분들이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현이는 “날 좀 혼자 내버려 둬”라는 말을 무척 자주 합니다. 보통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와주는 게 상책이긴 한데, 혼자 있고 싶다는 외침 뒤엔 ‘누구든 날 떠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지레 넘겨짚고 마음의 문을 닫지만, 철저히 혼자가 되는 건 싫은 여린 마음이 숨겨져 있는 셈이랄까요.

이럴 땐 곁에 있는 사람의 ‘온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서현이보다 펄펄 끓어서도 안 되고, 겨울날 불 꺼진 구들장처럼 차가워도 곤란합니다. 다 괜찮다느니 잘될 거라느니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위로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차라리 가구처럼, 벽지처럼 옆에 조용히 있어 주는 편이 낫지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거나 같이 영화를 보는 정도가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서현이의 날 내버려 두라는 외침 뒤에는 날 떠나지 말아 달라는 속삭임도 섞여 있음을 알게 된 셈입니다.

책 표지의 그림이 무척 인상적인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최지숙: 넓은 풀밭을 배경으로 하늘로 날아가려는 딸을 엄마가 양손을 뻗어 붙잡는 그림입니다. 서현인 “땅에 발을 딛지 못하고 떠다니는 자신을 엄마가 붙잡아 주는 모습”이라고 말했는데요. 이 그림을 본 어떤 이는 “늪에 빠지려는 엄마를 핑크 머리 아이가 구해주는 그림 같다”고 하더군요. 책을 읽는 분들은 또 어떤 다른 생각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김서현: 엄마와 제가 보고 또 보는 영화 중에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있습니다. 영화 속에 엠마라는 소녀가 나옵니다. 엠마는 공기보다 가벼워 납으로 된 신발을 신지 않으면 하늘로 날아가 버립니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엔 사랑하는 친구들 덕분에 엠마가 허공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엠마 입장으로 생각하면 마음껏 자유롭게 세상을 떠다닐 수 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겁디무거운 납 신발을 견디는 건지도 모르지요. 이 그림을 그릴 때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이 출간된 후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최지숙: 서현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친한 친구나 이웃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자살 기도나 정신병원 입원 같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는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어 놀란 분들이 많았습니다.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서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멈춘다며, 이 글이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오랜 지인도 있었고, 통화하면서 너무 많이 울어서 오히려 절 미안케 만든 친구도 있었습니다. 우울증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어떤 분이 책을 읽은 뒤 “실은 저와 딸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요”라고 운을 뗄 땐 저도 두말없이 꼭 안아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이 책을 매개로 이야기되고, 함께 위로를 나누고, 더 나은 시간을 위한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작은 소명을 다한 거로 생각합니다. 본인이나 가족의 정신질환 때문에 힘든 분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서로 위로받고,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합니다.

서현 씨는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이 책에 앞서 텀블벅을 통해 <유리의 꿈>이라는 그림책을 출간했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서현: 일러스트 관련 책을 한 권 더 만들고 싶습니다. 요즘엔 신화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게 되는데요, 그래서인지 유령이나 사후세계의 이미지에 관심이 커졌고, 그런 내용의 그림을 더 그려보고 싶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부모-자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요?

최지숙: 우울증은 몸과 마음에 고통 혹은 통증이라 부를 만한 증세를 불러옵니다. 그렇기에, 가장 핵심적인 접근법은 ‘치료’입니다. 필요하다면 약을 처방받고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참기 어려운 두통이나 치통이 덮쳤을 때, 통증이 사라진 미래를 생각하며 희망을 품는 건 나중 문제입니다. 일단 현재의 고통을 멈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울증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치료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으면 합니다.

책에서 썼던 이야기들은 빼고, 쉽고 단순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본인 스스로 안심되는 일, 조금 덜 힘들고 병아리 눈물만큼이라도 더 행복한 일을 하면서 오늘 하루를 보내세요. 그리고 우울증을 겪는 가족이 있다면,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지켜보며 자주 마주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세요. 저는 서현이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동네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어마어마하게 많이 먹었습니다. 결국 그게 제가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김서현: 솔직히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천차만별이라 제가 단정적으로 말하는 건 (어떤 분들에겐) 기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긴 해도 별로 힘들지 않은 일들을 조금씩 해보거나, 기대할 수 있는 계획(사건)을 만드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우울한 사람들에게 많이 권하는 방법이긴 한데, 사실 그것조차 힘든 분들도 많지만. 제 경우에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최지숙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 [비디오 무비], [스크린] 등의 잡지에서 영화 전문기자로 일했다. IMF가 시작되던 해,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의 공동저자인 첫딸 서현이를 낳았고, 몇몇 잡지에서 영화 관련 글을 쓰며 몇 년간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이후 세 아이를 키웠다. 서현이와 함께 우울증을 이해하고 견디는 과정을 기록하고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김서현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와 아이돌을 좋아한 것을 계기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범했지만 한편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며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모 대학 디자인과에 입학했으나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몇 년 전부터 자신의 감정과 취향을 이미지로 바꾸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제작 판매하고 있고,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그림책 『유리의 꿈』을 출간했다. 현재 우울증으로 상담치료를 받고 있으며,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운영하며 꾸준히 그림을 올리고 있다.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
네가 매일 실패해도 함께 갈게
최지숙,김서현 공저
끌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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