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리더가 드물었던 90년대에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HR 부문의 혁신과 변화를 주도한 윤여순 전 LG아트센터 대표는 거창한 직장 생활 성공법을 가르쳐준다기보다 같은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일과 육아를 병행해본 엄마로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풀어냈다. 또한 20년 넘게 다양한 유형의 상사, 부하, 선배들과 직접 부딪히며 깨달은 일하는 여자가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지혜와 내공들을 들려준다. 특히 직장 후배는 물론 퇴임 후 코칭과 강연을 통해 만난 수많은 대학생, 워킹우먼들의 사례는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고, 관계를 맺어야 할지 답답한 여성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다.
‘우아하게 이기는 여자’라는 제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어떤 의미인지, 어떤 독자들을 떠올리며 이 책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아하게’라는 단어는 원고를 보신 편집진의 추천안이었습니다. 제가 일하며 터득한 스타일을 이렇게 표현해 주셨더라고요.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세계를 펼쳐나가는, 나 자신과 경쟁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리며 글을 썼기에 저 역시 ‘우아하게’라는 표현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저의 경험이 오늘날 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싶었죠. 하지만 퇴임 후 코칭과 강연을 하며 많은 분을 만났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놀라운 건 제가 직장 생활을 했던 당시와 지금의 여성들이 하는 고민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죠. 20여 년의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조직 내에서의 제약이나 편견, 워킹맘들의 고충은 여전한 게 사실입니다. 이 책은 그들과 대화하고 함께 답을 찾았던 과정을 떠올리며 글을 썼기에 일하는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성장하고 있고 성장하고 싶은 분들이 이 책의 독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 ‘최초’의 여성 CEO이신데요, ‘최초’란 달리 말하면 ‘기준이 되는’ 존재이기도 하죠. 맨 앞에서 길을 열어가는 입장에서 때론 부담도 크고 막막했던 순간도 많았을 텐데요, 그럴 때 어떤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도움이 되었나요?
‘최초’라는 단어는 얼핏 화려해 보이죠. 하지만 막상 최초의 주인공이 되니 막중한 책임감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처음으로 한 말과 행동이 이후의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수준’을 가늠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다 보니 스스로나 주변을 보다 객관화해서 보는 여유도 생겨나더군요. 앞선 예가 없어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지만 나만의 소신이나 스타일에 대해 한편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여러 대기업과 지자체에서 ‘여성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이제는 코로나19처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에 처하는 일도 생겨납니다. 자연히 기존의 위계적인 질서는 무너지고 있어요. 이처럼 세상이 복잡해지고 다원화될수록 관계지향적이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친화적이고 협동적인 리더십이 요구되는데요, 그 가운데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여성적인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죠. 남성에게도 마찬가지로요. 이제는 남성 위주의 사회에 여성을 받아준다는 자세가 아닌, 여성이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을 최대한 살려 ‘함께’ 이루어간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워킹맘 4명 중 한 명이 매주 직장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자녀의 양육, 교육, 가사 등을 일과 병행하는 데서 따르는 어려움 때문일 텐데요, 결국 ‘일하는 여성’과 ‘엄마’ 사이에서 일을 포기하는 분들도 많죠.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씀 한 마디 부탁 드려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육아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아직은 어려운 얘기죠.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나갈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일을 해나가는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과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엄마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구태여 일을 안 해도 되는데, 혹은 육아에만 전념해야 하는데 내가 스스로 택해서 일을 한다는 데서 오는 ‘죄책감’입니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무한한 ‘희생’과 자신을 찾는 자아가 나의 ‘이기심’이 아닌가 하는 사이에서 혼란이 오는 거죠. 하지만 일과 육아는 양자택일해야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엄마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자체가 아이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산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데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고 좀 더 자신감 있게, 당당해져야 합니다. 혼자 고민하거나 무리해서 감당하기보다는 아이와 솔직하게 얘기를 나누고 남편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과 함께 답을 찾기를 바랍니다.
여성이 나의 ‘자아’를 찾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한다는 것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일이 되죠. 이런 심리 상태라면 어떤 역경도 능히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퇴임 후 편안히 쉴 수도 있었을 텐데 다시 전문코치가 되어 대학생들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 강연과 코칭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코칭’에 특별히 관심을 갖고 공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퇴임할 무렵 코칭을 처음 접했습니다. 코칭은 사람 중심이고, 나 중심이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파워풀하다고 느꼈습니다.
퇴임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자연스레 지난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한창 일할 때는 머릿속이 온통 일로 꽉 차 있었으니 늘 사람보다 일이 먼저였죠. 그것이 아쉬움으로 남더라고요. 지나간 일을 아쉬움으로만 남기면 후회로 남을 테니 그보다는 뭔가 더 나은 일로 만들고 싶었어요. 자연스레 코칭이 떠올랐습니다. 코칭을 하면서 늘 배우고 있고 누군가가 스스로 답을 찾고 변화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며 행복합니다.
상사와의 트러블, 팀장 역할에 대한 고민, 승진 문제, 부하직원과의 소통 등 일하는 여성이 조직 내에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와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팁이 많아 보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강조하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일하는 여성을 둘러싼 장벽은 매우 높고 많습니다. 이것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는 바로 ‘나 자신’이라고 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와의 경쟁에서 한계를 두지 말고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일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팁이나 방법들은 다 중요합니다. 이들 중 본인에게 유용한 방법을 적용해보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가면 좋을 듯합니다.
바쁜 삶 속에서도 내가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그것을 위해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한다고 하신 부분이 무척 공감되었습니다. 책에서 작가님의 ‘즐거운 것’은 영화와 미술 작품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이 책의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미 책에서 몇 편의 영화를 소개했죠. 최근에 본 영화를 하나 떠올린다면 김초희 감독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입니다. 아주 신선하고 재밌게 봤는데요. 여성이 각본을 직접 쓰고 감독한 영화입니다. 찬실 역을 맡은 여배우 강말금도 매우 신선했고요. 마흔이라는 문턱에서 열심히는 살았지만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현실은 사방팔방 꽉 막힌 것 같아 인생 막다른 골목에 선 것 같은 여성이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훈훈한 얘기입니다. 너무 순진하게 희망적이지도 않고, 교조적이지도 않고 그러나 현실적이면서도 차분하게 위로받고 힘을 낼 수 있는 아주 맑은 느낌의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잃지 않고 있는 영화에 대한 판타지를 러닝셔츠와 팬티 바람의 장국영으로 표현하는 위트도 돋보이고요. 한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각 분야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일하는 여성’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라! 우아하게!
*윤여순 연세대학교 졸업 후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잠시 했고 결혼하면서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 우연한 기회에 공부에 도전했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신념으로 육아와 석·박사 과정을 병행했다.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려 했으나 LG와 인연이 되어 기업에서 커리어를 다시 시작했다. 2000년에 LG인화원에서 LG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되었고 상무와 전무직을 거치며 HR 부문의 성장과 혁신을 주도했다. 2011년에는 LG아트센터 대표로서 예술 경영의 지평을 넓혔다. 기업 내 여성 팀장도 드물던 시절, 단 한 번도 여성 동료, 여성 상사와 일해본 적 없는 남성들 속에서 상징적 존재가 아닌 ‘윤여순’이라는 이름으로 고군분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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