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부부터 거대하다. <쾌락설계도>를 따라 <재건축>을 거쳐 <가로사옥>으로 연결되는 '건축 삼부작' 대형 프로젝트를 현실화했다는 점, 앨범이 취할 수 있는 여러 예술적 장치를 야심 차게 배치했다는 점에서 작품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욕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준수한 커리어를 이어온 쿤디판다지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로사옥>은 그중에서도 완성을 향해 지독한 검열과 고뇌를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3년 동안 앨범의 농도는 더 짙고 조밀해졌다. 앞선 두 앨범이 도면을 그리고 공사하는 과정이었다면 <가로사옥>은 완공의 결과물이다. 큰 돌과 굵은 자갈을 대략적인 용기에 먼저 담았다면 이번에는 빈 곳을 모래로 채울 차례라는 듯, 꽉꽉 눌러 담은 열 곡이 그의 깊고 어두운 내면을 파고들어 쌓인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쇼미더머니 5를 탈락한 직후의 스무 살부터 가중된 욕심의 무게를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침전에서 비롯된 앨범의 자기 고백적 성격을 뒷받침한다.
부유선, 주인공, 개미 등 전작부터 언급하던 주요 키워드를 속속히 등장시키며 연작의 특징을 암시하고, 열등감(네버코마니)과 피해 의식(자벌레), 가식(양심트리거)과 체념(겟어웨어) 같은 껄끄러운 소재를 가감 없이 호출하여 삼키고 소화한다. 구체적인 개인의 경험을 언급하며 처절하고 진솔하게 밑바닥까지 훑는 전개에는 일종의 고해와 같은 숭고함이 묻어난다. 중간중간 '향바코'와 '어덜트금고'의 건전한 고찰을 섞으며 염세주의적 단면을 유연하게 타파하기도 한다.
눈여겨볼 점은 서사를 풀어나가는 속도와 몰입감과 그 압도적인 기세다. 플라잉 로터스(Flying Lotus)의 'Never catch me'가 떠오르는 '블랙박스'의 포문에서 서정적인 마지막 트랙 '집'까지, 라임과 언어유희로 점철된 래핑이 일말의 환기 없이 빼곡히 채워지고 치닫는다. 수록곡들의 제목이 두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형식을 택한 것처럼 <가로사옥>은 십자말풀이로 이뤄진 큐브를 빠르게 맞추는 듯한 언어적 쾌감을 선사한다. 가벼운 시를 표방하는 최근 힙합 신의 노랫말에 비해, 그의 음악은 장단의 문장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장편소설에 가깝다.
통기성이 부족한 탓에 앨범은 필연적인 피로도를 동반한다. 다루는 내용과 범위가 국소적이고 빽빽하기에 가벼운 감상으로는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놓치기 쉽고, 청자에게 그만한 집중과 반복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게다가 랩과 비앙(Viann)의 개성 넘치는 사운드가 교차하며 수많은 킬링 트랙을 낳은 <재건축>과 비교해 본다면, 유기성을 강조하며 가사의 분위기와 강약에 철저히 맞춰진 본작의 프로듀싱은 래핑의 화려한 독주를 돕는 조력자 역할에 가깝다. 개개의 만듦새는 우수하지만, 멜로디 라인이 순간 랩을 치고 나오는 '킥아웃코드'와 같이 사운드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의 빈도가 낮다.
그럼에도 <가로사옥>은 앨범 단위의 작품성을 끈질기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복잡한 타임라인과 풍부한 분석 요소가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롭게 제시되어 리스너들의 순수하고도 다양한 해석의 장을 활성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쿤디판다는 본인의 치부가 가득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사옥(舍屋)이라는 개념과 연관 짓고, 힙합 신에 쾌락을 넘어선 토론, 사유의 필요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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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