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민 PD는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신촌의 비좁은 고시원과 하숙방에서 이십 대를 보냈다. 2012년 MBC에 입사해 예능 PD로 일했다. 월세에서 전세로, 원룸에서 투룸으로, 그리고 자취에서 자립으로 그의 생활도 점점 확장되고 단단해졌다. 2014년 MBC의 세월호 관련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뒤 제작 업무와 무관한 지사로 발령되었다. 이 상황을 웹툰으로 그려 SNS에 올렸고 부당 해고를 당했다. 법원의 판결로 2년 만에 다시 예능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8년의 MBC 생활을 마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창작자이자 ‘좋은 어른’이 되기를 꿈꾸며 새로운 곳에서 콘텐츠 만드는 일을 이어나가고 있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특별한 계기가 없어요.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도 늘 책을 끼고 살았어요. 책이 넉넉하게 있는 여유로운 집은 아니었어서, 엄마 따라 미용실에 가도 기다리면서 책만 붙들고 있었고, 책이 많은 친구 집에 가면 친구는 제쳐 두고 허기를 채우듯 그 집 책만 하염없이 읽다 오곤 했어요. 그냥 기질이 그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저는 운이 굉장히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한국사회에서 어릴 때부터 읽고 쓰는 걸 잘하면 유리한 점이 많잖아요. 여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입시나 취업 관문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부단한 노력의 결과처럼 이야기될 때가 많은데, 제 경우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노력하지 않아도 읽는 게 즐거운 아이로 태어난 운.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저는 하염없이 한정적인 존재니까요.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에 가면 그 방대한 양의 책 앞에서 설렘과 한없는 무력감이 동시에 몰려와요. 당장 오늘부터 평생 책만 읽으며 살아도 여기 있는 책을 다 못 읽고 죽을 텐데, 그 생각을 하는 중에도 새로운 책이 수십 권씩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억울하죠. 세상에 내가 모르는 삶, 이야기, 지식이 이렇게나 많은데 내가 아무리 발악해봐야 넓힐 수 있는 지경은 티도 안 나겠구나.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알고 경험해보고 싶어요. 책 읽는 시간은 저에게 그렇게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을 계속 좇아가는 시간이에요.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저의 요즘 관심사는 대중성이에요. 방송도 만들고 책도 쓰며 꾸준히 대중에게 말을 거는 일을 해오고 있는데, 꾸준히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다행이긴 하지만 제가 창작자로서 좀 대중성이 부족한 편인가 하는 고민을 늘 하거든요. 영화나 문학처럼 작가주의를 인정받는 영역이라면 모를까 대중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괴로운 지점이니까요.
그전에는 그저 제 관심사를 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면 요즘에는 김이나 작사가의 『보통의 언어들』이나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한 대답』,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처럼 대중에게 넓게 소구하는 분들의 작품을 유심히 보려고 해요. 동료 PD들이 ‘그걸 또 책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니가 글러 먹은 거다’라고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긴 하지만요.
최근작 『서울에 내 방 하나』와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책을 읽은 분들로부터 ‘내 얘기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서울에 올라와 집이 아닌 방에 살았던 15년 동안 제가 겪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였구나’ 하고 많이 느껴요. 반면 PD라는 조금은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고민도 많이 담았는데요, 자기 직업을 갖고 경력을 쌓아가는 사람이든 혹은 아직 직업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든 저마다의 고민과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독특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밥벌이와 의미와 재능 부족 사이에서 고민하는 어른의 과도기’로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김현경 저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책 중에 가장 꽉 찬 밀도의 책. 한 페이지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만큼 사유와 개념을 쉴 새 없이 넘나들지만 그만큼 모든 문장이 가치 있다. 사회과학 서적도 이토록 스펙터클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만든 책.
테드 창 저/김상훈 역
탈무드를 읽는 기분이었다. 테드 창은 현대의 랍비가 아닐까.
헤르만 헤세 저/임홍배 역
몸으로 부대끼며 새기는 지혜와 지독한 탐구로 이르는 지혜는 어디서 만날까. 항상 내 삶에 흙과 땀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는 자격지심을 조용히 어루만져 준 작품.
스콧 맥클라우드 저/김낙호 역
매체와 예술에 대한 가장 놀라운 안내서. 만화라는 수단으로 인간의 상상력을 활용하는 방식이 세 페이지에 한 번씩 하! 하고 탄성 어린 웃음을 흘리게 할 만큼 놀랍다. 미디어와 예술에 대해 공부하는 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정세랑 저
소설을 잘 읽지 않지만 소설의 재미를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권하고 싶다. 내면 묘사가 많지 않은데 인물은 살아있고 무게감이 묵직한데 리듬은 경쾌한, 유, 수분 밸런스가 적당한 소설. PD나 영화감독처럼 영상이 자기 언어인 사람들이 딱 좋아할 영화적 서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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