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인류의 오답 노트.’
얼마 전 유명 유튜버가 자신의 『삼국지연의』 관련 영상에서 접한 말이다. 역사를 통해 어떤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낳는지 배우고, 올바른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역사는 오답뿐만 아니라 정답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기출문제집에 더 가깝다. 인생이 끊임없이 어떤 문제를 해결해가는 일종의 시험이라면 앞서서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역사인물들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인생이란 시험의 기출문제집을 푸는 일과 비슷하다.
『마흔, 역사와 만날 시간』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40대 수험자를 위한 기출문제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의 불안, 인간관계, 일의 성패 등 인생의 난제들을 겪었던 역사인물 38명을 통해 40대를 위한 삶의 지침을 들려주는 이 책의 저자 김준태 작가를 만났다.
마흔이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아직도 내 길이 무엇인지 확신이 없는 나이’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의 마흔, 선생님의 40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우리 나이로 마흔셋이니까, 아직 40대 전체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초입에 들어서서 발걸음을 내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공자가 한 말에서 유래했는데, 흔히 서른을 이립(而立), 마흔을 불혹(不惑)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이립’은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의 출발점에 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 길 위에서 10년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이 길이 맞나?’ ‘다른 길로 갈까?’하고 미혹되지 않는 ‘불혹’의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거죠. 한데 막상 마흔에 와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더 흔들리고, 여전히 확신은 없고, 그런데도 마흔이라는 나잇값을 해야 하니 겉으론 능숙한 척, 강한 척해야 하고요. 그래서 힘들고 고독하죠. 그러나 40대는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이 나뉘는 지점이잖아요. 전반전을 잘 마무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후반전을 설계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40대죠. 따라서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저의 최대 과제입니다.
작가님도 마흔 즈음에 흔들리신 경험이 있을 텐데, 이 책에 등장하는 역사인물 중 흔들리는 작가님을 붙잡아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한 분만 거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거든요. 예컨대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이 들 때면 김득신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김득신과 같은 노력을 해보았는가? 나의 모든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내 보았는가? 그러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절망하고 포기하는가?’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억울하거나 힘든 일을 겪었을 때는 사마천을 생각하죠. 그 참혹한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고 목표를 향해 자신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역사에서 만나는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의 언행이나 자취가 곧바로 내게 해결책을 주진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저장해 놓고, 틈틈이 곱씹어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내 삶의 문제와 만나고, 내 생각과 만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내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거든요.
40대 독자가 아니라도 저마다의 이유로 흔들리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꼭지가 있다면요.
김육 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역사 속 많은 위인이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면모를 보입니다. 하지만 김육은 달라요. 우리 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모습이죠.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어 냅니다. 집이 가난했고,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었고, 중병을 앓았고, 윗사람에게 바른말 하다가 출셋길이 막혔고, 오랜 기간 직장을 갖지 못했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별의별 일을 다 했고, 자식을 일찍 떠나보내는 등등 인간이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시련이란 시련은 다 경험해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김육은 마흔네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관직에 나갑니다. 과거는 마흔다섯 살에 급제해요. 당시로선 매우 늦은 나이죠. ‘그는 이 고단한 시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견뎌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 고통 속에서도 신념을 갖고 의연하게 나아가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재상이 되는 과정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겁니다.
40대에 유배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를 기회 삼아 저술에 힘쓴 정약용을 통해 ‘문이 닫혔으면 다른 문을 찾아 열어라’라고 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학자라는 점에서 작가님과도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이황이나 이이 같은 학자는 생존 당시부터 유명한 분들이었어요.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따르는 제자도 많았죠. 그런데 정약용은 다릅니다. 소수파인 남인에 속한 데다가 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크지 않았습니다. 정조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졌지만, 실록에 등장하는 횟수는 적죠. 그런데 어떻게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대학자가 되었을까요?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동인은 본인의 처지에 절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배가 1~2년 내로 끝날 거다, 혹은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언제 끝난다고 정해져만 있으면 사람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년이나 이어졌으니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얼마나 암담하겠어요? 하지만 정약용은 자포자기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역량을 학문에 투입합니다. 수많은 빛나는 저술을 남기죠. 그것이 후대에 재해석되고 높은 평가를 받아서 오늘의 정약용이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점을 저도 배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래 전공이 한국철학인데 주로 역사에 관한 책을 쓰셨습니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책을 쓰시게 된 이유가 뭔가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철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역사에 더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한국철학에서 쓰는 용어 중에 ‘주경익사(主經翼史)’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전을 중심으로 두고 역사를 날개로 삼는다는 뜻이에요.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으로서의 철학은 시대와 별도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보편성을 중시하고 객관성에 주목하는 거죠. 하지만 철학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적 맥락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철학적 사유가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됐는지, 특정한 시대에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기도 쉬워져요. 제가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그래서입니다. 마침 연구대상이 조선 시대다 보니 더 그렇긴 한데, 이기론을 생각해보세요. 이기론을 인식론, 존재론의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이황은 왜 이(理)의 도덕적 순수성을 강조했는지, 이이는 왜 기(氣)의 능동성에 중점을 두었는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살펴보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요?
역사가 우리와 별로 상관없는 옛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의 쓸모’랄까, 그럼에도 역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앞선 질문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그 자체로서의 ‘역사’, ‘역사인물’은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냥 옛날에 있었던 일이고 옛날에 살았던 인물의 발자취인 거죠. ‘그것이 오늘의 나와 무슨 상관이야?’ 이런 생각을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역사의 이야기가 내 삶과 만나려면 무엇보다 나의 성찰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성찰이라고 해서 거창한 무엇은 아닙니다. 현재의 나의 고민, 내가 마주한 문제들을 역사에 투영시키는 거죠. 역사만 그럴까요? 인문학 서적을 읽고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삶과 연결 지어 독서하지 않으면 그 책은 금방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더욱이 역사는 인간에 관한 기록이죠.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달라졌다고 해도 인간의 본질,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가치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수많은 모범 사례, 혹은 반면교사의 사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선 40대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역사에 대한 글을 쓰는데도 그러네요. 이는 무엇보다 우리의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일 텐데요. 갈림길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데다가, 희망, 절망, 성공, 실패, 기쁨, 슬픔이 뒤섞여 찾아오죠. 따라서 미리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흔들리고 방황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다만, 흔들리다 쓰러져버리거나 방황하다가 영원히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마음의 중심이 정말 중요합니다. 더구나 40대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책임져야 할 것이 많잖아요. 올바르게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선입관이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내 삶의 주체가 바로 내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문제는 '마음의 중심'은 한 번에 잡을 수도 없고, 완벽하게 잡을 수도 없다는 거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방향이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마음을 잡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을 것이고, 단단해져 갈 것입니다.
* 김준태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쳐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의 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현대경제연구원 CreativeTV의 강의를 비롯해 다수의 기업에서 강연을 한 바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는 「포저 조익의 성리학설과 경세론에 관한 연구」, 「정조의 정치사상연구」, 「권도론 연구」, 「출처론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등이 있다. 흘러간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탐색하는 작가. 시대가 변해도 인간과 인간사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글을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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