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권의 고양이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이 책 『그리하여 어느 날』 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인 ‘감자’와 ‘보리’의 얼굴이 낯익다면 아마도 트위터에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11월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트위터상의 닉네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기댈 곳 없는 사람과 갈 곳 없는 고양이가 만나 시작된 작은 기적’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 에세이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졌다. 뜻하지 않은 불행 앞에 던져진 외로운 사람이 어두운 터널 같은 시간을 견디고 고양이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감자와 보리의 특별함에 대해 자랑해 주세요.
감자와 보리의 특별함은 끝이 없어요(웃음). 정말 천사 같은 고양이들이에요. 뭔가를 부수고 떨어뜨리고 찢고 물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일이 절대 없어요. 싱크대는 당연히 올라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신호를 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아요. 말썽 비슷한 것조차 피운 적이 없어요. 심심하다고 해도, 심지어 밥이 없어도, 그냥 제 옆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려요. 그래서 오히려 마음에 걸리고 미안해요. 자다가 새벽에 깨었을 때 종종 감자나 보리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은 그럴 때 책도 보고 TV도 보고 SNS도 할 수 있지만, 고양이들은 그런 게 없으니까 좀 더 부지런하게 놀아 주어야 하는데… ‘나는 어제 왜 낚싯대를 더 흔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죠(웃음).
다양한 반려동물 에세이가 출간되고 있는데, 『그리하여 어느 날』 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제가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얘기해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다른 역사와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불행과 행복이 존재하니까요. 저의 경우는 그저 불행인 줄만 알았던 어떤 시절에 감자를 만났어요. 감자와 저는 서로를 선택한 게 아니었어요. 갈 곳 없는 아픈 고양이를 어쩔 수 없어 함께 살게 되었죠. 감자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에 매달렸고, 감자와 함께 지낼 곳이 필요해서 부모님 댁을 나와 독립했어요. 당시 아이들과 부모님 댁에 얹혀살던 저를 오랫동안 괴롭힌 건 스스로 확신이 없었던 거였어요. 부모님은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온전한 가정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었는데, 저는 마음속으로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너무 이기적인 건가 싶어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감자를 만나고 나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확신이 생긴 거죠. 그건 감자가 준 거예요. 감자는 저에게 용기였어요. 내가 나의 의지대로 무언가를 결정해도 괜찮다는 걸 알게 해 준 대단한 존재죠.
저는 이 책이 그냥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 에세이만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누군가를 살렸을 때 그로 인해 자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면 해요.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따듯한 위로가 있다면 고양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라는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걸 보고 고양이에게 관심을 두거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감자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올 수 있었지만, 그게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은 아니에요. 감자를 만나기 전에도 어떻게 살고 싶은지 꿈은 있었어요. 단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죠. 그런데 감자를 만나고 나서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행동해야 했어요. 단지 고양이랑 살게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위로를 느끼고 사랑이 생겨나고 고통스러운 마음이 치유될 수는 없어요.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거죠. 모든 반려동물이 마찬가지겠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책임감이 필요해요. 그 책임감은 동물을 살릴 수도 있고, 저 자신을 살릴 수도 있죠. 하지만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지금도 트위터를 통해 감자와 보리의 종이 뭔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때마다 저는 굳이 감자는 길에서 구조해 입양했기 때문에 정확한 종을 알 수 없고, 보리는 믹스라고 대답해요. 어떤 고양이라도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지만, 혹시 누군가 나도 이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고 얘기하면 또 굳이 거기에 멘션을 보내서(웃음) 고양이들도 성격이 다 달라서 귀여운 얼굴만으로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입양한다면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큰 사랑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고양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프롤로그를 보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 작가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지요?
누구나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잖아요. 슬프거나 외롭거나 고통스럽거나. 종류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런 감정을 느낄 때 가장 힘든 부분은 결국 다 막막하다는 것 같아요. 사람이 환한 곳에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잘 보이지 않아요. 슬프거나 외롭거나 고통스러운 감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안고 어두운 곳에 있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어떤 모습인지 잘 보이지 않아요. 막막하다는 건 그렇게 혼자서 어두운 곳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토로할 수는 있지만, 상대방이 제 감정을 온전히 알 수는 없죠. 아무리 가까워도 결국은 타인이기 때문에. 저는 그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결국 혼자서 어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게.
그런 시기에 영화와 책을 굉장히 많이 봤어요. 그걸 통해 위로 받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사과>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문소리 씨가 헤어지길 원하는 애인 집에 찾아가는 장면이 있어요. 결국 만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다가 튀어나온 못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요. 그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 마음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그 순간의 외로움을. 나 혼자만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이런 영화의 한 장면이나 책 속의 문장 하나가 굉장히 힘이 되었죠. 혼자만 막막한 건 아니니까, 나도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 역시 이 책을 읽는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여기 누군가도 그런 시기를 겪었다고, 어둠 속에 있는 게 그렇게 형편없고 엉망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전하고 싶어요. 지금 어둠 속에 있다고 느끼는 분들에게 반드시 좋아질 거라고 얘기해 줄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괜찮다고.
등불, 운명, 희망, 위로 등 책 속에서 감자와 보리를 표현하는 몇 가지 단어가 있는데, 지금 감자와 보리를 생각했을 때 딱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랑이죠. 어렸을 때 배웠던 단어들의 의미가 감자와 보리를 만나면서 전부 재정립되었어요. ‘사랑’이라는 단어도 당연히 뜻은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가슴에 박히게 느끼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감자를 통해서 사랑이라는 게 대단히 크고 광범위하다는 걸 알았어요.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이구나 하는 걸 새롭게 느꼈죠. 막연히 알고 있던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가 진짜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비로소 절실하게 알게 된 거죠. 감자ㆍ보리와 함께 있으면 우주가 끝나고 세상이 끝난다고 해도 다 괜찮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런 벅찬 감정이 사랑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죠.
프로필을 보면 ‘웃기고 귀여운 건물주’가 되는 게 장래 희망이라고 하셨는데, 웃기고 귀여운 건물주가 되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농담처럼 “감자 덕분에 사람 됐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그건 100퍼센트 진심이에요. 감자를 통해서 저를 객관화시킬 수 있었어요. 감자는 굉장히 무던하고 다정해요. 그런 감자를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생활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조금이나마 너그러운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감자를 알게 됨으로써 감자 이외의 다른 존재들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보리도 감자를 통해서 많은 걸 배웠죠. 그래서 버려진 동물들의 얘기가 남 같지 않아요. 구조했는데 치료비가 없다거나 입양을 보내야 하는데 연락이 없다는 글을 보는 게 너무 괴로워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버려진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할 수도 있을 텐데, 적은 돈을 쪼개서 어디에 먼저 후원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죠. 물론, 저 자신의 부귀영화도 굉장히 바라고 있지만요(웃음). 저는 프리랜서라 일을 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어서 아무리 벌어도 여유가 생기지 않아요. 혼자라면 괜찮지만, 아이들도 있고 감자와 보리도 있기 때문에 생필품 하나를 사더라도 가격 대비 조금 더 좋은 것을 사기 위해 비교하죠. 십 수 년을 이런 가난뱅이로 살아서 그런지(웃음) 경제적인 여유를 갖는 게 나름의 목표입니다. 누구보다 돈을 잘 쓸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끝으로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행복이란 게 무지개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일생에 몇 번 만날 수 없는, 어떤 거창한 것이라고. 그런데 최근에 깨닫게 된 행복은 별일 없는, 대수롭지 않은, 걱정 없는 하루하루였어요. 특히 저는 굉장히 어둡고 불안했던 상황에서 벗어난 경우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일상이 그 무엇보다 소중해요. “감자야 맘마 먹을까?”, “우리 보리 오늘 왜 이렇게 귀여워?” 이런 말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얘기들이에요.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가슴이 벅차서 울기도 하는, 그런 순간이 요즘 아주 많아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 매일매일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여러분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나니 너무 아침마당 같은 얘기였군요(웃음).
*11월
프리랜서 영상작가이자 평범한 트잉여. 특징은 동물애호가, 편애주의자, 장래 희망은 웃기고 귀여운 건물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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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어느 날11월 저 | 아라크네
가장 좋아하는 감자와 또 한 마리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보리’에 대해.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고양이는 그 나름의 생각과 매력이 있기에 좀 더 다양한 고양이 이야기가 넘쳐나는 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세상에 내놓은 고백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