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에서 선보이는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 ‘Lik-it 라이킷’ 4호 『서툴지만 푸른 빛』은 대범한 앵글과 섬세한 색감으로 찰나를 기록하는 트레블 포토 에세이스트 안수향 저자의 사진 에세이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모로코, 필리핀, 미국. 언뜻 맥락 없어 보이는 행로에서 포착한 이국적인 풍경에 깊고 담백한 글을 곁들였다.
이 책에는 여행 에세이에 기대하기 마련인 여행지에서 겪은 에피소드나 관광 정보는 없다. 상세히 지명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타지와 타자에 빗대어 자신을 성찰하고 마침내 긍정하는 과정에 침잠해 한 청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펼쳐 보일 뿐이다. 숨이 탁 트이는 사진들이 쉬지 않고 이어지며 여행지의 온도와 향기를 전한다. 감각을 일깨워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의 힘을 보여주되, 진짜 여행은 여행하지 않는 일상에 있음을 역설하는 이 책은 도피가 간절한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포근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안수향 작가님 안녕하세요. 가장 좋아하는 3가지를 일로 한다는 책날개의 소개 글이 인상적이에요. 사진을 찍는 일과 글을 쓰는 일, 여행하는 일은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도구를 활용하든 작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저는 주로 여행을 통해 이야기를 수집합니다. 그것은 결국 제 이야기의 재료가 됩니다. 저는 흘러가고 있을 때 감각이 활짝 열리는 기분을 느낍니다. 생전 처음 보는 장면과 사람을 마주하면 내 안에서 이야기의 시작과 완결이 동시에 벌어집니다. 책에 ‘나와 전혀 관계없던 존재들이 여행을 이유로 잠시 관계를 맺고, 이는 어떻게든 내 삶 쪽으로 뻗어간다’고 썼는데, 이는 여행이 선사하는 메타포의 대상이 결국 현실과 삶에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여행한다는 것은 흘러가고 발견하며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기록으로써의 글쓰기는 언제나 해왔지만 이를 엮기 시작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단순한 나열에서 벗어나 어떤 기록의 지점에서 강조와 의미를 더하고 비유와 비교, 교차 같은 기교를 활용할 때 이야기에는 생기가 돌고, 사람들이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비로소 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노련한 이야기꾼은 못됩니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 획득한 이야기를 문장으로 전개하고 생각을 끼얹어 확장할 때, 글을 쓰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읽는 이를 동시에 생각하는 일입니다. 쓴다는 것은 곧 읽힌다는 것, 그래서 필자와 독자 사이에는 단어 한 톨이라도 나눌 수 있는 공감이 있어야 함을 늘 생각합니다.
제 글쓰기가 확장의 작업을 통해 대개 이뤄지는 것에 반해 사진을 담는 일은 수렴과 정제의 과정을 거칩니다. 한 장의 사진이 원고지 몇십 장을 대신하기도 하고, 때로는 문장의 마침표와 느낌표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잘 고민된 프레임의 힘은 강력해요. 사진을 ‘찍는다’고 하는 것보다 사진을 ‘담는다’고 말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제 작업 과정과 행위를 보다 더 잘 전달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바라보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흐르는 이야기를 좇아 저는 근면하게 기다리는 편인데, 이 작은 기계와 프레임에 담긴 영원은 단순히 찰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프레임 속에서 축적된 순간은 담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어울리지요.
첫 책을 출간하셨네요. 이 책의 여행지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나요?
계절별로 단락을 나눈 만큼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우선으로 추렸습니다. 그리고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지긋지긋할 만큼 심심하고 고독했던 곳들로 다시 가려냈습니다. 하루 종일 누군가와 말할 기회조차 없었던 곳도 있고 햄버거 한 번 먹는 게 간절한 적도 있어요. 혹은 수심 40m 아래에서 혼자 맨몸으로 바다를 견뎌야 하기도 했지요. 고독은 사람을 그립게 만들어요. 그 당연한 걸 처음에는 알지 못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느끼게 되었어요. 결국 겨울의 아이슬란드에서부터 봄의 부산까지, 계절 역순으로 떠난 여행이 다다른 곳에는 사람이 있고, 저는 일부러 ‘사람’을 ‘사랑’으로 읽기도 해요.
아이슬란드
글이 슬픈 건 아닌데, 뭐랄까, 쓸쓸한 기운이 감돌아요. 여행을 ‘짧은 생’에 비유했는데, 여행이 끝나면 지치지 않나요? 계속 여행하게 하는 동력이 궁금합니다.
주로 혼자 하는 여행이다 보니, 그리고 일부러 자신을 오지에 몰아넣다 보니 이야기의 톤 자체가 쓸쓸할 듯해요. 인생이 그렇듯, 여행도 늘 즐겁기만 한 것 아니잖아요? 보물찾기하듯 여행 중 저는 제가 발견한 마음과 장면을 재료로 생산하는데, 언제부턴가 이 일이 큰 보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감탄과 감사를 아끼지 않는 독자들로부터 큰 힘을 받아요.
2014년, 처음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 댓글을 주고받던 독자들이 요즘 제 책을 구입했다며 저를 태그해서 ‘인증샷’을 올려주어요. 저의 쓸쓸한 여행 취향과 내용에 공감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SNS에 여행할 적에 담은 사진을 주로 올리다 보니 늘 여행 중이라고 여기시는데, 사실 저도 여행 한 번 가기 힘든 비슷한 처지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한국에서 꾸역꾸역 고단한 생활과 맞서 싸우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그래서 더 여행이 아직 간절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책에 카메라를 갖기도 전 ‘사진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 나와요. 저는 그게 ‘첫 사진적 행위’로 느껴졌어요. 사진을 진지하게 찍게 된 계기도 들려주세요.
말씀하신 ‘첫 사진적 행위’ 이후 머지않아 첫 카메라를 갖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그러나 초반에는 의미 없는 나열에 가까운, 고민 없는 사진들뿐이었죠. 우연한 기회에 여행을 하며 담은 사진과 글을 엮어 잡지에 내보내기 시작했는데 그때도 그렇게 진지하진 않았어요. 그냥 운이 좋았구나 생각해요. 정말로요. 그러다가 한 번은 전시 제안을 받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제 사진을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덜컥 하겠다고는 했는데, 막상 전시장에 걸 만한 사진이 참 없구나 좌절했고, 반대로 아직 너무나 빈곤한 제 예술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커짐을 느꼈죠. 그때부터 다른 눈빛으로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어요. 기본기를 다시 다지고, 물음표를 계속 던졌어요. 여전히 마침표를 찍지 못한 질문이 많지만 사진 앞에서 점점 더 진지해지는 중입니다.
오로라
오로라는 어땠습니까? 이번 책에 실린 사진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은요?
아이슬란드에서 처음으로 본 오로라는 사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에게, 사진이 훨씬 낫네 하고 생각할 정도였죠. 오로라의 모습이 매일 다르고, 북유럽 하늘은 여행자들에게 순순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서 매일 밤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정말 고약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보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노르웨이 로포텐제도의 한 마을에서 정말 환상적인 오로라를 봤어요. 구름이 잠깐 걷힌 새벽 1시쯤으로 기억합니다. 완벽한 오로라 스톰을 만났어요. 저명한 천체사진가 권오철 선생님 사진에서나 봄직한 아름다운 장면이었죠. 오로라 지수가 셀 때만 볼 수 있는 핑크빛 오로라가 마치 커튼처럼 나풀거리는데, 이상하리만치 정신이 맑아졌어요. 애석하게도 저는 사진으로 담지 못했어요. 넋 놓고 보느라고요. 가끔 그 장면이 꿈에 나올 정도로 아직도 그립고 생생합니다.
저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잘 들이밀지 않는 편입니다. 돈을 주고 포즈를 취해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고요. 정말 이 사람과 관계를 맺었다고 여겨질 때 잠시만 내 뷰파인더 안에 들어와달라고 부탁해요. 그래서 제 사진 안에서 저를 응시하고 있는 이들은 제게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어요. 우린 좋은 표정과 멋진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게 좋아요. 저는. 그들의 이름과 함께 나눈 대화, 그날의 공기가 아직도 느껴지거든요. 차마 딱 한 장만 고를 수가 없네요.
어떤 분들이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제 책을 넘기는 상상을 자주 하고 있어요. 제 상상 속 그는 종종 혼자 바닷가를 찾는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만큼 혼자 있을 때도 반짝이는 눈빛을 지녔어요. 조금은 쓸쓸하고요. 그러나 그는 마음의 여백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임을 알고 있고, 고독을 마주할 줄 알며, 보다 먼 곳을 볼 줄 아는 사람이랍니다. 게다가 선한 의지를 지닌 아주 귀한 사람이죠. 잠든 머리맡, 손이 잘 닿는 곳에 부디 책을 두어 주세요. 저는 그런 멋진 사람 곁에서 자주 서성이고 싶습니다.
바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떠나고 싶은데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아직은 모르겠지만, 다음 여행은 ‘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요. 우리는 바다를 몸소 배우는 중이니 아마도 바다 곁이 아닐런지요.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여행의 기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귓가에 속삭여주고 싶어요. 10년을 기다려 나만의 아이슬란드를 만났듯,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비로소 만났듯, 조금 늦어서 도리어 순탄하고 아름다운 일도 있는 법이라고 믿으니까요. 저는 여행으로 벌어먹는 사람이지만, 여행해서 행복한 마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그늘이 되는 일은 절대 없기를 바라요. 그러니 계속 이야기할게요. 지금 떠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앞으로도 우린 괜찮을 거라고. 여행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 안수향
물결처럼 흐르던 순간이 단어와 문장, 또는 무언의 형태로 자리에서 멎을 때가 있다. 여행을 하며 그렇게 그렁그렁 맺힌 것들을 보듬어 사진으로 담고 글로 쓴다. 가장 좋아하는 3가지를 일로 한다. 커피를 무척 좋아하지만 위장이 좋지 않아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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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푸른 빛안수향 저 | Lik-it(라이킷)
낯선 곳을 여행하며 사진으로 풍경을 담아내고 글을 쓰는 일. 이를 꿈꾸지 않는 자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가와 사진가, 작가가 범인들에게 꿈의 영역인 것은 특별한 재능과 용기를 수반하기 때문일 것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