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가 11월 16일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독일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1814년에 발표한 소설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가 원작으로, 그림자를 판 대가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지만 그로 인해 사회에서 외면당한 한 남자가 겪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창작 초연인 만큼 새로운 무대를 기다리는 관객들에게는 더욱 반가운 작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배우의 성장을 눈여겨봤다면, 최근 발표된 <쓰릴 미> 캐스팅까지 확인했다면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텐데요. 올해 그 어떤 배우보다 바쁘게 활동하고 있는 양지원 씨 얘기입니다. 연습실이 있는 서울 약수동의 한 카페에서 양지원 배우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계속 매일 연습하고 공연하고 새벽까지 대본 보면서 지내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영화 촬영까지 겹쳐서 너무 바쁘고 개인적인 시간은 전혀 없지만, 배우로서 복 받은 거죠(웃음).
<그림자를 판 사나이> 는 첫 대극장 타이틀 롤이고 <쓰릴 미>는 남자배우에게 어떤 면에서 상징적인 작품이라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다들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배우로 일을 한 건 6년 차인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도 조금 신기해요. 1년에 겨우 한 작품 할 때도 있었는데, 공연이나 인터뷰 요청이 많아지면서 ‘내가 예전보다는 많이 성장했구나’ 느끼게 돼요. 두 작품은 욕심이 났어요, 꼭 하고 싶더라고요. 제가 2인극을 많이 해서 웬만한 공연은 두렵지 않았는데, 둘 다 분량도 엄청나고 할 게 너무 많아요. 그래도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저는 <최후진술> 보면서 ‘양지원 씨를 곧 인터뷰하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팬들도 많이 생겼죠?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하죠. 팬분들도 성향이 다양한데, 제가 어떤 모습이든 응원해주시더라고요. 어떤 분은 앞장서서, 어떤 분은 묵묵히. 재밌는 건 저를 거의 10대쯤으로, 너무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상 다들 저보다 어릴 텐데(웃음). 나라면 이렇게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낼 수 있을까 싶고, 그러고 보면 한편으로 무척 특이한 분들이죠(웃음).
그분들도 양지원 씨를 일찍 알아봤다는 생각에 뿌듯할 겁니다(웃음).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경우 책과 달리 그림자를 무대에서 구현해야 하잖아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힘들 텐데요.
맞아요, 이 작품에서는 그림자를 표현하는 게 관건이라 아직도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어요. 일단은 제 그림자 역할을 하는 배우가 따로 있고, 조명과 영상의 도움도 받을 텐데. 그래서 이번 작품은 약속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사실 공연이라는 게 감정이나 여러 상황에 따라 매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데, 이번 무대는 제 몸짓이나 발걸음 수가 달라지면 안 되니까 그 완벽한 약속을 준비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반면 <쓰릴 미>는 10년 넘게 다져진 견고한 틀이 있어서 그 점이 힘들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이번 시즌은 새로운 스태프와 배우들로 꾸려졌다고 들었어요. 무대도 새로 제작하고, 의상도 새로 만들고요. 물론 대본이나 음악은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쓰릴 미>를 했던 사람이 없어서 아예 새롭게 다가가지 않을까. 그래서 초반에는 관객들의 의견이 다양하게 나올 것도 같아요. <쓰릴 미>는 워낙 아끼는 분들이 많고, 그 작품을 사랑하면 보수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많이 걱정되기도 해요.
<쓰릴 미>의 ‘나’와 ‘그’는 좀 극단적인 인물인데, <그림자를 판 사나이> 의 페터 슐레밀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형편이 정말 어렵다면 누구나 그림자를 팔고 돈과 명예를 얻지 않을까. 평소에 우리 모두 그림자는 신경도 안 쓰잖아요. 그림자가 없다고 사는 데 불편한 것도 없고. 그래서 어려운 점도 있어요. 아예 독특하거나 뚜렷한 캐릭터는 다가가기 쉬운데, 이렇게 평범한 인물은 오히려 연기하기 힘들더라고요.
그럼 세 인물 중 양지원 씨와 가장 비슷한 성향은 누구인가요(웃음)?
사실 세 사람 모두 이해는 못하겠어요. <쓰릴 미>의 ‘나’와 ‘그’는 비슷하면 안 되고(웃음),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페터도 인간으로서 이해는 하지만 저라면 그림자를 팔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물질이나 성공, 인기가 커질수록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을 채우려고 할수록 공허함도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중세시대에는 그림자를 영혼으로 여겼다고 하니까 저라면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았을까.
표면적인 캐릭터만 봤을 때는 <쓰릴 미>의 ‘나’와 ‘그’ 모두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제작사 측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대요. ‘그’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제가 ‘나’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반전이 있어서 훨씬 재밌겠더라고요. 물론 기회만 주신다면 ‘그’도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림자를 파는 사나이>에서도 페터 전에 그레이맨으로 얘기가 나왔다고 해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제가 지금은 많이 망가졌는데(웃음), 예전에는 피부도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이미지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상반되는 캐릭터도 각각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고,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니까 훨씬 좋은 거잖아요.
실제 성격은 어떤데요?
사실 지금 제 성격은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는데, 요즘은 혼자 있는 게 더 충전이 되는 것 같아요. 원래는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아이돌이나 록밴드 준비도 했고, 그래서 그때는 더 예민하고 까칠했어요. 이기적인 면도 강하고. 인생의 쓴맛을 보고 거의 도망치다시피 군대에 갔는데, 군대에서도 군악대 보컬병으로 계속 노래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뮤지컬을 하게 됐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한테 사랑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요즘 저보다 여러 면에서 뛰어난 분도 정말 많잖아요. 제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제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라는 걸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감사하고, 좀 더 내려놓고 선하게 살려고 해요.
이렇게 양지원 씨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외적으로도, 이미지적으로도 떠오르는 연예인 두 명이 있네요.
평소에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하는데,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그림자를 판 사나이> , <쓰릴 미> 이후에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공연이 꽉 차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생길까 싶지만, 한 달 정도 쉴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하네요.
사실 제 인생의 모토가 ‘나그네처럼 살자’예요. 그냥 흘러가듯이 살고 싶은데, 한동안은 계속 바쁘겠죠. 하지만 이것도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배우고 성장하는. 그래서 지금을 충실하게 지내려고 하고요. 무대에서든 삶에서든 더 진실해야 할 것 같아요.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만나는 사람들이나 환경에 진실하게 임해야죠. 그러다 내년 하반기에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여행을 가고 싶어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혼자 여행을 가도 좋고, 요즘 바빠서 가지 못한 해외선교도 가고 싶네요.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