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심청전』을 읽어주었을 때 내 의견의 핵심 포인트는 이거였다.
‘아무리 부모여도 자식이 다 희생할 필요는 없어. 심 봉사 옆에는 뺑덕어멈도 있잖아. 책임은 뺑덕어멈과 심 봉사가 져야 해. 어른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처지만 비관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건 옳지 않아. 아빠가 나이 들고 이런 못난이가 되어 있으면 따끔한 충고를 하든지 외면해줘. 아빠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줘. 서운해 하지 않을게. 부모 자식 사이라고 해도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심청이처럼 물에 빠지지 말고 본비의 행복을 찾아서 떠났으면 좋겠어. 아빠의 행복을 위해서 절대 널 희생시키면 안 돼. 본비가 행복해야 아빠도 행복해. 알았지?’
봉태규 저자의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봉태규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연예인’입니다. ‘배우’라는 말보다 ‘연예인’이라는 말로 자기소개 하는 걸 더 좋아하시는 분이에요. 스스로를 일컬어 “할 말 많고 사연 많은,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시는데요. 그러기에는 너무 유명한 분이기도 하죠. 사진작가 하시시 박의 남편이자 시하와 본비의 아빠, 그리고 두 번째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를 쓰신 봉태규 작가님입니다.
김하나 : 우선 표지 이야기부터 해야 될 것 같아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봉태규 : 네, 표지가 다분히 상업적이죠(웃음).
김하나 : 이때 세수를 하셨었나요, 안 하셨었나요(웃음)?
봉태규 : 안 했어요. 이때 스웨덴이었는데, 아이가 둘 다 아팠어요.
김하나 : 아, 진짜요? 지금 안겨있는 아이는 본비이죠?
봉태규 : 네.
김하나 : 본비도 아프고 시하도 아팠군요.
봉태규 : 시하가 먼저 열감기가 오고 본비에게 옮겨가서, 저랑 하시시 박 작가님이 거의 잠도 못 자고 다른 데 여행도 못 가고...
김하나 : 외국인데 병원 가기도 힘들잖아요.
봉태규 : 제가 검색해봤는데 스웨덴은 거의 진료를 안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감기 정도는 병원에 가도 그냥 가라고 하고, 우리나라랑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힘겹게 간호하고 잠 못 자는 상황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김하나 :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하시시 박 작가님이 표지 사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걸 봤는데 ‘그런 상황에서 포즈를 연출하지 않고 그냥 찍었는데 역시 그럴 때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위기 상황인 줄은 몰랐네요.
봉태규 : 위기 상황이었어요.
김하나 : 본비 머리가 서있는 모습도 보이고...
봉태규 : 그리고 자세히 보면 제 머리가 이상해요(웃음).
김하나 : 본인이 보기에는 되게 자세히 보이지만(웃음), 전체 느낌이 정말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봉태규 : 너무 좋은데, 자세히 보면 옆에 휴대폰도 덩그러니 있고요(웃음).
김하나 : 이제 보니까 그러네요(웃음).
봉태규 : 오해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연출해서 찍은 사진으로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게 아니고요. 제 기억에는 사진을 찍기 전에 ‘여기 한 번 서봐라, 빛이 어떤지 한 번 보자’ 하고 테스트처럼 촬영하려고 했는데 본비가 저한테 왔어요. 그래서 그냥 안고 찍었는데, 사실 본비를 내려놓고 찍은 사진은 따로 있어요. 그 사진 말고 테스트한 사진이 OK 사인이 난 겁니다.
김하나 : 아빠로서 아픈 아기를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포즈가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 라는 제목과 맞물리면서, 모든 게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봉태규 : 감사합니다.
김하나 : 표지 마음에 드셨죠?
봉태규 : 당연히 마음에 들었죠. 누가 찍어준 건데요(웃음). 그런데 힘들게 섭외했습니다. 제 아내니까 되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더 어려워요. 일로 뭔가 같이 한다는 게 더 어렵더라고요. 부탁하기도 그렇고, 정당한 페이를 지불해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그렇고, 되게 어려워요.
김하나 : 그래도 역시 페이를 지불하니까 좋은 사진이 나오네요.
봉태규 : 그렇죠. 역시 정당한 대가가 지불이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뭘 하든지.
김하나 : 책을 읽어 보면, 우리나라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남편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내의 커리어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 존중하고 있다는 마음이 많이 느껴졌어요. 그 이야기부터 먼저 할까요? 두 분이 처음 만난 날이 책에 나와 있잖아요. 분 단위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날이 봉태규 작가님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날이었나 봐요.
봉태규 : 중요한 날이 됐죠. 원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냥 무심코 나갔어요. 책에 쓰여 있는 대로 ‘독립을 하게 되면 이런 상황이 많아질 거고, 예행연습 삼아 나가보자’ 하고.
김하나 : 그때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셨고, 같이 저녁 뉴스를 보고 계시다가 연락을 받고 나가셨던 거죠.
봉태규 : 네.
김하나 :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 프로포즈를 하셨다는 내용이 있잖아요. 첫 번째 만났을 때 하시시 박 작가님이 어떻게 비범했나요?
봉태규 : 비범했다기보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어요(웃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로맨틱해! 너무 좋다(웃음).
봉태규 :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제가.
김하나 : 연예인들을 워낙 많이 보시는데, 이 분의 아름다움이 아주 전면적으로 다가왔던 거군요.
봉태규 : 네, 그래서 너무 깜짝 놀라서... 사실은 그 전에 하시시 박 작가님의 사진은 알고 있었고, 인터넷으로도 사진을 찾아 봤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랑 실제로 뵈었을 때가 너무 다른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고요. 이야기를 나누는데, 뭐랄까... 그냥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제가 정확히 기억하는데, 그 다음 날 저희 집에 누나들이 놀러왔어요. 그런데 제가 누나들한테 이야기했어요, 진짜 멋있는 사람을 만났다고. 나중에 결혼할 때 누나가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눈을 반짝이면서 나의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되게 오랜만이었대요. 영화 계약할 때 이후로 처음이었대요. 그래서 큰 누나는 약간 ‘방금 이야기한 저 사람이랑 연애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대요.
김하나 : 첫눈에 반한 거네요.
봉태규 : 네, 그런데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
김하나 : 심리학 서적 같은 데에서 ‘첫눈에 얼마나 불타올랐는지는 그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반증할 뿐이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는데...
봉태규 : 와, 그러면... 진짜 많이 외로웠었나 봐요(웃음).
김하나 : (웃음) 첫눈에 반하고 확 불타오르는 게 쉽지 않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마음이 몇 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거잖아요. 계속해서 좋고, 존중하고, 잘해주고 싶고, 이런 마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지점 같은데요. 이 책을 봐도 그렇고, 봉태규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봐도 그렇고, 그런 마음이 계속 전해져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첫눈에 반하는 것보다 더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요.
봉태규 : 저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하시시 박 작가님이 저랑 결혼까지 해주신 건(웃음),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되게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에 대해서 객관화를 했을 때 그냥 사람으로서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을 만나고 더 깨달은 게 있어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별로구나(웃음)’. 그런데도 결혼을 해줬단 말이에요. 그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웃음). 그리고 그때 하시시 박 작가님의 상태는 저랑 결혼 안 해도 됐거든요.
김하나 : 그리고 두 번 만난 남자가 청혼을 했는데 하시시 박 작가님이 응하셨어요.
봉태규 : 그러니까 여러 모로 봤을 때 진짜 위험한 인간인 거잖아요(웃음).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위험할 수 있어요. 성별로 봤을 때 남자는 여자한테 위협적일 수밖에 없어요, 그 상황이 어떻든 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받아주고, 결혼생활 하고, 아이까지 낳았단 말이에요. 잘해야죠.
김하나 : 지금까지도 약간 얼떨떨해 하시는 것 같네요.
봉태규 : 지금도 가끔 물어봐요. 왜 그때 결혼 승낙을 했냐고(웃음). 그러면 되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세요.
김하나 : 뭐라고 하시나요?
봉태규 : 그냥, 제 마음의 굳은 심지가 보였대요. 그걸 분명 다른 사람은 못 볼 것 같은데,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걸 보았대요. 그런데 제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왜 저한테는 안 보이는지(웃음),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못 보는 모습까지도 볼 수 있는 거라면 대단한 거죠.
김하나 : 나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를 알게 되는 부분도 큰 것 같아요.
봉태규 : 네. 그리고 결혼하고 나서 느낀 건데, 제 옆에 있는 파트너가 가장 정확하더라고요. 저의 장점 단점도 그렇고, 제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해주는 건 제 옆에 있는 파트너더라고요. 그 어떤 누구보다도.
김하나 : 그러면, 두 번째 만남에서 청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 부분은 뭘까요? 처음에 보고 반했지만 결혼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잖아요. 게다가 두 번 만났는데 결혼하자고 하면 나를 너무 섣부른 사람으로 보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도 있었을 것 같은데...
봉태규 : 그런 불안을 생각하기에는 모든 게 하시시 박 작가님으로 뒤덮여 있었어요. 제가 첫 날 보고 나서 잠을 다섯 시간 이상 못 잤어요. 두근거려서.
김하나 : 그러면 두 번째 볼 때까지 며칠 걸렸어요?
봉태규 : 2주 조금 안 되게 걸렸는데... 그래서 병원을 가볼까 생각도 했었어요. 새벽 4시쯤에 잠들어도 한 5시간 지나면 깨는 거예요. 불면증을 겪어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 그게 진짜 괴로워요. 저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계속 진정이 안 됐는데, 그러면 정말 빨리 지치고 힘들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원인이 그 분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진정이 되더라고요. 사실은 고백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100% 차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두 번 다시 얼굴을 못 볼 거 아니에요. 그러면 못 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아는 사람으로라도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고 고백을 안 하려고 했는데, 제가 사실은 굉장히 신중하지 못한 면이 있어요. 뒷일은 생각 안 하고 ‘우선 할 이야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연애는 못 하겠더라고요.
김하나 : ‘이 사람하고는 결혼을 해야겠다’ 싶었군요.
봉태규 : 연애는 뭔가... 그냥 못하겠더라고요.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김하나 : 그게 뭐예요(웃음).
봉태규 : 이걸 어떻게 설명을 못 하겠어요. 그냥 연애가 하기 싫었어요.
김하나 : 서로 간을 본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그런 거 일절 없이, 그냥 전면적으로 내 가족으로 만들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봉태규 : 그런 생각도 없었어요. 그냥 연애가 하기 싫었어요. 그러면 내가 이 사람하고 지낼 수 있는 방법은 결혼 밖에 없는 거예요. 그 당시에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서 정말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너무 좋아하는데, 연애는 하기 싫고 결혼을 하자고.
김하나 : 그러면서 본인의 빚이 얼마인지 벌이가 얼마인지, 그런 이야기를 다 하고요.
봉태규 : 네. 우리 엄마는 어떤 성격이고, 우리 누나 둘은 어떤 사람들이고, 이런 이야기를 했죠.
김하나 : 그래서 하시시 박 작가님이 그 자리에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봉태규 : 제가 이야기를 하는데 웃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잠깐 멈칫하고, 사실 망했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때 눈앞에 과메기가 보이는데, 정말 저 같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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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작가)
브랜딩, 카피라이팅, 네이밍, 브랜드 스토리, 광고, 퍼블리싱까지 종횡무진 활약중이다. 『힘 빼기의 기술』,『15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등을 썼고 예스24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