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주 “재밌는 책만 번역하니까 이 작품을 했죠”
저는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재미있는 책만 번역합니다. 그런 제가 자신 있게 소개하는 책이 『종이 동물원』입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질 겁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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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서부터 환상문학, 하드보일드, 대체 역사, 전기 소설에 이르기까지 켄 리우의 작품 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품집  『종이 동물원』 . 총 14편의 중단편 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2017년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였다.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 대중이 누구나 실생활에서 생각해 볼 만한 소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시절, 선물 포장지를 사용해 종이 동물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중국인 어머니와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짧지만 가슴 찡한 감동을 전하며 저자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표제작 「종이 동물원」, 일본군의 731부대의 잔학성을 다큐 형식으로 그려낸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사람들』  등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느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을 SF 환상문학 장르에 녹여낸 작품들과, 장르적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갖춘 수작들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종이 동물원』 을 번역한 장성주는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번역자로 활동 중이다. 우리말로 옮긴 책에  『모나 리자 오버드라이브』 , 『별도 없는 한밤에』 , 『언더 더 돔』 ,  『워킹 데드』 ,  『아돌프에게 고한다』 , 『표류교실』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켄 리우의 작품을 처음 읽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번역가로서 『종이 동물원』 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켄 리우는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한 SF 작가입니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 은 세계 10개국에 판권이 수출됐고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은 중국, 일본, 프랑스, 에스파냐, 타이완에 이은 여섯 번째 외국어판입니다. 켄 리우는 2012년 이 책의 표제작인 단편 「종이 동물원」으로 네뷸러상과 휴고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작가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단편의 제왕’으로 불리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전성기에 버금갈 만큼 왕성하게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 5년 동안 여러 지면에 발표한 중단편 약 120편 가운데 켄 리우의 색깔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주는 작품들을 모은 선집이 바로 이 책, 『종이 동물원』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워싱턴 포스트』 에서는 ‘일상과 환상이 만나는 지점을 황홀하게 드러내는 놀라운 이야기들’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번역가이자 독자로서 『종이 동물원』 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SF가 주는 가장 큰 쾌감은 바로 ‘경이감’일 텐데요. 『종이 동물원』 에 실린 이야기들은 무엇보다 ‘기억’을 매개체로 경이감을 이끌어내는 점이 특별하다고 하겠습니다. 그 기억은 한 개인의 사적인 기억(「종이 동물원」)에서 여러 나라의 굴곡진 현대사(「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새 터전을 찾아 우주로 나간 인류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는 동안 후대에 전하는 인류사(「파(波)」)로까지 확장됩니다. 주인공들은 너무 늦게 발견한 기억 때문에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기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바치기도 하고, 후대에 기억을 전하기 위해 자신에게 없던 용기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억을 소재로 삼고 SF와 판타지, 다큐멘터리 등의 형식을 빌린 다채로운 이야기들에서 애수 또는 노스탤지어가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특별하다고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책’ 자체에 대한 애정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이나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같은 이야기에서 작가 켄 리우가 책이라는 물건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실감하고 동질감을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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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 소설집에는 SF 환상문학과 역사 의식이 접목된 작품이 많습니다. 특히 한국 독자들이 깊이 공감할 단편들이 실려 있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이 한국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어떤 역사적 배경이 등장하나요?

 

한국 독자들이 가장 인상 깊게 읽을 작품은 아마도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일 겁니다. 과거의 역사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역사학자 부부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의 만행을 세상에 고스란히 보여 주려고 분투하는 이야기인데요. 여기서 작가는 당사자의 ‘증언’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기억의 본질이 무엇인지, 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 기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탐구합니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미국 의회 청문회 장면을 읽다 보면 최근 화제가 된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으로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는 일본과 미국이 손잡고 태평양 횡단 해저 터널을 건설하여 대공황을 극복한, 이 때문에 2차 대전이 아예 일어나지 않은(나치스는 역사책의 짤막한 주석 한 자락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역사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일본 식민지인 포모사(타이완) 출신 주인공은 이 해저 터널 공사에 자원했다가 감독관까지 승진한 인물인데, 공사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괴로워합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국제 질서를 체현한 주인공이 이야기 속에서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보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겁니다. 「파자점술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어른을 위한 마법 천자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요. 타이완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영화 「비정성시」를 본 사람이라면 남다른 느낌을 받을 겁니다.

 

켄 리우는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계 이민자 작가로서, 작가가 느끼는 중국과 미국 문화의 차이가 작품 속에 드러납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판 『종이 동물원』 의 경우 책을 읽는 한국 독자와 작가 사이의 나라간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이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은 그 간극이야말로 우리가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 외국 문학을 읽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외국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는 작가도 있겠지만 대개 작가가 쓴 글의 제1독자는 같은 언어를 쓰는 같은 나라 사람이고, 번역된 글을 읽는 외국 독자는 제2독자일 겁니다. 우리는 번역이라는 과정에서 제1독자가 누리는 감동이 적잖이 사라진다고, 따라서 제2독자의 감상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결핍’이 아니라 ‘작가조차 생각지 못한 초월’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번역을 하고 또 번역된 글을 읽는 이유일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이야기는 제1독자가 보지 못한 정경을 제2독자가 발견하기도 하는데요. 제 생각에는  『종이 동물원』 이 바로 그런 이야기들을 모은 책입니다.

 

실은 작가 켄 리우 본인이 중국 SF를 세계에 알린 유명한 번역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작가 자신이 번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힌 부분이 있습니다. 번역자로서 저 또한 그 생각에 온전히 동의하기 때문에, 아래에 짧게 인용하고자 합니다.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기적을 바라며 산다.”

 

『종이 동물원』 에서 독자들이 특히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켄 리우는 프로그래머이자 변호사이면서 작가인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작가에 따르면 그 세 가지 직업의 공통점은 바로 ‘기호를 다루는 일’이라는 것인데요.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기호로 코드를 짜고 변호사는 법률이라는 기호를 해석하고 조합하여 의뢰인을 보호하며, 작가는 언어라는 기호로 이야기를 빚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의 기호적 세계관은 켄 리우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기호들의 조합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전혀 예상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든가, 전형적인 역사 소설의 배경에 엉뚱한 인물이 등장하여 가슴 벅찬 용기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따라서 작가가 어떤 기호를 어떻게 배치하여 어떤 효과를 냈는지 짚어가면서 책을 읽으면 더욱 재미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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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동물원』 에 실린 단편 가운데 특별히 애정을 느끼시는 작품이 있나요? 혹은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거나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으신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은 「송사와 원숭이 왕」입니다. 역사 소설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이야기 자체가 책에 관한 이야기라서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읽다 보면 이야기에 나오는 ‘원숭이 왕’이 누군지 금세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원숭이 왕의 이름이 밝혀지는 맨 마지막 문장에 이르면 형용하기 힘든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중편 소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입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작품은 오늘날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가 벌이는 역사 갈등의 원인이 된 사건을 소재로 삼았는데요. 신기하게도 SF가 책을 넘어서서 현실로 확장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은 이번에 한국어판이 나오면서 역사 갈등의 당사국인 일본, 중국, 타이완, 한국에서 모두 출판되었는데, 여기 실린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각국의 정치외교적 입장에 따라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출판되거나 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일본어판을 보면 켄 리우의 단편 31편을 단편집 두 권에 나누어 출판했는데요. 자국 독자들의 반응을 의식한 탓인지 작가 스스로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라고 밝힌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어디에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중국에서 나온 간체자 중국어판을 보면, 해당 중편이 실리기는 했는데 부분 삭제된 형태로 실려 있습니다. 삭제된 곳은 ‘대약진운동’ ‘3년 대기근’ ‘마오쩌둥 주석’ ‘공산당’ 같은 말이 나오는 부분들입니다. 심지어 타이완 학자의 인터뷰 부분은 아예 통째로 삭제되기도 했습니다. 이 점 역시 중국 내의 출판물 검열이라는 현실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위의 네 나라 가운데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이 완전한 형태로 출판된 나라가 한국과 타이완인 점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막상 말해 놓고 보니 인터넷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가 나중에 중국 갈 때 비자가 안 나오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살짝 불안하지만,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요.

 

마지막으로  『종이 동물원』 을 추천하는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책 맨 뒤의 판권면에 제가 지금까지 번역한 책들이 나와 있는데요. 그 책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재미있는 책만 번역합니다. 그런 제가 자신 있게 소개하는 책이  『종이 동물원』 입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책을 놓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질 겁니다.


 

 

종이 동물원켄 리우 저/장성주 역 | 황금가지
어린시절, 선물 포장지를 사용해 종이 동물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어주던 중국인 어머니와 그 아들에 관한 이야기로, 짧지만 가슴 찡한 감동으로 단숨에 켄 리우를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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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동물원 #장성주 번역자 #켄 리우 #환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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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