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형 “반복되고 빛나고 스러지는 포말 인생들”
파도가 다가오는 모습을 아주 오래도록 본 적이 있습니다. 모든 파도는 바다의 똑같은 자식들, 반복되고 빛나고 스러집니다. 소설처럼.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8.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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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형 작가는 오래도록 간직해 온 소설가의 욕망을 마흔 중반에야 드러냈다. 첫 소설이 <한국소설>을 통해 발표된 이후, 다수의 단편을 꾸준히 썼고, 8편의 작품을 모아 첫 소설집을 내었다. 작품을 하나하나 고르다 보니, 이 소설 가운데 대부분은 떠나는 자들이거나 혹은 어딘가를 거쳐 온 이들의 이야기였다. 마치 거품을 남기고 물러나는 파도였을까? 작가는 ‘그 파도가 휩쓸고 간 헛헛하게 남은 자국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듯 문장을 고르고 인물들을 매만져’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이어 갈 수 있을까, 반문한다.

 

첫 소설집으로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쩌면 작가의 전형이라고 할 비극적인 운명을 일찍 알아차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제게 주는 평가는 온순하고 모범적이라는 것. 하지만 모범적이라는 것의 범주가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일인지 자랑할 일인지도 생각하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어릴 적 읽어온 책들과 그 영향에서 한 인간의 의식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면, 어린 시절 책을 통해서 조금은 작가와 가까워지려고 한 기억은 있습니다.

 

책 읽기와 일기 쓰기가 저의 청소년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이후 대학에서 자연과학 쪽으로 공부를 했기에 소설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요. 제가 흠모하던 작가들은 이미 젊은 날에 이미 감수성이 발화하고 문학의 절정기를 맞이한 사람들이었기에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가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선지 작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연표 읽기도 즐겨 했어요. 그들의 삶도 궁금했으니까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라는 책을 읽다가, 작가들에게 작품이란 그 작가의 전 인생을 거는 일이라는 것을 절감했어요. 함부로 글을 쓰겠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인생을 건 작가의 길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끊이지 않는 소설 읽기에만 사실 오래도록 빠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일들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부산의 작은 라디오방송국에서 구성작가 일을 하다가 우연히 소설 쓰기에 직접 뛰어들 수 있었지요. 그렇게 한참 돌아서 너무도 늦게 또 느리게 가는 소설이라는 밤차를 운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일곱 개 가방』 에는 아련한 향수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어떤 기억에서 나온 것이겠죠? 대개는 어리고 가난한 시절의 친구, 남편, 아버지 혹은 어머니 등에 관해서입니다. 작가께서는 “나의 폐 속의 공기만큼이나 소중한 밀도로 그 사람들은 숨쉬고, 그림자와 닮은 이야기들을 남긴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 소설집은 오직 “그들이 왔다 간 것을 기록”한 것일 뿐이라고도 하셨지요. 이에 덧붙여 말씀을 해주세요.

 

표제작인 『당신의 일곱 개 가방』 은 사실 제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또 제 등단작이기도 합니다. 물론 소설 속의 인물처럼 바느질을 하고 솜씨방을 운영한 사람은 아니지만요. 어머니는 하루하루의 삶을 긍정하던 밝은 기질의 분이었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시곤 했죠. 어머니의 병환과 죽음은 제게도 인생이 짧고 유한하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했어요. 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이의 이야기와 섞고, 또 다른 이들의 삶과 조각조각 이어서 하나의 소설이 나온다고 보면 될 겁니다. 때때로 길에서 잠깐 스쳐간 사람의 이미지에서 한때 알았던 사람의 운명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의 눈동자. 사람들의 구부러진 등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침묵할 때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더 담겨 있으니까요. 어머니의 병간호와 그 어머니의 젊은 시절 꽃피던 이야기는 모든 자식들의 기억의 원류이기도 하니까요.

 

「불의 하루」에는 자신의 집요한 생의 의미, 즉 불의 연구를 하기 위해 사는 가난한 남편과 그 아내의 이야기인데요. 조금은 부조리한 상황에서 오직 하나의 가치관에 매여 서로가 자신의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가공의 인물 같기도 한 주인공들도 제 주변에서 조금씩 말을 거는 이들일 수 있기에 저는 그런 사람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에서 어떤 공통되는 결을 찾아내게 됩니다. 「파이프」에서는 오랜 시간 알아도 그 사람의 진실된 내면의 소리를 알아차릴 수 없는 삶의 모순을, 죽은 친구가 다시 돌아와 내게 말을 거는 식으로 썼습니다.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 혹은 전달되지 못한 내면의 이야기들은 이후에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까 싶었어요. 그것은 사실 제 친구의 죽음을 겪고 난 뒤 제가 아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시간을 놓친 이야기들이죠. 유효 기간을 지난 삶에게도 다시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작가께서 쓰신 작품들에는 특이하거나 극한의 상황에 처한 보잘것없는 존재(거미줄에 매달리듯 힘겹게 살아 있는)가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이 여럿 있습니다. 이 작품들은 주로 어떠한 주제나 소재로 그리시는지 간단히 묶음별로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웃에 살아도, 아니 조금만 공간과 처지가 달라도 우리의 삶은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고 인정받기가 어렵습니다. 다들 “왜들 그러고 살아?”라는 말로 다른 이들의 삶을 규정짓게 되지요. 왜들 그렇게 살아? 그 ‘왜’에는 답이 없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인생은 초콜릿 상자를 받는 것처럼 선택할 수도 없고 그 안의 맛이 다르다고 말하지요.

 

누구나 태어날 때 자신만의 가방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인생은 조금씩 시작이 다르고 그 궤적도 다르게 흘러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운명론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을 지향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운명에 대적해 노력하고 바꾸려 한다 해도 이후 그려지는 자신의 삶이 자신이 보기에 좋을 수도,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이 소설 속에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도 합니다. 「초록 아보카도가 있던 방」에서 ‘나’는 눈에 파묻힌 닫힌 공간 속 재앙의 한가운데에서 떠나려고 하는 자입니다.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어린 시절 집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요. 닿을 수 없는 곳에 이르고자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나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회색 벽」에서는 이혼한 여자가 남에게 뒤처지고 혼자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부동산의 가치를 좇아 어느 낯선 시골의 땅을 보러 왔다가 창고 속에 갇히게 되는 불운을 이야기합니다. 「자장가를 불러주세요」는 취업에 번번이 실패하고 삶의 방향성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하고 있는 여자의 고단함도 들어 있습니다. 어쩐지 그들 모두 낡은 벽 속에서 소리 낮춰서 중얼거리고 신음소리를 내기도 하지요. 깊은 밤 잠 못 드는 인물들 같아 저도 스스로 놀라 제게 주어진 억압이나 제 상황을 돌아보게 되는군요. 어떻게 헤쳐 나갈까? 생의 문제가 다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지만, 그렇게 헤쳐 나가고 몸부림치는 순간이 그래도 깨어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표제작인 『당신의 일곱 개 가방』 에는 한때 악어 가방이나 구슬가방을 갖고 다니던 어머니가 이제는 쓰러져 오줌 가방을 차고 우주인의 가방 같은 병상침대에 묶여 있는 모습이 나오죠. 이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싶은 정서가 아마 작가님이 갖고 있는 소설에 관한 관점이나 태도일 것 같습니다만?

 

인생은 결국 실패하는 것인지, 싸워 이겨나가는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어도 궁극적으로 삶은 매일매일 쌓아올리고 그리고 무너지는 것임은 자명한 것 같아요. 아름답게 꽃 피운 뒤에 아낌없이 꽃이 진다는 것처럼 인생의 좋은 시절이 가고 나면 쓸쓸하고 고독한 시간을 버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좋았던 한때가 있으니 그것을 추억한다는 것만으로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짧은 순간을 이어서 연대기를 쓰듯 관통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무엇이 남을까 생각하다 보니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당신의 일곱 개 가방』 에서도 어머니는 이 모든 일들을 농담하듯이 가볍게 이야기합니다. 앞서 간 사람들은 다음에 올 무수한 사람들에게 삶의 마지막에 위트와 윙크를 보내주었으면 해서입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어디 멀리 가냐?”라고 마지막에 어머니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물처럼 형태만 바뀌지 본질은 바뀌지 않는 환원적 인물들임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편, 「다시마 여자」나 「파이프」 같은 단편들은 화자 시점보다는 2인칭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려내시죠? ‘나’가 주인공이 아닌 소설에서 ‘그’가 아닌 ‘너’라는 인칭은 소설의 문법으로는 흔치 않습니다. 작가께서 염두하시는 소설의 문법이나 문체 같은 게 있는지요?

 

쓰다 보니 2인칭 문체가 소설의 숨결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의도하고 작정한 것은 아닌데 처음에는 일인칭으로 쓰다가 상대가 되는 ‘너’가 나와 습자지 한 장 정도로 너무도 가깝게 호흡하고 움직인다는 느낌이 들어서 2인칭의 인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너라는 2인칭의 주인공은 ‘나’ 주인공 속의 또 다른 자아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마치 소설이 아닌 편지나 전화를 하듯 너에게 이야기하고 너의 존재를 현실에 복기시키는 것은 내면 깊숙이 친밀함과 함께 슬픔을 공감할 때 나온다고 여겨집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주인공인 나의 이야기보다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심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제 소설은 서사 위주라기보다 내면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소설 속에서 인물에 따라 그 인물의 의식을 잘 표현하는 다양한 문체를 구사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한 소설 안에 간결하고 드라이하게 인물의 의식을 묘사하다가 다른 인물의 이야기에서는 보다 풍부하고 디테일한 문장을 써보는 것, 이전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체를 제 나름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계속 쓰고 또 쓰는 일만이 말해 줄 테니까요.

 

소설을 쓸 때마다 혹은 소설 쓰기를 마칠 때마다 반드시 독자에게 이런 것을 들려주어야겠다는 메시지 같은 게 있으신가요?

 

반드시 독자에게 이런 것을 들려주겠다고 작정하는 것은 없습니다. 읽어내고 해석하고 그것에서 향기를 맡는 것 등은 모든 독자들의 몫이니까요. 제가 소설에서 옳고 그름을 말하거나 이렇게 변해 가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전에 많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감동을 받거나 나름 소설을 읽고 제게 의미 있었던 것은 삶의 다양함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의식 속 깊숙이 해석되지 않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태도와 말투를 작가가 소설을 엮어 가며 그 의식의 깊숙한 곳의 방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었을 때 소설은 찬란해지는 것 같습니다. 단순함 속에서도 깊은 망설임과 고뇌가 있음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소설을 통해 증명되지 않는 내 의식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만약 더 좋은 소설을 써낼 수 있다면 제 소설에서 삶의 다양함을 인정하고 여러 겹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삶의 찬란함을 보아주었으면 합니다.

 

혹시 지금 쓰고 계시는 작품이 있는지요? 무슨 소재로 쓰실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쓰고 있는 소설이 완벽하게 결말을 맺을지 또 언제 끝이 날지 저도 잘 모르기에 몇 개의 작품을 같이 시작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고립되어 식물과 말하기를 꿈꾸는 한 남자 이야기와 중력파 측정기가 수십억 광년의 먼 우주에서 일어난 별들의 충돌을 측정했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전달될 수 없었던 사랑을 회고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재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누군가 지하철의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의 전화 통화 몇 마디에서도 이야기는 이어질 수 있고 오래된 기억 속의 이야기가 현실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밀려왔다가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처럼 때로 강렬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루한 내용이라 저도 어쩌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도 밀려오는 무수한 제 삶의 하루하루 속에서 글의 소재를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저도 그것이 기대됩니다. 마치 소설이라는 커다란 오래된 버스를 운전하다가 운 좋게도 어떤 이야기꾼인 낯선 승객을 만나 가보지 않은 길을 밤새 달려갈지 모르는 것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대해 보는 게 소설가의 특권이라고 말하고 싶으니까요.

 

 

 


 

 

당신의 일곱 개 가방정미형 저 | 알렙
‘그 파도가 휩쓸고 간 헛헛하게 남은 자국에서 조개껍데기를 줍듯 문장을 고르고 인물들을 매만져’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뒤이어 갈 수 있을까,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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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