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결국 역사를 통해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미래를 내다본다. 조작된 과거로는 조작된 미래밖에 볼 수 없다. 권력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명분을 민족의 역사와 동일시하고 대중을 선동한다. 국민을 변하지 않는 지지층으로 만듦으로써 영원한 권력을 취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믿는가?
『권력은 왜 역사를 지배하려 하는가』는 전 세계의 권력자들이 역사를 정치의 도구로 이용했던 10가지 사례를 이야기한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슬람 국가(ISIS)의 등장, 시진핑과 푸틴의 역사 미화 정책, 헝가리의 이슬람 난민 수용 거부 등 우리에게 충격을 안겼던 최근의 정치 이슈들이 바로 그 사례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에도 이러한 왜곡과 은폐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카로운 경종을 울린다.
저자 윤상욱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사를,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했으며, 1998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2012년 세네갈에서 근무할 당시 아프리카의 고통과 모순을 다룬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를 저술했고, 이후 외교부 개발정책과장으로서 원조정책 수립 업무를 맡았다. 현재는 주제네바 한국대표부의 참사관으로서 UN 인권외교를 담당하고 있다.
인권외교 현장에서 근무하며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국민들이 보고 듣고 말하는 것, 기억하는 것에 제약이 가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 관용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시민들의 이성과 상식을 질식시키려는 권력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무엇으로 시민들을 유혹하는지, 시민과 지식인 들은 이에 맞서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이번 신간에서는 어떤 단단한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외교관으로서 큰 용기를 내어 이 책을 쓰시게 된 이유가 있었는지요?
당연히 촛불을 든 시민이었지요. 온 세계가 가짜 진실, 반진실로 홍역을 앓고 있는데 우리는 가려지고 은폐되었던 진실을 밝혔습니다. 촛불은 시민적, 정치적 의지의 상징이 되었지만, 저는 이 촛불이 ‘권력자에게 더 이상 속지 않겠다’는 외침으로 여겨졌습니다.
최근 국내외로 큰 정치적 이슈가 많았습니다. 책 속에서 트럼프의 당선이나 우리나라 국정 교과서 논란, ISIS의 출몰 등이 전부 역사와 연결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정치인 또는 권력자들이 왜 역사를 이렇게 이용하려 드는 것일까요?
정치인들이 역사를 이용하는 현상은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가 탄생했던 근대 이후에 활발해졌습니다. 봉건 시대에는 주군과 봉건 영주 간의 계약이 권력의 정당성을 담보해주었지만, 프랑스 혁명은 권력의 원천이 인민에게 있음을 선언하면서 기존의 정치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습니다. 권력자들은 인민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어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어떤 민족인지,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연구해야 했습니다. 역사가 아주 훌륭한 ‘국민 만들기’의 도구가 된 셈이죠.
이러한 현상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19세기보다 더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권력을 영속화하려는 권력의 속성을 들 수 있습니다. 권력은 국민을 길들여 자신의 영원한 지지자로 만들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이때 역사만큼 좋은 도구는 없습니다. 권력자들은 민족의 영광된 역사 또는 위대한 인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명분에 신성함을 덮어씌우려 하는 것이죠. 오늘날 푸틴과 시진핑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을 신성화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라고 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유주의의 쇠퇴입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자유주의는 황금기를 맞이했다가 최근 위기를 만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세계화의 혜택을 입지 못한 백인들이 미국우선주의와 고립주의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중동의 무슬림 난민을 혐오하며 다시 호전적인 민족주의에 경도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기회로 삼기 위해 역사를 이용합니다.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미국우선주의에 열광하고,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기독교 유럽의 수호자’ 신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교묘한 기억의 조작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현상이 단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쓰시면서 가장 애착이 가거나, 가장 큰 분노를 느끼셨던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가장 충격적인 것 하나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중일전쟁 당시 공산당의 반역 행위를 숨기기 위한 노력, 아리아인을 고대 인더스계곡 문명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한 역사 왜곡이 인상적이라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인데, 놀라운 점은 이런 역사 왜곡이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무서운 사례로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또한 미국예외주의의 전통이 무너진 자리에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주의가 드리워지고 있는 현상이나, 러시아 정보기관이 조직적으로 가짜 뉴스를 전 세계에 유포하고 있다는 사실도 근심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체성과 진실을 흔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들 때문에 우리는 역사와 진실을 지켜야 합니다.
전작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에서 우리가 모르는 아프리카의 고통과 모순을 다루면서 여러모로 주목을 받으셨는데요. 혹시 아프리카에도 이런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들이 있었는지요?
물론 있습니다. 정치와 권력의 속성은 어디서나 통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입니다.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맞서 투쟁하고 넬슨 만델라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자유와 정의의 정당마저도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ANC는 사실 백인정권만을 상대로 투쟁했던 것은 아니며, 라이벌 흑인 집단을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흑인들 사이에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원하는 집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ANC는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고 모든 흑인이 단결하여 백인의 탄압에 맞서 싸웠다고 서술합니다. ‘모든 흑인 대 모든 백인의 투쟁’이 ANC가 원하는 신화입니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ANC의 모티브 역시 인종주의적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역설적이지요.
이외에도 아프리카의 빈곤과 저개발, 내전과 폭력과 같은 모든 불행의 원인을 식민지 시대의 유산으로 돌리려고 하는 지도자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최근 40년 가까운 권력을 내려놓은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책 속에서 ‘디스토피아’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는데요. 스위스라는 먼 곳에 계시지만, 흔히 ‘헬조선’이라는 말로 표현되곤 하는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디스토피아는 너무 나쁜 것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입니다. 문학에서는 대개 인간성이 부정되고 자유로운 의식과 판단이 불가능해지는 사회로 묘사됩니다. 반면 ‘헬조선’은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삶의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우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디스토피아와 헬조선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헬조선이라는 말에는 불행의 씨앗이 있습니다. 바로 피해의식이지요. ‘기성세대가 우리 시대의 행복을 앗아갔다’는 인식은 주어진 사회질서에 불신이라는 불을 지필 수 있는 불씨와도 같습니다. 청년은 국가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이들의 미래를 보호하도록 사회가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흔히 탈진실, 반진실의 시대라고들 합니다. 진실보다 거짓이 오히려 힘을 받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이 어떤 도움을 주게 될까요?
저자로서 이 책이 독자들의 비판의식을 자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치적 동기를 가진 탈진실과 반진실은 아주 교묘한 언어로 만들어져서 종종 첫눈에 그것의 진위를 밝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평소 역사와 과거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시대정신과 그 변화의 맥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러한 거짓 진실은 어느 정도 걸러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은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왜곡된 역사적 화법이 시민들의 눈과 귀, 기억을 어떻게 잠식하는가를 다룬 책입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비판의식을 고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주제로 역사를 이야기하실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계획 중이신 책이나 연구가 있으신가요?
본업이 외교관이기에 다음에 어떤 책을 쓸지에 대한 심적 압력은 느끼지 않습니다. 우선적으로는 현업에 충실해야겠지요. 다만 제 삶의 동반자인 역사학은 가끔씩 제게 영감을 줍니다. ‘이 책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사명감이지요. 아프리카에서 근무하며 아프리카의 실상과 허구를 밝혀야겠다는 신념하에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 를 쓴 것처럼, 탈진실과 반진실의 시대에 유독 빛나는 촛불을 든 시민을 보며 『권력은 왜 역사를 지배하려 하는가』를 썼습니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글을 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사명의식이 또 느껴지기를 희망한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
권력은 왜 역사를 지배하려 하는가윤상욱 저 | 시공사
이들의 희망대로 모든 인간이 똑같은 기억과 생각을 가진 사회는 그야말로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 힘주어 말한다. 과연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믿는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