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 홍대입구역에 있는 CY씨어터에서 ‘예스24 문학학교’ 2강이 진행됐다. 김금희, 임현, 손보미 소설가와 함께 한 1강 “지금, 소설을 읽는 이유”에 이어 박준, 김민정 시인이 진행을 맡아 “시인의 삶, 삶 속의 시”라는 주제로 2시간을 가득 채웠다. 총 3강으로 구성된 ‘예스24 문학학교’의 마지막은 조남주 소설가와 노회찬 의원이 “우리네 삶을 그린 소설 읽기”의 제목으로 독자를 만났다.
최근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발표해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에 이어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는 박준 시인과 문학동네, 난다 편집자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의 김민정 시인은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자유롭고 유쾌한 두 시인의 만담을 통해 문학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를 쓰기까지 ‘나’의 유년시절
박준 : 유년을 들여다보면 뭐 하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하는 게 없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개 키우는 걸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알고 보니 굉장히 공부를 잘해야 하더라고요. 다만 저는 온통 개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찬 일기를 매일 썼어요. 처음에는 관찰 일기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픽션을 가미해서 소설도, 산문도, 시도 아닌 글을 쓰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대학에 가기 위해 기르던 개를 분양 보내고 나니 일기에 더 쓸 게 없어 제 하루를 쓰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후회와 자기 살생에 관한 감정이었는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 썼던 게 물론 시는 아니에요. 저는 문학의 첫 번째 이유가 내가 가진 감정을 솔직하게 적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적는 건 그 다음이죠. 지금에서야 저는 일기에 제 감정을 쓰면서 문학의 첫 수업을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해요.
김민정 : 박준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단히 많은 부분이 저랑 반대예요. 저는 오감으로 시를 쓰는 편인데 제 시에는 죽은 개에 대한 이미지가 많아요. 아주 어렸을 때, 그슬린 채로 팔다리가 잘리고 이를 악문 개가 던져져 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저희 집은 개를 키웠는데 ‘아,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는 뭔가를 빤히 쳐다보고 관찰하게 된 것 같아요. 또 저희 동네에 매일 술에 취해서 아내를 패는 떡집 아저씨가 있었어요. 그것도 밖에 나와서 가래떡으로. 저는 그걸 보면서 ‘왜 저걸 맞고 있어야 하지?’ ‘왜 아무도 말리지 않지?’ ‘왜 다음 날 저 아줌마는 저 아저씨 밥을 해주고 있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거죠.
그리고 어릴 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에 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육상을 했는데, 그리피스 조이너라고 지금도 깨지지 않는 100m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나왔어요. 그 여자가 뛰는 걸 보자마자 ‘이거 백날 해도 안 되겠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아는 건 되게 슬픈 일이에요.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발레도 해보자마자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내가 안 되는 걸 하나씩 빠르게 지우니까 하고 싶은 게 몇 개 안 남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는 그림 보는 걸 너무 좋아했는데 그리는 건 죽을 만큼 싫어했어요. 제가 보는 만큼 잘 못 그리는데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도저히 그리지 못해서 백지를 냈는데 반항하는 거로 오해해서 선생님이 스케치북으로 때렸어요. 그때 스케치북 스프링에 머리가 꼈는데 그게 너무 치욕스러웠어요. 그때 내가 자의식이 강하다는 걸 깨달았고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는 무언가를 보려고 하는 이상한 눈 하나가 뾰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지금까지도 국어사전을 많이 보라고 얘기해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려주거든요. 저는 우리말로 된 야한 것, 의성어나 의태어, 잘 안 쓰는데 매력적인 단어에 형광펜을 그었는데 제 친구들은 각각 물리학에 관련된 것이나, 한자에 줄을 긋더라고요. 자신이 표시한 걸 보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어요. 전 종이나 질감, 읽는 걸 좋아하니까 이와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점을 보고 오셨는데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다고 하셔서 문창과에 진학했죠. (웃음) 원래 문인은 벌어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뒤이어 김민정 시인은 박준 시인과 자신의 공통점이 삶에서 경험한 어떤 장면에 대한 섬세한 기억력에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준 시인은 대학 시절의 기억을 언급하며 김민정 시인과 달리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늦게 알았다고 고백했다.
창작의 경험, 자만심과 굴욕의 공존
박준 : 저도 할 줄 아는 게 노트를 채우는 것뿐이니까 글과 관련된 학교에 갔고, 어쩌다 보니 시를 읽고 합평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어요. 덕분에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읽게 됐는데 너무 어려운 거예요. 모르는 단어가 없는데 문단 단위, 나아가 한 편의 시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왠지 수상했어요. 그때 갑자기 시 동아리 선배들이 대단하게 보였어요. 추상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처음 본 거죠. 문학의 숲 안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었어요.
그때부터 바보처럼 ‘이거 나도 쓰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황태, 동태, 먹태 같은 시를 하루에 열 개도 넘게 써서 신춘문예에 도전했는데 6년을 떨어졌죠. 저는 그때 제가 시를 가장 잘 쓴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자만심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일반적으로 자만심은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처음 무엇을 시작하거나 노력할 때, 서둘러 피드백이 오지 않는 일을 할 때는 중요해요. 자만심마저 없으면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없으니까요. 근데 자만심만 있으면 안 돼요. 때로 가장 냉철한 비평가가 내면에 있어야 해요. 객관성이 필요한 거죠. 그렇다고 또 너무 비평만 하면 글을 쓸 수 없어요. 그러니까 자만심 혹은 자아존중감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객관성이에요. 저는 그게 25살에 습작할 때에나 왔는데 제 습작 과정은 비평가를 내 안에 들이면서 한 단계 발전한 것 같아요. 반반씩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김민정 : 처음에 소설을 쓰려고 대학에 갔어요. 첫 과제가 ‘가족’에 관한 시를 쓰는 게 과제였는데 친구들이 쓴 걸 보니까 제 과제는 시를 쓰려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학교를 자퇴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강의실을 나오는데 선배로부터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받았어요. 바로 펼쳐봤는데 하나도 모르겠어서 고민하다가 매일 점심을 굶고 한 권의 시집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산 시집들이 무슨 내용인지 몰라도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면 뿌듯했어요. 그때 저는 인천 출신 시인이 쓴 시집을 주로 샀어요. 나랑 같은 동네를 살았던 사람이면 그 시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장석남 시집에서 제가 아는 음반 가게를 배경으로 한 시를 발견한 거예요. 내용은 몰라도, 이해는 못 해도 한 편의 시가 그림처럼 다가올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왜 좋은지 모르는데 그 자체로 예쁘고 재미있는 것. 그렇게 하나둘 발견하기 시작하니까 재밌었어요. 그냥 책 자체가 좋았던 거죠.
그렇게 시집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최승자 시인의 시 속에서 ‘못 잊어, 개새끼’라는 구절을 발견했어요. 순간, ‘시에 이런 걸 써도 돼?’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슬프고 이런 걸 갖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자연이 들어가는 시 같은 걸 쓰기 싫었던 이유를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내 마음대로 시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가식을 벗고 마음대로 쓰는 게 쉽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부담을 버리니까 몸에서 막 글이 나왔어요. 그렇게 수업시간에 냈더니 교수님이 3000원 주시면서 네 시는 시가 아니니까 버리고 밥이나 사 먹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왜 시가 아닌지는 알려주지 않으면서 안된다고만 하는지 몰랐죠.
김민정 시인은 IMF 가 터질 무렵 잡지사에 취직했다. 적성이나 회사의 거리를 계산한 겨를 없이 다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자신감이 없었고 바닥에 눌어붙은 밥풀’ 같았다고 회상한다. 그러다 우연히 정채봉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시를 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김민정 :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느닷없이 대학생 때 썼던 시에 대한 기억이나 욕구가 떠올랐어요. 출퇴근하면서 과거에 썼던 시를 출력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아직 자신이 없었어요. 하루는 동생과 같이 지하철을 탈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동생이 “손 안 치워, 씨발!” 욕을 하는 거예요. 근데 욕을 하니까 갑자기 동생 주변에 공간이 생겼어요. 그때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소리를 질러야 알아듣는구나, 라는 걸 알았어요. 그 이후로 막 쓰기 시작해서 신춘문예에 낸 거죠. 그렇게 24살에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하게 됐고 그제야 시를 공부하고 닥치는 대로 시를 읽었어요.
‘개성 없음’을 개성으로
이어서 김민정 시인의 낭독이 이어졌다. 김민정 시인은 시를 쓸 때 마음대로 단어를 써도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길 바란다며 자신의 시 ‘젖이라는 이름의 좆’을 낭독했다. 박준 시인은 김민정 시인만의 개성을 강조하며 본인이 고민했던 ‘개성 없음’에 대한 일화를 들려줬다.
박준 : 습작을 할 때 제 시에 개성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저처럼 개성이 없던 친구 둘과 함께 각자 개성을 만들어 오기로 했죠. 한 친구는 불행하게 살다 간 음악가에 대해 시를 쓰겠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집시들을 동경해서 그들의 사유를 공부하겠다고 한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개성을 못 찾았어요. 두 명의 친구는 그 이후로 굉장히 시가 좋아졌어요. 저는 개성 없음을 개성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의 개성을 내세울 게 아니라 나와 타인이 쓰는 일상어를 시로 옮겨 써보자는 데에 생각이 미친 거죠. 무수히 많은 시인이 이런 방법을 썼죠. 하지만 이건 따라 쓰는 게 아니에요. 내가 놓인 삶의 위치와 정서가 다르니까 모두가 다 새로운 게 되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박준 시인 역시 자신의 시 ‘가을의 말’을 낭독했다. 일상에 널려있는 타인의 말을 그대로 옮겨온 박준 시인의 시는 그가 얼마나 섬세하게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시인에게 묻다
정말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준 : 있죠. (웃음) 예전에 취재차 놀이공원에 갔어요. 미아보호소의 풍경을 써야 했거든요. 재미있는 게 4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울면서 들어와요. 근데 5살, 6살 그 이상이 되면 울지 않아요. 울먹거리면서 들어와서 꿋꿋하게 부모님 이름과 연락처를 말해요. 그렇게 연락을 취해서 부모님이 오면 그제야 울어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 어느 순간에 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면 울지 않는 게 슬펐어요. 울면 물론 달라지는 게 조금씩 있죠. (웃음)
제목은 어떻게 지으시나요?
김민정 : 사실 저는 제목 짓고 싶어서 글 쓰고 책 만드는 사람이에요. 이름을 짓는 게 재밌어요. 서점 가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서점에서 직원한테 책 위치를 물어보지 말라고 그래요. 가서 책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책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과 책의 모양을 다 경험할 수 있는데 직원에게 부탁하면 다른 책을 볼 여력이 없어지잖아요. 한 가지 조언해드리자면, 제목을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소리야?’라는 말이 나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주로 욕조에서, 그러니까 원고를 읽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작업해요. 이번 박준 시인의 산문집도 그 과정에서 좀 더 빨리 출간하게 되었고요.
박준 : 저는 언덕에 관해서 쓰면 언덕이고, 파주에서 쓰면 파주예요. 이번 산문집도 김민정 시인에게 제시했던 제목은 ‘박준 산문집’이었어요. (웃음)
시란 무엇인가요? 결국, 좋은 시란 무엇인가요?
박준 : 문학은 첫 번째로 내가 가진 감정을 언어로 솔직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잘 쓰냐, 못 쓰냐는 두 번째의 문제고 첫 번째의 문제는 쓰냐, 안 쓰냐인 거죠.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쓰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일이 나에게 되돌아와요. 내가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쓰기의 영역이고요. 얼마나 보편적으로 아름답게 쓰느냐는 작가나 시인의 영역이죠. 이것에 이르면 정의가 달라지죠. 누구는 메타포라고 하고, 누구는 이야기라고 하고, 누구는 상징이라고 하고, 이미지나 언어라고 하고. 시에 대한 정의가 다 맞지만 다만, 시는 글인 동시에 말이잖아요. 친밀한 관계에서만 나눌 수 있는 쓸데없는 말들이 있는데 좋은 시란 그런 말 안에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김민정 : 제 세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시의 정의를 내린 것 같아요.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무용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무의미한 일이잖아요? 있다가 없어질 건데, 살다가 죽을 건데 살잖아요. 너무 열심히 살아요, 남을 죽여가면서 너무 열심히. 무의미한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그 일이 저한테는 시 같더라고요. 세 번째 시집 제목을 그렇게 정했던 것도 7년 동안 놓았던 시를 엮으면서 ‘시도 삶과 똑같구나’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유승희(예스24 대학생 리포터)
글이 가진 힘을 믿는 사람. 꾸준히 읽고 쓰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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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