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영화감독. 저자 소개글 첫 줄에 적힌 표현이 재미있다. 여균동 감독은 1994년 영화 <세상 밖으로>를 시작으로 <미인>, <여섯 개의 시선>, <1724 기방난동사건> 등을 연출했다. 그러나 감독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출연해 청룡영화제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한 ‘연기파 감독’이다. 그뿐인가.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고, 그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전에 없던 화자의 목소리를 담은 그림책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출간했다. 곧 <영화의 시작>이라는 영화도 완성한다. 감독은 “여러 가지 관심이 지대한 것 같아요. 나는 아무런 벽이 없고, 넘나드는 데에 아무런 선입견도 없거든요.”라는 말로 이 궤적들을 설명한다. 그러니 ‘가끔 영화감독’이라는 저 수식은 정확한 것일지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는 마루야마 겐지의 『천 일의 유리』에서 시작되었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본 적 없는 대상을 주인공으로 호명함으로써 세상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간다. 이곳에는 ‘눈물’도, ‘아파트’도, ‘물음표와 느낌표’도, ‘어?’도 화자가 된다. 매일 같은 길을 산책하는 할아버지를 따라가는 시선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정답 없는 질문만 던지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여균동 감독. 그는 심심할 틈 없는 바쁜 세상, “심심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신경 쓰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들
흥미로운 작업을 하셨어요. 동화 같기도 하고, 그림에세이 같기도 한 독특한 책인데요. 귀여운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아니, 진짜 그림은 말이 안 되는 거죠. 요즘 웹툰이나 일러스트 등을 보면 장난이 아니에요.(웃음) 그 창의성과 상상력. 그 생각을 하면 이 작업은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요, 시간이 많았어요.
오래 전에 완성된 작업이라고 들었어요. 다른 출판사에도 갔던 원고라고요.
영화를 위해 써놓은 것들이 있어요. 장편도 있지만 단편도 많이 있거든요. 단편 써둔 것이 몇 개 있었을 거예요. 이런 영화는 시간이 되면 하면 좋겠다, 하는 것들이죠. 그런데 단편을 만들려고 써둔 것들을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영화 안 만들 것 같은데, 해서 책 형식으로 썼죠. 거기에 한 장 씩 삽화처럼 그려 넣고 일단 완성을 해뒀어요. 그 원고가 몇몇 군데에 왔다 갔다 했어요. 보시다시피 얇잖아요. 좀 더 두껍게 몇 개를 묶어 내자는 제안을 당시 출판사에서 줘서 그러자고 했는데요. 잘 안 되더라고요.
이 자체의 완결성 때문인가요?
한 권의 책이라고 하는 것이 주는 어떤 중압감이 있었어요. 아무 관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랬죠. 그것 때문에 2-3년 지나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계약했던 출판사에 계약금을 돌려줬어요. 못하겠다고 했죠. 묘한 경험이었어요. 머릿속에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라고 하는 그냥 사소한, 신경 쓰지 않으면 모르는 이야기들 십여 개를 시리즈로 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한 권에 내자고 하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지금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서 책을 내게 됐죠. 그때도 조건을 달았어요. 한 권 분량이 안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딱 이 분량 밖에는 안 된다, 앞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 내게 됐어요. 대충 서너 개 정도는 작업이 더 되어 있고요.
이야기 자체의 시작은 어땠나요? ‘끝말’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천 일의 유리』를 언급하셨거든요.
『천 일의 유리』를 읽으면서 정말 탄복했어요. 천 개의 시선으로 한 개의 이야기를 짜 맞췄는데요. 전체적인 이야기는 간단해요. 어느 마을에 골프장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예요. 개발업자, 깡패들도 오면서 마을 전체가 변하는 이야기죠. 그것을 한 쪽 씩 천 쪽을 썼어요. 그걸 보는데 야, 정말 대단하다, 만약 이런 걸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생각했죠. 시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시선. 이를 테면 하나의 이야기를 여섯 명의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천 개의 시점 중에 시점이 될 수 없는 시점들이 너무 많았어요. 한숨, 구름, 간지러움, 그런 것들이에요. 영화가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머리가 핑 도는 거 있잖아요. 그것이 충격적으로 남아 있던 상태였죠. 그때 살던 아파트 뒤편, 매일 산책하던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그림과 똑같이 생겼어요.(웃음) 저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 번 해봐야겠다, 해서 쓴 거예요.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재미있는 꼭지가 많아요. ‘아래’나, ‘어?’, ‘왕년에’ 같은 것들은 참 새로웠어요. ‘지렁이’가 좋았고요.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도 있으세요?
즐거운 상상, 망상만 갖고 있는 상태에서 썼어요. 특별하게 기억나는 건 없는데요. 그런 게 있어요. ‘증후군’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면 자기를 주인공과 일체화해요. 스스로 세상에 대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물론 나쁜 사람에 이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좋은 편이에요.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사실 대개는 그 드라마나 영화에 나온 주변인물에 가까워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맞아 죽는 엑스트라와 같은 거죠. 하지만 자기가 캡틴 아메리카라고 항상 생각해요.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움직인다고 생각을 해요. 당연할지도 몰라요. 어찌보면 그것이 자아의 출발점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세상이라고 하는 건 내가 있든 없든 굴러갈 거라고요. 그런 생각 자체가 흥미로웠고요. 이야기를 독점적으로, 혹은 ‘주인공 신드롬’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생각들로 맞추어 만들어보고 싶었던 거예요.
여러 개의 시선이라는 게 의외로 큰 영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이런 식의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 만드는 훈련을 하면 훨씬 더 자기를 포함한 주변을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늘 타인을 생각하는 삶, 공동체,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실제로 그게 뭔지 피부에 느껴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세상의 주인공은 너만이 아니란다, 지나가는 개도, 바닥도, 너의 한숨 소리도, 모두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라고 하면 좀 다를 거예요.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되면서 생각이 독점적이거나 독선적이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백이 많잖아요. 이 공간이 주는 풍성함이 있죠. 이야기 틈에 쉬는 공간이 존재함으로 해서 독자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바로 그곳에서 시선이 확장되는 경험을 해요.
이야기는 이래야 한다, 고 하는 것을 깨서 그럴 것 같아요. 주인공만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주인공일 수도 있고, 우연히 던져진 몇 개의 조각들이 주인공일 수도 있잖아요. 그게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고요. 여백은 아마 그걸 의도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 책은 뭘까요? 동화라고 생각하세요? 혹은 그림 소설일까요?
책이 늦게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그거예요.(웃음) 동화라고 해야 할까, 청소년물이라고 해야 할까, 하는 거죠. 말하자면 주소지가 없는 거였어요. 충분히 이해해요. 나도 이게 뭔지 모르니까요. 나는 내가 생각한 걸 쓴 거고 어디에 속하는지는 나중 문제니까, 이해했어요.
만약 영화로 모습을 갖춘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네요.
못할 것 같아요.(웃음) 하고는 싶은데요. 이런 이야기 방식 같은 것을 실험적으로 해볼 수는 있겠죠. 독립영화나 실험영화들이 사실은 영화 장르의 발전과 닿아 있잖아요. 돈이 안 드는 범위 안에서 그런 실험들을 해보면 좋을 것 같긴 해요. 그런데 아직도 그냥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예요.
시리즈를 생각하는 중이라고 하셨잖아요. 지금 많이 생각하는 시선, 단어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대여섯 개 정도가 있는데요. 어쩌면 남들이 보지 않는, 신경 쓰지 않는, 사소하게 생각하는, 혹은 주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시선인 것 같아요. 이를 테면 전깃줄에 새가 앉아 있는데요. 한 놈만 거꾸로 매달려 있어요. 그런데 그 녀석이 왜 그러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런 이야기죠. 아무도 모르는, 조약돌 같고, 먼지 같은 이야기들을 몽상하듯 몇 개 쓰고 있어요.
있는 듯 없는 것
‘주인공 신드롬’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이런 것에 고심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결국 보니까 별 게 없더라고요. 별 게 없다면 별 게 없는 진실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말하자면 한풀 꺾이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잘난 체 하는 청춘은 잘난 체를 해야죠. 안 그러면 자신의 그 열정과 집중을 쏟아 부을 데가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까 그것만이 진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꺾인 거죠. 하지만 그게 새로운 진실을 보게 한 것 같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다음 영화 주제인데요. 없는 듯 있는 것, 그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인터뷰도 마다했었는데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최근에 책을 한 권 읽고 있어요. 『드러내지 않기』라는 책이에요. 아마 그런 생각과 비슷한 것 같은데 지금 자신 있게 얘기하지 못하겠어요.
책을 내고, 영화를 찍는 건 어떤 의미에서 ‘드러내기’에 가까운 행위잖아요. 그렇다면 드러내지 않는다는, 지금 말씀하신 주제와의 괴리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실지 궁금해지거든요.
그게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인데요. 책을 내는 것, 영화를 찍는 것, 인터뷰를 하는 것, 모두 드러나는 거죠. 그런데요. 있는 듯 없는 것과 이것이 모순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산으로 들어가거나 종교로 귀의한다, 그것은 단절이죠. 있는 듯 없는 게 아니라 없는 거예요. 중요한 건 있는 듯 없다는 거거든요. 있어야 하고, 없어야 한다, 이것이 지금 갖고 있는 주제예요. ‘사라져버릴 거야!’라는 표현을 적어도 살면서 십여 차례 안 써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이 ‘사라진다’는 게 뭘까요? 거기에 뭐가 있는 것 같아요. 책도 원래는 안 내는 게 맞죠. 그런데 드러내지 않음은 그렇게 소극적인 건 아닌 것 같아요. 있는 듯 없는 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이 인터뷰에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항목이 못 돼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렵네요.
『드러내지 않기』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아이가 노는 모습을 엄마가 지켜봐요. 아이는 엄마가 보는 걸 몰라요. 그때 느끼는 즐거움이라는 거예요. 근데 아이가 엄마를 보는 순간 뭔가를 원하죠. 순수한 관계가 깨지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인생을 그런 식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식으로 산다는 게 뭘까요. 하여간 코앞에 와 있는데 모르겠어요.(웃음) 기본적으로는 이게 정답이 있는 질문은 아닐 것 같아요. 항상 물음표만 있는 질문이죠. 지금은 그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다른 건 아예 관심도 없고,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런 감독님의 생각들이 영화가 되기까지의 구체적인 과정이 듣고 싶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이야기가 떠올라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하고 그에 관계된 책들을 살펴보죠. 많이 읽진 못하고 구할 수 있는 한 일단 구해요. 그게 부자죠. 부자가 되어야 해요. 쌓아 놓고 읽으면서 메모를 시작하죠. 대사 같은 것들이요. 책을 천천히 읽는 편이에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을 빌리는 거죠. 아까 이야기한 주제는 시나리오 단계고요. 나머지는 다 됐는데 스모킹 건이 남았어요.
길에서 꿈꾸고 있어야
영화를 위해 시작되었다가 책이 된 글이잖아요. 글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가끔 그런 얘기들이 있죠. 저는 시나리오가 영화보다 재미있다는 얘기를 가끔 듣고요.(웃음) 이 책도 그냥 읽으면 되지, 생각이 들었어요. 레제, 읽는 희곡 같은 게 그렇잖아요. 그런 것처럼 읽을 수 있는 시나리오 식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시리즈’는 십여 권 정도 생각하는데요. 상상의 공간 같은 게 나는 좋아요. 이 시리즈가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붉은 인주로 그린 그림을 전시한 ‘붉은 누드’, 돌그림을 전시한 ‘각인각색’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이런 작업들을 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냥 뭐가 들어와요. 거기에 미치는 거죠. 미쳐서 하루 종일 돌만 깎고 있고 그래요. 한 번은 조각보에 미친 적이 있어요. 뭔가 있는 거죠. 하늘하늘하고, 몽환적이면서 말이에요.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꽂혔어요. 조각보를 그림으로 막 그렸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느낌이 사라져요. 표현할 길이 없는 거죠. 인간이 게으르고 모질지 않은지라(웃음) 어느 순간 아닌가보다, 하고 그만뒀어요. 저에게 ‘이게 더 낫지 않니?’는 무의미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그걸 주장하기도 어렵고요. 내가 안 그러니까요. 불가능해요.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으시군요.
여러 가지 관심이 지대한 것 같아요. 나는 아무런 벽이 없고, 넘나드는 데에 아무런 선입견도 없거든요. 그래서 별 고민이 없는데요. 타인이 봤을 때 의아할 수는 있겠죠.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공상하기, 선입견 없이 몰입하기, 이런 것들이 어려운 세상이라 눈길이 가는 것 같아요.
하여간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놓치는 것도 많이 생겨요. 혼자 막 가고 있는데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으세요?
아쉽다기보다는 ‘어? 큰일났네?’ 싶어지죠. 하지만 ‘슈퍼마리오’가 앞으로 가다보면 먹을 것이 있듯이 뿅뿅뿅(웃음) 가는 거죠. 사실은 일정한 궤도 안에서 사는 게 정상이고, 바람직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해요. 무책임하게 얘기할 수는 없죠. 그러나 최근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삶의 정도(正道)라는 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 정도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말이죠. 깊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무엇보다 기본 소득제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직장을 구해서 세상의 부를 축적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지만요. 일단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는 게 인권 아닌가요? 적어도 지금과 같이 삶의 패턴이나 인생의 기준이라는 게 의심되거나 붕괴된다면 기본 소득제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총선 출마 이력도 있으시잖아요. 정권도 바뀌었는데 정책 제안 욕심은 없으세요?
그런 제도적 개선에 관심이 왜 없겠어요. 물론 이런 저런 관심도 많아서 세상도 제도권 내에서 바꿔봐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근 깨달은 바가 있어요. 최근에서야 정리된 생각인데요. 뭘 만드는 자는 거기 편승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것이 남의 일은 아니지만요. 만드는 사람, 자기는 길에서 꿈꾸고 있어야죠. 입장은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주장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의 역할과 그의 정신은 전혀 다른 거죠. 그 생각이 든 순간, 편해졌어요.
편해졌다면, 이전까지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는 의미인가요?
의무감도 있고요. 해야 할 것 같고 그랬죠. 잠도 안 오고요. 흔히 민주화 세대라고 하잖아요. 시대의 담론이 자기 삶의 의무가 되었던 시절을 보낸 자들이 갖고 있는 병리학적 증후군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편해졌다는 건 홀가분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에요. 다르다는 거죠. 나의 영역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일이고,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촛불집회를 갔다가 선각 같은 게 왔어요. 나에게 촛불이란 영화를 찍는 것이다, 라고요. 그 전까지는 영화 찍는 것에 그리 큰 욕망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촛불집회를 가서 느낀 거죠. 영화도 찍었어요. 아무도 모르는 영화를 편집하고, 믹싱하고 있으니까요. 가을 쯤, 어디선가 보게 될 거예요. 제목은 <영화의 시작>이에요. 영화로 시작하자, 우리의 촛불은 영화다, 예요. 묘하게도 촬영 끝낸 날이 탄핵되던 날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상황의 독자들이 이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심심한데 심심함의 거울이 뭘까를 생각하는 분들이요. 심심하다는 건 다른 걸 찾겠다는 의미겠죠. 아이들이 심심하다고 할 때 그런 게 아닐까요. 심심한 아이들, 심심한 어른들, 심심한 청소년들에게 권해요. 그들이 한 쪽이건 두 쪽이건 관계없이 보면서 하나의 단어, 하나의 관념, 하나의 사물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심심해졌으면 좋겠어요. 심심해지고 싶은 사람이 읽어도 좋겠네요. 사소한 것 하나를 붙잡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고 권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앞으로도 이렇게 생각할 것들을 던지는 역할을 계속 하시려는 거죠?
그게 무엇을 만드는 자의 의무 아닌가요.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닌 것 같아요. 정답 없는 질문만 던지는 사람이죠. 정답 없는 질문을 계속 할 수 있는 에너지와 능력, 고민 같은 게 있는 사람들이 난 좋아요. 어차피 정답이 있는 질문은 질문이 아닌 거니까요.
신연선
읽고 씁니다.
책사랑
2017.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