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영창대군을 죽인걸까?
선조와 인목대비는 거대한 재산이 영창대군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그 거대한 재산이 영창대군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런 면에서 영창대군의 재산은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철퇴가 되어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글ㆍ사진 신명호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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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느끼고 출궁을 거부중인 드라마 <화정>속 영창대군과 정명공주.

 

 

창대군, 폐서인되다

 

5월 21일, 광해군은 영창대군을 폐서인(廢庶人)했다. 영창대군은 대군의 신분에서 평민의 신분이 되었다. 그에 따라 대군의 신분으로 갖고 있던 모든 재산과 의전을 박탈당했다. 선조가 살아생전 주었던 그 막대한 재산은 국가에 몰수되어 광해군 차지가 되었다.


선조와 인목대비는 거대한 재산이 영창대군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그 거대한 재산이 영창대군의 몰락을 재촉했다. 그런 면에서 영창대군의 재산은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철퇴가 되어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이어 6월 21일에는 출궁 조치가 내려졌다. 폐서인이 된 이상 영창대군은 궁에서 살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당시 영창대군은 8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광해군에게 말 그대로 ‘화의 근본’이었다. 그것은 선조의 서자인 광해군과 적자인 영창대군 사이에 숙명적으로 맺어진 운명이었다. 6월 22일, 영창대군은 강제로 출궁되어 도성의 여염집에 구금되었다.

 

 

어린 영창대군, 궁 밖으로 쫓겨나다

 

그때 영창대군방의 궁녀들은 ‘사나흘만 피접 나갔다가 금방 올 것이니, 버선 신고 웃옷 입고 소인들을 따라 나가시지요.’라며 달랬다. 그러자 영창대군은 ‘나를 죄인이라고 하고, 죄인들 드나드는 문으로 내어 가려 하니, 죄인이 버선신고 웃옷 입은들 다 쓸데없다!’라며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누가 그리 말하더이까?’라는 궁녀들의 물음에 영창대군은 ‘남이 알려줘서 알았을까? 내가 그냥 알았네. 서소문은 죄인들이 드나드는 문이니, 나도 죄인이라 하여 그 문 밖에 두려는 게지?’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어린 영창대군 역시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눈치 채고 있었다. 기가 꺾인 영창대군은 ‘나하고 누님하고 같이 가라면 몰라도 나 혼자는 못 가!’라며 한 발 물러섰다. 영창대군은 8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혼자 나갔다가는 죽음이라고 직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 누이 정명공주와 함께 나가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같이 나가겠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영창대군의 마음이 또 인목대비를 울렸다.

 

 

8살 영창대군, 비명횡사하다

 

대비전에서 끌려 나간 영창대군은 약 한 달 정도 한양의 여염집에 구금되었다. 그 사이 영창대군을 죽여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쳤다. 7월 26일, 광해군은 명령을 내려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인 위리안치(圍籬安置)를 하게 했다. 8살밖에 되지 않은 영창대군은 영문도 모른 채 강화도로 끌려가 가시로 울타리를 친 집에 감금되었다. 그리고 7개월 후인 1614년(광해군 6년) 2월 10일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때 영창대군의 나이 겨우 9살이었다.
영창대군이 비명횡사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비통에 잠겼다. 나이도 나이지만, 죽음 자체가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강화부사 정항이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실록에는 ‘정항이 음식을 넣어주지도 않고, 방 안에 가두고 불을 때서 뜨거워 눕지도 못하게 하자 영창대군이 창살을 부여잡고 밤낮으로 울부짖다가 기력이 다하여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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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대군의 묘


당시 이 소문을 들은 강화도 사람들치고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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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정명공주신명호 저 | 생각정거장
요즘 드라마 〈화정〉으로 인해 17세기 조선왕실의 역사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당대 여성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될 만큼 뛰어난 필체로 남자보다 더 기개 있는 작품을 후대에 남긴 정명공주.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대기를 통해 17세기 혼란의 조선, 궐에서 일어난 음모와 암투의 역사를 살펴보고 어떻게 위기를 이겨냈는지 역사 속 이야기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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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

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